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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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의 증명
서영환은 악귀처럼 날뛰었다.
전장 전체를 뒤흔드는 외침과 함께 검을 휘두를 때마다 불길의 폭풍이 휘몰아치며 경로에 자리한 덴세츠 길드의 병력을 깡그리 불태워버린다.
전투의 흥분과 광기에 취했던 그들의 정신을 서늘하게 식혀버리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은 위용이었다. 전열이 박살나며 기세가 죽자 지휘체계까지 실시간으로 흐트러지는 게 선하게 보였다.
반대로 해오름 쪽은 기세가 더 크게 올랐다.
서영환이 무너뜨리고 지나간 자리를 뒤따르며 영역을 넓히는 전열은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투지를 뿜어냈으며, 그러한 선전 덕에 후방에서 별다른 견제조차 받지 않게 된 원거리 전투원들이 최대 전력을 마음껏 뿜어냈다.
“정신 차려라!”
“전열을 유지해! 밀리지 마라!”
“화력을 집중해! 아무렇게나 쏟아내지 말고 조준을 하란 말이야!”
“보호 주문을 쉬지 마라! 죽지만 않았으면 무조건 살려내!”
지휘관들이 있는 힘껏 고함쳤으나 서영환의 고함소리에 파묻혀 사라진다.
휘몰아치는 화염의 폭풍은 그 시각적 효과 또한 대단해서 설령 소리가 묻히지 않았더라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하늘에 뜬 파멸의 주시 아이템의 효과가 결코 적지 않았다.
죽은 적군의 시체에서 무형의 기운이 흘러나와 하늘에 둥둥 뜬 눈동자로 향한다. 이후 보이지 않는 ‘공포’ 라는 감정 에너지로 치환돼 덴세츠 쪽 진형에 흩뿌려지고 있었다.
차츰차츰 확실하게 공포가 전염된다. 덴세츠 길드 인원들이 실시간으로 힘을 잃어갔다. 반대로 해오름 길드는 괴물 같은 힘으로 상대를 완전히 몰아붙이고 있었다.
“비켜라!!”
그렇게 더 늦기 전, 덴세츠 쪽에서 승부수를 띄웠다.
그들이라고 해서 50레벨이 넘은 강자가 없는 게 아니다. 이제 슬슬 거대 세력이라면 그 정도 강자 한둘 정도는 보유할 때가 됐다.
나선 것은 덴세츠 길드의 모든 전투원을 관리하는 총 전투단장이었다. 길드장과 혈연으로 이어진 친동생이자 최강의 전사!
공방의 비율이 적절한 직업 전사는 언제 어디서나 보통 이상의 전력을 뿜어낸다. 특히나 자신보다 약한 자들을 상대로는 약점이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면모를 보인다.
그는 나타나자마자 서영환과 마찬가지로 궁극스킬을 발동시켰다. 공교롭게도 그가 선택한 스킬 역시 서영환의 것과 같은 파괴의 현신이었다.
붉은빛 오오라가 뿜어지며 눈동자까지 붉어진다. 한순간에 끓어오르기 시작한 압도적인 힘이 전신을 내달리며 자신도 모르게 고함을 내지르도록 만든다.
서영환의 것과 비슷한 크기의 포효를 내지르며 그가 달렸다. 박차는 대지가 부서지듯 뒤쪽으로 튕겨나가고, 그렇게 무시무시한 속도로 돌진하는 강력한 기세에 서영환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꽈아앙!!
검과 검이 부딪쳤다. 동시에 달려들었던 덴세츠의 총 전투단장이 순간 휘청이며 뒤로 물러섰다.
예상 외의 힘이었다.
여태껏 패배를 몰랐기에 이번에도 당연히 이길 것이라 확신하고 내지른 일격이 철벽을 후려친 것처럼 완벽하게 막혔다.
서영환은 상대의 빈틈을 놓칠 정도로 어수룩하지 않았다. 검이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교묘하게 휘어지며 엄청난 속도로 날아든다. 기겁한 상대가 급히 방어를 시도했으나 형편없이 밀려나기 시작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마음가짐의 차이였다.
서영환은 충분히 강한 힘을 갖고 있음에도 조금도 방심하지 않았고, 그를 노리던 덴세츠 총 전투단장은 자신의 공격이 막힐 것에 대비하지 않았다.
이미 더 높은 하늘을 본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였다. 게다가 실력 또한 서영환 쪽이 명백히 우위였다.
미친듯이 뻗어지는 검격을 덴세츠의 총 전투단장은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다. 눈 한 번 깜빡이는 동안에 수 번이나 되는 연격을 얻어맞는 중이었다. 몸에 걸친 튼튼한 갑옷과 뒤에서 쏟아지는 보호주문 및 치유주문들이 아니었다면 쓰러져도 진즉에 쓰러졌다.
“영주님을 지원해라!”
하지만 한 발 늦게 상황을 눈치 챈 해오름의 지원이 더해지자, 잠시지만 나름대로 팽팽하던 균형이 급속도로 기울었다. 몇 차례 검이 부딪치고 폭음에 가까운 금속성이 터진 후, 몰아치는 화염에 그대로 휩쓸려버린 덴세츠 총 전투단장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는 전신에 불이 붙은 상태에서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한계는 분명했다. 고통에 분산된 정신과 녹아드는 육체로 상대하기엔 서영환이 너무 강했다.
몇 초 지나지 않아 불길에 휩싸인 목 하나가 허공을 날았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서영환의 궁극스킬 파괴의 현신 지속시간이 끝났다.
당연하지만, 이미 전황은 그가 더 이상 무리하지 않아도 충분히 유리해진 후였다.
상대의 최고 강자를 순식간에 참살해버린 것은 일종의 결정타였다. 게다가 충분한 수의 죽음이 모인 것인지, 하늘에 뜬 파멸의 주시가 슬슬 심상치 않은 기색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미 덴세츠의 전열은 반 이상 무너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 진형이 무너진 군대는 더 이상 군대가 아니다. 그저 모여있는 개인일 뿐.
승리를 확신한 서영환은 조금이라도 이 전투를 빨리 끝내기 위해 다시 땅을 박차고 앞으로 돌진했다. 아직 그는 그럭저럭 여력이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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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함이 흐르는 장소, 사람이 지내기에 최소한의 가구만 있는 검소하기 짝이 없는 방의 중앙, 의자에 앉은 한 여인이 눈을 감은 채 천천히 호흡을 이어가고 있었다.
지난 날의 악몽이 떠올라 마음이 괴로울 때면 그녀는 명상을 했다. 다만 흔히 ‘명상’ 하면 떠오르는 머리를 비우는 종류의 명상은 아니었다.
그녀는 이제는 만날 수 없는 가족 그리고 친구들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은은하게 미소지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하루종일 오늘은 뭘 하고 놀까 고민하던 어렸을 때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괴로운 기억 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행복하고 몽실몽실한 기억이 많음을 상기하며 스스로를 보듬었다.
다시는 맛볼 수 없는 허상이자 미련이라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규정짓는 소중한 추억이라 생각하면, 그런 부정적인 단정으로 스스로를 상처 입힐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그녀의 정신을 지탱해주는 기둥은 하나가 아니었다.
무신론자였던 그녀의 사고방식을 송두리째 뒤흔든 존재가 있다. 도무지 실존을 장담할 수 없는 여태까지의 추상적인 신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앞으로도 계속해서 닥쳐올 커다란 위협들에서 그녀를 포함한 수많은 이들의 안전을 책임져줄 실제적인 존재가.
반사적으로 움직인 손이 가슴팍의 펜던트를 만지작거렸다. 그녀와 면식 있는 세공사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목걸이로, 그 모양은 타원형의 바탕에 검 한 자루의 형태가 정밀하게 세공된 것이었다.
그녀의 신앙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상징은 바로 검이다.
펜던트를 만지작거리며 한세현을 떠올리던 그녀, 문하랑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시간이 됐다.
방을 나서자 회의실과 비슷한 공간이 나타났다. 그곳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와 있었다.
인원은 그녀를 포함해 총 일곱, 나이도 성별도 모두 달랐지만 공통점이라면 그녀와 똑같은 형태의 목걸이를 차고 있다는 점이다.
마련된 자리에 앉으며 문하랑이 입을 열었다.
“천공성에 대한 특집 기사는 오늘이 마지막이죠?”
“네. 류한 정보부에서 제공한 좀비 소탕에 대한 대략적인 계획 기사도 준비 끝났습니다. 내일부터 보도할 예정이에요.”
신세계 신문사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관리자들은 간결하고 빠르게 필요한 업무 논의를 마쳤다.
오늘의 이 시간은 여태까지 해왔던 일의 반복일 뿐이다. 이미 체계가 잡혀 있는데 시간이 끌릴 이유가 없다.
하지만 오늘은 회의만 하고 끝이 아니었다.
문하랑은 모든 안건 논의가 끝났음에도 회의를 파하지 않고 사람들의 면면을 차분하게 훑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공통된 신앙을 갖고 있다. 또한 그들은 전부 에레도스 사태 이전엔 무신론자였다. 각각 외과의사, 정치부 논설가, 유전공학 연구원, 반도체 수석 엔지니어, 로펌 변호사 등 전문적이고 권위 있는 분야에서 일하던 사람들이기도 하다.
어렵게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말이 통하는 똑똑한 이들이라는 뜻이었다.
“우리의 신앙을 전파할까 생각 중입니다.”
해서, 문하랑은 괜히 말을 돌리지 않았다.
담담하게 내뱉은 그녀의 말에 남은 여섯의 사람들이 잠깐 서로를 쳐다봤다.
“길드장님께서 하지 말라셨지 않습니까?”
“네. 하지만 천공성이 등장하며 어떤 소문이 도는지, 다들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
“흐음.”
이제 흰머리가 나기 시작하는 안경 낀 중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관리하자는 말이군요?”
“네, 그거예요.”
역시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다들 무슨 말인지 단번에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류한 영지에는 세현의 능력을 의심하는 자가 없다. 의심은 커녕 숭배할 정도로 열광하는 이들도 많았다.
세현의 활약이 더 이상 하찮은 의심으로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류한과 적극적으로 공조하며 정확한 사실을 기사로 내보내는 신세계 신문사의 힘이 컸다.
결정적인 것은 대일 길드와의 전쟁이었다. 종군기자를 방불케 하는 자세로 취재했던 덕에 아주 자세하고 현장감 넘치는 기사를 며칠이나 보도할 수 있었는데, 그것이 세현의 위용을 제대로 알리는 사건이 된 것이다.
그렇게 한세현의 초월적인 힘에 사람들은 일종의 경외심까지 품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 이제는 일반 영지민들은 알지도 못했을 신기방기한 천공성까지 소환돼버렸다.
천공성은 천계의 것이다. 신성한 느낌을 잔뜩 흩뿌리며 등장했던 사건은 많은 이들에게 일종의 ‘영적인 충격’까지 선사했다.
영지민들은 며칠 지나지 않아 신세계 신문사 덕에 천공성에 대한 제법 자세한 사실들을 알게 됐다. 그리고 모두가 궁금증을 해소하며 한 가지 또 다른 궁금증을 갖게 됐다.
천공성은 길드를 가진 각성자들만 구입할 수 있는 보라색 룬 3개 짜리 상품이라고 한다.
헌데 그 보라색 룬 3개를 대체 어디서 구했단 말인가?
공식적으로 아직 류한은 보라색 등급의 괴물을 사냥한 적 없다.
들리는 소문이 하나 있긴 했다. 최근 북쪽에서 내려오던 어마어마한 규모의 좀비떼를 조종하는 숙주가 보라색 등급이었고, 그것을 세현이 직접 처리했다는 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사실이라 쳐도, 그 숙주가 보라색 룬 여러 개를 뱉어내지 않은 이상 여전히 두 개가 부족하다.
공식적인 답을 해주지 않는 류한 길드의 태도에 많은 사람들은 궁금증을 해소하지 못하고 이런저런 가설을 세웠다. 천공성의 등장은 그만한 임팩트가 있었기에,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당 의문에 관심을 쏟고 있었다.
그 중에 일부 영적으로 충격을 받은 자들이 신앙심 비슷한 것을 품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필연이다.
무언가를 굳게 믿고 싶어하는 ‘신앙심’은 인간이 태초부터 갖고 있던 아주 자연스럽고 강렬한 마음이다.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이다. 인류가 쌓아올린 문명과 신앙의 관계는 대단히 밀접해서 둘 중 하나를 떼어놓고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설령 천공성이 아니었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생겼을 신앙이었다. 적어도 문하랑과 이곳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독단으로 행하진 않을 겁니다. 제가 직접 방문해서 허락을 얻을 겁니다. 아마 허락하실 거라 생각합니다만.”
“정말 그럴까요?”
“그분은 충분히 현명하십니다. 이런 상황이 일어날 것이라 예측 못하셨을 리 없습니다.”
모두가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요. 무분별한 광신을 막기 위해서라도 관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아마 그분도 허락하실 겁니다.”
“당연히 문하랑 씨가 주도하시겠죠? 저희 신앙의 이름은 무엇으로 하실 겁니까?”
세현이 거부했기에 이들의 믿음은 아직 그럴듯한 이름조차 없었다. 그렇게 하기로 다들 합의를 봤다. 하지만 정식으로 교단을 만들게 되면 반드시 이름이 필요하다.
그녀는 선뜻 대답하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다른 이들 역시 신중하게 고심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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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추천! 부탁드립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