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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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이동, 그 이유
세현이 말했다.
– 에레도스 사태 직전, 또는 초기의 나와 조우해서 바로 차원이동시키는 건 하책이다. 힘을 얻게 만들 수단으로 차원이동을 택한 건 괜찮지만 그걸 사용하는 방법이 너무 직선적이어선 곤란해. –
– 그러면? –
– 일단 이 물건의 성능부터 다시 짚어보지. 먼저, 이건 나를 과거로 보낼 수 있다. 평행세계 같은 것을 창조하는 개념으로 말이지. –
바로 그렇기에 마지막 희망이라 여기는 거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그렇게 쪼개진 세계가 계속 그 상태로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또 하나의 세계를 영구히 창조하는 것은 제아무리 대단한 아이템이어도 명백히 무리, 결국 다시 원래의 하나로 돌아가는 것이 순리인데, 이 물건은 그렇게 통합되는 과정에서 운명을 바꿀 수 있었다.
특정한 사건을 분기점으로 한 번 쪼개졌던 세계가 전부 같을 리 없으니, 둘 중에서 원하는 ‘역사의 흐름’을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가히 놀라운 아이템이다. 그러나 물론 그만큼의 뚜렷한 한계와 위험성이 존재했다.
일단 한계점은 크게 두 가지로, 첫째는 이 세계에서 에레도스의 영향력이 없을 때의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이다. 아이템 자체가 에레도스 시스템에 속한 것이기 때문인데, 따라서 아예 먼 과거로 되돌아가 모든 것을 처음부터 대비할 수 있는 분기점의 생성은 불가능하다.
둘째는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국한된 사건으로 분기점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었다. 요컨대 혜진이 죽는 순간으로 돌아가 직접 구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위협이 될 만한 다른 이들을 모조리 죽이는 등의 행동도 불가능하다. 사용자인 그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사건만이 분기점으로 인정된다.
사용하기 꽤 까다로운 조건들이었다.
게다가 이런 한계점들만 유의한다고 끝이 아니었다. 이것의 위험성은 바로, 세계가 통합되며 역사의 흐름을 선택하는 주체가 이곳의 나일 수도 있고 쪼개진 세계의 나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선택의 주체가 되고 싶다면 또 다른 나를 죽여야 한다. 그것은 또한 세계가 다시 하나로 합쳐지는 방아쇠 역할도 겸한다.
– 다음으로, 이걸 처음 사용해서 과거의 특정 분기점이 생성되면, 다시 변경할 수 없다. –
한 번 쪼개진 세계를 무슨 동영상 편집하듯 입맛대로 다시 붙였다가 쪼갰다가 할 수는 없다. 애초에 세계를 둘로 쪼갠다는 것부터가 어마어마한 일인데, 그딴 게 가능할 리 없었다.
– 마지막으로, 이것을 재사용하여 쪼개진 세계에 개입해 하나로 합칠 수 있지만, 그렇게 재사용하기까지 최소 3년의 충전시간이 필요하다. –
즉, 쪼개진 세계에 개입하여 운명을 뒤바꾸려면 그 세계에서도 최소 3년의 시간이 지난 시점부터 개입이 가능해진다는 뜻이다.
재사용 시점을 최대한으로 미룰 수 있는 기간은 10년까지인데, 그때까지 재사용하지 않으면 쪼개진 두 세계 중 무작위로 하나가 소멸되며 통합된다. 물론 어차피 그런 경우는 고려치 않고 있었기에 주목할 필요 없었다.
–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지? –
– 내가 목적달성을 위해 이걸 재사용했을 때, 그 세계의 나는 분기점 이후 최소 3년이 지난 상태의 나라는 거지. –
– 그게 왜? –
– 그 3년 사이 다른 차원을 겪고 돌아왔을 내가 얼마나 강해졌을지 알 수 없으니까. 놈이 만약 나보다 더 강하다면 모든 게 끝장이야. –
– 크크크큭. –
그거 네 자신을 너무 과신하는 거 아닌가? 고작 3년인데?
악마가 조소했지만 세현은 한없이 진지했다.
– 물론 모든 게 이상적으로 풀릴 수도 있겠지. 그 세계에서 3년이 지난 또 다른 내가, 성공적으로 누이를 살리고서도 이곳의 나보다 약한 힘을 가져서, 나는 수월하게 놈을 죽이고 원하는 역사의 흐름을 가져오게 되는. –
하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안 그래도 불확실성 투성이인 이 계획에서 매듭마저 불확실하게 놔둘 수는 없었다.
– 놈 좋은 일만 시켜줄 수는 없지. –
예정된 미래는 지금의 자신이었다.
누이를 잃고, 그것으로 삶의 목적도 희망도 잃고 미쳐가며 제 스스로 한때 누이와 함께 살아 숨쉬던 세계를 박살내는 괴물이 된 나.
그러나 쪼개진 세계의 미래는 다를 수 있다.
누이도 살아있고 모든 것이 원만하게 해결될 희망이 존재하는 세계일 수 있는데, 만약 그곳의 나에게 패배하게 된다면, 정말로 그놈에게 좋은 운명만 선물해주고 이곳의 나는 비참하게 소멸해버리는 것이었다.
– 물론 쪼개진 그 세계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이 먼저겠지만…… –
그것까진 어떻게 손 쓸 수 없다.
악마 파스토프가 말했듯,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쪼개진 세계의 내가 성공적으로 원하는 운명을 쟁취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일일이 설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저 잘 해내길 믿는 수밖에.
– 그러면, 수련이라도 해서 더 강해질 생각인가? 타차원까지 겪고 온 나에게 패배할 일 없도록? –
세현은 고개를 저었다.
– 방법이 있다. 약간의 편법 같은 수지만. –
– 편법이라? –
자칭 마법의 군주 파스토프가 큰 호기심을 내보였다.
– 일단, 이걸 처음 사용해서 돌아갈 과거의 시점을 에레도스 사태 발생 약 3년 후로 잡는다. –
– 응? 그때는…… –
– 그래, 내 누이가 죽은 직후지. 하지만 거기서 바로 ‘사건’을 발생시킨다는 게 아니다. –
– 호오? –
– 그때의 절망에 빠진 나를 설득하긴 쉽겠지. 놈의 협조를 받아, 놈을 내 마법으로 최대한 먼 과거로 날려버리겠다. 동시에 차원이동시키면서. –
– 뭐라고? –
– 너도 알다시피 나는 이미 나를 중심축으로 삼는 시간역행 마법을 만들었다. 문제는 이걸 시전하면 나 자신조차도 그 역행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건데, 역행한 시간의 모든 것을 잊어버리니 시간을 되돌렸어도 결국 똑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고, 심지어 내가 이 마법을 시전했었는지, 했다면 몇 번을 했었는지도 알 수 없게 되는 치명적인 결점이 있었지. –
거기서 세현은 잠시 말을 끊었다.
– 하지만 다른 세계의 나라면? 나는 나를 중심축으로만 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세계의 나는 타인이자 동시에 나 자신이니 충분히 가능하겠지. 물론, 모든 게 생각처럼 되진 않을 거다. 연구에 따르면 나는 아마 잡아당기는 고무줄 신세가 될 것이고, 이 아이템의 한계점 또한 내 발목을 잡을 테니, 가능한 부분은 아마 아슬아슬하게 에레도스 사태 발생 직전이 될 것 같다. 오차가 좀 있겠지만 그 정도는 허용범위 내야. –
– 허…! –
– 그렇게 되면, 이 아이템을 통한 사건의 분기점 생성은…… –
– 그 세계의 에레도스 사태 발생 직전이 되겠군! –
파스토프가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다.
– 놀라워! 이미 가진 자원을 활용하는 발상의 전환일 뿐이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 대단해! –
– 그리고 내가 이걸 두 번째로 사용해서 세계를 통합하려 할 때, 그 세계의 시간은 에레도스 사태 발생 이후 약 3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을 테고. –
– 그러면서도 원래와 다르게 네 누이는 죽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
– 또한 여기엔 더 대단한 이점이 하나 있지. 들어볼 텐가? –
– 물론! –
세현이 보기 드물게도 희미한 미소를 띄웠다.
– 그곳의 나는, 미래의 자신이 평행세계의 나에게 협조함에 따라 에레도스 사태 발생 직전으로 이동되고 거기서 차원이동을 당한다. 요컨대 과거의 차원이동의 원인이 미래에 있게 되는 거지. 내가 놈을 다시 만났을 때 이 인과를 사용하면, 놈을 강제로 차원이동했던 세계로 튕겨낼 수 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존재할 수 없는 법, 헌데 그때 그곳의 나는 아직 차원이동의 원인을 접하지 못한 상태일 테니까. –
파스토프가 입을 떡 벌렸다.
– 시간 역설! –
– 그래. 만약 놈이 내 예상보다도 월등히 강해진 최악의 상황이라 해도, 그렇게 일단 튕겨낸 후 만반의 준비를 하면 된다. 마법사는 준비하는 자, 놈은 내게 이길 수 없어. –
세현은 무의식중에 얼굴에 난 흉터를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 나는 이겨야만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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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현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무자비하게 그를 끌어당기는 의문의 검은 구체, 그는 신에 달한 힘으로도 이를 떨쳐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힘의 강약을 떠나 저것은 그가 알지 못할 무언가가 더 있다.
눈앞의 검은 로브를 입은, 또 다른 자신이 내뱉은 말들이 찰나지간 머릿속에서 수십 번 분석되어 몇 가지 가설을 토해냈다.
자신이 그를 무림으로 보냈다고 하며 지금의 이 운명을 만드는데 힘을 보탰다고 말했다. 무림에서 얻은 힘이 있으니 그 인과를 떨쳐낼 수 없을 거라 단언했다.
“빌어먹을.”
짧은 욕설을 중얼거리던 와중,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처럼 그를 쳐다보는 검은 로브가 보였다.
건방지고 또한 어리석게도, 놈은 피하지 않고 마치 악당의 최후를 지켜보는 주인공인 양 그렇게 서 있다.
찰나에 검극이 전면을 향했다.
그를 끌어당기는 힘에서 버티내기 위해 모여들었던 신의 힘이 일순간 칼끝으로 모여 빛을 뿜는다. 그가 무림에서 보냈던 시간을 증명해주는 물건 청월, 그것이 멈춰진 시간마저 뚫어내며 궁극의 점을 찍었다.
가공할 속도로 쏘아진 일격에 검은 로브가 경악하여 스태프를 내밀고, 동시에 악마가 앞으로 나섰다.
자하 제 일식, 일함(一莟).
소리가 없어야 할 공간에 형용할 수 없는 굉음이 터진다. 주변을 둘러싼 마법진이 심하게 어그러지며 금방이라도 박살날 것처럼 뒤틀리고 요동치는 혼돈이 펼쳐졌다.
– 카아아아악…! –
“안 돼!!”
신의 일격을 맞은 악마가 피와 같은 검은 액체를 흘리며 비명을 내지른다. 검은 로브의 경악성이 터져나옴과 함께, 마침내 세현은 자신을 끌어당기던 검은 구체로 속절없이 빨려들어갔다.
쾅!
하지만 완전히 빨려들어가지 않았다. 그 어그러진 공간의 귀퉁이를 우악스레 잡아 버티며, 그는 다시 검을 들어올렸다.
“내가 다시 돌아오면……!”
자색으로 불타오르는 눈이 일그러진 시공간을 격하고 검은 로브의 자신을 노려봤다.
다시 한 번, 세계가 호응하여 어마어마한 힘이 모여든다. 청월이 태양보다 눈부신 빛을 뿜어냄과 동시에, 그 힘의 격류를 버티지 못하고 사방을 잠식했던 시간정지 마법이 완전히 깨져나갔다.
“너는 진짜 죽은 목숨이다…!”
그의 몸이 완전히 검은 구체로 빨려들어갔다.
마지막으로 휘두른 참격은 악마와 검은 로브를 포함하여 세상 전체를 두 동강낼 기세로 날아들었다.
악마가 그 참격에 대응해 정면으로 달려드는 모습을 끝으로, 세현은 지구에서 완전히 추방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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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이동 이유 파트 끝입니다.
부디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추천 한 번 꾹! 부탁드립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