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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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들
어두운 상가 건물 안, 한 무리의 사람들이 최대한 소리를 조심하며 빵조각을 입으로 우겨넣고 있다. 이미 유통기한이 지난 빵이었지만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런 사소한 문제를 따지기엔 바뀌어버린 세상이 너무 가혹하다.
총 열한 명의 사람들이었다. 쇠파이프 같은 무기를 쥔 이가 넷, 각각 석궁과 사냥용 엽총을 가진 둘, 젊은 여자가 둘, 이제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소년과 소녀, 마지막 흰머리 가득한 노인 하나.
“빨리 먹어.”
리더인 엽총 사내의 속삭임에 다른 이들의 행동이 빨라졌다. 그러다 여자 한 명이 목이 막혔는지 조용히 켁켁거렸다.
다른 이들이 몸을 경직시키며 일제히 그녀를 노려본다.
“죄, 죄송……”
“조용히 안 해?”
사내가 나직하게 으르렁거렸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최대한 소리를 안 내려 노력했으나, 몇 번의 켁켁거림과 기침을 더 해야만 했다. 사람들의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이곳까지 오며 죽은 사람이 무려 둘이다.
영화나 만화 속 상황이 아니었다. 사람이 벌레처럼 무자비하게 죽어나가는 진짜 현실, 이런 상황에 그깟 빵 하나 먹다가 켁켁거려 소음을 내는 여자를 곱게 볼 수는 없었다.
다른 남자들이 잔뜩 긴장하여 사방을 살폈으나, 다행히 어둠으로 가득한 상가 건물 속에서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형님.”
쇠뇌를 들고 있던 사내가 엽총을 든 사내에게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왜?”
“저 여자애, 어떻습니까?”
엽총을 든 사내의 눈매가 가늘어지며 소녀 쪽을 향했다.
많이 쳐줘야 고등학생이나 됐을까 싶은 소녀, 처음부터 그들과 함께하던 일행은 아니다. 서로 남매로 추정되는 소년과 함께 움직이던 것을 몇 시간 전 우연히 만나 동행을 요청했다.
싫다는 것을 갖가지 이유를 만들어내며 간신히 붙들었다. 사실은 여차하면 좀비의 미끼로 던져버릴 목적이다. 여태까지 그들이 생존해온 방식에 따라서.
누군가를 만나면 어떻게든 동행하고, 위기가 닥치면 그들을 가장 먼저 희생양으로 삼는다. 만약 여자라면 되도록 오래 데리고 다니면서 겸사겸사 성욕도 해소한다.
이 엿 같은 세상에서 그나마 여자라도 마음껏 따먹어야 스트레스가 풀릴 테니까. 그짓 말고는 인생의 낙을 찾을 수가 없다.
“난 별로야.”
하지만 소녀는 엽총 사내의 취향이 아니었다. 그가 손을 내젓자, 쇠뇌 사내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상태창.”
쇠뇌 사내를 물린 엽총 사내는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나직하게 말했자, 그에게만 보이는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일행 중 유이하게 쇠내 사내와 함께 각성자인 그는 떠오른 상태창의 능력치들을 살피며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당장은 어떻게든 버티고 있지만 이대로 계속 지낼 수는 없다.
지금 눈앞에 나타난 이 상태창, 정확히는 이런 초현실적인 힘을 부여한 에레도스라는 시스템만이 그가 믿는 유일한 희망이다.
안전에 대한 욕구라는 건 꽤나 생소한 욕구였다. 특히 대한민국처럼 전쟁도, 테러도, 대규모 갱단 같은 것도 없는 평화로운 나라에 살던 사람에겐 더더욱.
지금 그가 가장 강렬하게 느끼고 있는 것은 성욕도, 식욕도, 수면욕도 아닌 바로 그 안전에 대한 욕구였다.
위험하지 않은 장소로 가고 싶다. 밤이 오면 걱정없이 푹 잠들고 싶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놓고 아무생각 없이 쉬고 싶다. 햇빛을 쬐면서 여유롭게 바깥 산책도 해보고 싶고, 이전처럼 귀에 이어폰을 꼽고 거리를 걸으며 예쁜 여자들 구경이나 좀 해보고 싶다.
그 모든 것이 지금은 불가능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극한 상황은 평소 불법적인 조직에서 생활하며 적당한 긴장감과 함께 살아가던 그에게도 굉장한 스트레스를 유발했다.
좀비 영화를 볼 때는 그저 스릴있고 즐겁기만 했는데, 진짜로 좀비들에게서 숨어다니는 지금은 조금도 웃을 수 없었다.
잡히면 죽는다.
아니, 들키기만 해도 누군가는 꼭 죽는다.
재수 없으면 전부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회백색 눈동자를 번들거리며 핏줄이 불거진 몸으로 괴성과 함께 무작정 달려드는 그것들은, 멀리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로 끔찍했다.
만약 이 플레이어 각성이라는 이 요상한 힘을 얻지 못했다면 이미 예전에 죽어 나자빠졌을 것이다. 조직에서 평소 형님 동생하던 가장 친한 똘마니 하나를 데리고 도망치다가, 다급한 와중에 챙긴 엽총으로 좀비들을 사살한 행동이 이렇게 됐다.
그는 각성하기 무섭게 곧장 사격수(射擊手)로 전직했다. 그의 똘마니 동생은 평소 스포츠로 즐기며 항상 차 트렁크에 넣고 다니던 무기, 쇠뇌를 사용할 수 있는 궁수(弓手)로 전직했다.
그것으로 그는 ‘총알이 없어도 사격을 가능하게 해주는’ 액티브 스킬을, 마찬가지로 똘마니 동생도 ‘화살이 없어도 사격이 가능하게 해주는’ 액티브 스킬을 습득했다.
투사체의 속도가 눈으로 보일 정도로 느려진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그래도 사기적인 초능력이었다. 지금은 평상시와 달리 탄약과 화살의 보급이 불가능하니까.
물론 그것도 무한정으로 사용할 수는 없다. 한 번 사격을 할 때마다 마력이 소모되기 때문인데, 현재 그와 똘마니 동생은 레벨 업으로 얻은 모든 추가 능력치를 마법력에 투자한 상태였다.
“쿨럭!”
그때, 커다란 기침 소리가 터졌다. 빵을 먹고 기침을 하던 여자였다. 꾹 참던 것이 터지기라도 한 듯하다.
모두가 깜짝 놀라 그녀를 쳐다보는 순간, 어둠 건너편에서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씨발……!”
쇠뇌 사내가 나지막하게 욕설을 내뱉으며 내려놨던 무기를 집어들었다. 다른 사내들 역시 긴장과 함께 각자의 무기를 꼬나쥐었다.
몇 사내는 죽일 듯이 여자를 노려보다가 다가오는 인기척에 얼른 고개를 돌려 그곳을 경계했다.
“크륵, 그르륵.”
가래가 끓는 듯한 이상한 소리, 동시에 발을 땅에 질질 끄는 듯한 소리도 들려왔다.
좀비가 확실하다. 사냥감을 발견하지 못한 좀비가 내는 특유의 거북한 소리는 이미 질리도록 들어서 못알아챌 수가 없다.
“좆 같은 년, 씨발 년…! 나중에 내가 기필코 죽여버린다……!”
쇠뇌를 든 사내는 눈이 벌개친 채 욕설을 중얼거리며 어둠 속을 겨냥했다. 그리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렸다.
좀비는 사람을 발견하면 일단 괴성부터 내지르고 본다. 하지만 목을 손상시키면 그걸 막을 수 있다. 근처의 좀비들이 몰려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놈이 괴성을 내지르기 전에, 이쪽을 발견하기 전에 먼저 한 방 갈겨 목을 맞춰야 한다. 성대 부근을 찢어야만 했다. 그건 유일한 무소음 원거리 무기를 가진 쇠뇌 사내의 몫이었다.
부담감이 어깨를 짓누른다.
실패할 확률이 높다. 여태껏 성공했던 적이 거의 없기도 하다. 그럼에도 성공해야만 했다. 안 그러면 누군가는 죽으니까.
다른 놈이 죽는 건 몰라도 그 자신이 죽는 건 안 된다.
사정없이 떨리는 손과 거칠어지는 호흡을 애써 가다듬으며 그는 어둠을 노려봤다. 그리고 천천히 방아쇠를 당기다가, 마침내 희끄무리한 신형이 보이기 무섭게 격발했다.
퉁!
나직한 소리와 함께 청색빛 잔상을 남기며 쏘아진 화살, 마력으로 이루어진 그것은 좀비의 목 언저리를 한순간에 파고들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성대를 훼손시키진 못했다.
“끼아…! 까아아아!!”
공격을 당한 좀비가 울부짖는다. 몇 초 후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괴성이 연달아 터지기 시작했다. 그들을 발견한 날카로운 여성 좀비의 소리가 골을 울리며 전신의 털을 모조리 곤두서게 만들었다.
“뛰어!”
엽총 사내는 그렇게 외치며 달려드는 좀비에게 엽총을 겨눴다.
투쾅!
일반적인 엽총과는 조금 다른 소리, 미약한 빛이 번쩍이며 달려들던 좀비의 머리통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다. 그는 거기서 안심하지 않고 좀비가 걸레짝처럼 찢겨질 정도로 총을 난사했다.
이 생명력 질긴 것들은 머리통 날리는 것 정도로는 절대 죽지 않는다.
네다섯 발의 총성 후 좀비의 상체가 완전히 너덜너덜해져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게 죽었는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다. 일행이 곧장 달렸다.
이곳에 들어온 루트, 바로 옥상을 향해서였다.
“캬아아아아아!”
그 뒤를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좀비들이 미친듯이 쫓아오기 시작했다.
가장 뒤편에서 달리던 쇠뇌 사내가 주변의 사물들을 이리저리 쓰러트리며 시간을 벌려고 했으나, 좀비들은 그것에 걸려 나뒹굴면서도 몸을 사리지 않고 곧장 일어나 전력질주를 했다.
“으아아아아!”
좀비들의 달리기 속도는 굉장히 빨랐다.
이대로는 잡힌다.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까지 남은 거리는 대략 이십여 미터, 허나 그곳에 도착한다고 좀비들이 쫓아오지 않는 것도 아니다.
살고 싶다.
그 원초적 욕망에 따라, 그의 손이 앞에서 죽을 힘을 다해 달리던 노인의 머리카락을 잡아챘다. 그리고 무자비하게 잡아당겼다.
강한 악력에 머리통이 당겨진 노인이 순간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진다. 그렇게 나뒹구는 노인을 가볍게 뛰어 넘는 쇠뇌 사내, 그의 눈이 넘어져 땅을 구르는 노인의 눈과 순간 마주쳤다.
그는 경악한 표정이었다.
크게 치떠진 눈, 한없이 축소되는 동공, 경악과 원망 그리고 증오가 뒤섞인 눈빛, 마지막으로 그 위를 덮어가는 좀비의 지저분한 손.
이번에 자신이 희생양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아, 안 돼!”
“캬가아아악!!”
노인의 절규와 함께 좀비들이 그 노인에게 달려든다. 뒤편에서 들리는 비명소리가 섬뜩했다.
“허억! 허억! 허억!”
쇠뇌 사내는 정신없이 달렸다. 죄책감 같은 것은 없다. 한두 번 해본 것도 아니고 단지 살아남았다는 환희만이 가슴을 꽉 채웠다.
그런 탓에 앞쪽에 있던 사람이 엉거주춤 뻗은 손을 거두는 장면을 미처 보지 못했다.
이들과 잠깐 동행하게 되었던 소년은 이를 악물고 다시 몸 돌려 달렸다.
안 그래도 사람을 믿을 수 없는 시국, 어떤 성향을 가졌고 무슨 의도로 동행을 요청했는지 모르는 이들이었다. 말투나 눈빛 등의 사소한 행동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썩 좋지 못한 편이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노인이 희생되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이 위기만 넘긴다면 반드시 떨어져야 한다.
노인을 제물로 목숨을 건진 쇠뇌 사내가 마지막으로 계단의 비상 출입구를 통과했을 때, 참을성 있게 기다리던 엽총 사내가 곧장 문을 닫아 잠궜다.
“캬아악!”
허나 그 노력이 무색하게도 계단 아래쪽에서 또 다른 좀비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엽총 사내는 그것들을 향해 총을 난사하며 패닉에 빠진 다른 이들에게 소리쳤다.
“길 막지 말고 쳐 올라가, 이 개새끼들아!”
정신을 차린 다른 이들이 허둥지둥 옥상으로 뛴다. 엽총 사내도 대강 좀비들의 기세만 늦춰놓은 후 곧장 계단을 달려 올랐다.
타이밍 좋게 잠궈놨던 문이 거세게 흔들리더니 거의 반파되다시피 하며 벌컥 열렸다.
탕! 탕타앙!
제대로 겨누지도 않고 뒤를 향해 닥치는 대로 엽총을 연사하며 계속해서 달린다. 이제 남은 마력도 거의 바닥, 조금만 더 시간을 끌면 정말로 죽을 판이다.
다행스럽게도 총에 맞아 쓰러진 좀비들이 장애물 역할을 해주며 시간을 벌었다. 딱 엽총 사내가 옥상으로 나와 문을 잠글 수 있을 정도로.
아슬아슬했다.
“씨, 씨발… 사, 살았다!”
쾅! 쾅!
하지만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흔들리는 문, 딱 봐도 오래 버티지 못할 듯하다.
이미 다른 이들은 반대편 건물의 옥상 난간에 걸쳐놓은 철제 사다리를 건너는 중이었다. 이곳으로 오기 위해 임시로 만든 간이 다리인 셈이다. 엽총 사내도 얼른 그 대열에 합류하려 했다.
대략 5미터 정도의 거리, 그 사이에 걸쳐진 철제 사다리를 사람들이 두 팔을 벌리고 위태롭게 균형을 잡으며 건너간다.
그런데 이번에도 빵을 먹다 기침을 했던 여자가 문제였다.
“으으으……!”
“야 이 미친년아! 두 발로 안 걸어?!”
엽총 사내가 고함쳤다.
허나 여자는 떨리는 다리 때문인지 다른 이들처럼 서서 빠르게 건너가지 못하고 엎드린 채로 엉금엉금 기었다.
가장 뒤에 있던 그 여자가 다리를 중간쯤 건넜을 때, 마침내 좀비들을 막아주던 옥상의 문이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떨어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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