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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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벌
“그렇습니다. 우리 왕국에서도 수호교를 믿는 자들이 소수지만 있습니다.”
내정을 관리하던 간부 한 명이 조심스레 대답했다. 이미 보고를 올렸던 사항이긴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으니 어떤 문책이 떨어질까 우려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장한위는 그를 탓할 생각이 없었다. 그 역시 관련 보고를 까먹고 있었던 게 아니니까. 워낙에 세가 약하고 그만큼 정보를 모으기도 쉽지 않아 그냥 놔두었던 기억이 난다. 그 정도 영향력이라면 있으나 없으나 달라질 게 없었으니. 헌데 그게 류한의 국왕을 신으로 모시는 종교였을 줄이야?
“명예나 권위에 집착하는 타입일 수도 있겠습니다.”
참모들 중 한 명이 슬쩍 의견을 꺼냈다. 자신을 신으로 하는 종교를 만들 정도라면 확실히 그럴 수도 있다. 단순한 미치광이라고 보기엔 가진 능력이 너무 대단하다.
“말씀 드리기 송구하오나…… 그를 막기가 어려워 보입니다.”
“알고 있다. 지금쯤이면 산서성의 거점이 공격받고 있겠군.”
장한위가 눈을 감았다. 한세현의 이동경로를 파악하고 그를 막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전력을 집중해놨다. 그것마저 뚫린다면 정말로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숨통이 트인 참모들이 저들끼리 작은 목소리로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아이디어를 짜내기 위한 일종의 브레인 스토밍이다.
“역으로 본진을 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천공성이 평양에서 남쪽으로 이동했다고 합니다.”
“그를 막을 수 없는 이상 무의미하지 않겠소? 잠시 물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추후 다시 공격해오면 방법이 없소.”
“수호교를 어떻게 이용할 순 없겠습니까?”
“협상을 위한 카드 정도는 되지 않겠소?”
“약점을 찾을 수만 있다면…… 인질로 삼을 만한 자가 있습니까?”
“있어도 류한의 안전한 곳에 있겠지. 게다가 실패하면 더 이상 뒤가 없는 방법이오. 들키기만 해도 그렇고.”
“항복할 때를 위한 계획을 짜라.”
그들의 논의를 끊으며 장한위가 명령했다.
“과하지욕(胯下之辱)이라,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언젠가 다시 기회는 올 것이다.”
그는 눈을 감았다. 끓어오르는 울분과는 별개로 가슴에 돌덩이를 올려놓은 듯 답답했다.
어째서 그런 자가 존재할 수 있을까? 세상이 이리 불합리할 수가 있나? 하늘이 자신을 저버렸단 말인가? 이 세계의 주인공이 자신이 아니었던 건가?
환란을 견디고 살아남아 마침내 왕국까지 만들어낸 그였기에 패배의 맛이 더욱 쓰기만 했다. 창창한 미래가 보이는 듯했는데 막상 발을 내딛어 본 그곳은 암흑천지였다.
앞이 캄캄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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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이 마지막이다. 이 길드성만 무력화시킨다면 반고의 국왕, 장한위가 머무는 하남성 지역까진 금방이다. 세현이 여태까지 이동한 거리의 삼분의일만 가도 나온다.
지금 그의 앞에는 여태까지 중 최고로 삼엄한 경계태세를 갖춘 병력이 있었다.
단순히 성벽에만 있는 것이 아닌, 전차들과 장갑차들이 주변 일대를 모두 차지하고 있다. 얼핏 보아도 백여 대가 넘는 수에 저렇게 많으면 오히려 공격하는데 아군끼리 방해가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냥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한 모양새다.
그 말인 즉슨, 이들을 처리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
“나, 나타났다!”
세현이 모습을 드러내기로 마음먹고 잠시 후, 십여 초가 흐른 뒤에야 그를 발견한 경계병 하나가 기겁하는 모습이 보였다.
거리는 대략 삼사백 미터로 일반적이라면 목소리라 들릴 리 없는 거리, 물론 세현에게는 경계병의 당황한 목소리는 물론 확장된 동공까지 똑똑히 보였다.
현재 그는 이들에게 파괴의 화신, 심지어 마왕이라고까지 불리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수호교의 신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진짜 ‘신’이 아닌가 하는 말이 돌고 있기도 했다.
부정할 생각은 없다. 사실인 것을 대체 왜 부정하는가? 그는 신이다.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 시스템에서 보증하는 신이었다.
쾅! 콰과광!
세현이 먼저 무엇을 하기도 전, 미리 장전을 끝내 놓았던 전차들이 가만 있는 그를 향해 포구에서 불을 뿜었다. 신속하게 조준해 발포하는 것이 아주 능숙한 솜씨, 사격수들과 마법사들의 공격 역시 그와 보조를 맞춰 그에게 날아들기 시작했다.
한순간 전면이 폭음과 화약의 폭연, 사격수의 총성과 번쩍임, 마법의 영창음과 빛무리로 가득 차올랐다.
몇 만이나 대기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던 그들의 총공격은 그야말로 휘황찬란하고 장엄한 광경!
에레도스 시스템을 몰랐던 시절의 세현이었다면 저 공격들을 결코 경시하지 못했을 것이다. 막아내지 않고 피하거나 애초부터 이런 식으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겠지.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손을 들어올린다. 가장 먼저 그의 몸 안에 있는 내공이, 그와 거의 동시에 마력이, 그리고 주변의 기운들 전부가, 흡사 세계 전체가 그의 명령을 따르는 것처럼 움직인다. 찰나를 찰나로 쪼갠 시간에 현상이 역변하고 결과가 뒤바뀐다.
날아들던 포탄들이 거짓말처럼 멈춰 섰다. 마력으로 이뤄진 탄환들과 마법들은 그 구성 에너지가 모조리 흩어져 증발하듯 사라졌다.
고작 한 사람의 손짓이 일으킨 결과라기엔 믿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것은 흡사 홍해를 가르는 모세의 기적과도 비견될 만했다. 허공에서 정지된 비디오처럼 멈춰 서버린 포탄들,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마법들, 당연히 발생했어야 할 섬광과 굉음과 폭음들이 모조리 소멸된 기적.
공격을 가했던 반고측 전투원들이 자신도 모르게 전율에 떨었다. 이 순간,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감상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었다.
탱그랑……
누군가의 검이 떨어진다.
“나, 나는 그만 두겠어. 이건 미친 짓이야…… 신을 이길 수는 없다고.”
“너! 지금 감히 어떻게 그런…!”
깨어진 침묵에 핫 하고 정신을 차린, 사기를 저해하는 발언을 한 전투원을 징벌하려던 지휘관 하나의 목에 한순간 붉은 실금이 그어진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붙어 있던 목이 허공을 날았다. 뿜어지는 피와 함께 쓰러지는 시체의 뒤로 어느새 검을 뽑아 겨눈 세현의 모습이 보인다.
수백 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사람의 목을 베어버린 그가 말했다.
[나를 섬기는 자, 그리고 살고 싶은 자는……] [공격-!!]상급 지휘관 중 한 명이 세현의 말을 끊으며 스킬 전투의 함성을 발동했다.
이대로 상대가 말하게 두었다간 싸우지도 못하고 패배할 판, 그 단호하고 결의에 찬 뚜렷한 명령에 반절이 넘는 인원들이 반사적으로 행동에 들어갔다.
그건 어찌 보면 명령에 따른 인원이 반절밖에 안 되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미 세현과 싸울 각오를 굳히고 이 자리에 선 자들이다. 그리고 명령을 내린 지휘관들과는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훈련을 받았고 전우로서 유대감을 쌓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절이나 되는 인원이 저항을 포기한 것이다.
쾅! 콰과광!
어쨌든, 공격은 쏟아졌다. 처음보단 못하지만 그래도 막강한 위력의 공격들이 세현에게 날아들었다. 하지만 그것들 역시 처음처럼, 세현이 다시 움직인 손짓에 허공에 박제되듯 멈추거나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공격해라-!! 전차부대는 앞으로! 근접군들은 돌격! 성을 버려라! 전원 돌겨…!!] 푸확!핏대를 세우며 다시 한 번 전투의 함성을 내지르던 지휘관의 목이 허공을 날았다.
[도망쳐라.]선명한 음성이 모두의 귓가에 울렸다.
간단하지만 무시무시한 경고 이후, 허공에 박제되었던 무수히 많은 포탄들이 빙글 방향을 돌렸다. 그리고 한순간 허공이 일렁이는 듯한 충격과 함께 어마어마한 속도로 쏘아졌다.
세상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정확히 약점을 직격당한 장갑차와 전차들이 대폭발을 일으키며 사방으로 불과 검은 연기를 뿜어댔다. 굳건하던 길드성의 성벽에 여기저기 화광이 번쩍이며 엄청난 굉음과 함께 거세게 진동했다. 무너지는 곳도 적지 않았고 대부분 금이 가서 한 번만 더 공격받으면 모래성처럼 무너져버릴 듯한 모습이다.
“으아아악!”
“아아악!”
그 수많은 화광과 천지를 부술 듯한 굉음 속에서도, 미처 가리지 못한 비명소리들이 속출했다. 생명이 꺼져가는 느낌이 이리도 허망하고 생생한가,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을 살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삶과 죽음, 생명은 소중하지만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그가 만들어내는 수많은 다양한 순환처럼 어차피 삶 역시 순환, 인간이 개인 아닌 집단에 충성하며 하나뿐인 목숨까지 바치는 것도, 맞서는 적과 싸워 그들의 목숨을 취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는 신이지만 전능하지 않다. 또한 신이면서 동시에 인간이다. 맞서는 자와 대적하는 것은 당연하고 그 와중 죽음이 따르는 것 역시 당연하다.
저들의 죽음이 온전히 세현의 탓이라고 할 수 있는가? 정녕 저들에게 이 자리에 서는 것밖에는 선택지가 없었나? 과거부터 행해온 수많은 선택들이 그들을 이 자리에 설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면 그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모두가 싸우지 않는 평화로운, 불합리한 죽음 없는 세계는 존재할 수 없다. 세상에 완벽이란 것은 없으니까. 신조차도 전능하지 못하니까.
그렇기에 세상은 불공평하고-
그래서 결국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힘인 것이다.
그는 검신이다. 사랑과 자비를 설파하는 것이 아닌 운명을 개척해나갈 힘과 방해자를 파멸시킬 힘을 설파하는 신이다.
사랑과 자비를, 용서와 평화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먼저 보였어야지. 수작질을 부려놓고 압도적인 힘을 가졌다고 이 학살의 책임을 온전히 그에게 떠밀어버리는 것이 옳은가?
그래, 확실히 그는 힘이 있다. 이 학살을 일으키지 않고도 사건의 주범인 장한위와 주요 간부들을 조용하게 처리할 능력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
왜?
무림에서 행해왔던 수도 없이 많은 추악하고 잔인하고 비열하기까지 한 일들, 그것은 오로지 살아남아 이곳으로 돌아오고 싶다는 욕망을 따랐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운명이라 여기며 순응하지 않았다. 그렇게 발버둥쳤기에 지금 이 자리에 이렇게 서 있다.
이제와 삶의 방식을 바꿀 생각은 없다. 그럴 수도 없다. 적대한 자들에게 용서와 관용을 베풀고 뒤통수를 맞는 것은 그의 방식이 아니었다.
한 번 살의를 보인 자는 죽인다. 설령 그것이 전혀 위협적이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상대를 용서해야 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죽일 생각을 했으면 죽을 각오도 했어야지.
그것은 이곳에 자리한 모든 이들이 마찬가지, 상급자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할 생각이라면 세현 역시 다수의 적을 상대하려니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그는 다시 손을 움직여 위로 향했다.
하늘에서 의형기가 빛의 기둥으로 치솟아 적들을 향해 날카롭게 떨어져 내렸다.
폭우처럼 쏟아지는 검 형태의 강기들이 사람과 전차, 장갑차, 성벽, 건물을 가리지 않고 꿰뚫어 찢었다. 정신없이 터지는 폭음과 섬광에 대지가 울부짖고 폭풍이 몰아쳤다.
휘두른 청월의 끝에서 만개하는 꽃처럼 수백의 검기다발이 쏟아졌다. 너덜너덜해졌던 성벽이 단박에 무너지며 그 안쪽에 있던 전투원들이 반항조차 못하고 뿜어지는 피와 함께 우수수 쓰러졌다.
뻗어낸 손끝에서 쏘아진 섬광이 걸쳐지는 모든 것을 부수며 사방으로 충격파를 흩뿌렸다. 이미 망가져 불타오르던 전차와 장갑차의 잔해들이 조각조각 찢겨지며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신이시여! 잘못했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자비를, 용서를 구합니다! 항복하겠습니다!”
전장 여기저기서, 세상이 종말하는 듯한 그 파괴와 혼란 속에서 제 목숨을 걸고 엎드려 비는 자들이 속출했다. 결코 적지 않은 수였다.
싸움은 순식간에 끝났다.
어어 하는 사이 이미 길드성은 절반이 넘게 부서져 폐허가 되었고 장갑차와 전차들은 모조리 박살나 조각났다. 지휘관들은 전부 죽어버렸으며 수만이 넘던 병력 역시 피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줄어버렸다.
가히 신과 대적한 인간들의 최후라 묘사해도 과하지 않을 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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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추천! 부탁드립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