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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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 조건을 만족하여 새로운 시설을 건설할 수 있습니다. –
“응?”
한창 회의실에서 북한 지역의 좀비들을 처리할 계획을 논의하던 중이었다. 세현은 갑작스레 귓가를 울리는 시스템 메시지에 손을 들어 회의를 중지시켰다.
“새로운 시설?”
그 말을 한 것은 세현이 아닌 혜진이었다. 부길드장으로서 길드 포인트를 소모해 특정 시설을 건설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그녀였기에, 그녀에게도 메시지가 들렸다. 둘은 동시에 태블릿을 꺼내들고 새로운 시설이 뭔지 찾아냈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것 처럼 입을 다물고 서로를 잠시 멀뚱히 쳐다봤다. 생겨난 건물이 너무 뜬금없다. 신전이라니? 대체 무슨 신을 믿는 신전?
“일단 하던 이야기부터 끝내지.”
세현은 의문은 잠시 접어두고 회의를 재개했다.
거의 마무리 단계였던 논의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아 전부 끝났다.
그리고 그때, 회의가 끝났음을 안 한 길드원이 안으로 들어와 세현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보이곤 말했다.
“길드장님을 뵙길 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세계 신문사를 운영하는 문하랑 씨라고 합니다.”
“아, 문하랑.”
어쩐지 새로 생긴 시설에 대한 의문이 단번에 해소되는 느낌이다.
“응접실로 안내해라. 나도 곧 갈 테니.”
“알겠습니다.”
간부들이 회의실을 모두 나서고 잠시, 세현은 자리에 남은 혜진에게 문하랑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녀가 예전에 자신을 찾아와 혹시 인간이 아니냐고 물었던 것과, 종교적인 광신이 생길 것을 우려한 세현이 그것을 차단했던 이야기를.
혜진은 진지하게 들으면서도 한편으론 웃기다는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그러더니 별안간 얼굴을 굳히고 묻는다.
“너 진짜 신이야?”
“……아니야.”
“아니, 실종됐을 때 사실 바뀐 거 아냐? 아니지? 내 동생 어딨어?”
“아니라니까.”
세현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난 듯, 착용하고 있던 서클렛을 벗었다.
그동안 이것을 차지 않았던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물건이다. 하지만 이제는 필요 없어졌다. 전직소의 시험을 통과하며 얻은 통찰의 눈 덕분이다.
“가져.”
“이걸? 갑자기 왜?”
“난 이제 필요가 없거든.”
“아니, 그러니까 왜? 이게 얼마나 좋은 아이템인데.”
통치자에겐 그야말로 보물 중의 보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물건이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에 혜진에게 주는 것이다.
“난 이번에 얻은 스킬이 있잖아.”
“통찰의 눈인가 그거? 용도가 좀 다르지 않아?”
“대체할 수 있지. 정 필요한 일 생기면 다시 빌리면 되니까, 일단은 누나가 쓰고 있어.”
혜진은 받아든 서클렛을 잠시 만지작거리며 살피더니 그것을 머리에 착용했다.
“잘 어울리네. 계속 쓰고 다녀.”
“아니 뭐…… 그래. 기분이 좀 묘하네.”
“기분이? 왜?”
“그냥. 이거 쓰면 사람들이 거짓말하는 걸 다 알 수 있다는 거잖아? 괜히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게 아닌가 모르겠네.”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다. 몰라도 되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잘 지내던 사람과도 마음의 벽이 생기는 경우가 있으니까.
하지만 혜진은 그래서는 안 된다.
“누나는 지배자야. 몰라도 되는 사실 같은 건 없어. 알면 알수록 좋은 거야. 설령 판도라의 상자일지라도 그 안에 뭐가 있는지 모르면 반드시 열어서 확인해야지.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것처럼.”
“알겠어, 알겠어. 괜히 혼내고 그래…… 그냥 해본 말인데.”
“혼내다니? 내가?”
세현이 피식 웃었다. 혜진은 머리에 찬 서클렛을 만지작거리면서 아무것도 안 쓴 것 같다며 신기하다는 말을 하더니, 이내 할 일이 있다며 회의실을 나섰다.
누이를 배웅한 그는 곧장 응접실로 향했다. 도착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기다리던 문하랑이 벌떡 일어서서 고개를 숙인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래, 반갑군.”
그녀의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세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혹시 종교 문제로 온 건가?”
문하랑이 잠깐 동안 놀란 기색을 보인다. 그리고 순순히 고개를 숙였다.
“예. 허락을 받고자 왔습니다.”
“……나를 교주로 하는 종교 창설을?”
“길드장님은 교주가 아닌 신앙의 대상입니다. 우려하시는 부분이 뭔지 알고 있습니다. 그 어떤 이윤추구 행위도 없을 것이며 특정한 믿음 또는 규율을 강요하거나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포교활동도 없을 겁니다. 그저, 조만간 중구난방으로 생길 신앙들을 한곳에 묶어 건전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입니다.”
“다른 신앙들이라.”
무엇을 말하는 건지 알겠다.
류한의 긍정적 이미지 창출을 위해 소환했던 천계의 천공성, 이미 그에 대한 논의를 하며 종교적인 느낌이 섞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 적 있었다.
그렇게 일종의 부작용처럼 생겨날 눈 먼 믿음을 알아서 묶어 관리해준다고 하니 바라던 바다. 물론 상대를 100% 믿을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
“내가 전에 분명히 나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헌데 나를 신앙의 대상으로 하는 종교를 만들겠다니, 무슨 생각이지?”
또 하나의 세력을 만들 생각이라면 당연히 불가하다. 영지 내의 모든 것은 류한의 관리여야 한다. 심지어 그것이 실체가 없는 신앙이라 할지라도.
질문과 동시에 세현은 통찰의 눈 스킬을 사용했다.
처음으로 써보는 스킬, 평범하던 갈색 눈동자 깊은 곳에서 은은한 황금빛이 돌기 시작한다. 그것을 마주한 문하랑이 자신도 모르게 흠칫했다.
‘눈에 빛이 방금…..? 잘못 본 건가?’
‘어떻게 설명드려야 하지?’
‘여전히 사람이라고 말하시는구나.’
‘인간인 나를 일단 불신하시는 건 당연하지.’
‘내가 다른 마음을 먹는 걸 우려하시는 듯한데.’
’24시간 감시에 절대복종을 전제하면 될까?’
‘보다 확실한 맹세 같은 건 없나?’
‘어떻게 하면 믿음을 보여드릴 수 있을까?’
문하랑의 속마음이 머릿속에서 마치 속삭이는 것처럼 들려온다. 한 개가 아닌 여러 개였다. 동시에 그녀가 느끼고 있는 감정도 흘러들어온다. 세현 자신의 감정과는 분명하게 분리되었지만 그게 어떤 감정인지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문하랑은 딴 마음을 먹은 게 아니었다.
그리고 예전 세현의 설명에 그가 사람이라고 납득한 것도 아니었다.
“나를 여전히 사람이 아니라 생각하고 있었군.”
“……네.”
“어째서?”
정말로 말해도 되는지, 눈치를 보는 그녀의 속마음이 그대로 흘러들어왔다. 처음 사용해본 통찰의 눈은 더 없이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만능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느꼈다. 첫째로, 이것은 스킬이기에 그를 능가하는 정신력을 가진 상대로는 막힐 수도 있다. 둘째로,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는 건 생각보다 꽤 어려운 일이었다.
한 사람이 특정 순간에 떠올리는 생각은 매우 빠르고 간결하며 때로는 추상적이고 또한 많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처음부터 세세하게 정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인데, 특정 문제의 해결에 필요한 생각들은 그저 짧은 단어나 이미지 혹은 느낌 정도의 추상적인 형태로 떠오르게 된다. 어떻게 논리적으로 말을 할지 정리하는 단계를 거치긴 하지만, 조금만 똑똑하고 말 잘하는 사람이어도 그 단계는 극단적으로 짧아진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통찰의 눈 스킬을 얻어도 절반조차 활용하지 못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세현은 100% 그 이상을 활용할 능력이 충분했다.
그래서 대답을 듣지 않았음에도 이미 답을 알아버렸다.
그가 무림에서 얻어 이곳에 가져온 힘이 문제였다. 처음 시작은 비이성적이었으나 그 이후 합당한 근거를 들며 출발했던 의문이 확신으로 굳어진 케이스다.
그녀는 그를 진정 신이라고 믿고 있었다. 전지전능하진 않으나 인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우월한 존재로, 인류의 위기에 맞춰 등장한 일종의 구원자로.
“전부 처음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전에……”
“됐다.”
“네?”
“왜 그런지 알았으니 됐다. 네가 딴 마음 먹지 않았다는 것도 알겠고.”
문하랑은 혼란에 빠졌다.
당연히 가져야 할 의문을 내보인 세현에게 모든 것을 차근차근 설명하려던 차였는데, 말을 시작하기도 전에 대뜸 되었다고 나오니 당황할 수밖에 없다. 그 무엇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뜻인가 싶기도 했다.
“생각을 읽었으니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야.”
“제, 제 생각을 말입니까?”
“스킬이지. 통찰의 눈이라는.”
“에레도스에 그런 스킬이 있었습니까?”
“일반적으로는 얻을 수 없고, 천계에서 얻은 거다.”
심플한 사실을 말하던 세현이 아, 하는 생각으로 문하랑을 살폈다. 천계라는 단어에 고개를 끄덕끄덕 하는 그녀를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자신을 신이라고 믿는 여자 앞에서, 천공성의 전직소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이에게 천계라는 단어를 언급했으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뻔하다.
“지금 네가 생각하는 건 틀려. 설명을 해주지. 네가 정말 이곳의 신앙들을 하나로 묶어 관리하고 싶다면 정확한 사실을 알아야 할 테니까.”
그리고 세현은 통찰의 눈이라는 스킬에 대해 간단하지만 정확한 사실을 말하기 시작했다. 전직소의 존재와 그곳에서 겪은 사건을 한두 마디 정도로 요약해서.
“그리고 분명하게 밝히건데, 나는 신이 아니다. 지구에서 태어나고 자란 인간이지. 그러니까 내 누이도 평범한 인간이고.”
“……”
“하지만 앞으로는 글쎄, 어쩌면 진짜 신이 될 수도 있겠지.”
“그것은, 그렇게 만들라는 말씀이십니까?”
여전히 세현의 해명을 불신하는 문하랑이었으나, 그의 말을 나름대로 해석해서 물었다.
설령 그가 진짜 사람일지라도 사람들이 그를 신으로 믿게 만들라는 뜻이냐고.
하지만 세현은 고개를 저었다.
“봐라.”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 반사적으로 마주 일어서는 문하랑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한순간 빛이 번쩍였다. 세현과 접촉한 문하랑 본인에게만 보이는 빛이었다.
그 빛이 사라지고 나타난 것은 암흑 속에서 무수히 많이 빛나는 별무리, 그곳은 우주였다. 광활한 우주의 움직임이 초고속으로 재생되는 것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물질의 탄생과 그에 깊게 연관된 마력이라 불리는 불가시 에너지의 활발한 활동이 보인다. 세계가 만들어지고 끓어오르는 쇳물처럼 요동치다 안정되어 그곳에 생명이 나타나 성장하고 무리를 이루고 번영하다 죽어 사라지는 것이 보인다.
“아-.”
저절로 전율이 일어나는 거대하고 압도적인 장면에 그녀가 탄성을 내뱉은 순간, 보이던 영상과 흘러들던 어마어마한 황홀감이 씻은 듯 사라졌다.
“아……”
자신도 모르게 바닥에 주저앉은 문하랑이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세현은 다시 자리에 앉아 그녀가 정신을 추스르길 가만히 기다렸다.
방금 보여준 것은 그가 얻은 깨달음의 아주 작은 일부다. 그것을 악마의 기술을 통해 역으로 그녀에게 보여준 것이다.
깨달음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문하랑 그녀의 발전을 가로막을 거다. 시작도 전에 너무 거대한 것을 보고 느껴버린 그녀는, 아마 앞으로 일정 수준 이상 강해지는 것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것은 독이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독이 아닐 것이다.
어차피 그녀는 환영술사라는 직업을 가진 각성자임에도 스스로의 성장에 관심이 없었다. 그렇기에 아마도 평생 알지 못할 깨달음을 그 일부라도 맛보게 해준 것이다.
세현 자신의 말을 설명함과 동시에 그녀의 신앙에 더한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서.
이왕 할 거라면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은 반쪽짜리 신이지만, 어쩌면 정말로 신이 될 수도 있겠지.”
그는 앞서 했던 말을 반복했다.
하지만 문하랑은 이전처럼 잘못 알아듣는 대신, 그것이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주저앉은 자리에 그대로 엎드렸다.
“신이시여, 제게 이런 은총을 베푸신 것이 종교를 만들어도 된다는 허락이라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그래. 신세계 신문사를 만들고 운영할 정도 능력이면 아무리 못해도 일을 말아먹지는 않겠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희끼리 정한 종교의 이름이 있습니다.”
“수호(守護)교, 그대로 해라. 어떻게 운영할지, 자세한 내용은 보고서를 써서 가져오고.”
“감사합니다.”
지키고 보호한다.
그가 지금껏 해온 일을, 앞으로 해나갈 일을 가장 명확하게 나타내는 단어였다.
============================ 작품 후기 ============================
새 파트 시작입니다.
부디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추천!! 꾹!! 부탁드립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