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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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의 시작
세현이 대충 물을 다 받아갈 무렵, 열어둔 테라스 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왔다.
총성이었다. 동시에 결코 인간의 것이 아닌 괴성도 터졌다.
희미하던 총소리와는 달리 뚜렷하게 귓가를 울리는 어마어마한 짐승의 포효!
연속적으로 들리던 총소리들이 급속도로 줄어들더니 이내 완전히 끊어진다.
서둘러 테라스로 향했을 땐 이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상태였다.
세현은 테라스 난간을 붙잡은 채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이 문명에 나타난 게 좀비 뿐만은 아닌 듯하다. 아무리 괴물로 변했어도, 인간의 몸뚱이를 가졌을 좀비가 방금의 커다란 포효를 터뜨릴 수는 없으니까.
정찰을 가보고 싶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포효를 듣는 순간 공포에 질렸겠지만, 그는 별 영향을 받지 않은 상태였다. 대체 무엇이 나타났는지 확인하고 싶은 생각만 떠오른다.
확신이 있었다. 그곳에 뭐가 있든 그는 죽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려면 먼저 선결해야할 문제가 있다. 점점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지금, 정찰한답시고 누이를 홀로 둔 채 집을 나설 수는 없다.
잠시 더 고민하던 그는 혜진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누나.”
“으음……”
혈을 짚으며 흔들어 깨우자 혜진이 힘겹게 눈을 떴다. 완전히 잠에 취한 모습이다.
“…뭔데? 지금 몇 시야?”
머리맡의 핸드폰을 집어 시간을 확인한 그녀가 깜짝 놀랐다. 아침 7시 40분, 씻고 출근하려면 엄청나게 빠듯한 시간이다.
“왜 안 깨웠어!”
“쉿!”
세현은 대답 대신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댔다. 동시에 타이밍 좋게, 누군가의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밖에서 울려왔다.
흠칫 놀란 혜진이 창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게 무슨 소리야?”
“비명소리.”
“비명소리?”
“일단 씻어. 지금은 물 나오니까.”
“어, 어?”
그는 아직도 상황파악을 못한 혜진을 침대 밖으로 끌어냈다. 그리고 반 강제로 화장실로 들여보낸 후, 그 앞에 버티고 섰다.
“무슨 일 생기면 바로 말해.”
“어, 어, 그래……”
“너무 느긋하게 씻지는 말고.”
얼떨떨한 혜진의 표정을 가리며 문이 닫힌다. 이윽고 화장실 안쪽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그는 몸 돌려 눈을 감고 신경을 집중했다. 비명소리가 들린 쪽을 향해서다. 내공으로 강화된 청력은 밖에서 들리는 소리를 선명하게 포착할 수 있었다.
다양한 잡음들 속에서 아침에 봤던 여자의 경우처럼 무언가 뜯어먹히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의 생이 끝장났다는 것을 알리는 절망적인 소리, 하지만 세현에겐 단순한 정보일 뿐이다.
이번의 비명도 좀비에 의한 것이다. 아직은 이곳에 좀비 외의 또 다른 괴물은 없는 모양이다.
물론 앞으로도 그럴 거란 보장은 없다. 아까의 포효처럼, 다른 거대한 괴물이 등장하지 말란 법이 없지 않은가. 그런 놈들에겐 이 아파트 단지는 맛있는 식당일지도 모른다.
장기간 버티기에 이곳은 전혀 안전하지 못하다.
잠시 후, 혜진이 씻기를 마치고 문을 열었다. 그대로 나오려다 바로 앞에 있는 동생을 보고 흠칫 놀란다.
“뭐야? 아까부터 왜 이래?”
“머리부터 말려봐. 나가야 될지 모르니까.”
세현이 혜진을 재촉했다. 여전히 얼떨떨하고 의문투성이인 상황에서도 혜진은 자신의 방으로 움직여 헤어드라이기를 잡았다.
순순히 머리를 말리기 시작한 그녀의 옆에 앉으며, 세현이 말했다.
“어제 좀비를 봤어.”
헤어드라이기의 소리가 뚝 멎는다.
“뭘 봤다고?”
“좀비. 뭔지 알지?”
“……”
혜진이 인상을 찌푸렸다.
장난을 치는 것 같진 않았다. 일단 동생의 표정이 너무 진지했고 또한 방금 전 들었던 비명소리가 마음에 걸렸다.
그건 일상적인 상황에서 나온 비명이라기엔 너무 처절했다. 일반인인 그녀조차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혜진은 어중간하게 들고 있던 헤어드라이기를 완전히 내려놨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들어보겠다는 태도.
“자세히 말해봐.”
“임의로 좀비라 부르긴 하는데, 바이러스 같은 것에 의한 좀비는 아니야. 시체 안에 벌레가 들어가서 몸을 조종하더라고. 대충 이만했지 아마.”
그렇게 말한 세현은 자신의 주먹을 앞으로 내보였다. 크기를 표헌하는 그 제스쳐에 혜진이 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그걸 어디서 봤다고?”
“집 앞에 사거리 골목에서.”
“……지금 장난치는 거 아니지?”
“어제 사온 먹을 것들도 그거 때문이야. 잠깐만 따라와 봐.”
세현이 앞장서서 테라스로 향했다. 그리고 뒤따라온 혜진을 보며 바깥을 가리켰다.
“봐.”
“……세상에.”
딱 봐도 평범한 상황이 아니다.
여기저기 낭자한 핏자국과 버려진 신발과 옷가지, 방치된 차량이 주는 기괴함과 을씨년스러움은 세현이 봤을 때 그대로였다. 그 중 여자가 뜯어먹힌 자리를 가리키며 세현이 말했다.
“저기 핏자국, 아침에 저기서 좀비가 사람을 공격했어.”
“직접 봤어? 어떻게 됐는데?”
“죽었지. 그리고 다시 좀비로 변해서 일어나고.”
“……진짜로 장난치는 거 아니지? 그냥 뭐 사고난 거 아냐?”
혜진이 핏자국 가득한 그곳에서 간신히 시선을 떼며 세현을 쳐다봤다. 물론 세현은 담담히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말도 안 돼.”
혜진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제 팔뚝을 문질러 돋아난 소름을 가라앉혔다.
아침인데도 너무 조용한 거리, 단지 곳곳에 말라붙은 핏자국들, 아무렇게나 방치된 차량과 옷가지.
뭐 하나 평범한 게 없다. 전부 세현의 말을 증명하는 것뿐이다.
그때, 멀리서 다시 한 번 커다란 포효가 터졌다.
어지간히 몸집이 크지 않고서야 낼 수 없는 거대한 소음, 그를 들은 혜진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사라졌다.
“어……”
포효에 담긴 포식자 특유의 살기가 심신을 짓누른다. 전신이 딱딱히 굳어버린 그녀의 상태를 알아챈 세현이 얼른 손을 잡았다.
은은하게 일어난 자색빛 기운이 굳어버린 혜진의 몸을 빠르게 녹였다. 그녀는 막힌 숨을 토해내며 비틀거렸다. 다행히 넘어지는 일은 없었다. 옆에서 세현이 잡아주고 있었으니까.
“방금…… 방금 그거 뭐야?”
“나도 몰라. 그래서 지금 살펴보러 갈까 생각 중인데.”
“뭐? 미쳤어?! 안 돼!”
혜진은 확실하게 느꼈다.
먼 거리에서 들린 정체도 모르는 포효의 잔재였을 뿐인데도, 그걸 듣는 순간 뱀 앞의 개구리처럼 바짝 굳어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생전 처음으로 겪어보는 종류의 공포!
그곳에 뭐가 있든 기존의 상식으로 재단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밖에 좀비도 돌아다닌다며!”
“그러니까 더 살펴봐야지. 아직 좀비밖에 없잖아.”
“구, 구조대가 오면?”
“글쎄. 나도 오면 좋겠는데, 과연 올까?”
세현은 회의적이었다.
단순히 좀비만이라면 괜찮다. 그 정도 위협으로 인류의 문명은 무너지지 않는다. 그가 일주일을 기다려보겠다고 생각한 것도 좀비만 있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포효의 주인공이 걸맞는 덩치와 힘을 가진 괴수라면?
그런 괴수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라면?
인류가 멸종까지 가진 않을 것이다. 정부가 순식간에 무너질 정도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을 구하겠답시고 사방으로 구조대를 파견할 정도로 여유 있지도 않을 것이다.
혜진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듯 머리를 쓸어넘기며 숨을 골랐다. 그러다 별안간 후다닥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뭔가 싶어 세현이 따라가자, 침대에 걸터앉은 그녀가 핸드폰을 들고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왜 안 돼 이거?”
“인터넷도, TV도 안 돼. 핸드폰도 마찬가지고.”
혜진은 곧장 거실로 나가 TV를 틀었다. 물론 세현이 켜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지직거리는 화면만 나왔다. 전 채녈을 돌려봐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에……”
계속해서 세상에, 맙소사 같은 말을 중얼거리던 그녀가 뭔가가 떠오른 듯 세현을 쳐다봤다.
“너 왜 그렇게 태연해? 이런 사태면 군대로 끌려가는 거 아냐? 국가 비상사태면 예비군 징집되는 거 맞지?”
“안 가.”
세현이 헛웃음을 흘렸다.
이런 상황에 예비군은 무슨 예비군인가? 엉뚱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런 세현의 반응에도 혜진은 걱정스런 표정이었다.
“안 가면 나중에 문제되지 않을까?”
“지금 그런 걸 걱정할 때가 아냐.”
“……그래도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쓸데없는 말은 됐고, 얼른 나갈 준비나 하자.”
혜진이 다시 표정을 경직시켰다. 아무리 생각해도 외출은 미친 짓이었다.
“정말 나가려고?”
“잠깐만 둘러보자.”
“나는 왜?”
“집에 혼자 있으면 안전하겠어? 내가 나갔을 때 창문 같은 데로 뭐가 들어오면?”
혜진은 생각만해도 소름끼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무섭지도 않아 넌?”
“안전하니까 걱정하지 마. 내가 전에 보여준 거 기억나지?”
“아니, 그래도, 음…… 진짜로?”
그녀는 세현과 잠시 동안 눈을 마주하더니, 이내 미약한 한숨을 내쉬며 방으로 들어갔다.
예전, 세현이 지구로 귀환한 직후 그는 혜진에게 자신이 가진 힘의 일부를 보여준 적 있다. 그가 사라졌던 것을 납득시키기 위한 과정의 일부로.
가족에게 그런 것을 숨길 이유가 없다.
“실용성 있게, 따뜻하게 입어.”
“나도 알아.”
세현도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오령묵주도 가져오는 건데……”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며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이후 외투를 걸치며 손을 뻗자, 침대 밑에서 무언가 쏜살같이 튀어나와 그의 손에 잡혀들었다.
고풍스러운 검집에 수납된 검이었다.
당연히 도검 소지증 같은 건 없는 세현이지만 애시당초 그딴 것에 신경 써본 적 없다.
이건 단순한 검이 아니다. 누구도 알 수 없는 이계에서의 60년 세월을 증명해주는 유일한 물건이다.
청월(淸月).
어쩌면 너무 상투적이고 촌스러운 이름이지만 무림에선 일반적인 이름이다. 그 검을 보며 세현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 이런 식으로 다시 잡게 될 줄 몰랐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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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재밌게 읽으셨길 바랍니다. 추천 꾹! 부탁드립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