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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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대전
아페다가 마법으로 자신의 수하에게 통신을 시도했다.
세현은 원한다면 가로막을 수 있었으나 놔두었다. 몇 분 걸리지 않아, 공간을 일그러트리는 포탈과 함께 안에서 웬 여성체 용인족 하나가 튀어나왔다.
– 이, 이게 대체…! –
군주의 심부름을 받아 도달했던 여자는, 아마 마침내 자신의 군주가 위협적이던 침입자를 격퇴한 줄로만 알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눈앞에 보이는 광경이 아무리 봐도 그녀가 상상하는 쪽이 아니었으니 당황한 듯했다.
복부를 관통한 검과 그 검을 잡은 낯선 침입자, 상황을 파악하기에는 충분하다.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주문을 끌어내려던 그때 아페다의 음성이 들린다.
– 그만. –
– 하, 하오나…… –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던 말은 엄중하게 쳐다보는 용군주의 눈빛에 사그라졌다.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미약하게 떨리는 두 손으로 가져온 물건을 내밀어 건넸다.
– 돌아가서 기다려라. 그리고 명하건대, 아무것도 하지 마라. –
이 상황을 다른 누군가에게 알리거나 그를 돕겠답시고 다른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지 말라는 명령이었다. 애절하게까지 느껴지는 눈이 용군주에게 향했으나 아페다는 말을 번복하지 않았다.
여성 용인족이 다시 포탈을 열고 사라졌다. 그것이 닫혀감과 함께 아페다가 세현에게 말했다.
– 내가 든 것이 그것이다. –
용군주의 손에 들렸던 물건, 손바닥만한 타원형의 금속판이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세현에게 잡혔다.
거울처럼 사방 모든 것을 반사하며 매끄럽다가도 보는 각도에 따라 수없이 다양한 검은빛으로 물결치기도 하는, 진짜가 아닌 마치 어설픈 컴퓨터 그래픽으로 합성해놓은 듯한 기묘한 느낌의 물건이다.
[신뢰의 현신(유일함): 절대 어길 수 없는 계약을 중재하는 집행자를 소환한다. 오로지 평화를 목적한 계약만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시작됐던 여덟 지배자들의 싸움은 헤아릴 수 없는 세월에 걸쳐 수많은 세계를 불태웠다. 그들은 마침내 자신들이 살아갈 마지막 터전조차 파괴당할 위기에 처했고, 그렇게 모두의 합의 아래 그들 중 누구도 어길 수 없는 계약을 맺기 위한 신적인 집행자를 창조해냈다. – ]
“신적인 집행자?”
– 나도 사용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아이템의 설명대로라면 가능하겠지. –
잠깐 아페다를 쳐다본 세현이 다시 손에 든 기묘한 물건을 살폈다.
신적인 집행자, 그것을 창조해냈다는 정체불명의 여덟 지배자. 잠깐이지만 감상에 잠긴다.
에레도스는 어디까지 펼쳐져 있고 얼마나 많은 세계와 얼마나 강력한 존재들을 품고 있을까. 거기에서 세현 자신의 힘은 어느 정도일까, 그가 알고 있는 다른 신들인 천신과 마신은 어느 정도일까.
멀리 떨어진 우주에서 봤을 때 지구는 하나의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하다. 은하계를 벗어나면 다른 수없이 많은 별들에 묻혀 제대로 보이지조차 않는.
심지어 그 은하마저도, 다른 수십만 개 이상의 은하를 포함한 라니아케아 초은하단에서 보면 점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 작은 티끌에 불과함이다.
– 세상이 참으로 넓지. –
그 모든 속내를 읽어내기라도 한 듯 용군주가 그리 말해왔다. 세현은 대답 대신 손에 든 물건을 사용하기 위해 슬쩍 마력을 흘려보냈다.
기대를 배반하지 않고 물건이 작동했다.
원판이 젤리처럼 흐물흐물 흘러내려 세현의 손을 벗어나더니, 이내 그들의 앞에서 모여들어 작달막한 형상을 이뤘다.
나비 같기도 하고 새 같기도 한 작은 형체, 상당히 이질적이지만 보기 불쾌하지 않고 오히려 귀여운 쪽이었다. 몸 전체가 이질적으로 빛난다는 것만 제외하면.
[서로 어떤 계약을 맺길 원하는가?]음성으로 이뤄진 언어가 아닌, 아무런 어조나 뉘앙스 없이 그 의미가 직접 뇌리로 꽂히는, 분명히 마법이라 불러야 할 현상이 벌어진다. 아페다는 당황하지 않고 곧장 대답했다.
– 내 항복을 상대에게 신뢰할 수 있게 만들어 이 싸움을 멈추는 계약을 원한다. –
[내용은 무엇인가?]
– 내 안위를 해하지 않는 한에서 지속적으로 상대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대가로 상대는 더 이상의 적대적 행위를 멈추는 계약. 세부적인 사항의 정립이 필요한가? –
[계약의 관리와 중재는 나에 의해 이뤄질 것이며, 서로가 계약에 충실하지 않거나 속임수를 시도할 경우 상응하는 조치가 있을 것이다. 또한 계약은 서로의 동의 아래 언제든지 파기할 수 있다. 동의하는가?]
아페다는 곧장 동의한다고 대답했고, 세현 역시 약간의 뜸을 들인 후 동의의 의사를 내비쳤다.
“그래.”
[계약은 맺어졌다.]투둑-
무언가 작게 두들기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보이지도, 느낄 수도 없으나 역설적으로 확연히 알 수 있는 어떠한 연결이 아페다와 세현 사이에 생겨났다. 그것을 관장하는 이의 존재 역시 희미하지만 충분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제 몫을 다한 아이템이 다시 원래의 모습을 되찾으며 세현의 손아귀로 돌아왔다.
“이건 내가 보관하지.”
– 원하는 대로. –
“안위를 해하지 않는 선에서, 라는 조건을 내가 받아들인 이유가 뭘 것 같나?”
사실상 아페다는 지금 목숨을 구걸하며 항복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안위를 해하지 않는 한에서’ 라는 조건을 받아들인 것은 세현이 상당히 양보했다고 볼 수 있었다. 안위라는 표현을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지 확실하니까.
용군주는 단순히 자신의 목숨만이 아닌, 자신의 지위를 포함한 일상까지 보장받으려 한 것이다. 그리고 세현이 그것을 가만 두고 본 이유는 명확했다.
– 그러고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거겠지. 동시에 내 적극적인 협조가 있을 때 더 좋은 것이겠고. 내가 가진 지식이나 기술을 원한다면, 성지의 비밀에 대한 것을 제외하곤 얼마든지 내어줄 수 있다. –
“설명할 필요가 없어서 좋군.”
세현이 용군주의 항복 선언을 들었을 때, 무엇이든 주겠다는 말을 들으며 가장 먼저 떠올린 건 보물이나 아이템 따위가 아니었다.
용군주가 가진 지식과 지혜, 그리고 이 발전된 성지를 이뤄낸 기술!
비록 모든 것을 알 수 없을지라도 여태껏 홀로 연구에 고군분투해온 레야가 자문을 구할 수 있는 정도만 된다면 류한의 발전은 지금보다 몇 배, 아니, 수십 배 이상 가속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그 어떤 보물이나 아이템 보다 중요하고 대단한 것일 수밖에.
그를 얻으려면 용군주의 안위 정도는 얼마든지 보장해줄 수 있었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무는 법이고 제 아무리 철저한 계약이라도 어딘가 빈틈은 있는 법, 아페다의 말마따나 이왕이면 자발적 협조를 이끌어내는 편이 서로에게 편하고 좋은 길이 아니겠는가.
애초에 위협을 제거한다는 당초의 목적은 달성했다. 용군주에게서 얻어낼 수 있는 것들은 부산물에 불과하다. 그것에 너무 집착해서 당초의 목적인 ‘위협 제거’라는 목적에 누를 끼친다면 본말전도다.
물론 그렇다고 지식과 지혜 같은 것만 취하며 다른 것들을 포기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우선 네가 가진 물건들을 봐야겠는데. 군주 정도라면 개인적으로 가진 창고나 금고 같은 것들이 많겠지?”
– 좋다. –
이것은 서로의 생존을 다투던 전쟁에서 이긴 승자가 요구하는, 항복한 자로서 자신의 목숨 대신 내어주기로 한 계약의 이행이다. 아페다는 다른 반감을 내보이지 않았다. 단지 요구했을 뿐이다.
– 알았으니 이동하기 전에 칼부터 치워주는 건 어떤가? 계속 찔려 있으려니 상당히 고통스럽군. –
@
콰광!
폭음이 터졌다. 사람의 비명과 악다구니 가득한 전장, 이번이 몇 번째일지 모르게 칼을 맞부딪치며 서로를 죽이려 드는 광기가 소용돌이치는 전쟁터에서 가장 극심하게 혼란하고 격렬한 전장이 있었다.
바로 서영환과 정현욱이 핵심 정예들의 지원을 받으며 켈데브렘을 상대하는 곳이었다. 항상 힘든 일이었지만 이제까지와 다른 점이라면 켈데브렘이 이다니자카스 진영으로 깊게 파고들지 않고 전선의 중앙에서 위력을 투사하고 있었기에, 그를 상대하는 서영환과 정현욱도 그곳으로 이동해야만 했다는 점이었다.
전쟁터에서 필연적으로 가장 위험하고 혼란할 수밖에 없는 곳 최전선, 그곳에 가장 뛰어난 전력들이 모여 부딪히니 그 치열함은 가히 설명할 수 없을 수준이다. 양측 지휘부 모두가 이곳의 싸움의 결과가 전쟁의 향방을 가를 것임을 알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직접 맞부딪히며 싸우는 것은 소수였으나 그들이 싸울 공간을 마련해주고 보다 확실하며 큰 지원을 해주기 위한 그 주변의 주도권 싸움은 어마어마한 스케일이었다.
의도한 움직임과 의도하지 않은 움직임 모두를 더하여, 명백하게 이 전쟁은 켈데브렘과 서영환 그리고 정현욱이 자리한 작은 전장을 중심으로 회오리치듯 움직이는 중이었다.
켈데브렘의 대검이 금빛 선으로 화해 떨어지고 서영환의 검이 화산처럼 불꽃을 폭발시키며 맞섰다. 밀려나는 그를 추격하는 켈데브렘을 정현욱의 검이 푸른 벼락처럼 날아들어 제지하면, 다시 유려하게 움직인 대검이 그를 막아서고 틈을 노려 달려드는 서영환에게는 다른 손으로 펼친 마법이 쏘아졌다.
쾅!
마법으로 정현욱을 떨궈내며 폭음과 함께 맞부딪힌 두 검이 잠시간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압도적으로 불리한 체구에도 불구, 그것을 기교로서 어떻게든 커버하며 서영환이 으르렁거리듯 묻는다.
“내가 모를 거라 생각지 마라. 왜 제대로 싸우지 않지? 대체 무슨 생각이냐!”
전투의 흥분과 그 격렬함으로 잔뜩 일그러진 서영환, 그와 상반되는 무표정으로 대답 없는 켈데브렘이 힘껏 그를 밀쳐낸다.
기교를 압도하는 위력에 속절없이 떨어지는 그에게 다시금 마법의 은빛 창들이 날아드는 것을 그 자신의 방어와 근처의 마법사들이 만든 보호막으로 상쇄하는 사이, 달려드는 정현욱을 다시 한 번 튕겨내버리며 거리를 벌린 켈데브렘이 불현듯 가슴팍으로 손을 가져갔다.
마법술식을 만들어내기 바쁘던 손이 딴짓을 하자 일순간 무력에 공백이 생긴다. 그에 쏟아지기 시작한 파상적인 공세에도 불구, 팬던트를 잡아 무언가를 세심하게 확인한 그의 얼굴에 처음으로 갈등하는 듯한 기색이 서렸다.
쩌엉-!
서영환과 정현욱이 양쪽에서 달려들었다. 불의 화신처럼 열기를 뿜어내며 폭발하듯 달려드는 서영환, 단순함을 넘어서는 힘과 속도로 벼락처럼 푸른빛을 뿌리며 쏘아져오는 정현욱.
그 둘을 대검과 마법으로 다소 힘겹게 막아내며 마침내 켈데브렘이 결심을 마쳤다.
– 더 이상 버틸 수도, 망설일 시간도 없구나. –
전투에 임해 처음으로 말을 내뱉은 그가 손으로 쥐고 있던 팬던트를 힘차게 끊어내며 바스라뜨렸다. 그리고 날아드는 공격들을 무시하며 그대로 땅을 박찼다.
폭탄이 터지는 듯한 굉음, 그와 함께 하늘로 쏘아지듯 날아오른 켈데브렘의 움직임에 그를 노리던 공격들 대다수가 빗나갔다. 그 와중 서영환은 불길을 채찍처럼 휘둘러 쏘아내고 정현욱은 푸른빛 비검강을 날려보냈으나, 그 순간 폭발하는 빛에 모든 것이 먹혀 사그라졌다.
전장의 모든 소란을 잠재워버리는 듯한 눈부신 빛.
흡사 또 하나의 태양이 떠오른 듯한 광원에 일순간 많은 이들의 시선이 본능적으로 하늘을 향했다.
켈데브렘의 전신에서 진한 은빛의 오오라가 뿜어져 흘렀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격렬히 타오르는 그 마력의 휘광 뒤에서 두 쌍의 커다란 빛의 날개가 펼쳐지고, 거인의 장검처럼 길어진 은빛을 휘감은 장검이 사선으로 공간을 베어내며 떨어졌다.
한 발 늦게 우레 같은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보다 빠르게 날아든 은빛의 대검, 채 반응하지 못한 서영환이 죽음을 예감한 그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인 정현욱이 그를 걷어차 날려버리며 그 자신도 무서운 속도로 바닥을 굴렀다.
그런 둘의 위쪽을 머리털 한 올 차이로 스쳐지나간 은빛 대검의 파동에 대지가 섬뜩한 소리를 내며 쪼개지고 경로상에 존재하던 사람들이 소리도 없이 절단나며 피를 쏟는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지옥의 악마나 내지를 법한 비명성과 함께 켈데브렘이 몸부림쳤다.
생겨나 넓게 펼쳐진 날개 끝에서 깨진 유리파편처럼 떨어지는 은빛의 가루들이 땅에 닿기도 전, 혜성처럼 꼬리를 남기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쏘아진 그가 난데없이 미토스 측 진영의 중앙에 틀어박혔다.
폭발하는 반구형 빛에 근처에 있던 자들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산산히 폭발하며 부스러진다. 떨어진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범위를 넓힌 그것의 뒤에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과 진동이 빛에 휘말리지 않은 이들조차 균형을 잡지 못하고 넘어져 뒹굴게 만든다. 터져나온 극렬한 마력의 폭풍이 캐스팅되던 모든 스킬과 주문들을 흩어버리며 피를 토하고 쓰러지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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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수는 분명 많은데 왜 오늘따라 분량이 적어 보이는지… 음……
내일 한 편 더 올리겠습니다. 켈데브렘이 대체 뭔 생각인지 전부 나올 겁니다.
부디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추천 한 번 꾹 부탁드립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