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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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검귀
무려 보라색 룬 3개로 살 수 있는 천공성을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기회다. 물론 악마들이 그걸 진짜로 준다는 보장은 없다.
원래 세현의 성격이라면 고민할 여지도 없이 초대를 거부했을 것이다. 다른 하나의 천공성이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닌데 목숨까지 걸어가며 도박을 할 하등의 이유가 없으니까.
그러나 이렇듯 고민하게 된 이유는 그가 천계의 시험을 통과하며 얻은 세 가지 스킬 중 하나 때문이었다.
[천상의 가호(passive): 300일에 한 번, 죽음에 이르는 공격을 받을 시 보호막을 생성하고 천공성 스탄헤이드의 치유소로 순간이동한다.]이 천상의 가호 스킬이 마신의 그 어떤 수작에서도 제대로 발동하기만 한다면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설령 놈들이 그를 죽이려고 해도 여벌의 목숨이 있는 셈이니까.
“확인을 해봐야겠어.”
아마 천공성의 관리자라면 이 스킬의 확실성에 대한 답을 내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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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는 지하감옥에서 풀려났다. 적어도 세현이 확인한 바로, 그는 진실되게 류한에 해를 끼칠 생각이 없었다. 애초부터 자신의 힘을 사용하는 것을 싫어하고 있었다.
공허를 다루는 흑마법, 그것이 괜히 금기 중의 금기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다. 왕자 역시 자신이 다루는 마법의 강력함과 위험성을 아주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되도록이면 그 마법을 사용하고 싶지 않아 했다.
그렇다면 병원에서는 대체 왜 그런 학살을 자행했는가?
– 도망쳐서까지 살아남은 내가 무력하게 죽어버린다면, 그보다 덧없는 행동이 어디에 있겠는가. –
그는 살고 싶다는 본능에 따라 왕자라는 책임 막중한 직위에도 불구하고 도망쳤다. 뒤늦게 그런 자신의 행동을 처절히 후회했지만 그렇기에 삶의 목적을 찾을 수 없음에도 죽을 수 없었다.
참회하는 심정으로 고통받기 위해 살아가려고 했다. 낯선 세상에서 안전을 위해 인간들을 죽여 자신의 수족들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세현을 만나 죽었고, 어쩌다 보니 이렇게 다시 태어났다.
그는 이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의외로 왕자는 류한 구성원들에게 그리 어렵지 않게 받아들여졌다. 여타 이종족들보다 훨씬 큰 체구를 가져 확연하게 이질적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진 화려하고 아름다운 용모가 그 모든 위화감을 상쇄시키고도 남을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공허의 힘을 품은 좀비들을 권능으로 먹어치워 자폭에 가까운 짓을 벌이던 구울 로드 할드를 제물로 바쳐 얻어낸 용모, 당시에는 그것이 가장 간편하게 구울 로드를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라 했을 뿐이었지만 이렇게 되고 보니 아주 좋은 한 수가 된 셈이다.
서승태는 왕자에게 찾아가는 일이 많았다. 당연히 왕자를 부활시킨 아크리치 마젤란 때문이었다.
레야가 아크리치가 공허에 관심을 갖는 것을 강력하게 경고했기에 세현은 그들의 만남을 주의깊게 살피는 중이었다.
서승태를 불러 마젤란에게 경고를 전하기도 했다.
위험한 짓거리를 한다면 영원히 세상 빛을 못 보게 만들어주겠다고 친절하게 잘 설명해주었으니, 아마도 알아들었을 것이다. 아크리치는 그 자신이 강력한 만큼 세현이 얼마나 큰 힘을 갖고 있는지도 대충 아는 듯했으니까.
반고 왕국으로는 항복을 받아주기 위한 사절단이 출발했다.
그들의 항복을 공식적으로 문서화하는 일과 다른 자잘한 세부사항들을 논의하기 위함으로, 사절단 대표로는 이예슬이 자원해서 나섰다. 류한 왕국이 최초로 다른 왕국을 속국으로 복속시키는 일이다. 사실상 혜진을 제외하면 행정쪽에서 이인자라고 해도 될 그녀가 직접 움직일 만한 사안이었다. 안전에 대한 염려는 적었다. 장한위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리 비굴하게 항복을 구해놓고 뒤늦게 자살을 선택할 리 없다.
“음.”
세현은 들고 있던 태블릿을 허공으로 수납하며 속으로 픽 웃었다.
류한이 왕국이 되며 사방에서 중요한 일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그는 시간만 나면 태블릿을 꺼내들고 왕국의 행정을 살피며 다른 중요한 사안들을 생각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심지어 이렇게, 다른 세계로 가는 순간을 앞두고 있으면서도.
직접 일궈낸 왕국이라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챙기고 싶을 정도로 애정이 많이 간다.
“갔다올게.”
“그래.”
누이인 혜진에게 인사하고, 옆에 있던 아엘라에게도 갔다온다 말하며 짧게 포옹하고 뺨에 입을 맞췄다. 그 옆에 선 딸 유르미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안녕히 다녀오세요.”
배꼽인사를 하는 딸의 귀여운 모습에 세현이 시원하게 웃으며 손에 든 마계 초대석을 그대로 부쉈다.
푸화아아악!
바람이 거세게 뿜어지는 소리를 내며 던전 생성기로 만들어내는 것보다 배는 빠르게 완성되는 포탈, 그것은 신비로운 푸른빛이 아닌 뜨겁게까지 느껴지는 붉은빛으로 작열하며 허공에 떠 있었다.
세현은 망설임없이 그 포탈에 몸을 담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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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초 동안, 포탈을 통과할 때 특유의 느낌이 그를 감쌌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지만 처음에는 그조차 거부감을 느꼈던 기이한 감각, 그것이 지나가자 어느새 주변 풍경은 완전히 변해 있었다.
“음……”
마계가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선 깊게 생각해본 적 없다. 다만 막연하게 아주 암울하지 않을까 싶었다. 마계가 달리 마계라고 불리겠는가? 흔한 고정관념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직접 가본 천계는 일반적인 그러한 고정관념에 훌륭하게 부합하는 곳이었다. 마계도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모습은 그 어떤 예상에서도 크게 벗어났다.
우주를 그대로 가져다놓은 듯한 새카만 하늘에 무수히 많은 별들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움직이며 은하수를 이뤄내고 있었다. 지평선 너머에서 나타난 적색빛 거성이 확연히 빠른 속도로 하늘을 가로질러 반대편 지평선으로 사라지기까진 일 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 아름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코스믹 호러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하늘 아래로, 그야말로 수천 수만 마리의 반딧불들이 날아다니는 넓은 숲이 펼쳐져 있었다. 나무의 모습은 굉장히 이질적이었으나 전체적인 형태는 지구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그 아래 바닥에 자라난 무수히 많은 들풀과 들꽃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늘이 어두운 것을 보충하듯 다른 곳들에 광원이 많았다. 먼저 보였던 반딧불이라든가, 심지어 자라난 들꽃의 풀까지 은은한 빛을 품어 주위를 아름답게 물들이는 중이었다.
“여기가 마계인가?”
세현이 질문을 던지며 뒤돌아서자, 그곳엔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한 인영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인간과 비슷하지만 피부가 석탄을 바른 것처럼 까맣다. 착용한 회색 의복은 세현이 무림에서 보던 무복과 유사한 형식, 등에는 피막으로 된 한 쌍의 커다란 날개가 달렸다.
머리에는 흔히 악마라고 하면 연상할 수 있는 한 쌍의 뿔이 돋았고 눈동자는 그야말로 빛을 뿜어내는 선명한 붉은빛이다. 달빛으로 빚어낸 듯한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허리까지 늘어졌고 가슴이 봉긋한 것을 보면 여성으로 짐작되었다. 악마의 생태가 인간과 비슷하다는 전제 하에서.
– 아름답지 않습니까? –
확실히 여성의 것으로 들리는 미성으로, 상대가 말했다.
“하늘만 빼면.”
– 하늘이 어떻습니까? –
“글쎄, 충분히 우주적 공포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광경이랄까.”
그렇게 대답하며 세현은 주위를 둘러봤다. 근방 한쪽에 자리한 숲을 제외하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광활한 평원, 이곳에서 그를 기다리던 이 여자는 대체 누구일까.
세현의 속내를 짐작한 것처럼 여자가 말했다.
– 페하브입니다. –
“……네가 악마대공?”
–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틀 정도. –
“내가 언제 올 줄 알고?”
– 내 수하들 중엔 예언자가 있지요. 이틀을 기다린 것은 온전히 나의 조바심 때문이니 마음 쓰실 것 없습니다. –
그녀는 고개를 들어 붉은빛 눈동자를 하늘로 향했다.
– 어둡지요. 우주를 보는 것처럼. 허나 원래는 쳐다볼 수도 없을 정도로 밝았습니다. –
“무슨 뜻이지?”
– 말 그대로의 뜻입니다. 지금 어둡게 보이는 것은 마신께서 대부분의 빛을 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이곳은 살아가기 너무 힘든 세계였지요. 그래서 우리는 한때 다른 세계를 끊임없이 침략한 적 있었고, 그때 나는 수많은 싸움에 앞장서 학살자란 칭호를 얻었습니다. –
악마대공 페하브가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공간이 일렁이며 그곳에서 무언가 튀어나온다. 주먹만한 크기의 불투명한 하늘색 수정구로, 표면에는 황금빛과 보랏빛이 뒤섞인 문자가 발광하고 있었다.
페하브는 그것을 세현에게 내밀었다.
– 받으십시오. –
“……”
– 관리자로 적당한 사역마를 함께 봉인했고 병력으로 용아병(龍牙兵)들을 채웠습니다. 에레도스 시스템 상점에서 직접 구매하는 것과 큰 차이 없을 겁니다. –
세현은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어 살폈다. 수정구 안에서 회오리치는 마력의 느낌이 심상치 않았다.
[천공성 하드샤 소환석(전설적): 파괴하는 것으로 천공성 하드샤를 소환해 귀속시킨다.– 마계의 다섯 악마대공 중 하나, 학살자 페하브 소유의 천공성을 안정적으로 봉인한 수정구. 타자에게 소유권을 양도하기 위한 최적의 형태로 고안되어 만들어졌다. – ]
마계에 오자마자 악마대공을 만나고 천공성을 건네받게 될줄이야.
세현은 그것을 무한의 주머니로 수납하며 페하브를 쳐다봤다.
“나를 초대한 이유가 뭐지?”
– 신의 검을 견식하는 대가로 그 정도는 되어야겠지요. 나와 싸워주십시오. 나는 당신을 죽일 생각으로 공격할 겁니다. 그리하여, 가능하다면 당신의 신성을 빼앗을 겁니다. –
서로의 시선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세현이 곧바로 통찰의 눈 스킬을 사용했으나, 악마대공 페하브의 생각은 조금도 흘러들지 않았다. 흡사 무생물을 관찰하는 듯한 느낌이다.
통찰의 눈 스킬은 만능이 아니다. 그보다 정신력이 강하거나 혹은 다른 수단이 있다면 얼마든지 방어할 수 있는 스킬이다. 여태까지 그러한 상대를 만나본 적 없었지만 페하브가 바로 그런 상대였다.
덕분에 상대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정말로 그런 단순한 이유로 그를 초대했단 말인가? 그가 천계를 방문한 것과 관련된, 마계 전체와 얽힌 일종의 정치적인 이유가 아닐까 짐작했었는데.
“네 휘하의 예언자가 네 승리를 점치던가?”
– 아니요. 나는 패배할 겁니다. –
“그걸 알면서도 싸우겠다고? 가능하면 나를 죽이겠다는 도발까지 하면서?”
– 운명이란 거대한 흐름이자 동시에 가변적인 것…… 최초의 검귀로서, 나는 당신의 검을 반드시 봐야겠습니다. –
최초의 검귀?
세현이 설핏 인상을 찡그리며 상대를 재차 살폈다. 악마대공 페하브의 허리춤에는 검 한 자루가 차여져 있었다. 겉모습만 봐도 범상치 않은 새까만 검이다.
– 나는 만이천 년을 살았습니다. 그 중 팔천 년이 넘는 시간을 검으로 싸웠고, 천만이 넘는 이계의 영웅들을 베어넘겼습니다. 누구도 나의 검을 받아내지 못했습니다. 마신님을 제외하면…… 그래, 심지어 마신께서도 검으로는 나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
스르릉-
서늘한 금속음과 함께 페하브의 허리춤에서 검이 뽑혀나왔다. 온통 검던 손잡이와 크로스가드 부분과는 달리, 검신은 요사스러울 정도의 밝은 은빛이다.
그것은 페하브의 손에서 오랜 세월 수도 없이 많은 피를 먹으며 만들어진 마검이다.
– 의문입니다. 내 삶의 반의 반조차 살지 못한, 백 년도 채 되지 않는 그 찰나의 시간을 산 당신이 대체 어떻게 검신이라는 칭호를 얻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직접 봐야겠습니다. 이 중요한 의문을 해결하는 일에 내가 가진 천공성 정도는 아주 가벼운 대가가 아니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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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마음처럼 잘 안 써져서 연재가 늦었습니다.
이럴 때마다 기다려주시는 분들께 참 송구스럽니다. ㅠㅠ 그래도 일단 한 고비(?)를 넘겼으니 다음 편은 빠르게 나올 것 같습니다. 내일… 늦어도 모레에는 한 편 더 올리겠슴니다.
부디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추천 한 번 꾹! 부탁드립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