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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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 크으윽…! –
내리꽂히는 광선을 어떻게든 피하고 막으며 정신없이 달렸다. 체구에 걸맞지 않은 빠르고 기민한 몸놀림에 광선은 번번이 목표를 놓쳤으나, 단발성 공격이 아니었기에 그리 큰 의미는 없었다.
그저 잠시 공격에서 벗어났을 뿐, 결국에는 다시 그를 향해 쏘아지는 광선을 막아야 했다. 강력한 하나의 적을 상대하기 용이한 붉은빛 광선 공격은 마계의 천공성만이 가진 강점이다.
화악!
견디다 못한 켈데브렘이 네 번째 공간이동 마법을 사용했다. 전신이 구겨지며 강제로 좁은 차원의 틈을 통과하는 감각은 불쾌하다. 단순히 불쾌한 것을 넘어 마력의 소모도 만만찮고 무엇보다 육체에 부담이 크다.
멀쩡했다면 이 정도는 충분히 버텼을 것이다. 단순히 버티는 것을 넘어 보다 먼 거리로 이동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했고, 때문에 그는 공간이동 직후 빛무리가 스러지기 전 투명화를 시전하며 은신을 시도했다.
공간이동으로 나타난 자리에 어김없이 붉은빛 광선이 내리꽂혔다. 풀숲이 불타오르며 대지가 파헤쳐지고 그 충격파가 땅을 울리며 수십 미터까지 퍼져나간다.
하지만 은신한 켈데브렘은 이미 풀숲 사이에 몸을 숨기고 빠른 포복으로 자리를 벗어나고 있었다. 굴욕적인 일이었지만 이것으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
물론 그렇게 쉽게 벗어날 수 있는 적들이었으면 애초에 이 상황까지 몰릴 일도 없었다.
천공성 자체의 내장된 지도, 그것을 바탕으로 지시받으며 아래에서 추적해온 마법사들의 탐색마법이 흩뿌려지자 애써 포복한 것이 무색하게 금방 들통나버렸다.
생각해라.
생각해라.
계속 생각해라!
더 이상 도망칠 곳 없는 막다른 길에 몰린 상황에서, 영웅은 반대로 더욱 냉철해진 정신으로 계속해서 사방을 살폈다.
경험 없는 애송이가 아니다. 아무나 영웅이라 불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가 겪어온 고난의 세월만 따져도 지금 그를 노리는 인간들보다 오래 살아왔다.
다시 숲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적들이 이쪽으로 그를 몰이한 이상 동선을 애써 거슬러 올라간들 더욱 힘든 상황에 처할 확률이 높다. 또한 그가 그리 움직일 것을 예상치 못했을 리도 없다. 준비된 함정이 있을 터였다.
그렇다고 이 확 트인 지대에서 계속 달려가다간 체력이 바닥나서 죽게 될 것이다. 거의 지평선까지 뻗어있는 수풀지대를 보던 그가 문득, 그 끝부분에서 흐르는 넓은 폭의 강을 발견했다.
쾅!
대지를 박차고 뛰어나가며 날아든 탄환과 마법을 피하고 쏘아지는 광선에 오히려 몸을 들이민다. 동시에 대검에 마법을 덧씌우며 비스듬하게 갖다대자, 강한 압력이 느껴졌으나 공격이 빛에 반사된 레이저처럼 수평으로 꺾여 쏘아졌다.
꽈르릉-!
“아아악!”
“억!”
휘말린 인간들의 비명이 폭음 사이에 섞여 아스라히 들린다. 당황한 건지 하드샤의 지원사격이 잠시 멈칫한 순간 켈데브렘은 점프하며 다른 공격들을 피하고 허공을 두어 번 이상 박찼다. 만들어진 무형의 바람장막들이 발판이 되어 그의 신형을 새처럼 빠르게 이동시킨다.
쒸아아아악!
그러나 허공에 떠오른 그를 향해 예의 푸른빛 휩싸인 장검이 날아들었다.
대체 검을 몇 자루를 들고 다니는 건지, 켈데브렘의 입장에선 울분이 느껴질 지경이었지만 순식간에 코앞까지 들이닥친 검은 피할 수도 없었다.
꽈릉-!!
폭발이 터지며 거체가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아래에서 전력으로 질주해온 서영환이 제 몸보다 수십 배의 부피를 가진 홍염을 뿜어 검을 휘두르자, 흡사 용의 아가리처럼 화염이 벌어지며 그를 집어삼켰다.
주변 무성한 수풀들이 열기에 순식간에 재로 불타오르는 사이에서 홍염을 가르며 은빛 섬광다발이 튀어나왔다. 자신의 시야마저도 가리는 공격이었기에 서영환이 당황하며 물러서는 새 켈데브렘은 하늘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검은 번개를 주먹으로 파쇄하며 냅다 바닥을 굴렀다.
푹!
섬뜩한 소리를 내며 장검 한 자루가 방금까지 그가 있던 자리를 꿰뚫고 깊이 모를 구멍을 남긴다.
구르던 기세를 살려 곡예하듯 일어선 그가 땅을 내딛으며 한순간 공간을 접어 이동했다. 그를 뒤쫓아 쏘아지는 붉은빛 광선을 페이크 동작으로 지체시키며 이제 막 이뤄져가던 외곽의 포위망에 전력으로 달려들었다.
대검이 번쩍이며 허공이 쪼개지자 그에 걸쳐진 전투원 둘이 허리부터 절단났다.
용기를 내어 나섰던 이다니자카스의 전투원들, 그러나 명백하게 류한 전투원들보다 수준이 낮았기에 켈데브렘의 발걸음을 단 일 초도 붙잡을 수 없었다.
그렇게 마침내 돌파할 구멍을 마련했다 싶은 순간이었다. 내달리는 그의 전방에서 난데없이 붉은빛 포탈들이 생겨나더니 뼈로 이뤄진 용아병들 수십여 기와 푸른빛 귀화를 빛내는 죽음의 기사 둘이 나타난다.
– 막아라…! –
크르르르!
맹수처럼 으르렁거린 용아병들이 거대한 방패를 치켜들며 경로를 틀어막는다. 뒤편에선 전사와 마법사 용아병들이 제각각 공격을 준비하며 이를 드러냈다. 동시에 두 죽음의 기사들은 접근해오는 켈데브렘에게 제자리에서 흑마력으로 이뤄진 검기를 쏘아날렸다.
대검이 유려하게 움직이며 날아든 두 개의 비검기를 비스듬히 튕겨낸다. 그 절묘한 기예로 조금의 추진력도 죽이지 않은 채 그대로 진형을 뛰어넘으려는 찰나, 하늘에서 기다렸다는 듯 내리꽂히는 광선을 감지하고 반대로 몸을 낮춰 슬라이딩을 하며 자신의 발끝으로 마법을 쏘아냈다.
쾅!
폭발의 반동으로 강시처럼 일어서 튀어오른 켈데브렘이 허공에서 회전하며 그 힘을 고스란히 담아 대검을 내질렀다. 은빛이 번쩍이자 용아병들이 절단나고 그 위를 켈데브렘이 거침없이 통과한다. 아니, 통과하려 했다.
콱!
콰득!
– 크르르륵…! –
불사의 언데드들은 제 하반신이 없어지고 머리만 남은 상태에서도 짧은 순간을 포착하곤 영웅의 발을 붙잡고 갑옷에 이를 박아넣으며 매달렸다. 기회를 놓치지 않은 용아법 마법사들이 즉시 주문을 시전하자, 뼈가 순식간에 백열하더니 그대로 폭발하며 지독한 냉기를 흩뿌렸다.
회오리치는 냉기의 폭풍, 켈데브렘의 전신에 서리가 끼며 움직임이 둔해진다.
– 빌어먹을! –
반사적으로 욕설을 내뱉은 그는 어쩔 수 없이 무리를 감수하며 다시 공간이동을 사용했다.
번쩍이는 휘광을 타고 수십여 미터 전방에 나타났던 그가, 한순간 달려나가던 다리에 힘이 풀리며 그대로 넘어졌다. 반사적으로 앞구르기를 하며 속도를 줄이지 않고 일어섰으나, 그 순간 손목이 꺾이며 대검을 놓쳐버렸다.
제 아무리 영웅이라 해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땅거죽을 통째로 밀어내며 급정거한 그가 황급히 마법으로 대검을 끌어당기려는 순간, 먼저 뻗어온 검은빛 촉수가 한 발 먼저 대검을 낚아채간다.
– 아…! –
범인이 누구인지는 당연했다.
조금 우스꽝스럽게도 서승태가 자신이 잡아당긴 대검에 부딪혀 자빠지는 사이, 바짝 뒤를 따라온 정현욱이 무기를 잃은 켈데브렘에게 돌진하며 참격을 날렸다. 접근해서는 무한보에 청풍신법을 섞어 달라붙으니 벗어날 수가 없었다.
대검이 없어 상대하기 여간 어렵지 않았다. 힘들여 마법으로 떨어트리고 양손에 빛의 장검을 만들어내어 대적했으나 정현욱의 검과 부딪칠 때마다 크게 출렁이며 금방이라도 소멸할듯 깜빡였다.
“끝이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서영환까지 가세했다. 검에서 화염을 뿜어내어 물러서는 켈데브렘의 진로를 가로막는다. 다시 보호마법을 영창하며 그것을 힘겹게 뚫고 나왔지만, 여전히 달려드는 정현욱과 서영환을 떨쳐낸 것은 아니었다.
무기를 잃은 상황에 가장 골치아픈 적 둘이 달라붙었다. 거의 다 뚫었던 포위망은 재차 형성되어가는 중이었고 하늘에서는 천공성 하드샤가 기회만 노리며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헐레벌떡 간신히 도착한 다른 인간들이 서영환과 정현욱에게 각종 보조마법을 시전하고 반대로 켈데브렘에겐 방해를 가하기 직전이었다.
[라티마시여.]아무리 봐도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절체절명의 순간, 켈데브렘은 오히려 눈을 감았다.
그리고 세상의 소리가 사라졌다.
무언가의 맥동 소리가 모든 이들의 귓가를 거세게 울린 직후, 번쩍 뜨인 영웅의 눈에서 광채가 뿜어지며 빛의 헤일로가 폭발해 광활한 날개를 펼친다.
남색빛 눈동자가 그 중심에서부터 순식간에 진한 보랏빛으로 물들어가고 그를 중심으로 광휘가 폭발했다.
내지른 비명들은 그 폭발에 묻혀버렸다.
회심의 일격을 가하려던 정현욱과 서영환을 비롯해, 꽤 거리를 두고 떨어졌던 다른 전투원들마저 버티지 못하고 모조리 튕겨나가며 격렬히 대지를 굴렀다.
세상 모든 빛이 삼켜져 오직 영웅에게서만 뿜어지는 빛으로 사방이 백색과 금빛 광채로 번쩍이는 그곳에서, 하늘까지 닿을 듯한 거대한 빛의 검이 천천히 들어올려진다. 그 누구도 막지 못할 듯한 절대의 검!
– 내가…… 너희들은 데려가겠다! –
마침내.
살기를 포기한 영웅이 마지막 대마법을 스스로에게 시전해버렸다.
대마법을 엉뚱하게 사용하였으니 불과 몇 분이 지나면 그는 죽을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그가 죽으면 일족의 미래는 끝난다.
그렇게 될 바에야 이곳의 인간들이라도 데려간다면, 비록 타락하여 정신 차리지 못하는 동족들이라지만 일말의 가능성 정도는 남겨둘 수 있지 않겠는가.
– 드디어 나왔구나. –
절망이 직접 소리내는 듯한 목소리만 아니었다면 그는 틀림없이 목적했던 바를 이룰 수 있었을 터였다.
빛으로 가득했던 세계 한쪽에서 칠흑보다 더 검은 어둠이 뿜어진다. 세상에 홀로 오롯이 존재하는 것처럼 모든 것을 찍어누르던 켈데브렘의 존재감을 비집으며-
접하는 이들 전부를 비명지르게 만들 악(惡)이 강림해 포효했다.
[얼- 어- 붙- 어- 라- !!!] 쩌어어어어어엉!아크리치의 권능이 쏟아지며 세계가 검은 얼음에 뒤덮여간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여 미터, 그보다 더 빠른 사이에 수백여 미터, 마침내 정신을 차렸을 때는 킬로미터 단위의 수풀지대가 통째로 검은 얼음에 뒤덮인 채 극심한 사기와 냉기를 뿜어 곳곳에서 흉악스런 송곳을 세웠다.
그것은 그저 여파에 불과했다. 무엇이든 불살라 무(無)로 돌려버릴 만한 광휘를 뿜어내던 켈데브렘에게 지저의 대악마가 뻗어낸 듯한 거대한 검은 얼음의 손아귀가 덮쳐들어 그를 내리찍었다.
형용할 수 없는 굉음과 함께 번쩍이는 빛이 터지고 고리형 충격파가 한순간에 수백여 미터를 뻗어나갔다.
놀랍게도 그 충격파에서 보호받은 인간들이 어둠에 휘감겨 제멋대로 하늘로 집어던져지고, 그러면서도 여력이 남은 암흑의 해일이 사방에서 흉악한 이를 드러내며 빛을 물어뜯기 위해 달려들었다.
신화에나 나올 법한 격렬한 싸움, 그러나 하늘까지 닿을 듯하던 빛의 검은 채 몇 초도 버티지 못하고 어둠에 스러졌다. 광휘를 뿜어내던 영웅은 비명을 내지르며 거칠게 포박되어 하늘로 들어올려졌다.
세상이 어둠에 물든다.
그 중앙에서, 거대한 암흑으로 이뤄진 사신이 섬뜩한 보라색 눈동자를 불태우며 죽음을 내민다.
뻗어진 손아귀가 영웅의 몸을 그러쥐자 광휘가 발악하듯 분출하다 이내 부서져 소멸한다.
바로 그 어둠 사이에서 뛰쳐나온 아크리치가 빙의한 서승태가 영웅의 육체에 달라붙어 목덜미에 이를 박아넣고 힘껏 빨아들였다.
순식간에 말라 비틀어지는 거체와 반대로 서승태의 육신에서는 무시무시한 기운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둠에 물든 세계가 서서히 제 빛깔을 찾아가면서, 전투에 참여했던 모든 이들에게 마침내 끝을 알리는 메시지가 울렸다.
– 칭호 ‘잊혀진 영웅의 살해자’를 획득했습니다. –
– 상점에서 취급하는 품목이 늘어납니다. –
============================ 작품 후기 ============================
조금 있다가 퇴고 한 번 다시 해봐야겠습니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네요.
부디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추천 한 번 꾹! 부탁드립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