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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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길드를 창설하는데 가장 오래 걸린 일은 바로 이름을 정하는 것이었다. 어떤 형태의 이름을 정해야 좋을지 아무도 감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좀처럼 괜찮은 이름 후보가 나오지 않자 세현은 속으로 ‘화산’을 길드 이름으로 할까,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화산파와의 인연은 무림에서로 족하다. 여기서까지 그 이름을 달고 움직일 정도로 애정이 깊진 않았다.
“류한 클랜으로 하지.”
얼마 후, 깊게 고민하길 포기한 세현이 가벼운 마음으로 정했다.
“류한? 무슨 뜻인데?”
“번져 퍼지는(流) 사나움(悍).”
“……”
“음……”
다른 일행은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세현의 추억이 담긴 이름이었다.
그보다 더 나은 후보가 없었기에 길드 이름은 그대로 ‘류한’으로 정해졌다.
그렇게 길드명과 일행 다섯의 동의를 얻자 나머지 과정은 일사천리였다.
길드장이 된 세현은 곧장 혜진을 부길드장으로 임명 후 대략적인 체제를 잡아나갔다. 복잡하게 서류작업 할 것 없이 태블릿을 조작하는 것만으로도 할 수 있어 굉장히 편했다.
추가로 태블릿을 통해 성의 시설을 관리할 수도 있었다. 길드 포인트라는 것을 통해 가능했는데, 일행의 이전 행적들이 정산되며 그럭저럭 많은 포인트를 지급받은 상태였다.
현재 하나의 새로운 시설을 짓거나 기존의 시설 하나를 업그레이드 하는 게 가능했다.
그건 누나인 혜진이 고민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남겨뒀다.
그 외의 것들에 대해 정보를 수집하고 체계를 잡아나가는 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될 무렵, 창 밖으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세현을 제외한 남은 인원들은 진즉에 잠에 빠진 후. 체력적으로 며칠은 수면을 취하지 않아도 되는 세현 혼자서 그 일출을 감상하며 앞으로 할 일을 머릿속으로 점검했다.
의도치 않게 쓸 만한, 아니, 다른 어디서도 찾을 수 없을 정도의 거점을 얻었다. 이렇게 되면 굳이 군인들이 점거하고 있던 호텔을 노릴 이유가 없어졌다고 볼 수 있지만.
이젠 호텔이 아닌 군인들이 탐났다. 그들의 전투력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가.
세현이 허공에 손을 뻗자 공간을 가르며 나타난 태블릿이 손에 착 잡혀들었다. 이 태블릿은 놀랍게도 이런 식의 수납이 가능했다. 오로지 길드장이나 부길드장에 한해서였지만.
손에 든 기기를 몇 번 조작하자 회의실 같았던 공간, 이제는 상황실이라 명명한 그곳에서 볼 수 있던 지도가 화면에 떠올랐다. 이것은 확실히 단순한 지도 이상의 역할을 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근처의 괴물을 탐지할 수 있는 기능이다. 지도의 곳곳에 흰색이나 붉은색, 혹은 주황색 점들이 반짝이며 괴물들의 현재 위치를 나타내고 있었다.
그걸로 호텔 근처의 괴물들 수를 헤아리던 세현이 중얼거였다.
“온전히 흡수하진 못할 테니……”
어디에서든지 우두머리가 둘일 수는 없는 법.
상대가 스스로 지휘권을 포기할 리는 없으니 방법은 하나 뿐이다. 아쉬워도 어떻게든 와해시킨 후 살아남은 이들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방법은 많다. 가장 쉬운 건 근처의 괴물들을 몰이하는 거다. 희생자가 발생하겠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가만 놔둔다는 것은 더 말이 되지 않는다.
세상은 변했고 이곳은 이제 세현의 영역이다.
같은 영역에 서로 다른 무장집단이 존재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숱하게 보아왔다. 둘 중 하나는 사라져야만 한다.
흡수하지 못한다면 부숴버리는 것이 맞다. 평화적인 방법을 찾아보면 꼭 없는 건 아니겠지만, 여러 모로 지금의 세현 일행에겐 적합하지 않았다.
그는 한참을 지도를 들여다보며 머릿속으로 여러 계획을 구상했다. 그러다 일단 고개를 흔들어 그에 대한 생각을 털어냈다.
호텔의 군인들은 당장 급한 게 아니다. 그전에 해야할 일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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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침대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서는 느긋한 식사를 가진다. 그 후 뜨끈한 물로 샤워까지 마쳤다. 일행의 얼굴은 매우 개운해보였다. 이런 난장판 속에서 이곳 같은 장소를 찾아냈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세현은 1층의 홀에 혜진을 제외한 셋을 집합시킨 후 입을 열었다.
“거점을 얻었으니, 이제 사람을 모을 겁니다. 일단 그 전에 본격적으로 무공부터 전수할 생각입니다만.”
그의 시선이 김인환과 김유린을 훑었다. 마지막으로 이예슬을 쳐다본 후 다시 눈길을 돌린다.
“배우실 겁니까?”
“당연하지!”
“예.”
김유린과 김인환의 대답이 이어졌다. 이예슬은 약간 망설이다 물어왔다.
“저도 배울 수 있나요?”
“물론 가능합니다. 필요한 일은 별로 없겠지만.”
“배우고 싶어요.”
“알겠습니다.”
그 후 갑작스레 그의 기세가 바뀌었다.
세현처럼 거대한 힘을 몸에 담은 이들은 그저 서있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기운을 뒤틀어 위험한 느낌을 풍긴다.
그것이 바로 무림에서 외기(外氣)라 부르는 기세.
경지에 이른 그는 평소에는 그것을 감쪽같이 감출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일부로 드러냈다.
“경고하는데, 일단 제자가 되어 이걸 배우기 시작한 후로는 나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내 제자라는 위치는 단순한 사승관계을 넘어서는 일종의 직위가 될 겁니다. 그게 마냥 좋지만은 않을 겁니다. 발을 뺄 수 있는 기회는 지금이 마지막이니 신중하게 생각하시길.”
잠시 침묵한 세현이 무겁게 말을 이었다.
“배신의 대가는 죽음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듣는 셋으로 하여금 오금이 저리게 만들 정도로 위협적인 말이었다. 지금 풍기는 기세도 강력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간 보여준 세현의 모습은 더욱 무서웠다.
헌데 의외로 그런 세현의 앞에 선 셋은 두려움에 떨거나 고민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되려 안심하는 느낌이 강했다.
강자의 밑에 속하는 것은, 설령 그것이 자유를 억압당하게 되더라도 생존을 보장한다. 제자가 된다면 단순한 버림패로 쓰일 가능성도 적을 테니 지금처럼 안심할 만도 했다.
“……배우겠습니다.”
“배우겠습니다.”
“나, 저, 저도요.”
김유린이 저도 모르게 말을 높였다.
그들과 하나씩 눈을 맞춘 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제부터 당신들의 스승입니다. 말을 놓도록 하지요. 앞으로 내겐 공경을 담아 대하며 존대를 하십시오. 예외는 없습니다. 나는 당신들이 잘못을 하면 벌을 줄 것이고, 반대의 경우에는 상을 줄 겁니다. 이제부터 당신들에게 나보다 더 높은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잔뜩 긴장한 셋이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이제 시스템의 힘을 빌려 길드라는 집단을 창설하기도 했으니, 형식적인 측면에도 신경을 쓸 시점이다. 그게 존댓말을 그만두는 가장 큰 이유였다.
세현은 곧장 말을 놨다.
“그러면 일단, 한 가지 비밀부터 알려주도록 하지. 나는 보이는 것과 달리 근 80년을 넘게 살아온 사람이다. 예전에 이곳과 다른 세상에 떨어져 60여년을 넘게 보냈지. 지금 전해주려는 이 무공이란 힘도 그곳에서 얻은 것이고, 어쨌든 이건 하루이틀 만에 익힐 수 있는 힘이 아니니 너희도 많이 노력해야 될 거다.”
그렇게 말하며 세현이 손을 뻗었다. 거세게 불타오르는 자색빛 기운이 짧은 순간 짐승의 으르렁 거리는 듯한 소리를 내다 순식간에 사라졌다.
“일단 너희 셋은 일반적인 경우라면 무공을 배우기엔 늦은 나이야. 보통은 10세 전후부터 체력과 내공을 다지며 몸의 유연성을 키워야 하니까. 이러니 저러니 해도 무공이란 결국 몸을 쓰는 것,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나는 너희들의 굳어버린 신체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혜진에게 실행했던 벌모세수가 바로 그것이다.
사실 그 정도로 섬세하게 해줄 생각은 없었다. 임독양맥을 포함한 대주천을 뚫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머지 세맥은 본인들이 무공을 열심히 익혀나가면 저절로 뚫릴 테니까.
“힘든 작업이지. 내가 있던 세계에선 연이 없는 자는 천금을 준다 해도 받을 수 없다. 귀한 기회이니 감사한 마음으로 이후에 최선을 다해도록 해라. 김인환, 너부터 시작하자.”
“예.”
“2층 샤워실에서 할 테니 남은 둘은 입구에서 대기하고, 누나는 타올 세 장 만 준비해줘.”
“아, 응.”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혜진이 갑작스런 부탁에 살짝 놀라면서 대답했다. 의도치 않았지만 그녀도 세현의 기세에 눌려 있었다.
2층으로 이동하고, 벌모세수를 위한 준비가 끝났다.
김인환이 샤워실에 들어서자 세현은 미리 깔아놓은 타월을 가리키며 말했다.
“옷을 전부 벗고 여기 누워라. 똑바로.”
“전부 말입니까?”
“그래.”
별 생각 없이 옷을 벗던 김인환이 문득, 멈칫하며 세현을 바라봤다.
“저, 사부님? 스승님?”
“원하는 대로 불러.”
“옷을 벗으라 하셨는데, 그럼……”
뭘 말하고 싶은지 짐작한 세현이 고개를 저었다.
“남편이자 아버지인 심정은 이해하겠다만, 나를 모욕할 생각이 아니면 거기까지 해라.”
“……죄송합니다.”
김인환은 눈치 있게 더 이상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그가 포기하지 않고 더 무슨 말을 했다면 세현은 화를 냈을 것이다. 이 엄청난 기회를 베풀어주려는데 그런 시선이나 받는다면 누가 기분이 좋을까?
김인환이 자리에 눕고 세현은 정신을 집중했다.
이들을 쓸만한 인재로 키우기 위한 첫걸음이다. 혜진에게 해준 것처럼 꼼꼼하게까진 아니더라도, 대충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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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슬은 의외로 아무런 말 없이 곧바로 옷을 벗었다. 한점의 부끄러움도 없이 행동하는 모습이 꽤 담대하게 보여 그간 안 좋았던 인상을 조금 지울 정도였다. 역시 계속 지켜볼 만한 가치가 있다.
이윽고 김유린의 차례가 됐다. 김인환에게서 언질을 들었는지 들어오자마자 상의에 손을 가져가며 물어왔다.
“전부 벗어야지? 어, 벗어야죠?”
“그래.”
결심은 했지만 막상 시행하려니 부끄러운 모양이다. 그가 80년을 살았다고 했지만 김유린에겐 와닿을 리 없는 말이었다. 과거의 추억도 있는 상황이니 그녀에겐 아직도 세현은 자신과 같은 나이대의 남자일 뿐이다.
하지만 머뭇거리던 그녀는 이내 결심을 굳히고 옷을 벗었다. 자신도 모르게 몸을 가리려는 손을 간신히 참으며 세현이 깔아놓은 타올 위에 올라섰다.
“똑바로 누워서 눈 감아.”
“네.”
가부좌를 틀고 앉은 세현의 앞 타올에 가지런히 누운 김유린이 눈을 감았다. 그러다 문득, 눈을 뜨더니 그와 눈을 마주쳤다.
“그……”
“뭐?”
“아뇨.”
다시 눈을 꾹 감는 김유린. 혜진은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뒤돌아 눕게 한 다음 벌모세수를 해줬지만, 사실 이렇게 똑바로 누워서 하는 것이 원래의 방법이고 더 편하기도 하다.
세현은 정신을 집중하며 김유린의 아랫배, 단전이 있는 위치에 손을 올렸다. 손이 닿자 몸을 흠칫한 김유린이 저도 모르게 그의 손을 붙잡으며 눈을 떴다.
한숨을 삼키며 뭐라 말을 해주려던 세현은 문득, 그녀의 눈을 마주하고 잠시 침묵했다.
김유린은 그와 눈을 마주한 채 침만 꼴깍 삼키고 있었다.
“저기, 있잖아……”
“존댓말. 예외는 없다고 했을 텐데.”
그 순간 세현이 차갑게 일침을 놨다.
김유린은 찔끔하곤 조심스레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있잖아요.”
그는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가만히 김유린을 내려다봤다. 결국 그녀는 입만 달싹이다가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럼 집중해.”
세현은 곧장 벌모세수를 받는데 있어 주의해야할 점들을 나열했다.
김유린은 그 말을 귀담아 들으면서도 한편으론 내심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본인조차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는 한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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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슬슬 기초 다지기에 들어갑니다.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추천 꾹! 부탁드립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