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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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理想)
“……했다는 거죠. 요컨대 빈부의 격차는 딱히 신자유주의나 자본주의 시스템의 결함 때문이라고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말씀드렸듯이, 세계 모든 세력들은 혁신을 통해 다른 이들의 자본을 빼앗으면서, 상대를 보다 가난하게 만들면서 부자가 되어왔습니다. 또한 이 혁신은 보통 획기적인 생산성의 증대나 불필요한 노동력의 감소, 그에 따른 노동비의 절감과 연관이 되어 있어요. 생산성의 증가를 인건비의 증가가 따라가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돈을 가진 자들이 다른 자들을 고용하여 부를 골고루 나눠주는 형태가 이상적이지만, 기술이 발전하며 점점 일자리는 줄어들고 부는 일부만이 분배되었다. 일자리가 보장되는 철밥통 직종이라고 치솟는 물가만큼 연봉이 오른 것도 아니다.
전체적으로 유르미아가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이야기들이었다. 그녀는 에레도스 사태 이후 태어났고 사람이었다면 아직 유치원도 졸업하지 못할 나이였으니까.
어렵다고 느끼면서도 간신히 맥을 짚어내는 정도였는데, 사실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하기 때문에, 세계의 주요 기업들을 살펴봤을 때, 큰 사이클에서 보면 주가는 단 한순간도 내려간 적이 없습니다. 전형적인 우상향 차트라고요. 주식을 해보셨던 분이면 월봉을 봤을 때 굴지의 대기업들, 삼성전자나 애플이나 구글 같은 기업의 주가가 거진 45도 가깝게 끊임없이 우상향했음을 알고 계실 겁니다.”
강연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건지, 아니면 흥미가 떨어진 건지 몇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서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렇게 나간 이들의 수는 여태까지 대략 스물 정도, 물론 강연자는 처음부터 그러했듯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돈을 빌려준 쪽이 돈을 빌려간 쪽보다 재산을 축적하는데 불리했다는 거죠. 대공황 당시에는 현금을 쥐고 있는 자들이 어마어마한 기회를 얻었습니다. 모든 실물자산들의 가치가 그야말로 폭락을 했거든요. 구매하기만 하면 오를 게 분명한 다양한 종류의 자산들이 사방에 넘쳐났어요. 그러나 세상이 안정기에 접어든 후에는 어땠습니까? 현금은 갈수록 가치가 떨어졌지요. 저축만 하면서 위험을 감수하지 않은 사람들은 치솟는 세계 물가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주식이든, 채권이든, 아니면 사업이든, 뭔가에 투자한 사람들만이 부를 얻었죠.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교훈이 있습니다. 세계경제가 커다란 위기를 맞이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무조건 어딘가에 투자를 해야만 세계의 성장과 발맞춰서 재산을 불릴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걸 정말로 사람들이 몰랐을까요? 몰라서 투자를 안 한 걸까요?”
그는 목이 타는 듯, 옆의 조그만 탁자 위에 올려진 물병을 들어 몇 모금 들이켰다. 그 사이 청중들의 집중도가 다시 올라갔다.
“투자해야만 돈을 벌 수 있다, 속된 말로 개나 소나 다 아는 사실이었습니다. 실제로도 많은 사람들이 투자를 했어요. 주식에 손 대보지 않은 직장인은 거의 없었을 겁니다. 조금만 생각을 해봐도, 이렇게 월급만 받아서는 목돈은 커녕 집 하나 제대로 구매하는 것도 어렵겠구나, 금방 감이 오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왜 그 사람들이 투자로 재산을 불리는데 실패했을까요? 여러분, 투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뭡니까? 우리가 투자를 하면서 가장 걱정해야 하는 게 뭐죠?”
유르미아조차 떠올릴 수 있는 답이다. 앞쪽에 앉았던 남자 하나가 조그맣게 손실, 이라고 대답하니 강연자가 그에게 시선을 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겁니다. 손실, 위험. 내 돈이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공포. 그게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이 투자를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미래를 알지 못하면 당장 눈앞에서 출렁이는 주가, 오르내리는 차트 봉 하나하나에 같이 웃고 울고, 아주 롤러코스터를 탑니다. 놀이동산을 따로 갈 필요가 없어요.”
나직한 웃음소리가 흘렀다. 표현이 우습기도 하고 나름대로 공감되는 내용이었던 모양이다.
“여러분 아십니까? 그 차트의 움직임 있지요. 분봉, 시간봉, 일봉, 주봉, 월봉…… 그거 대부분은 기계가 만듭니다. 거래를 하는 짜여진 알고리즘이 탑재된 컴퓨터들이, 일 초에 수백 번 이상 매매를 하면서 실시간으로 차트를 만들어가요. 그러면, 그 기계들의 주인은 누굴까요?”
어느 정도 주식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내용이었다.
“더 시티, 월스트리트, 다들 아시죠? 바로 거기 투자회사들이 주된 주인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주식만이 아니라 세계 대부분의 거래들을 쥐락펴락했지요. 그러면 이제 생각을 해볼게요. 아마 여러분들 중에서도 충분히 느끼신 분들 있을 겁니다. 주가는 과연 합리적인 이유에 의해서만 움직였을까요? 그 기계들은 대체 어떤 목적으로 하루에 수 만 번이 넘는 거래를 발생시키면서 차트를 그려냈을까요? 여러분들 영화 타짜 아십니까?”
타짜, 유르미아는 전혀 모르는 영화다. 그러나 이곳에 자리한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타짜의 주인공 모델이었던 실존인물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아마 에레도스 사태 때 돌아가셨을 거라 생각됩니다만…… 그때 당시 방송에 나와서 그 손기술을 보여주는데, 한 번 쉭 움직이면 그냥 화투패 너댓 개가 휙 돌변합니다. 마술이에요. 아마 지금 각성자분들이 봐도 놀랄 겁니다. 어쨌든 그 사람이 주식에 대해 뭐라고 말을 했냐하면, 개미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짜여진 도박판이라고 했어요.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 동의하는 말입니다.”
당하는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다. 자신의 손에 들린 패만을 갖고, 상대가 어떤 패를 들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처럼 광대짓을 한다.
“차트에 있어서 기술적 분석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걸 하는 사람들을 뭐 차티스트라고도 하는데, 그 사람들 중 많은 분들이 뉴스를 아에 거들떠도 안 봤어요. 그러면 뉴스를 안 보고 대체 뭘로 주가를 예측하고 분석하느냐, 기술적 분석이라는 게 대체 뭐냐, 주식투자에 있어서 공중누각 이론이라는 게 있습니다. 영어로는 castle in the air theory 라고 하죠. 공중누각은 근거나 토대가 없는 사물을 뜻하는 말입니다. 어떤 이론인지 감이 잡히시나요?”
주가는 실제적은 근거를 토대로 형성되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어떠한 기업의 실제 가치보다는 그 기업이 장래에 이러이러해서 큰 성공을 거둘 것이다, 라는 낭설로 수많은 투자자들이 호응하는 바로 그 현상이 중요하다는 이론이다.
흔히들 말하는 주식에는 스토리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 바로 그런 맥락이다.
“저도 차트를 많이 봤습니다. 저는 대학교 교수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였거든요. 주식도 하고 오일도 하고 달러도 하고 이것저것 많이 해봤습니다. 그리고 느낀 건, 사건이 터져야 할 지점에서 반드시 터진다는 거였어요. 기술적 분석으로, 추세선, 지지선, 엘리어트 파동, 피보나치 되돌림, 무슨무슨 패턴, 무슨무슨 수렴, 그런 일종의 지표들이 있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이것들은 아무 근거도 없이 그냥 차트에 선이나 그림 같은 거 찍찍 그려놓는 것에 불과해요. 그런데 이게 소름끼칠 정도로 잘 들어맞습니다. 떨어져야 할 시점에서 악재가 나오고 반등해야 할 시점에서 호재가 터져요. 이건 절대로, 절대로 우연의 일치가 아닙니다. 한두 번이면 몰라도 그렇게 말도 안 되게 잘 들어맞는 차트의 기록이 십 년이 넘어가면 그건 우연일 수가 없습니다. 누가봐도 의도적인 거죠. 결국 의도적으로 이 차트를 그려나가는 세력이 있다는 겁니다. 그게 누구인 것 같습니까?”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개미는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합니다. 반면 유명한 대형 투자회사나 그보다 더 뒤에 있는 권력자들은 어떨까요? 뉴스에서 어떤 주식이 막 좋다고 떠들고, 투자평론가들이 이건 망할 수가 없는 우량주라고 떠들고, 주가는 금방이라도 위로 쏠 것처럼 꿈틀꿈틀 요동치고, 개미들이 안 사고 버틸 수가 없습니다. 오르기 시작하면 그때서야 어? 진짜 오르네? 하면서 추격매수 하는 사람들도 엄청나죠.”
강연자의 손이 위쪽으로 움직이다, 이내 방향을 틀어 꺾이더니 아래로 향한다.
“그러다 아래로 고꾸라지는 겁니다. 이게 흔히들 말하는 작전인데, 개미들 돈 빨아먹으면서 자기들은 폭탄 떠넘기고 나오는 거죠. 당연히 불법이고 어중간한 세력에서 시도하면 바로 경제사범으로 잡혀갑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게 세계단위로 벌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누가 잡아가지요? 그 사람들을?”
침묵이 흘렀다.
“아무도 못 잡아가요. 아는 사람은 거의 없고, 알고 있는 사람은 힘이 없고, 알면서 힘도 있는 사람은 이미 한통속이에요. 금융시장은 가진 자들의 놀이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개미는 알 수 없는 미래를 저들 마음대로 그리면서, 미래를 모르기에 당할 수밖에 없는 함정들을 여러 개 파놓고 걸려들게 만드는 거죠. 이미 엄청난 부를 가졌으면서도 그렇게 박박 긁어갑니다. 그렇게 욕하던 석유 카르텔하고 다를 게 없어요. 다 도둑놈 새끼들입니다. 이건 제 뇌피셜이나 음모론이 아닙니다. 여러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왜 벌어졌는지 아십니까?”
2007년 경 미국의 초대형 모기지론 대부업체들이 파산하면서 시작된, 세계 금융시장 전체에 신용경색을 불러일으킨 연쇄적인 경제위기를 말함이다.
“도둑놈의 새끼들이 신용도 트리플 A급 금융상품이랍시고 팔아재낀 금융상품들이, 실상은 쓰레기 C등급 같은 것들 이것저것 죄다 섞어서 묶어놓은 건데, 그걸 제대로 평가해야 할 놈들은 돈 받아처먹고 나몰라라 하고 있고, 파는 새끼들은 자기들이 뭘 섞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복잡하게 만들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평범한 사람들한테 폭탄을 떠넘겼어요. 그래서 터진 겁니다. 그렇게 대다수가 거지가 되면서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됐어요. 그런데, 폭탄이 터졌을 때 막상 일 벌인 놈들은 아무도 심판을 안 받았습니다. 분명히 누군가 잘못을 저질렀는데, 정부가 나서서 국민들 세금으로 부도난 은행과 투자회사들을 도와줬을 뿐 제대로 처벌받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요.”
그렇게 세상이 흘러갔다.
“이제 통계를 한 번 말씀드릴까요. 에레도스 사태 직전에는, 상위 1%의 사람들이 세계 부의 약 50%를 독점했습니다. 상위 20%까지가 나머지 45%의 부를 독점하고, 남은 80%의 사람들이, 근 55억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찌꺼기 5%를 가져갔습니다. 부익부 빈익빈, 이렇게 보니 정말 엄청났지요? 그 사람들이 세계 절반에 달하는 부를 갖고 얼마나 더 큰 부를 창출할 수 있었을까요? 할 수 없는 일이 뭐가 있었을까요? 상상만해도 오싹하지 않습니까?”
은근한 충격을 받은 유르미아가 눈을 깜빡였다.
사실이라면 그녀가 생각하기에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위 80%가 점유한 부의 비율이 절반은 커녕 5%에 불과하다니 그런 게 대체 어떻게 가능했단 말인가?
“진짜 부자들이, 그 암중의 지배자들이 던져주는 찌꺼기를 먹고 생활하던 게 저와 여러분 같은 보통 사람들이었습니다. 흡사 사육당하는 가축들처럼, 이렇게 묘사하자면 너무 비관적인 것 같지만 아주 틀린 표현도 아니라는 거, 잘 아실 겁니다.”
이후 강연자는 다시 물병을 들이켰다.
“누구도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그걸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지 몰랐습니다. 설령 누군가 어떤 획기적인 방법을 찾아냈었다 한들, 그들이 제시하는 채찍과 당근을 버텨내진 못했을 겁니다. 인간의 욕심에는 끝이 없다는 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쯤에서 강연자는 조용한 강연장을 둘러보곤 빙긋 웃었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던가요. 이제 과거의 이야기는 내려놓고 현재의 이야기를 해보지요. 저는…… 에레도스 사태로 아내와 자식을 잃었습니다. 지금도 그날이 떠오르면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저랑 비슷하신 분들 많을 겁니다. 저는 아직도 이 에레도스 시스템을 곱게 보지 못합니다. 그냥, 어쩔 수 없으니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거죠. 한때는 나는 왜 살아있는 걸까,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렇게 아둥바둥 악착같이 살려 했을까, 삶에 회의감도 느꼈습니다. 최대한 고통스럽지 않고 빠르게 죽을 수 있는 자살법을 여럿 찾아보기도 했지요.”
그러다 어느 날 삶의 이유를 찾았다고, 그렇게 말한 강연자는 잠시 눈을 감고 그때를 회상하는 듯했다.
“한때는 끝장났다고 생각했던 세계가 다시 부활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질서들은 무너졌고 새로운 질서들이 만들어지고 있어요. 제가 느끼기에는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단순히 살아남는 것을 넘어서, 기본적인 의식주를 충족시키고, 삶의 이유를 찾는 여유를 갖게 됐어요. 아주 먼 과거에 인류의 문명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하던 때와 다를 게 없습니다. 아니, 한 가지 다른 게 있지요. 바로 우리가-.”
그는 자신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겼다.
“이제 막 눈을 뜨기 시작한 어리석은 원시인이 아니라, 제대로 된 교육을 받으며 자라난 문명인이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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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잭팟에 당첨되었네요!
축하해주시는 모든 분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__) 항상 노력하며 쓰고 있습니다.
부디 이번 화도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추천 한 번 꾹!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