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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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화
“그 말씀은 신의 존재를 믿으시는 겁니까?”
“단순히 믿는 게 아니야. 이미 내게 수호교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나?”
두 외교관의 표정은 조금의 변화도 없었으나 속으로는 떨떠름함을 느꼈다.
자기 자신을 신으로 모시는 종교를 언급하며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이 아니라 알고 있다고 말하니, 둘이 무슨 감상을 받았을지는 뻔하다. 그러나 세현은 당당했다.
사실을 말하는데 무엇을 거리낄까, 뭔가 해를 끼치려는 것도 아닌데.
“거부감이 들겠지. 기존의 상식과는 다르고, 또한 여태까지 살아있는 자를 신으로 모시는 종교 중 제대로 된 것이 없기도 했으니.”
“음……”
“수호교는 나를 신으로 믿는 종교다. 그러나 나는 명백히 전지전능하지도, 절대적이지도 못해. 모든 인류를 평등하게 사랑하거나 모두를 항시 지켜보거나 사후를 주관하고 심판하지도 못한다. 신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나를 믿는 자들에게 약간의 힘을 나눠주는 정도야.”
“어떠한 힘을 나눠주신다는 말씀이십니까?”
“신체를 강건하게 만들어주는 힘, 세상의 질서와 조화를 파괴하는 부정함을 바로잡는 힘.”
그리고 들어올린 세현의 손에서 자색빛 광휘가 뿜어져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신성력.”
니콜라이가 눈을 크게 떴다.
그의 직업은 신성술사였다. 그래서 곧바로 그것이 신성력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평범한 전사 직업을 가진 클리포드라고 확신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도 신성술사들의 신성력을 수없이 보아왔으니까.
그 둘이 아니었어도 각성자라면 누구나 그것이 신성력이라고 알아볼 수 있을 것이었다. 그간 보아온 은빛 신성력과 색이 다를 뿐 느낌이 똑같았으니까.
“어렵게 증명할 것 없이 나를 신이라고 인정하면 바로 알 수 있을 거다. 내 힘을 빌리는데 대단한 믿음이 필요한 게 아니거든. 그대들이 기존에 갖고 있던 신에 대한 개념을 수정하는 것만으로 충분해.”
“국왕님을 그냥 신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겁니까?”
“그래.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
미심쩍이면서도 어딘가 찜찜한 마음을 갖고, 둘은 세현을 신이라고 생각해봤다.
정말 그 정도였다.
증명하고 싶다면 자신을 신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으니 그냥 그렇게 했을 뿐이었다.
그건 실상 믿음이라 부를 정도도 아니었다. 비유하자면 어느 길거리에서 상대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자칭 초능력자의 공연을 마주해 내밀어진 카드 한 장을 집고 내가 집은 카드가 무엇인지 맞춰보라는 식과 마찬가지.
그러나 실존하는 신의 힘은, 그 한없이 가볍고 어쩌면 불경하기까지 한 믿음에도 호응했다. 얕디 얕은 믿음만큼 작은 힘이었지만 분명하게 느껴졌다.
신체에 활력이 돌고 또 다른 힘, 신성력의 존재가 어디선가에서 흘러들어온다.
클리포드가 먼저 니콜라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둘이 눈이 마주쳤다. 자신이 느낀 것이 착각인가 싶어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둘은 같은 힘을 느끼고 있었다.
“이게, 이게 대체……”
보다 신성력에 익숙했던 니콜라이가 먼저 손으로 새롭게 느껴지는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방금 세현이 보여줬던 것과 명백하게 똑같은, 그러나 그 힘의 크기는 매우 미약해 거의 티끌 같은 자색 신성력이 뿜어졌다. 클리포드도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아주아주 희미한 신성력을 손끝으로 발산하는 것에 성공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반쯤 얼이 빠져 물어오는 그 질문에 세현은 평이하게 대답했다.
“내가 신이니까. 세상 어디에 있든 나를 신이라고 믿기만 한다면 누구나 그 힘을 사용할 수 있다. 나를 직접 만날 필요도, 특별한 의식을 치를 필요도, 신전에 갈 필요도 없어. 기존의 개념적인 신과 내가 어떻게 다른지 증명해주는 가장 확실한 현상이지.”
“수호교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꼭, 꼭 알고 싶습니다.”
클리포드가 절로 딱딱해지는 얼굴을 애써 관리하며 말했다. 충격과 혼란에 좀처럼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다. 그는 노련한 외교관이었으나 이런 경험을 한 적은 없다.
이것의 파급력이 얼마나 거대할지 짐작할 수 없었기에 일말의 두려움까지 느꼈다.
“대주교를 소개해줘야겠군. 근처에 있을 테니 금방 올 거야.”
세현이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들어 어딘가로 연락을 취했다.
통화가 아닌 채팅 어플을 사용했다. 혼란에 빠졌던 클리포드와 니콜라이는 그 와중에도 코앞에서 보게 된 스마트폰의 사용에 주목했다.
핸드폰은 현대문명의 상징이다. 그것이 삶에서 얼마나 편리하고 유용한지 알기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잠시 후, 얼마 기다리지 않아 어딘가 종교적인 느낌을 가진 옷을 입은 여성, 문하랑이 나타났다.
그녀는 다가오기 무섭게 세현의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으며 고개를 숙였다.
세현이 자신을 신이라 인정하며 수호교의 창시를 명한 순간부터 그녀가 단 한 번도 어긴적 없는 태도였다.
“신을 뵙습니다.”
“그만 일어나라. 소개해줄 사람이 있으니.”
부드럽게 말한 그가 혜진을 제외한 두 사람을 가리켰다.
“여기는 미국의 외교사절 대표 클리포드 제레드. 여기는 러시아가 전신인 이다니자카스의 외교사절 대표 니콜라이 노스코프.”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저도 반갑습니다.”
예의를 갖춘 인사가 이어졌다. 테이블의 비어있던 한 자리에 그녀가 앉자 세현이 말했다.
“이들이 수호교에 대해 궁금해 하니 설명을 좀 해주도록 해.”
“신명을 받듭니다.”
경건하기 짝이 없는 태도로 대답한 문하랑이 두 외교관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직접 들으셨다시피, 신은 인간의 바람처럼 전능하진 못하십니다. 사실은 너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기존의 전능한 신이라는 개념은 세상에 만연한 불확실성에 대면해 절대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존재를 원한 인간의 유(柔)한 정신에서 비롯된 부산물에 불과합니다.”
잠시 말을 끊은 그녀는 두 외교관이 경청할 준비가 된 것을 확인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기초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하지요. 최초에, 신앙은 미지에 대한 두려움에 대응하여 태어났습니다. 천둥번개, 폭풍, 화산폭발, 지진과 같은 거칠고 위험한 자연현상을 예로 들 수 있겠군요. 명백히 인간의 이해 밖에 있으면서 그냥 모르는 채로 두기에는 너무나 두려운 것들, 신앙은 그런 것들을 어떻게든 이해하기 위해 생겨났습니다. 토템을 만들고, 불을 피워 춤을 추고, 사냥감을 희생시켜 제물을 바치고…… 신앙은 미지의 공포에 대응하는 인류의 생존법이었습니다.”
학자에 따라 신앙과 종교의 시작을 시체의 매장에서 찾는 경우도 있다.
그것도 마찬가지다. 죽음이라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을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으로 중화하는 거다. 그들은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 생각하며 공포를 이겨냈다.
같은 측면에서 거북이 등껍질을 불에 구워 점을 보는 행위 역시 신앙의 한 종류라 할 수 있다. 점을 치는 행위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비롯되는 불안과 두려움을 해소하려는 의식이다.
“시간이 흐르고 인류의 정신이 성장하며 신앙은 점점 단순함에서 벗어났습니다. 구전으로만 내려오던 유용한 정보나 그들 사회의 문화적 규범 등이 더해지며 복잡해지고 변형되었지요. 그렇게, 단순하던 신앙은 본격적인 종교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탄생한 종교는 집단의 사회적 불만을 해소하고 체제의 안정성에 상당한 기여를 했습니다. 법만으로는 강제할 수 없는 개인의 도덕과 양심을 유지시켜 그것으로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는 복지의 역할도 겸했지요. 그러나, 물론 좋은 면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종교적 분쟁은 인류 역사에서 수없이 많은 희생자를 만들어냈다.
그것을 단지 인류가 성숙해지는 과정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많은 죽음이었다. 십자군 전쟁 같은 커다란 싸움에서부터 중세의 무이성적인 마녀사냥과 현대까지 발생했던 맹목적인 테러들까지, 사례를 들자면 끝이 없다.
“좋은 면에서든 나쁜 면에서든 종교는 인류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삶에 깊이 개입되어 때로는 공기처럼 당연합니다. 바로 그게, 잘못된 신의 개념이 만연해진 원인입니다.”
다른 종교의 신보다 더 뛰어난.
자신의 믿음이 틀릴 리 없는 완벽한.
무조건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절대적인.
그렇게 신은 인류의 머릿속에서 전능해졌다.
“그러나 전능함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존의 전능한 신의 개념은 허구, 이를 확실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수호교를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그것이 수호교 입단의 시작이다.
“우리는 믿음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특별한 대가를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베풀고 보여줄 뿐입니다. 또한 신께서 우리에게 수호교라는 이름을 내려주신 이유는, 자신의 삶과 운명을 스스로 수호할 힘과 의지를 갖추길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문하랑의 말은 담담하며 설득력이 있어 사람을 매료시키는 구석이 있었다.
대화의 내용에 강요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두 외교관의 수준이 낮지도 않았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점점 더 혹하기 시작했다.
세현은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여태 열심히 식사를 즐기던 혜진과 눈이 마주치곤 짧게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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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외교사절단은 일주일 정도 더 류한에 머물다가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냥 기약없이 돌아간 것이 아니었다. 세현의 허락을 받아 한두 달 정도 후 대사관 건설 준비를 마치고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에 발맞춰 류한에서도 각각 미국과 이다니자카스로 파견할 외교대사를 뽑기 시작했다.
일주일 간 그들은 종교, 문화, 군사, 경제, 기술, 마법, 다양한 분야에서 류한의 뛰어난 면모를 가감없이 목격하고 돌아갔다. 감춰야 할 것을 감추고도 보여줄 게 많았기에 그것만으로도 외교사절단을 정신없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들은 큰 수확을 거두고 돌아갔다. 애초에 목적하던 정보의 수집은 물론 류한의 발전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것 역시 중요한 일이다. 가는 길에 들려준 선물들도 무시할 수 없다.
그들만 큰 수확을 거둔 것이 아니다. 류한 역시 그들을 통해 커다란 수확을 거뒀다.
사절단의 대표인 클리포드와 니콜라이는 물론, 사절단 인원 대부분이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수호교에 깊이 심취했다. 두 국가로 수호교가 퍼져나갈 발판이 마련된 셈이다.
당연한 일이었다.
기존의 신과는 개념부터가 다르지만 세현은 진짜 신이었고 그만한 권능이 있다. 그저 믿기만 해도 신체능력이 올라가는데 믿음을 갖지 않기가 더 어렵다.
한 번 믿음을 갖게 되면 자연스레 수호교의 교리에도 관심이 가기 마련인데, 수호교의 교리는 세현이 인정할 정도로 맞는 말과 도움이 되는 말로 가득했다. 그를 무력을 증시하는 검신(劍神)이라 명시하면서도 인류에게 필요한 사랑과 도덕 같은 가치에 소홀하지 않았다.
수호교는 처음 받아들이기가 어렵지 한 번 믿기 시작하면 믿음을 잃으려야 잃을 수가 없는 종교다. 또한 혼자만 믿기에는 너무나 유용한 종교이기도 하다.
거부할 수 없는 흐름으로, 돌아간 두 외교사절단으로부터 미국과 이다니자카스에 수호교가 퍼지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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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6월이라니 시간 진짜 빠르네요.
아침에 올리려고 거진 8시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2시에 가깝다는 것도 경악스럽습니다. -_-a
부디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추천 꾹! 부탁드립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