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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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전
김인환이 앞에서 발을 묶고 뒤에서 김유린이 강력한 찌르기를 가한다. 누가 부녀지간 아니랄까봐 미리 연습이라도 한 것 같은 합공이 펼쳐진다. 세현에게 전수받은 만화천검진(萬花天劍陳)의 묘리를 살린 합공은 가히 무서웠다.
일 더하기 일을 이가 아닌 삼 또는 사까지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합격진의 힘이다. 서로의 단점을 상쇄하며 강점을 부각시킨다. 애초에 합격진은 다수가 소수의 강자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 김인환도 김유린도 일대일로 파란색 등급을 상대하긴 벅차지만 둘이 힘을 합친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예전에는 떼로 달려들고 전차를 동원해도 버티지조차 못하던 파란색 등급을 이제는 둘이서 그럭저럭 상대하고 있었다.
– 크아악!! –
쾅!
분노의 고함과 함께 내려쳐진 뼈검에 회색빛 기류가 휘감겨 폭발한다. 김인환이 방패로 흘려 공격을 막아내고 반격을 가함과 동시에, 그 공격에 주의가 끌린 상대를 노리고 김유린의 창이 보랏빛을 번쩍이며 날아든다.
수차례 무기와 무기가 충돌할 때마다 쩌렁쩌렁 울리는 금속음과 함께 폭발이 터졌다. 달려드는 언데드들과 류한의 토벌대가 이뤄낸 절묘한 경계선 안에서 한수 한수가 생사를 넘나드는 곡예와 같은 전투가 이어진다.
– 죽여서 영혼까지 먹어치워주마! –
“시체 주제에 말이 많다!”
컹!
김유린의 외침과 신호, 그에 근처에서 언데드들을 처리하며 공간을 확보하던 다섯 마리의 트윈테일들이 일제히 달려드는 액션을 취했다.
노란색 등급의 맹수 다섯 마리가 가하는 합공은 설사 파란색 등급의 괴물이라 해도 무시할 수 없는 바, 그렇게 만들어진 빈틈으로 기다렸다는 듯 김인환과 김유린의 합공이 날아든다.
막상 괴물의 이목을 끌었던 트윈테일 다섯 마리는 접근조차 하지 않았다.
– 구울 로드인 나를 한낱 시체라고 부르다니! –
더 열 받은 괴물이 온몸으로 분노를 표출했다. 그렇게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부르짖으면서도 단 한 번의 일격도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에 달했다.
쾅!
김유린의 창을 피하려다가 김인환의 방패에 얻어맞았다. 동시에 내달린 뇌전의 기운이 일순간 신체를 마비시키고 그 틈을 노린 연격이 날아들어 녹색 신체 여기저기에 상처를 남겼다.
차라리 창을 맞고 방패를 피하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한순간의 실수 때문에 기세가 급격하게 기울었다. 이대로라면 신소진과 권태수를 기다릴 것도 없다!
하지만 언데드 진영은 아직 숨겨진 한 수가 있었다.
두드드드드드-!
이때까지의 땅울림과는 격이 다른 거센 진동이 울려온다. 이제는 슬슬 끝이 보이기 시작한 언데드 웨이브의 가장 후미, 그곳이 홍해의 기적처럼 갈라지며 일단의 기마대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달려오고 있었다.
끼아아아악!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거늘 놈들이 내뿜는 살기가 전장에 넓게 퍼진다. 돌풍처럼 휘날리며 따라붙는 회색 망령들의 비명소리가 스며들어 정신을 약화시킨다. 백 마리를 조금 넘는 정도밖에 되어보이지 않는 수, 허나 그것들의 눈동자는 모두가 초록색이기에 결코 적다고 말할 수 없다. 흉험한 사기를 휘감고 빛을 흘리는 녹색 안광이 지옥의 그것처럼 소름끼친다.
“장애물을 세워라! 돌진을 막아!”
상황을 파악한 김인환이 다급한 명령을 내리자 마법사와 정령사들이 제각각의 방법으로 장애물을 세우기 시작했다. 땅이 치솟거나 내려앉고 가시덩굴이 생기거나 얼음빙판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상대의 기마대는 그 모든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장벽은 부숴버리고 구덩이는 점프로 뛰어넘는다. 가시덩굴은 썩은 밧줄처럼 힘없이 끊기고 빙판은 내찍는 발굽에 그대로 박살나 부서졌다.
– 다른데 신경을 쓸 틈이 있나?! –
사악한 웃음소리와 함께 괴물, 구울 로드가 김인환을 공격해 들어갔다. 커다란 존재감을 과시하며 요란하게 등장한 기마대 때문에 주의가 흐트러졌다. 자연히 잡았던 승기는 사라졌고 다시 팽팽한 대결구도가 이뤄진다.
“신소진! 권태수! 기마대를 막아!”
김인환의 그 명령과 함께, 때마침 마지막 골룡이 신소진의 정권과 권태수의 대구경 저격총 사격에 맞아 산산이 부서졌다. 둘은 즉시 멀리서 달려드는 기마대를 향해 공격에 들어갔다.
쾅!
예의 폭음과 함께 유성처럼 내리꽂히는 신소진, 그녀를 감지한 기마대가 2미터는 가뿐히 넘을 듯한 랜스를 들어올려 그녀를 겨눴다.
허나 신소진은 그 날카로운 창날들을 보고도 피하지 않았다. 피부가 찢기고 어떤 창날은 그녀의 왼쪽 눈 바로 옆을 스쳐 귓바퀴 위를 찢는다. 허나 그녀는 그럼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대로 권을 내질러 자신의 바로 앞 기수를 후려쳤다. 폭음과 함께 놈의 상반신이 그대로 날아가고 회전과 함께 채찍처럼 휘둘러진 다리가 근처의 해골군마 네 마리 이상의 다리를 부숴버린다.
그 후 치솟아 몸을 피하는 그녀를 노리던 기수들을 권태수의 사격이 제지하고 나섰다. 격각이 나오지 않았기에 점프한 그는 허공에서 소총을 견착하고 사격을 가했다. 신소진을 노리던 놈들을 제지한 후 허공에 뜬 자신을 노리고 날아드는 원거리 공격들까지 일일이 요격한다. 몇 초 되지도 않은 짧은 시간에 십여 개가 넘는 표적에 완벽하게 총탄을 꽂아넣은 것이다.
하지만 그 최선을 다한 분전에도 기마대는 결국 류한의 전열이 펼쳐진 곳까지 돌진해 들어왔다. 각종 보호막과 버프를 있는대로 휘감은 류한의 기사와 전사 직업 전투원들이 방패를 앞세운 채 가로막고 서 충격에 대비했다.
콰과광!
군마와 사람의 육신, 그들이 착용한 금속제 방어구가 충돌하는 소리가 천둥처럼 울린다. 사람이 공깃돌처럼 튕겨나간 틈새로 우악스럽게 파고들어온 기마대는 사방으로 랜스와 철퇴, 미늘창을 휘두르며 돌진을 계속했다.
비명이 울리고 피가 튄다. 랜스에 갑옷 가슴팍이 꿰뚫린 기사가 쓰러진다. 철퇴에 얻어맞은 전사가 피를 토하며 튕겨나가고 미늘창이 날아들어 다른 전사를 부수듯 후려친다. 제 아무리 튼튼한 갑옷을 입어도 속도를 살린 기마대의 일격을, 그것도 초록색 등급 괴물의 일격을 맞고 멀쩡할 수는 없다.
류한 전투원들도 맥없이 당해주진 않았지만 놈들을 막아서기엔 아무래도 역부족이었다. 전원 초록색 등급 괴물로 이뤄진 기마대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서도 상대하기 버거운 놈들인데 이런 상황에서야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들이 폭풍처럼 밀고 들어간 뒤로 개미떼처럼 많은 좀비와 해골들이 제 몸 사리지 않고 무작정 파고들어 주위로 손톱과 무기를 휘둘렀다.
“막아!”
지휘관들이 핏대를 세우며 외쳤으나 한 번 뚫린 전열이 그리 쉽게 회복될 리 없다. 일반적인 전투였다면 또 몰라도 상대는 제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언데드들이다.
[죽음은 새로운 시작일지니, 깨어나라 망자들이여!]그 사이, 안테아와 문하랑이 상대하던 리치가 간신히 짬을 내서 마법을 뿌렸다. 악화된 상황에 다시 한 번 커다란 펀치를 먹이는 일격, 기마대의 돌파에 사망했던 류한 전투원들이 언데드로 부활했다.
짧은 주문으로 일으킨 탓에 하급 좀비에 불과했으나, 그 정도 만으로도 생명체 본연의 공포를 자극하기엔 충분하다. 게다가 좀비주제에 착용한 아이템들이 워낙 좋아 단번에 죽이기도 어려웠을 뿐더러, 그들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함께 동고동락하던 동료들이었다.
파고들어 난동을 부리는 기마대는 신소진과 권태수의 최선을 다한 공격에도 쉽게 진압되지 않았다. 애초에 겨우 둘이서 진압하기엔 그 수가 많다.
이미 전열이 무너져 파고든 언데드들의 수가 엄청났다. 제대로 된 진형을 이루지 못한 채 아직도 끝나지 않은 웨이브를 상대하는 건 승산이 불투명하다.
이쪽의 피해가 발생한다는 건 곧 적들의 수가 늘어난다는 뜻이다!
구울 로드를 상대하면서도 사령관으로서 전황 파악에 소홀하지 않던 김인환이 이를 악물었다. 마음이 조급해지니 자연 적을 상대함에 있어서도 자잘한 실수가 나오기 시작한다. 김유린이 그것을 최대한 커버해줬으나, 그녀 역시 아버지의 동요에 미약하지만 흔들리기 시작했다.
– 두려운가? –
그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한 구울 로드가 악마처럼 속삭였다. 더 이상 시끄러울 수 없는 전장터 한복판에서도 선명하게 들리는 목소리.
– 두려워해라, 죽음은 죽지 않는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라, 죽음은 만인에게 공평하리니! 부질없는 삶의 미련, 그것만 버리면 된다. 우리의 군주께서 너희를 중히 쓰시리라! –
쾅!
전장의 기세가 넘어간 것을 보여주듯 구울 로드의 공격에 김인환이 신음성을 토하며 뒤로 밀려났다. 방패의 질이 좋지 않았다면 이번 일격으로 두 동강 났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위력. 흘려내야 했건만 충격이 몸에 누적된 탓인지 제대로 흘려내지 못했다.
반면 상대는 처음과 전혀 다를 바 없이 쌩쌩했다. 언데드는 지치지 않는다.
막판에 등장했던 기마대가 모든 것을 틀어놓았다. 놈들만 아니었으면 곧 신소진과 권태수가 합류해 구울 로드와 리치를 합공할 수 있었을 테고, 그러면 죽이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패퇴시킬 수 있었다. 그것으로 이곳 광주를 모두 정리할 수 있었다.
김인환은 재차 이를 악물었다. 지휘관으로 겪는 첫 커다란 패배, 그 무게가 양 어깨를 짓누르는 듯하다.
놈들의 전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음에도 이렇게 밀고 들어온 것이 실수였던 것인가? 파란색 등급 괴물을 둘이 아닌 셋까지도 계산에 넣어뒀는데, 백 마리가 넘는 초록색 등급 언데드 기마대는 상상하지 못했다. 본거지화가 되어간다는 제주도도 아닌데 이렇게나 많은 고급 언데드가 있을 줄이야!
아무리 생각하고 분노하고 비통해해도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제 그는 지휘관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해야 했다.
추격을 저지할 희생조를 남기고 나머지는 후퇴해야 한다. 희생조는 류한의 초기부터 함께 동고동락하던 그의 부관과 전단원들이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그도 남아 적들의 발을 묶을 것이다.
그렇게 김인환이 죽음을 각오하고 후퇴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을 때였다.
전장에 거대한 그림자가 졌다.
동시에 빛줄기들이 가공할 속도로 대지에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콰과과광!
콰아앙!
꽈아앙! 콰광!
하늘에서 비처럼 떨어지는 강력한 마법들, 그 마법들을 토해내는 수십의 휘황찬란한 마법진 중앙에 떠오른 소년 한 명이 인상을 약간 찌푸린 채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가 아직도 류한 진형의 안에서 날뛰며 피해를 누적시키는 언데드 기마대를 가리켰다.
[부서져 무너져라.] 퍼서서석!그 짧은 한 마디에 진형을 온통 혼란에 빠트리던 기마대 절반 이상이 먼지처럼 부서져 내린다. 기수들이 타고 있던 군마도 예외는 아니었다.
“레야!”
김유린이 구세주를 부르듯 그의 이름을 외쳤다. 레야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가, 이내 그 맞은편의 당황을 드러내는 구울 로드에게 향한다.
[잘려 토막나라.] – 헉…! –구울 로드가 전력을 다해 몸을 빼냈다. 그야말로 간발의 차로 레야의 용언이 빗나가며 애꿎은 대지를 쪼갠다.
그러는 사이에도 레야의 주변에서는 쉬지 않고 마법진이 만들어져 마법의 창을 쏘아내고 있었다. 무한의 마력을 가진 것처럼 쉬지 않고 떨쳐내는 폭격이 아래의 언데드들을 일초에 수십 단위로 박살낸다. 이미 죽음에 속한 언데드들조차 그 거대한 파괴와 혼란 속에서 갈팡질팡하며 다시금 죽음을 맞이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힘!
수호룡의 환생체인 레야가 펼친 두 날개와 뿔에서부터 오색찬란한 빛이 흘러나오며 신성하기까지 한 느낌을 흩뿌렸다.
세현은 아무런 보험도 없이 이 많은 병력과 중요 간부들을 보낸 것이 아니었다. 그들에게조차 비밀로 하고 은밀히 레야를 딸려보냈다.
– 썩 마음에 드는 전개는 아니군. –
구원투수로 등장하게 된 레야가 작게 중얼거렸다. 아마 폴바르인 세현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물론 상황을 보면 등장하게 됐다고 해서 마냥 불편해할 일이 아니었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살았을지 모를 최상급 언데드 리치와 구울 로드, 그리고 백 단위의 초록색 등급 언데드 기마대까지 등장한 판에 토벌대는 이 정도면 충분히 선전했다.
그러한 상념을 접으며 레야가 입을 벌렸다.
어마어마한 마력의 요동과 함께 그의 전신에 황금빛이 서리고 머리부분이 용의 머리처럼 변형된다. 태양처럼 빛나는 입이 벌어지고 그 사이로 얼핏 동그란 구체가 보인다 싶은 순간, 이미 쏘아져 대지에 직격한 섬광이 거세게 울부짖으며 사방을 뒤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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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추천! 꾹! 부탁드립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