EREDOS RAW novel - Chapter 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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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의 증명
에레도스는 수없이 많은 세계들을 만나며 점점 더 완벽에 가까워졌다.
다양한 세계의 문화와 대단한 물건들을 수집하고, 쓸모 없는 세계를 부숴 에너지로 전환한다. 가치 있는 세상을 아래에 두고 관리하며 혹시 모를 파멸을 대비한다. 어느 세상이 가치가 있는가, 그 판단의 기준이 상당히 독선적이지만 기준이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정하다고 볼 수 있다.
바로 그 공정함 아래에서 보라색 등급의 괴물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시스템이 그들을 어떻게 생각할진 아무도 모른다. 일단은 세상을 시험할 때 사용하는 것은 확실하지만, 자격을 인정받는 세계보다 그렇지 못하고 부서지는 세계가 더 많은 상황에서, 자연스레 시간이 흐를 수록 보라색 등급의 존재들은 소멸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많이 탄생할 것이다.
보라색 등급의 힘은 스스로의 것이 아닌 학살을 통한 보상으로 시스템에서 오는 것, 제 아무리 에레도스가 막대한 힘을 가진 시스템이어도 그 자원을 상당부분 차지하는 보라색 등급 존재가 소모되지 않고 되려 쌓이는 현상이 과연 달가운 일일까?
“자의적으로 처리하진 않는가 보군.”
– 공정하니까. 그게 에레도스 시스템이지. –
“하지만 내 생각엔 다른 방지책이 있을 것 같은데.”
– 물론 그런 주장도 있긴 하지. 어쨌든 내가 암세포라고 표현한 이유는 알겠지? –
세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로 피세티엘의 말에 무조건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시스템을 만들었을 그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이 정도 문제점을 인지하지 못했을까?
“지금 들려준 이론은 단순한 추측인 건가?”
– 추측에 의존한 부분이 많긴 하나 나름대로 우리들이 알아낸 사실과 현상을 고려한 최적의 이론이다. –
“그것도 궁금하군. 어떤 현상을 관찰했고 뭘 알아냈길래 이런 이론이 만들어졌는지.”
그렇게 말하며 세현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페퍼민트처럼 화한 향이 나면서도 감로차처럼 끈적이지 않는 은은하고 진한 단맛이 난다. 상당히 마음에 드는 차였다.
피세티엘의 이야기는 결코 짧지 않았다.
중간중간 마법으로 각종 서적이나 자료들을 소환해 보여주며 진행된 탓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세현은 전혀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고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고 때로는 감탄하며 집중했다.
천계는 에레도스와 아주 오래전부터 연계하기 시작했다. 비단 천공성을 소환할 때만이 아닌,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서 천계의 신성력을 빌리는 신성술사 등을 선택할 수도 있을 정도로. 당연히 그만큼 시스템에 대해 아는 것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론이 만들어진 근거가 상당히 그럴 듯했다. 뚜렷한 반증이 나오지 않는 이상 흔들릴 이유가 없을 정도로.
“혹시 이 자료들의 복사본을 얻을 수 있을까?”
– 복사본을? –
고민하던 표정을 짓던 그가 잠시 눈을 감고 귀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흡사 통신기기를 사용해 무전을 하는 듯한 모습이라 잠자코 기다리길 잠시, 이내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 내어주지. 잠시 기다려라. –
“귀중한 자료일 텐데, 고맙군.”
– 물론 그냥 내어주는 건 아니야. 함부로 유출하지 않겠다고 약속해라. 믿을 만한 자에게만 보여주고 막 다뤄주지 않았으면 좋겠어. 특히 마계에 흘러들어가는 건 극히 주의해야 할 거다. 우리가 그대에게 보여준 호의가 자칫 적의로 바뀔 수도 있으니. –
“충분히 유념하도록 하지. 헌데, 이렇게 순순히 허락해준 이유가 뭔가?”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예상치 못한 호의의 진의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 원로 피세티엘은 정녕 모르겠냐는 듯한 표정으로 가볍게 답했다.
– 머지 않아 진짜 신이 될지도 모르는 존재와 우호를 다지기 위해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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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현은 시험을 치렀던 시련의 길을 거치지 않고 곧장 천공성으로 돌아올 수 있다. 피세티엘이 열어준 포탈을 통과하자 스탄헤이드의 전직소였던 것이다.
게다가 빈 손으로 돌아온 것도 아니다. 세현이 차를 꽤 마음데 들어한다는 것을 눈치 챈 건지, 피세티엘은 상당한 양의 찻잎을 챙겨줬다. 어지간하면 겸양의 뜻으로 거절이라도 하겠는데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냥 들고 와버렸다.
적어도 몇 달은 맛있게 마실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적어도 여섯 시간 이상은 그곳에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헌데 관리자는 여전히 그를 기다리며 포탈 앞에 멀뚱히 서 있었다. 슬슬 날이 저물어가는 터라 주황빛 노을이 아름다운 천공성 위를 비추고 있었다.
“여태 기다린 건가?”
“그렇습니다.”
“그럴 필요까진 없었는데, 고생 많았다. 얼마나 지났지?”
“5시간 42분입니다. 시험은 통과하신 겁니까?”
혹시나 하는 기색으로 물어오는 관리자에게 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순간 불신의 기색을 내보였으나, 그 직후 세현이 등 뒤에서 만들어낸 순백의 빛으로 이뤄져 양 바깥족으로 흩어지듯 퍼져나가는 날개를 보고 몸이 굳었다.
서서히, 아주 느리게 눈이 커진다. 입까지 살짝 벌어지는 것이 상당히 흥미로울 정도다. 여태껏 관리자는 자신의 감정을 내보인 적이 극히 드물었다. 특히나 지금처럼 이리 표정이 무너진 것은 처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놀라운가?”
“……네, 놀랍군요. 대체 어떻게?”
“내가 좀 특별하거든.”
은근히 능력을 과시한 세현이 태블릿을 꺼내들고 혹시나 처리해야 할 일이나 밀린 보고가 있는지 확인했다.
“간부들에게 전직소 이용을 허가한다고 전해라.”
“알겠습니다.”
어떤 시험이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 일단 전직소의 사용을 금지했었다.
허나 관리자의 말대로, 난이도는 어려울지 몰라도 시험을 치르다 죽을 확률은 거의 없을 듯하다. 그러면 한 시라도 빨리 시험에 응하게 해서 익숙하게 만들어줘야 한다.
레야는 몇 번만에 통과할 수 있을까? 만약 통과한다면 아주 본격적으로 부려먹을 수 있다. 하나의 목숨이 추가로 생기는 셈이니 미래에 또 다른 보라색 등급이 등장했을 때 데려갈 수도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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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님, 이제 시간입니다.”
한 남자의 말에 화려한 검을 만지작거리던 남자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태양의 맹세, 그가 처음으로 얻은 전설급 아이템이자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동반자처럼 되어버린 무기. 스스로의 재능 역시 천재급이라 자부하는 그였으나 이 검이 없었다면 지금의 그도 없었을지 모른다.
서영환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움직임에 앞에 양쪽으로 도열했던 수십의 인원들이 자세를 바로하며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들 말고도 내성 바깥에는 백에 가까운 지휘관들이, 그리고 성벽 밖에는 만에 이르는 수의 병력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다. 그가 세현의 명령을 받고 이바노프가 짜준 계획에 따라 움직이면서 커다란 분기점을 만나는 날이었으니까.
과거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를 점령한 세력 덴세츠 길드와 일전을 치를 시간이다. 여기서 승리하면 혼슈의 중앙부를 장악할 수 있다. 더 위로 치고올라가지 않아도 이미 일본 최대의 세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되는 것!
솔직히 훌륭한 플랜이 있긴 했지만, 지금의 이 위치에 오기까지 과정이 지나칠 정도로 쉬웠다. 물론 그것은 원래 혼슈 아래를 지배하던 두 세력, 풍신과 대일이 류한 길드와의 전쟁으로 모두 붕괴해버렸기 때문이다.
일본 지역에 잔류하던 구 SVR요원들의 도움을 받은 덕도 컸다. 안톤 이바노프의 꼬임에 넘어간 그들은 계획의 핵심인 서영환의 능력을 검증하기 무섭게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덕분에 대일 길드가 슬금슬금 장악하려던 풍신의 땅을 수월하게 접수했고, 이후 대일이 류한과의 전쟁에서 깡그리 몰살당하다시피 한 것을 곧장 전해듣고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여 해당 지역까지 모조리 접수했다.
부족한 인원수가 가장 큰 문제였는데 그것은 우스울 정도로 쉽게 해결됐다. 지도자를 잃은 이 지역의 일본인들은 서영환이 자잘한 분쟁에서 전력을 다해 보여준 무력에 홀라당 넘어가버렸다.
충분히 그럴 만했다. 서영환은 세현과 비교했을 때 초라할 뿐이지, 지금 당장은 어느 누구도 쉽사리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초강자다.
“가자.”
상념을 접으며 말한 그가 묵직한 기세를 흩뿌리며 성을 나섰다.
이후 멈추지 않고 성문까지 나서 이동하는 그를 따라 만에 가까운 대군이 천천히 진군하기 시작했다. 전부 각성자인 덕에 일반인이 걷는 것보다 거의 두 배는 되는 속도였다.
그렇게 대략 한 시간 정도를 이동하자, 마침내 넓은 평야에 들어섰다.
반대편 멀리서부터 흐릿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덴세츠 길드의 병력들이 보인다.
그 수는 약 두 배.
불리한 싸움이다. 일반적으로, 병법에서는 별다른 전략전술을 사용할 수 없는 평야에선 수가 더 많은 쪽이 유리하다고 한다. 그것은 각종 초자연적인 힘을 휘두르는 각성자들의 싸움에서도 그리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전의 전쟁들과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면, 바로 개인의 힘으로 전장의 판도를 바꿔버릴 수 있는 엄청난 강자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양측 군대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일정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이미 서로 나눌 대화는 전부 나누었다. 타협의 여지는 없다. 대일이 무너진 것을 안 덴세츠 길드는 새롭게 나타난 서영환의 길드 ‘해오름’을 인정하지 않았다. 순순히 인정한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그만 치워버리면 혼슈의 유일무이한 지배세력이 될 수 있는 상황에, 그것을 순순히 포기할 만큼 야망 없는 자가 덴세츠 만한 길드를 만들었을 리 없으니까.
그러니 이 전쟁은 필연이다.
“후우.”
싸움을 피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 뿐, 일본 점령을 포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현재의 비극을 미래로 떠넘기는 것에 불과하다. 서영환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세계는 곧 생존의 시대를 넘어 전쟁의 시대로 넘어갈 것이다. 아직 괴물들의 위협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역사상 인간이 보여준 어마어마한 탐욕과 광기를 보면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류한이 일본 점령을 포기한다면, 머지 않아 이곳에서 탄생한 더 크고 강한 세력이 한반도를 넘볼 것이다. 이곳은 한반도와 이어진 ‘다리’를 제외하면 사방이 바다로 둘러쌓인 한때는 섬이었던 곳, 진출할 곳은 정해져 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전쟁은 지금보다 훨씬 더 크고 격렬할 것이다. 훨씬 더 많은 피와 죽음이 흐를 것이다.
그러니 지금 싸우는 게 차라리 낫다.
서영환은 잠깐 뒤돌아 서 질서정연하게 도열한 병력의 상태를 살폈다. 연설을 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으나, 이미 대일 길드의 세력권을 정리하며 승리에 승리를 거듭했던 군대는 사기가 더 이상 오를 수 없이 치솟아 있는 상태였다.
망설일 이유가 없다. 그가 검을 들고 마력을 끌어올렸다.
[ 공격-!! ] 우르르르릉!스킬 전사의 포효.
일대의 대지가 울릴 정도로 터져 나온 어마어마한 포효와 함께, 그가 달리기 시작했다.
쏘아진 화살처럼 빠르게 튀어나가는 그를 선두로 일만에 달하는 대군이 어마어마한 함성을 내지르며 함께 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대열이 흐트러지지 않는 것이 각자의 임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숙지한 모습이다.
그 갑작스럽지만 질서정연한, 그리고 잔뜩 기세가 벼려진 흉포한 돌진에 맞은편에 멈춰 섰던 덴세츠가 당황하는 게 선히 보였다. 하지만 그들 역시 대일 길드에 눌려 있었을 뿐 충분한 힘을 가진 강한 세력, 곧 마주 기세를 끌어올리며 함성과 함께 돌진을 시작했다.
총합이 삼만을 넘는 양측의 군대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선두에 선 전사들은 저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살기를 있는 대로 끌어올리며 기세를 멈추지 않는다. 그 뒤의 전사들도 그렇고, 그 뒤에 있는 자들도 마찬가지다. 뒤에 있는 원거리 전투원들이 최선을 다해 아군을 도울 테지만 가장 선두에 선 자들은 대부분 죽을 것이다.
전쟁이란 그런 거다.
한없이 비이성적인, 스스로를 오직 집단을 위해 내던져버리는 자살에 가까운 행위가 당연해지는 불합리와 광기의 결정체!
“으아아아아아악!”
한 전사의 고함이 신호라도 된 듯 양측의 사격수들이 공격을 시작했다.
전장에 무수히 많은 푸른빛 선이 생겨나며 각 진형의 선두에 폭발이 일어났다. 어떤 공격은 강력한 관통력으로 앞에 있던 자를 포함해 뒤에 선 자까지 관통하며 피를 흩뿌렸다.
이제는 누구도 멈출 수 없다.
전사들은 수없이 죽어나가면서도 결국 맞붙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 충돌의 직전, 서영환이 별안간 허리춤의 아공간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하늘로 힘껏 내던졌다. 동시에 궁극스킬 ‘파괴의 현신’을 발동했다.
전신에 서리는 붉은빛 오오라, 동시에 싸움에 앞에서 터뜨렸던 것보다 배는 더 커다란 고함이 터졌다.
[ 으으으오오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우르르릉!콰과과광-!!
이어지는 것은 대규모 폭발.
휘두른 검에서 폭풍처럼 뿜어진 어마어마한 불길이 그의 전면을 온통 휩쓸며 회오리친다. 극도로 발휘된 태양의 맹세가 시뻘겋게 달아오르며 주위를 일그러트린다.
수 킬로미터 밖에서도 보일 법한 규모의 화염에 덴세츠의 전열이 박살나버렸다. 그 틈새를 본능적으로 파고든 서영환은 사방으로 검을 휘두르며 끔찍한 위력의 화염을 미친듯이 뿜어냈다.
압도적이지만 명백히 무리를 하는 모습, 허나 이렇게 단번에 기세를 꺾는 것이 힘을 아끼며 싸우는 것보다 배는 효과적이다. 게다가 적들이 빠르게 죽을 수록 유리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또 있었다.
충돌 직전 서영환이 던졌던 무언가, 그것은 중력의 법칙에 따라 떨어지지 않고 하늘에 뜬 채로 인간들의 전쟁을 오연하게 주시하기 시작했다. 공포스럽게 세로로 찢어진 동공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이리저리 움직이며 죽은자들의 힘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세현이 악마를 죽이고 얻은 아이템, 파멸의 주시는 이미 서영환에게 넘어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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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독합니다 독해. ㅠㅠ 지금도 머리가 띵해서 퇴고가 잘 됐는지 모르겠슴니다만, 일단 올리고 나중에 다시 살피겠습니다.
부디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추천! 꾹! 부탁드립니다. (__) 모두 감기 조심하세요. 잘때 이불 걷어차시면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