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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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류한의 용인 본성 근처에 신전 하나가 만들어졌다.
길드 포인트로 건설할 수 있는 시설이었기에 건설은 한순간이었다. 미리 비워뒀던 공터에 어느 순간 푸른색 빛무리가 모인다 싶더니, 그것들이 사방에서 나타나 뭉쳐들며 건물의 형태를 이루기 시작한 것이다.
우연히 길을 지나다 현장에서 그것을 목격한 영지민들이 깜짝 놀라 멈춰 서서 그 장관을 구경했다.
건물이 완성되고 나서도 영지민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않았다. 생전 처음으로 길드 시설이 건설되는 장면을 봤으니 신기하지 않을 리 없다. 게다가 이 건물이 대체 뭘 하는 곳인지 호기심 또한 발을 묶었다.
그렇게 잠시 후, 그들이 열심히 구경하며 친분 있는 이들끼리 나름의 추측을 늘어놓던 때였다.
멀리서부터 쉰 명 정도 인원의 무리가 나타났다. 바로 문하랑을 필두로 한, 신세계 신문사를 운영하며 한세현을 신으로 믿는 자들의 모임이었다.
물론 신세계 신문사는 공식적으로 자신들의 구성원을 밝힌 적이 없었기에 그들을 제대로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새로 생긴 커다란 건물의 유려하고 웅장한 자태에 그것이 무엇을 하는 건물인지 몰라 가만히 구경만 하던 영지민들은, 그런 자신들을 제치고 거침없이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그들 쉰 명을 살짝 놀라서 쳐다봤다.
워낙 당당한 태도로 움직이니 혹 류한 길드의 관계자인가 싶었는데, 복장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저기, 잠깐만요.”
한 영지민이 그들 사이를 지나치는 문하랑 일행 중 하나를 불러세웠다.
“뭐하는 곳인지 알고서 들어가시려는 겁니까? 아무리 봐도 류한 길드 분들은 아닌 듯한데……?”
“우리는 류한 길드가 아닙니다.”
대답한 것은 가장 선두에서 걸음을 멈추고 몸 돌린 문하랑이었다.
“하지만 이 신전의 사용 허락을 받았지요.”
“신전이라고요?”
“이곳은 신을 모시는 신전입니다.”
이후 그녀는 다시 신전 안으로 향했다. 그들 모두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 사라질 때까지, 영지민들은 누구도 그들을 다시 붙잡지 않았다.
그리고 무슨 신을 모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커다란 신전이 생겼다는 소문이 급속도로 영지에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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촥-!
누군가 신문을 펼치는 소리가 경쾌하다.
발행일이 규칙적이면서도 은근히 불규칙한 신세계 신문이 나오는 날이면, 그날 아침에는 여기저기서 신문을 펼쳐 읽는 사람들과 그것을 들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신세계 신문사는 점점 더 크게 발전해가는 이곳 영지의 유일한 언론 매체다. 평범한 영지민으로선 얻기 힘든 거시적이고 자세한 정보들을 아낌없이 제공하는 매우 중요한 정보지이기도 했다.
한때 매일매일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던 이들에겐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 그렇기에 신세계 신문의 구입에 룬을 아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정보의 질 역시 매우 뛰어나 과거의 그 어떤 언론 매체보다 신뢰받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 그 신세계 신문을 읽는 사람들의 표정은 썩 즐겁지만은 않았다. 적지 않은 이들이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라는 듯한 표정을 짓고 심각하게 미간을 찡그리고 있었다.
길가의 한적한 거리, 앉기 편한 황량한 화단에 걸터앉아 신문을 읽던 한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한 중소규모 클랜의 일원인 그는 나름대로 룬 벌이도 괜찮고 실력도 있는, 굳이 따지자면 전체 영지민들 중에서 상위 30% 안에는 드는 자였다.
여유가 있는 만큼 남들이 거를 때에도 빠짐없이 신세계 신문을 구매해 챙겨봤고, 신문에서 얻은 정보들이 정확하다는 것을 매번 확인하며 아주 신뢰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의 내용은 지금까지처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좀 힘들었다.
“으음.”
종교, 종교가 생겼다.
기존의 기독교라든가 카톨릭 혹은 불교 같은 익숙한 것이었다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그 비슷한 느낌의 새로운 종교라고 해도 아마 큰 무리 없이 이해했을지 모른다.
헌데 이건 좀 아니었다.
“으으음.”
처음부터 다시 기사를 읽던 남자는 심각하게 혹시 내가 이상한 것인가, 자아성찰을 시작했다. 내용이 그럴 만도 했다.
어제 하루 종일 소문이 무성했던 새로 생긴 건물, 그 거대한 신전에 류한 길드장 한세현을 신으로 모시는 종교집단이 들어섰다는 내용이었으니까.
종교의 이름은 지키고 보호한다는 뜻의 수호(守護)교. 그들의 믿음이 강해짐에 따라 길드에서 새로운 시설의 건설이 가능해졌고, 그래서 적당한 자리에 해당 건물을 만들어줬다는 내용이다. 기사의 더 뒤에는 수호교에 대한 간략하지만 정확한 설명이 덧붙여져 있었다.
이 정보가 사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심리적 저항이 강할 수밖에 없었다.
한세현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건 누구나 인정한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다시는 나타날 수 없는 영웅 중의 영웅이라고 묘사해도 열에 아홉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를 신이라고 묘사할 정도의 사람은 과연 몇이나 있을까? 아무리 대단하다지만 사람을 신이라고 표현하는 게 가당키나 한가? 그건 뛰어난 영웅의 후광에 눈이 멀어버린 집단적 광기가 아닐까?
남자의 생각은 다른 많은 영지민들의 생각과 비슷했다.
첫날은 그렇게 어수선한 분위기로 넘어갔다. 당연하지만 호기심으로라도 신전을 방문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신세계 신문사에서 내는 기사는 단발성으로 그치지 않았다.
나름대로 일종의 충격을 자아냈던 사건인 만큼, 신문에서도 수호교에 대해 여러 번 언급하며 점점 더 자세히 다루기 시작했다. 수호교의 신실한 신도를 자처하는 한 관계자와 인터뷰를 해 그들의 생각과 교리에 대한 내용을 실은 칼럼도 있었다.
그렇게 4일 정도가 지났을 때, 처음 기사를 읽고 거부감을 나타냈던 남자는 같은 자리에 앉아 그들의 사상에 대한 내용을 읽으며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직도 사람을 신으로 모신다는 것을 공감하진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는 이해한 것이다. 글을 읽으며 적지 않은 부분에서 그럴 만하다고 지금처럼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게다가 류한 길드에서 나온 공식적 입장 발표 또한 그의 거부감을 해소시키는데 한 몫 거들었다.
신전이란 시설이 해금되어 만들고 그들을 거주케 했지만, 만약 그들이 영지의 질서를 어지럽히거나 타인에게 어떠한 방식으로든 피해를 준다면 차별 없이 처벌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동시에 류한은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명확히 했다. 선만 잘 지킨다면 그 어떤 종교도 허락한다. 그러니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다고 수호교에 부당한 피해를 입힌다면, 그 역시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로 간주할 것이라는 경고였다.
미치지 않고서야 그 경고를 무시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눈 멀고 귀 먹은 이가 아니라면 류한이 이곳에서 설치기 시작하던 깡패들을 어떻게 했는지 모를 수가 없었으니까.
그것은 수호교의 방패가 됐다. 최소한 사람들이 수호교의 존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시간을 만들어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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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종교가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진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신생 종교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그 종교가 해롭지 않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리는 것이다. 동시에 자신들의 신념과 종교적 철학을 알릴 수 있다면 더욱 좋다.
문하랑은 그 두 가지 일을 신세계 신문사를 통해 빠르고 신속하게 해치워버렸다.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단계의 일을 해결했으니 큰 고비를 넘겼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불과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에 벌써 사람들은 수호교의 존재를 그럭저럭 받아들였다.
수호교의 사상에 동의하진 않을지언정, 무작정 거부감을 갖고 적대적으로 생각하는 이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물론 여전히 거부감을 갖고 사이비종교 보듯 바라보는 이들도 많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성공적인 데뷔였다.
이제는 행동으로 보여주면 된다.
어차피 새로운 신앙의 필요성을 느낀 자들은 호기심에라도 수호교를 찾아오게 되어있다. 애초에 일차적인 목표는 바로 그런 사람들을 수호교의 품에 안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로 지금, 그 일차적인 목표에 해당되는 한 남자가 터덜터덜 길을 걷고 있었다.
후우-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쉰 남자는 진한 피로함을 느끼며 근처 보도블럭 턱에 걸터앉았다. 해가 저문 늦은 시간인 탓에 주변에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나름 대로변인 탓에 안전에 대한 불안감은 들지 않는다.
남자는 올해로 24살 되는 젊은이였다. 고생을 많이 한 탓에 얼굴은 30살이 넘은 것처럼 폭삭 삭았지만, 마음은 그만큼 단련되지 못해 오늘도 무겁기만 했다.
에레도스 사태 때 가족과 친구를 잃고 간신히 살아남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안정적인 사냥을 추구하며 어떻게든 그럭저럭 살아왔다.
하지만 다들 험한 경험을 한 탓인지, 지금껏 그는 마음 터놓고 지낼 친구는 커녕 편히 대화를 나눌 지인 하나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그의 인맥은 언제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지극히 사무적인 관계로만 가득했다.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홀로 고립된 듯한 외로움이 항상 주변을 맴돌았다. 영지가 생기고 한동안은 안전을 보장받았다는 생각에 마음 편하게 지냈지만, 그것도 일시적이었다.
스스로의 마음이 많이 약해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전적으로 기댈 수는 없을지라도, 최소한 함께 감정을 나누며 서로가 서로를 지탱해줄 관계가 절실했다.
그러다 보니 문득 군대에서의 경험이 떠오른다.
그는 무신론자였다. 청소년 때부터 신은 없다고 믿었고 앞으로도 특정 종교를 가질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 결심이 흔들린 적이 있었는데, 바로 군생활을 할 때였다.
최전방의 독립포대에 배정되어 각종 부조리가 만연하는 힘든 병영생활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의례적인 행사로 기독교 종교활동에 참여했을 때였다.
그날따라 유독 찬송가의 가사가 그의 뇌리에 선명하게 틀어박혔다.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존재.
언제나 기댈 수 있고 그것이 또한 당연한 절대적인 존재.
정말로 그런 존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지금의 이 심경을 속으로라도 실컷 토로하며 괴로움을 덜 수 있을 텐데.
그는 그날 처음으로 사람들이 종교를 왜 믿는지 이해했고, 동시에 공감했다. 정말로 그런 존재가 있다고 믿는 것만으로도 괴롭던 심신이 조금은 평온해지는 듯했다.
비록 현실에서 별반 달라지는 것이 없을지라도, 나를 언제나 사랑과 관심으로 지켜본다는 신의 존재에 온기를 느꼈다.
하지만 그때에도 결국 종교를 믿지는 않았다.
아무리 힘든 군생활에 마음이 약해졌어도 20년이 넘게 무신론자로 살아왔던 그다. 유혹을 느낀 것은 분명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있지도 않은 신을 억지로 상상해서 믿는 행위가 비이성적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다시 한 번 신이라는 존재가 정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최근 영지민들 사이에 큰 화제가 되었던 수호교를 떠올렸다.
“……”
어제까지만 해도 떠올리지조차 않았을 고민을 하게 된다. 수호교에 한 번 방문이라도 해볼까, 하는 것이었다.
듣기로는 그 어떤 것도 특별히 강요하지 않는다 했다. 또한 방문자는 그 누구라도 수호교의 신자를 만나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했다.
“……가볼까.”
잠시간 더 진지한 고민을 이어가던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딱히 수호교를 믿으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 끌렸다.
그들이 정말로 자신들의 종교를 강요하는 사이비적 행태를 보이지 않는다면,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이 괴로움과 고독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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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에 대한 고찰은 역시 어렵군요.
부디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추천! 꾹! 부탁드립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