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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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검귀
팔천 년.
인류가 기원후를 기준으로 역사를 세기 시작한지 이제 겨우 이천 년 정도, 팔천 년 전은 기원전으로 불리며 인류가 아직 미개함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도 못했을 시절이다.
백 년을 간신히 사는 인간의 입장에서, 어쩌면 영원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그 오랜 세월을 타차원의 강력한 존재들과 싸워온, 스스로 최초의 검귀라 주장하는 악마대공이 검을 겨루자고 한다.
“굉장히.”
세현은 마주 검을 뽑아들었다.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기야.”
지구의 역사는 물론 무림의 역사보다도 오래 된 악마가 펼치는 검은 대체 어떤 수준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오랜 세월 검을 다뤘다면 깨달음을 수백 수천 번은 얻었을 것 같은데, 어째서 그녀는 세현처럼 검신이 되지 못한 것인가?
–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 –
페하브의 입가가 올라간다. 그녀의 날개가 세차게 한 번 펄럭이고 동시에 은빛의 검이 들어올려져 세현을 겨눈다.
시작을 알리는 대화는 없었다.
세현이 마주 청월을 들어 자세를 잡는 순간, 전면의 악마대공이 먼저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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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초가 억겁처럼 느껴지는 찰나의 시간, 한계까지 가속된 세현의 사고 속에서도 무시무시한 속도로 돌진해온 페하브의 검이 들어올린 청월과 충돌해 빛을 폭발시킨다.
쯔우우웅-!!
주변 사방의 모든 소리를 통째로 날려버리는 충격음, 원형으로 퍼진 힘의 여파가 대지에 무성히 자라났던 들풀과 들꽃들을 무자비하게 갈아엎으며 사방으로 잔해를 밀어 날려보냈다.
단 한 번의 공방에 검은 속살이 드러난 대지, 겉표면의 잔해들이 채 가라앉기도 전 수십 번의 참격이 이어졌다.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옆에서 옆으로, 흡사 보이는 모든 광경에 칼날이 들어차듯 사방에서 은빛이 번쩍인다.
쒸아아악!
피해낸 검날이 얼굴 옆을 스치는 소리가 끔찍하다. 공간이 통째로 절단나며 신체 위를 덮고 있던 호신의형기가 종잇장처럼 찢겨나갔다. 자세를 회복하기 무섭게 날아드는 은빛 검을 청월로 방어하자 교묘하게 방향을 튼 검날이 목을 향해 날아들고, 그것을 재차 방어하면 다시 새로운 수가 튀어나와 목숨을 노린다.
쿠구그그긍-!
서로가 딛는 대지가 두 존재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사방으로 밀려나며 묵직한 비명성을 흘렸다.
거대한 힘에 상대적으로 가벼운 몸이 뜨지 않도록 해주는, 세현의 천근추(千斤錘)와 페하브의 그와 비슷한 기술이 눈으로 보일 정도로 유형화되며 주변에 마력의 폭풍을 일으킨다. 자하신공의 자색빛과 악마가 가진 흑마력의 검은빛, 그것들이 두 마리의 신화 속 야수처럼 이를 드러내며 서로를 물어뜯는 듯한 형상 속에서 검과 검이 충돌하고 사방으로 몇 번째일지 모를 충격파를 흩뿌렸다.
만약 적을 힘에서 압도할 수 있다면 기교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을 쓰기도 전에 상대를 뭉개버릴 수 있으니까. 몇 존재를 제외하면 여태까지 세현이 벌여온 싸움 대부분이 그런 식이었다.
하지만 악마대공은 그를 상대로 육체적 능력에서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아니, 밀리지 않는 것을 넘어 힘과 속도 면에서 미약하지만 그를 앞지르고 있었다!
콰광!
청월을 쥔 반대편 손에서 만들어진 무형검이 날개를 활용하며 섬전처럼 이동하는 페하브의 경로를 방해하자 그녀가 뻗어낸 공세와 부딪히며 폭음이 터진다.
유형화되어 뿜어지는 무거운 느낌의 묵빛 흑마력, 그것은 흡사 지옥의 아귀처럼 자색빛 무형검을 물어뜯어 형태를 흩뜨러트렸다. 단순히 그것에서 그치지 않고 세현의 의형기를 침식하며 역으로 달려들기까지 했다.
반사적으로 움직인 손이 화산의 절기들을 줄줄이 펼쳐낸다.
난화불혈수(蘭花拂穴手)로 방향을 틀고 매화오품지(梅花五品指)로 핵을 찔러 기세를 수그러트린다. 잔력을 낙화추영장(落花追影掌)으로 걷어내며 동시에 반격을 내뻗자, 손이 나아가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물러선 페하브가 세현의 팔을 베어버릴 기세로 다시 검을 베어낸다.
그녀의 등뒤에서 수십 자루의 암흑검이 생성되어 쏘아진다. 한차례 크게 펄럭이는 날개의 움직임과 함께 칼날보다 예리한 기운들이 수십 줄기 폭발하듯 뿜어지고, 그 뒤를 세현의 무형검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검 모양의 강기들이 줄줄이 뒤따른다.
그 모든 위력적인 공세를 따돌리며 어느새 안쪽으로 파고든 세현의 신형이 페하브의 앞에 섰다. 구궁보(九宮步), 화산 보법의 모든 정수가 집약된 그 움직임은 일순간 페하브의 감각마저 속였다.
꾸웅-!
내딛는 발걸음에 대지가 진동한다.
생겨난 반탄력이 단 한 톨의 낭비도 없이 다리를 타고 허리로, 몸통에서 가슴을 거쳐 어깨로, 내뻗는 팔의 끝 청월의 검극으로 향해 하나의 점을 찍는다.
자하 제 일식, 일함(一莟)!
형용할 수 없는 굉음과 함께 페하브가 든 마검의 은빛 칼날이 부러질 것처럼 거세게 휜다.
좁쌀보다 작은 검끝으로 찌르는 공격을, 마찬가지로 찌르기로 방어해낸 그녀의 검에서 처절한 비명 같은 소리가 울렸다. 세현의 청월 역시 예외는 아니었던 터라 두 검이 서로의 검극으로 서로를 밀치며 금방이라도 부러져버릴 듯 크게 휘는 모습이 위태롭기 짝이 없다.
동시에 둘은 반대편 손으로 서로를 겨누고 공격을 가했다.
세현의 손가락 끝에서 번쩍임과 함께 소이페(Soipe), 섬광이 뻗어진다.
페하브의 손에서 날카로운 흑색 원반이 생성되어 뻗어오는 섬광을 찢어발긴다.
거대한 힘의 충돌에는 당연하게도 폭발이 뒤따르는 법, 자색빛과 검은빛이 뒤섞인 반구형 폭발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그 한가운데서,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은 페하브가 빠르게 물러나는 세현을 향해 위에서 아래로 검을 내리쳤다.
은빛이 세상을 쪼갠다.
급속도로 범위를 늘리던 반구형의 폭발마저 한순간에 두 동강나버릴 정도의 가공할 참격, 그것을 가로막은 것은 마찬가지로 세상 전체를 쪼개버릴 듯한 세현의 참격이다.
자하 제 이식, 최단(最斷).
참격과 참격의 충돌 반대편에서 수십 갈래로 갈라진 세현의 무형검이 사방에서 독사처럼 페하브를 덮쳤다. 그녀의 시야에서 세상 천지가 한순간에 자색빛 칼날로 가득차버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만화천검진(萬花天劍陳), 어느쪽이라 말할 것도 없는 모든 방향에서 수천이 넘는 칼날들이 악마대공을 난도질하기 위해 빛의 속도로 날아든다. 허나 폭발하듯 움직인 그녀의 신형이 순식간에 검진을 깨부수고 튀어나와 세현에게 다시금 검을 휘둘러왔다.
회전과 찌르기와 베기, 하늘에서 대지로, 지평선 왼편에서 오른편까지.
모든 공격을 방어하던 세현의 제복 어깨부근이 서늘한 절삭음을 동반하며 잘려나갔다. 그리고 페하브의 한쪽 날개 중앙부근의 끄트머리가 베이며 소량의 흑마력이 피처럼 뿜어졌다.
– 하…! –
옷자락 약간과 날개 약간, 둘 모두 부상이라 쳐줄 수도 없는 피해 아닌 피해.
그래도 옷은 의복에 불과하고 날개는 신체기관이다. 누가 손해를 봤는지는 명백하다.
페하브의 전신을 타고 흐르는 묵빛 흑마력의 농도가 한층 더 짙어진다. 원래부터 까만 피부였던 그녀는 핏빛의 두 눈동자를 제외하면 이제는 흡사 신체 전부가 빛을 빨아먹는 어둠으로 이뤄진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쾅!
대지를 박차는 폭음을 등지고 유성처럼 쏘아진 은빛 검날이 수평으로 그를 쪼개온다. 한 번이 아닌 두 번, 몸 전체를 팽이처럼 휘돌리며 날리는 검날에서 흑마력의 칼날들이 빛살처럼 튀어나와 사방을 베어냈다.
구궁보를 밟을 때마다 세현의 신형은 유령처럼 사라지거나 잔상을 남겼다.
이형환위 정도는 가뿐하게 간파할 능력을 가진 악마대공도 그의 구궁보를 완전히 쫓아오진 못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날아드는 청월을 흘리고 막아내는 것에는 빈틈이 없다.
한 걸음에 십여 미터 이상을 이동하며 눈 한 번 깜빡이는 사이 서로가 자리를 대여섯 번이 넘게 바꾼다. 휘몰아치는 대기와 마력의 폭풍 속에서, 그 모든 것을 쪼개버리며 날아드는 은빛 마검의 칼날이 세현의 코앞에서 청월에 가로막히고는 흉포하게 으르렁거렸다.
콰드드드득!
대지를 딛으며 달리는 소리가 흡사 천둥 같다. 자색빛과 묵빛의 잔상이 순식간에 수백 미터를 이동해 그들의 전장은 어느새 숲으로 돌변했다.
세현이 몸을 피한 자리 근처로, 아름드리 나무들 수십 그루가 한순간에 두 동강나며 그 거대한 몸체를 천천히 쓰러트렸다. 몇 초 사이에 수백여 미터를 이동하는 둘의 격전을 따라 때아닌 벌목을 당한 다수의 나무들이 이리저리 얽히며 쓰러지기 바빴다.
그 숲의 깊숙한 곳에서, 장정 열 명은 있어야 간신히 둘러쌀 수 있을 만한 거대한 나무를 사이에 두고 지나치는 순간, 세현이 들고 있던 청월을 손에서 놓았다. 동시에 열리는 무한의 주머니 입구에서 수십여 자루에 달하는 류한의 장검들이 튀어나와 사방으로 쏘아졌다.
완전히 나무를 지나쳐 시야가 드러나기 무섭게 빛살처럼 날아드는 청월, 그리고 보조를 맞춰 사방에서 기묘한 곡선을 그리며 날아드는 다른 수십여 자루의 장검들, 그것들 모두가 자색빛 의형기를 휘감고 가로막는 모든 것을 꿰뚫고 쪼개며 페하브를 향해 달려든다.
쩌저저정!
한순간에 휘둘러진 은빛 검이 동시에 세 방향을 베어내자 날아들던 류한의 장검들 중 열 자루가 그대로 박살났다. 남은 장검들 역시 거센 흑마력의 기류에 휩쓸려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청월 역시 그 위력적인 참격에서 자유롭지 못해 이상한 곳으로 휩쓸렸다.
허나 애초부터 막힐 것을 알고 행한 공격, 그것을 통해 벌어낸 찰나의 시간 페하브의 위를 점한 세현이 두 손에서 무형검을 생성하며 아래로 힘차게 내뻗었다.
자하기가 회오리치고 주변의 마력이 호응하며 응축과 동시에 폭발한다. 쏘아진 한 줄기 섬광을 품고 수평으로 퍼지는 두 개의 고리형 충격파가 주변의 잔류마력까지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며 공격의 위력을 더했다.
벨 그로 키벨라(Vel-Gro-Kivela).
수호룡의 브레스와도 비견되는 위력을 뿜어내던 악마의 필살기, 그것이 세현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어 무형검을 통해 발현되었다.
페하브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그녀의 몸에서 폭발하듯 뿜어진 묵빛의 기운이 급속도로 덩치를 불려 날아드는 섬광과 부딪힌 순간,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빛이 터졌다.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 공격을 쏘아냈던 세현조차 그 후폭풍에 휘말려 하늘 높이 튕겨져 나갔다. 급속도로 영역을 넓히는 빛무리에 휩쓸린 거목들이 찰나에 가루로 부서져 흩날리고 밀려난 대지가 해일처럼 출렁이며 사방으로 지진을 일으켰다.
– 아아아…아아!! –
그 후폭풍 속에서 비명과 함께 섬광을 먹어치우며 암흑이 들썩였다. 아니, 그렇게 느낀 순간 어느새 튀어나온 악마대공 페하브가 전신에서 암흑을 줄기줄기 흩뿌리며 세현에게 검을 찔러오고 있었다.
상처입은 맹수의 흉포한 반격, 그녀의 움직임에 급속도로 밀려난 대기가 폭발함과 동시에 검과 검이 충돌한다. 튕겨나가지 않으려고 만들어낸 의형기의 발판들이 설탕판처럼 부서지며 그의 신형이 다시금 더 높은 곳으로 쏘아졌다.
대기권을 돌파해 우주로 나가버리는 것이 아닐까 우려스러울 정도의 엄청난 상승, 그럼에도 추격의 속도를 늦추지 않고 다시금 달려드는 페하브를 향해 세현이 마주 검을 휘둘렀다. 그의 한쪽 입꼬리가 미약하게 치솟는다. 더 이상 즐거울 수 없다는 듯이.
힘과 힘의 충돌, 섬광과 굉음과 폭발.
그리고 섬뜩한 절단음.
– 아…! –
페하브의 한쪽 날개가 절반 정도 잘렸다. 동시에 세현의 어깨부근이 얕게 베이며 피가 흩뿌려졌다.
정확하게 둘이 처음으로 서로에게 손해를 가했던 그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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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추천 한 번 꾹! 부탁드립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