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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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
인과가 맞아떨어지며 사라졌던 시간의 기억이 부분부분 돌아왔다.
원래라면 돌아올 수 없는 기억들이지만 이미 신이 되어 평범함을 뛰어넘은 세현에겐 예외다. 아무리 사라졌던 시간의 일이라 해도, 마찬가지로 이미 사라졌던 시간의 인과를 마주쳤다면 복원이 가능하다. 신이 된 그가 원했기에 현상으로 벌어졌다.
무림에 가지 않았던 자신.
누이의 죽음.
절망하던 그에게 찾아왔던 자칭 평행세계의 나.
전부가 아닌 일부였지만 그것들만으로도 앞뒤 맥락을 파악하는덴 충분했다.
– 너는 아무것도 기억 못하겠지. 그리고 우린 결국 서로를 죽여야 할 테고. –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제안이란 걸 알면서 뻔뻔하게 말해오던 놈의 모습이 떠오른다. 후드 안쪽에서 얼굴을 가로지른 흉터 역시도. 그때의 자신에겐 없던 것이다.
– 이게 누나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
– 하지. –
그 말을 하던 순간의 기억은 성대의 진동까지 느껴질 정도로 생생했다.
무슨 생각을 했었던가, 설령 내가 죽더라도 누이가 살아난다면 괜찮다는 생각을 했던 듯하다. 눈앞의 이놈도 지금은 쪼개졌다지만 결국은 자기 자신이니, 되살아난 누이의 곁에는 결국 자신이 있게 될 거라고.
다 괜찮을 거라고.
쾅!
– 캬하아아악…! –
달려들던 악마가 세현이 창졸지간 내지른 주먹에 얻어맞고 비명을 질렀다.
사방 모든 것이 미친듯이 뒤섞이며 변화하고 스쳐지나가는 곳, 시간과 공간과 차원이 요동치며 한순간은 우주의 한복판처럼 보였다가, 한순간은 정체모를 밀림처럼 보였다가, 한순간은 깊은 심해처럼 변했다가, 다른 순간은 지하 깊숙한 동굴처럼도 보이는.
시각을 포함한 오감 그 무엇도 믿을 수 없는 불확실성 투성이의 극심한 혼돈 속에서 오직 세현과 그를 뒤따라 달려들었던 악마만이 뚜렷했다.
마치 거대한 폭풍의 중심, 또는 중력이 없지만 와류는 심한 공간에서 싸우는 듯하다. 어디 한 곳 균형을 잡을 데 없이 미친듯이 변화하는 사방 배경을 두고 세현과 악마는 떨어졌다 붙었다를 반복하며 서로 공격을 주고받았다.
“죽으려고 따라온 건가!?”
여전히 분노한 상태의 세현이 외쳤다.
애초에 이곳에 들어올 때부터 그의 찌르기와 베기를 맞아 상태가 좋지 않던 악마였다. 놈은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섬광, 소이페(Soipe)에 검은 영체로 이뤄진 악마의 몸이 산산이 찢겨나간다. 놈이 다시 불사신처럼 재생했지만 고통스러워하는 모습과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형태를 보면 분명한 타격을 입고 있었다.
그래서 더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왜 따라온 건가?
세현이 마지막으로 참격을 날리긴 했지만, 그것으로 또 다른 자신이나 악마 둘 중 누구도 죽일 수 있으리라곤 기대치 않았다.
그런데 이 악마놈은, 그 전력을 다했던 베기를 정면에서 받아내며 그가 빨려들던 검은 구체에 함께 뛰어든 것이다.
– 내가…! 마법의 군주 파스토프다! –
놈이 비명처럼 고함치며 그림자로 이뤄진 두 손을 들어올렸다.
순식간에 생성된 마법진들이 육방체 형식으로 얽혀들어 광선을 쏘아낸다. 짙은 녹빛의 음산한 섬광, 그것을 튕겨내려 마주 쏘아진 의형기가 서로 충돌해 소멸한다. 가루로 부서지는 모습이 폭발은 없었지만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뒤이어 다양한 마법들이 미친듯이 쏟아졌다. 불과 얼음, 칼날보다 예리한 바람과 마력의 띠, 뇌전으로 이뤄진 그물과 순수한 파괴를 형상으로 빚은 구체, 정신을 유린하는 날카로운 속삭임과 착시를 일으키는 뚜렷한 환영들.
허나 그 모든 것이 청월 한 자루에 부서져내렸다.
투사체들을 반대로 튕겨나가 서로 공멸하고 그물은 갈가리 찢겨진다. 무형의 정신공격이 두부처럼 베어지고 환영은 스러지며 마법이 소멸한다. 그 가장 끝에 있던 악마의 몸체는 또 다시 두 동강나며 피처럼 짙은 어둠을 흩뿌렸다.
절규와 동시에 지독한 어둠이 폭발했다. 그 어둠을 가르며 자색빛 선이 뛰쳐나오고, 다시 폭발한 어둠이 그를 가리려다 견디지 못해 부서진다. 서로 뒤섞여 잡아먹으려는 두 충돌의 우세는 명백한 자색빛 쪽이다.
어느 순간 튕겨나갔던 악마는 그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다시 달려들어 송곳 같은 마력의 창을 날려왔다. 일순 느려진 시간 속에서, 수십이 넘게 날아드는 그 검은 창들을 일일이 이화접목으로 되돌려버린 세현이 반대편 손을 놈을 향해 떨쳤다.
낙화추영장(落花追影掌).
순식간에 뿜어진 가공할 장력이 공간을 격하고 악마의 몸체를 다시 수십 조각으로 박살낸다. 뒤이어 펼쳐진 자하검은 사방을 점하며 악마의 합쳐지던 육체를 몇 차례나 찢어발기고, 더 이상의 재생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수천 수만의 꽃잎들을 폭발시켰다.
자하 제 삼식, 만화(萬花).
혼돈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주위 배경마저 삼켜버리며 거대한 꽃잎의 폭풍이 강림했다.
그 중앙에서 고통에 울부짖던 악마는 놀랍게도 살아남아 다시 정신을 집중해 마법을 펼쳤다.
한 쌍의 보랏빛 안광이 폭발할듯 타오르고, 생성된 검은 구체가 휘몰아치던 꽃잎들을 미친듯이 집어삼킨다. 그것이 덩치를 불려나다가 결국 폭발하며 세현이 자리한 방향으로 검게 물든 꽃잎들을 토해냈다. 무시무시한 속도였다.
그에 대응해 한순간 청월이 수천으로 분열했다. 날아드는 무수히 많은 꽃잎들을 일일이 쳐내버린 검이 섬광으로 화해 쏘아지고, 찰나에 생성된 무형검이 몸을 부풀리며 바로 그 뒤를 쫓는다.
그 섬광에 찢기고 무형검에 두들겨 맞으며, 악마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다.
그렇게 당하면서도 결코 죽지는 않았다. 영변불사(影變不死)의 힘, 세현이 처음 마주했던 보라색 등급 악마도 갖고 있던 권능이다.
그렇다면 죽을 때까지 두들기는 수밖에.
세현이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청월을 휘두를 때였다.
갑작스레 주변의 혼돈이 걷히며 그는 어느 멀쩡한 세상으로 튕겨나왔다.
세현과 싸우던 악마 역시 같은 장소에서 튀어나오며 비명을 질렀다.
튕겨나오는 그 순간 느껴진 압박감은 마치 얇지만 질기고 또 질긴 고무막을 강제로 뚫고 나오듯 대단했다.
우수수-
쾅!
이름 모를 숲의 나무들을 완전히 박살내며 튕겨나온 둘은, 순식간에 자세를 회복하고 서로 대치했다.
세현이 청월을 겨누며 살핀 악마의 상태는 그야말로 처참했다.
실체가 없다지만 처음엔 매끄럽게 느껴지던 몸은 이제 흡사 누더기처럼 이곳저곳 구멍이 뚫려 보기에도 안쓰러웠다. 딱 봐도 전혀 멀쩡하지 못하다는 게 보인다.
– 크크크크…! –
그럼에도 악마는 웃었다.
“왜 웃지? 정신이 나갔나?”
– 검신 한세현, 네가 나를 이겼다고 생각하겠지만, 이긴 것은 나다. –
“개소리.”
– 과연 마법에 대해 문외한이로다. 네가 날 정신없이 두들기는 동안 내가 무엇을 했는지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
안 그래도 분노하던 중인 세현이다.
그는 악마가 말함과 동시에 이상을 깨닫고 미간을 일그러트렸다.
전신에 마기(魔氣)가 덕지덕지 붙었다. 얼마나 악의적으로 붙였지, 흡사 악취가 몸에 배면 씻어내기 쉽지 않듯 이것도 떨쳐내기 쉽지 않을 듯했다.
“왜?”
하지만 물을 물을 수밖에 없었다.
“고작 이 정도 수작을 부려놓으려고 나를 쫓아왔다고? 다시 돌아가기도 힘들 텐데? 여기는……”
세현이 숨을 들이쉬었다.
익숙한 공기, 그 대기에 섞인 익숙한 기운.
“여기는 무림이다. 에레도스 시스템이 아직 영향을 뻗지 못한 세상. 이곳에서 살아 도망칠 자신이 있나?”
– 아, 물론 있지! –
거짓말이다.
세현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그를 노려봤다.
“또 다른 내가, 너 같은 악마조차도 목숨을 걸 정도로 가치가 있었나?”
– 가치? 그런 건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내 생각이야. 하고 싶어서 했을 뿐, 여기에 이유는 필요 없어. –
그 후 웃어대는 악마에게 세현이 검을 들어 겨눴다.
“이따위 수작으로 시간을 끌어봤자 얼마나 끌 수 있다고.”
– 우리가 왜 이 차원을 선택했는지 아직 모르겠지. 설령 네가 이곳에서 힘을 얻었다 해도, 너는 아마 모르고 있을 거다. –
그 말을 듣는 순간 세현은 재차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멀리서부터 무시무시한 기운들이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놀랍게도, 이곳이 무림임이 분명한데도 그가 이곳에서 육십여 년이 넘도록 활동하면서 단 한 번도 접해본 적 없는 거대한 기운들이었다.
– 너희 속담 중 이런 게 있었던가?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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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한의 군대가 후퇴를 시작했다.
단 한 명의 병력도 남기지 않는 완전한 철수, 애초의 목적이 잔당들을 소탕하고 최소한의 지배력을 확보하는 것이었는다는 걸 생각하면 의아할 수밖에 없는 움직임이었다.
허나 소집령에 의해 모인 레야와 김인환, 김유린과 박수진, 권태수, 신소진, 정현욱과 이바노프, 문하랑은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혜진이 숨기지 않고 모두 밝혀버린 것이다.
세현이 사라졌다.
추측컨대 적의 함정에 빠져 강제로 다른 세계에 가버린 듯하고, 언제 돌아올지는 알 수 없다.
“지원군을……”
세현이 사라졌고 그것이 적들의 함정이라면 이제부터 거센 반격이 시작될 것이 분명한 바, 김인환이 정론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그러던 중 말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그도 주변국의 정세가 어떤지 알고 있었으니까.
반고와 이다니자카스는 몽골 지역에서 목격됐던 남색 등급 괴물 두 개체 때문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 상태다. 국가의 총력을 다해 상대해야 할 남색 등급이 하나도 아니고 무려 둘, 지원군을 요청한다고 보내줄 처지가 아니다. 강제로 명령한다 해도 들을 리 없다.
유럽 지역의 경우 아직 켈데브렘 때문에 입은 피해를 복구하지도 못한 상황이니 의미가 없다. 거기서 병력을 차출해봤자 질적으로나 수적으로나 한참 떨어지기에 도움이 안 된다.
마지막 미국은, 공교롭게도 얼마 전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아이오와 도시국에서 자비에 월버그라는 자가 하나된 미국을 외치며 세력을 규합해 군대를 일으킨 것이다. 예상외로 도시국가연합이라는 형태에 불만을 가졌던 자들이 많아, 미국은 이 반란을 진압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상황이었다.
혜진은 사실 미국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이미 세현에게 귀띔을 받은 차였다.
그가 몽골에서 방글라데시로 방향을 틀기 전 통신으로 말했었다. 이 모든 게 우연이 아니라, 누군가의 모략일 수도 있다는 것을.
상황을 보자면 그 모략의 주체가 세현마저 다른 세상으로 쫓아내버린 것이 분명하다.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빛을 잃은 목걸이가 세현이 현재 이곳에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무조건 버텨야 됩니다.”
혜진은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하며 손에 든 태블릿으로 지도를 살폈다.
다른 모든 동맹국들은 버린다. 상황의 여의치 않다면 일본, 평양, 강원도, 부산까지도 다 버린다. 하나하나 그렇게 도마뱀의 꼬리처럼 잘라내는 한이 있더라도 핵심전력을 보존하는 게 목적이다.
세현이 돌아왔을 때, 그가 봤었다던 미래가 펼쳐져 있어선 곤란했다.
============================ 작품 후기 ============================
새 파트 시작입니다.
일단 올리고 퇴고들어갑니다.
부디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추천 한 번 꾹! 부탁드립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