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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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한창 새롭게 생긴 수호교가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신자를 늘려나갈 무렵, 마침내 본격적인 좀비 청소 작전이 시작됐다.
북한 지역에서 목적을 잃고 어슬렁거리는, 살아있는 시체들을 대량으로 죽여 치우는 일이다. 단순하지만 그 수가 어마어마하기에 결코 쉽지 않다.
조사에 따르면 중국의 동북지역 요령성(遼寧省), 길림성(吉林省), 흑룡강성(黑龍江省)과 화북지역의 내몽고자치구(內蒙古自治區), 하북성(河北省)이 초토화되다시피 했다. 지도상에서만 봐도 한반도 전체 면적의 두 배가 넘는 지역인데, 그 넓은 곳에 살던 수많은 사람들이 전부 좀비로 변해 한반도로 쏟아져 들어왔다는 뜻이다.
악마가 어떤 이유로 어떻게 나타났는지는 모르겠으나, 놈이 지구의 지형에 대한 정보를 알았다면 바다로 막힌 한반도 쪽을 먼저 정리하고 대륙 안쪽으로 진출하려 했을 것이다.
악마는 원로 천족 피세티엘의 말마따나 학살의 총화, 더 많은 생명을 죽여 더 큰 힘을 얻는 게 당연한 존재다. 지구의 단 한 곳도 빠짐없이 깨끗하게 정리하고 싶었을 거다.
좀비 청소 작전은 류한 혼자 행하는 것이 아니었다.
덩치만 따졌을 때 류한보다도 큰 세력인 서울과 함께 하는 협동작전이다. 워낙 좀비의 수가 많아 어느 한쪽이 단독으로 처리하기엔 너무 오래 걸린다. 서로 협력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겉으로는 동등하고 건실한 협력관계에서 위협요소이자 방해물인 좀비들을 사이좋게 처리하는 이번 작전은, 사실 속을 파고들면 류한에게 지극히 유리한 불공정 계약이었다.
좀비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각종 부산물은 대부분 서울이 가져간다. 반면 류한은 북한 지역의 성을 가져간다.
뭐가 더 이득일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다.
과거 수많은 지배자들이 왜 그렇게 전쟁을 벌였나, 모두 땅 때문이 아니던가.
작전 설계를 마무리짓고 며칠 후, 마침내 실행 당일이 되었다.
류한의 천공성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듣기 좋은 부드러운 공명음을 내며 움직이기 시작한 천공성의 모습은 아름답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그렇게 류한의 병력 이천오백 명이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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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혜진은 천공성의 성벽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질린 기색을 내보였다. 어쩌다 성벽까지 따라오게 된 이예슬 역시 그녀의 옆에서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수였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땅이 보이질 않는다. 온통 좀비들 천지였다. 여기도 좀비, 저기도 좀비, 그냥 다 좀비.
곧 정신을 차린 그녀는 어렵사리 아래 광경에서 눈을 떼며 주위를 점검했다.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성의 감시탑과 성벽 위에서 각자의 무기를 꼬나쥐고 대기 중인 원거리 전투원들이다.
혜진은 시간을 확인한 후 약간 긴장된 기색으로 크흠크흠 목을 가다듬었다.
그 직후, 제법 태가 나는 목소리로 외쳤다. 세현이 알려준 방법대로 마력을 담았기에 천공성 전부를 울리는데 전혀 부족하지 않은 크기였다.
“공격 개시-!!”
퍼퍼벙!
퍼퍼벙!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천공성의 감시탑들이 빛을 뿜었다.
폭음을 동반하며 쏘아지기 시작한 푸른빛 마력구들이 유성처럼 대지에 내리꽂혀 그대로 폭발한다. 그 거대한 폭음 사이로 사격수들의 수많은 총성과 마법사들의 캐스팅 소리가 사방으로 메아리처럼 울려퍼졌다.
[강철이 깃들어, 생명을 피우고, 벼락을 휘두르라!] [하늘의 광휘를 휘감아 정의를 불태워 징벌을 가하라!]그 사이로 혜진의 뚜렷한 주문소리가 흘렀다. 동시에 한창 아래쪽의 바글바글한 좀비들을 향해 무차별 공격을 퍼붓던 길드원들의 몸에 일제히 강력한 버프가 걸렸다.
마력 보주와 영혼의 연결, 화룡점정으로 숲 성자의 정화된 증표 아이템의 효과까지 더해진 버프, 게다가 그녀의 직업은 공격능력이 거의 없는 대신 치유와 보호 그리고 강화에 특화된 광휘술사다. 길드를 꾸려나가는 일을 하면서도 꾸준하게 중립형 던전 미로 협곡으로 사냥을 나가 착실하게 레벨을 올려 50을 돌파하기도 했다.
확연하게 눈에 띌 정도로 쏟아지는 화력이 강해졌다.
족히 두 배는 더 강해진 듯한 느낌에 몇 길드원이 화들짝 놀라 혜진을 쳐다볼 정도였다.
좀비들이 거대한 해일에 휩쓸린 것처럼 쓸려나간다. 동시에 왼편 먼곳에서도 폭음과 날카로운 총성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서울 쪽도 시간에 맞춰 작전을 개시한 것이다.
“우우우우우!”
“캬아아아- 캬아악!”
사방이 폭발하며 터져나가는 그 아비규환의 장 속에서, 좀비들은 오로지 본능에 따라 이리저리 뛰었다. 물론 단순히 지렁이도 밟으면 꿈툴 하는 반사적인 작용에 불과하다.
“앞으로 한 시간은 휴식 없이 이동할 테니, 아무렇게나 막 공격하지 마라!”
혜진이 다시 한 번 명령을 내리며 태블릿을 들었다. 그리고 조작에 따라 천공성이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사격수들은 명령에 따라 최대한 조준사격으로 뒤쪽의 흘려진 놈들을 정확하게 처리했고, 화력이 강한 감시탑과 마법사들은 천공성의 바로 아래와 양옆을 크게 쓸듯이 공격하며 지나갔다.
“하늘에서 정의가 빗발친다-!!”
누군가 오래전 유행하던 유명 게임의 대사를 외치며 커다란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사방의 총성과 캐스팅, 그리고 아래쪽에서 천둥처럼 울리는 폭음에 묻혀 제대로 들리진 않았지만.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광경이었다.
하늘에 뜬 요새에서 폭우처럼 쏟아지는 갖가지 강력한 공격들이 일대의 지형을 통째로 뒤엎어버리며 전진한다. 신벌이 떨어지고 있다고 표현해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 압도적인 위용이었다.
만약 좀비들이 이성을 가졌다면 단번에 사기를 잃고 사방으로 도주해버렸을 것이 분명하다. 이 막강한 화력이 사람에게 쏟아지면 어떻게 될까.
류한을 막을 수 있는 세력이 이제 세상에 있긴 할까? 한 길드원이 자신도 모르게 머릿속으로 그런 생각을 떠올린다.
하늘에 떠다니는 최대 수용인원 삼천 명의 거대 요새를 감당하려면 미사일을 쏘아대지 않는 이상 불가능할 것이다. 물론 에레도스 사태 이후 모든 미사일은 사용 불가능한 고철이 되었으니,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천공성을 막을 수 있을지 상상하기 어려웠다.
한편, 천공성에 자리한 아군의 엄청난 활약에 땅에서 대기하던 근접직 위주 전투원들의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그들은 천공성이 한 번 크게 훑고 지나간 자리를 뒤따라가며 남은 좀비들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역할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래에서 대기하던 신소진이 외쳤다.
“출발한다! 준비!”
촤르르륵!
그녀의 전단 천여 명이 일제히 무기를 뽑아들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천공성의 활약에 정신 팔렸다간 자칫 어이없이 좀비 따위에게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 그건 정말 창피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놈들의 약점은 어깨가 아니다! 다른 종류의 좀비라는 걸 명심하고 머리를 공격해라!”
악마가 일으켜 세운 좀비의 약점은 머리, 에레도스 사태 이전 수많은 미디어에서 표현됐던 좀비들과 같은 약점이다. 어떤 면에선 이쪽이 좀 더 정석적이기도 하다.
“출발!”
커다란 외침 이후 그녀가 가장 먼저 앞서 나갔다. 그 뒤를 약 이삼 미터 거리를 두고 넓게 펼쳐진 일렬횡대 진형이 뒤따랐다. 살아남은 좀비를 처리하는 일이기에 밀집한 진형을 짤 필요가 전혀 없다.
“캬아아악!”
그 아비규환의 폭발 속에서도 어떻게 팔 하나만 잃고 살아남은 좀비가 달려들었다. 물론 접근하기 무섭게 휘둘러진 한 전투원의 검에 머리통이 쪼개지며 유명을 달리했다.
그들은 거의 달리는 속도로 움직이며 눈에 띄는 좀비들을 무자비하게 처리했다.
천 명의 인원이 움직이는 소리는 결코 작지 않다. 게다가 일부로 소리를 죽이긴 커녕 더욱 키우고 있었기에 꽤 넓은 범위에서 좀비들이 알아서 달려들어주고 있었다.
류한 길드는 가히 전차와 같은 기세로 좀비들을 정리해갔다. 하늘에서 쏟아진 폭격에 의해 지형이 엉망이 될 것이 뻔해 진짜 전차를 동원할 수 없었음에도, 이미 그게 꼭 필요할까 의문이 들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길게 선처럼 펼쳐진 근접 전투원들의 뒤를 따라가는 소수의 원거리 전투원과 신성술사 같은 보조직업군은 할 일이 없어 손가락만 빨고 있었다.
바로 그때, 천공성에서 무언가 그들을 향해 내려왔다.
추락한 천사의 눈물로 만들어낸 날개가 선명한 빛을 발한다. 스킬을 발현 중인 탓에 은빛 후광에 휩싸인 모습이 흡사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오는 것 같기도 했다.
당연히 그것은 혜진이었다. 아래쪽 인원들에게도 버프를 주기 위해 내려온 그녀는, 잠깐 동안 과도하게 쏠리는 시선에 살짝 당황했다.
[강철이 깃들어, 생명을 피우고, 벼락을 휘두르라!] [하늘의 광휘를 몸에 휘감아, 정의를 불태워 징벌을 가하라!]하지만 할 일은 바로 했다.
한순간 번쩍이는 빛과 함께 천 명에 달하는 인원들에게 일제히 버프가 흩뿌려진다.
이미 그녀가 위에서 이천 명에게 버프를 뿌리고 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건 대단한 일이었다. 아니, 상식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다.
답은 그녀가 50레벨에 달하며 배운 궁극스킬이다. 그녀는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그리고 자신이 앞으로 나설 전장과 세현의 의견까지 첨가해 이 스킬을 배웠다.
성역의 수호자.
최대 만 명에 달하는 인원에게 같은 강도의 버프를 걸어줄 수 있게 되는, 광휘술사 고유의 수비적인 패시브 스킬.
그 효능은 당연하게도 지금과 같은 대규모 싸움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게다가 시각적 효과 역시 그 어떤 스킬과 비교해도 꿇리지 않았다.
거대하고 신성한 느낌의 광휘가 사방으로 뻗어나가 개개인에게 흡수되었다. 흡사 어떤 초월적 존재가 자신의 힘을 나눠주는 것처럼 보이는 광경.
동시에 신소진을 포함한 모든 이들의 움직임이 돌변했다.
이전보다 반 배는 더 빠르게 움직이며 거침없이 좀비들을 쓰러트리기 시작하는데, 아직도 사그라들지 않은 은은한 빛의 효과 덕에 하늘의 성스러운 군대가 전진하며 사악한 것들을 무너트리는 신화적인 느낌을 더했다.
그리고 마지막 하이라이트가 더 남아 있었다.
바로 천공성 자체의 천족 병력들 일천, 그들이 신소진의 전단이 쓸고 지나간 뒤쪽에 황금빛 포탈을 동반하며 화려하게 나타났다.
새것처럼 번쩍이는 견고한 풀 플레이트 아머에 보기만해도 범상치 않은 무기, 그리고 등에는 은빛의 날개를 단 병사들이다. 이들은 말 그대로 하늘의 군대, 그냥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알 수 없는 위압감이 나타난다. 더 없이 화려한 것은 물론이다.
“정렬하라!”
파란색 눈의 천족 장군 하나가 전장을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외치자, 병사들이 일사분란한 동작으로 일렬횡대 진형을 이루며 멈춰 섰다.
“진격!”
그리고 이어지는 명령에 한 몸처럼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말단 병사까지 노란색 눈동자를 가진 천군이다. 이들에게 좀비는 그야말로 식후 간식거리조차 되지 않는다. 이 강력한 존재들을 가장 뒤쪽에 마무리로 투입한 것은 길드원의 성장을 보다 우선시하기 위함이지, 결코 이들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천군은 신소진의 전단이 미처 정리하지 못하고 흘린 소수의 좀비들을 확실하게 마무리하며 나아갔다. 그렇게 천공성을 선두로 류한의 병력이 지나간 곳에는 단 한 마리의 좀비도 남지 못했다.
그 단순하지만 휘황찬란한 토벌작전을 멀찍이서 정신없이 촬영하던 한 남자, 신세계 신문사의 기자이자 수호교의 신도인 남자는 확신했다. 이것이 수호교의 전파에 커다란 불길을 더하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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