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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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
콰르르르릉!
끼기기긱!
마력이 폭풍처럼 회오리치며 진법의 근간이 뒤흔들린다. 그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힘을 빨아들이는 레야를 보호하며, 김인환과 김유린 그리고 박수진과 권태수는 그야말로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냈다.
달려드는 덤프트럭을 정면에서 공깃돌처럼 튕겨낼 만한 거력의 방패 밀치기, 소리보다 빠르면서 그 어떤 특수합금이라도 종잇장처럼 가르고 꿰뚫을 수 있는 검격과 창격, 그리고 마력의 탄환들.
진법 안에서 수호성인들은 온전한 남색 등급 이상의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이곳의 김인환 한 명이 과거 그렇게 힘들게 토벌했던 죽음의 군주 혹은 켈데브렘을 일대일로 상대할 수 있다는 뜻! 단순히 상대하는 것을 넘어 어쩌면 압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허나 그런 수호성인들을 상대로, 가슴팍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검은 로브는 처음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위용을 뿜어냈다.
짤막한 주문과 함께 휘둘러진 스태프에 사방의 어둠이 제멋대로 요동치고 그 뒤편에서 생성된 마법진에선 강렬한 뇌전 혹은 극열의 불꽃이 튀어나왔다.
그런 공격들을 막을 때마다 아직까지도 궁극스킬의 힘을 받고 있는 김인환조차 전신이 삐걱댈 정도의 타격을 입었고 다른 이들은 막기는 커녕 피하기도 급급했다.
이바노프와 신소진이 있었을 때도 겨우 균형을 이루던 상황이다. 그 둘이 죽은 지금, 아무리 부상을 입혔다지만 그게 치명타가 아닌 이상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이 당연했다.
쾅!
결국 한계에 다다른 김인환이 날아든 불꽃의 폭발에 휩쓸려 바닥을 나뒹굴었다
연이어 쏘아진 칠흑의 송곳들이 그가 입은 갑옷, 어둠의 가호에 선명한 상흔을 남겼다. 조금만 더 깊었어도 거동이 불가능할 정도의 타격을 입혔을 위협적인 공격.
간신히 몸을 일으킨 김인환이 부상의 치유를 위해 잠시 물러서자, 앞을 가로막는 상대가 없어진 검은 로브가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번개처럼 움직인 스태프가 허공을 찢으며 핏빛의 전류 다발을 쏟아낸다. 한 걸음 내딛는 발에 유령처럼 미끄러지며 레야를 노리자, 이를 악물고 그를 가로막은 김유린의 창이 섬광으로 화해 쏘아졌다.
매화연환칠식 제 삼초, 화룡출수(花龍出手).
최후 마법사 사냥꾼의 악의에 서린 보랏빛 아케인 속성 공격력, 거기에 태을심공의 자색빛 내공이 더해지며 폭발하듯 번쩍였다.
검은 로브는 김유린의 창이 보호마법을 관통했던 것을 기억했다. 어둠이 한순간 격렬히 타오르자, 최선을 다해 내질렀던 찌르기는 몸을 튼 검은 로브의 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미처 회수하지 못한 창대를 타고 어둠이 달려든다. 확대되는 악마의 손아귀에 머리를 붙잡히기 직전, 날카로운 검광이 둘 사이를 가로막으며 그녀를 구했다.
귀신 같은 기세로 박수진이 연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검광이 번쩍이며 스태프와 충돌할 때마다 고막을 찢을 듯한 금속성이 터져나온다. 검은 로브가 반대편 손으로 마법을 쏘아내는 찰나, 회피를 포기한 박수진이 동귀어진(同歸於盡)의 기세로 바람 정령의 숨결을 움직였다.
한순간 검이 사라진다.
이어 소음마저 잘라내는 예기가 뿜어졌다.
암향부동화(暗香不凍花).
칠절매화검의 마지막 절초가 펼쳐졌다.
번쩍이는 검광이나 자색빛 강대한 기운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럼에도 검은 로브는 펼쳐내던 마법마저 회수하며 빠르게 물러섰다. 휘두른 스태프로 어둠을 장막처럼 흩뿌려 날아드는 무색무형(無色無形)의 치명적인 칼날들을 방어한다.
“위험!”
그때, 상대적으로 떨어져 전황을 볼 수 있었던 권태수가 경호성을 냈다.
김유린과 박수진이 간신히 목숨을 구한 때, 공격을 방어하듯 물러섰던 검은 로브의 신형이 급작스레 유령처럼 허공을 도약하고 김인환의 앞에 섰다.
창날처럼 쏘아진 스태프의 끝이 황급히 들어올린 방패, 용군주의 수호의 투명한 역장을 강타했다.
굉음과 폭발, 충격에 다시금 팔이 부러져 휘청이는 김인환의 전신에서 거짓말처럼 황금빛 오오라가 꺼진다.
하필 궁극스킬 신념의 수호자의 지속시간이 다했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을 노린 것처럼, 검은 로브는 김인환의 앞에 서서 피하지 못할 마법을 쏘아냈다.
순식간이었다.
핏빛이 번쩍이고 땅에 직격한 뇌전에 걸쳐진 김인환의 상체가 배에서 가슴까지, 절반 이상 박살나 뒤편으로 피와 살점과 뼛조각들을 흩뿌렸다. 그가 걸쳤던 어둠의 가호 갑옷이 맹렬하게 착용자의 마력을 먹어치우며 손상을 복구하려 했으나, 채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뚝 멎었다.
텅-!
떨어진 방패와 검이 땅에 부딪히고 눈에서 빛을 잃은 김인환이 쓰러진다. 어둠의 가호는 시체에게서 마력을 뽑아내지 않는다.
김유린이 비명 같은 절규를 내지르며 무작정 돌진했다.
쾅! 콰광!
내딛는 보보마다 암석이 파여나간다. 화산처럼 터져버린 분노를 담고 쏘아진 창이, 놀랍게도 검은 로브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러나 그건 환상이었다.
귓가에서 악마가 속삭였다. 발작적으로 포효하며 휘두른 창엔 아무것도 걸리지 않는다.
그녀가 보는 세상이 붉게 물들며 어그러졌다.
아버지의 죽음.
반드시 생겨날 수밖에 없었던 정신의 빈틈을 노리고 어둠이 파고들어 가차없이 헤집었다. 이성이 끊어진 김유린은 사방으로 창을 찌르고 휘두르며 아무 의미도 없이 전력을 방출했다.
콰르릉! 콰광!
“끄악!”
심지어 그것은 전열을 보호하던 용아병들을 박살내고 그 뒤편의 아군을 해치기까지 했다. 마법사와 신성술사들이 상태이상 해제 계열 마법을 퍼부었으나, 그들의 마법보다 검은 로브의 마법 지배력이 월등했다.
김유린이 난동을 부리자 안 그래도 불안정하던 진법이 눈에 보일 정도로 흔들렸다. 결국 권태수가 어쩔 수 없이 미쳐 날뛰는 김유린에게 저격을 가했다.
타다다당!
날아든 탄환을 번개처럼 막아낸 그녀의 핏빛 시선이 권태수에게 고정된 순간, 그녀가 쏘아진 포탄처럼 땅을 박차고 돌진했다.
콰직!
바로 그 순간, 어느새 옆쪽에서 날아든 자색빛 신성력 투창이 김유린의 옆구리를 꿰뚫고 단번에 심장을 터뜨렸다.
“…웨엑!”
그녀는 달려들던 기세 그대로 거세게 바닥을 굴렀다. 그렇게 구르고 나서야 간신히 정신을 차린 그녀가, 자신을 공격한 문하랑에게 힘없이 웃어보이고는 곧 고개를 떨궜다.
검은 로브는 레야의 앞을 가로막은 박수진을 상대하고 있었다.
마법이 번쩍이고 스태프가 허공을 가를 때마다 박수진의 몸에 상처가 생긴다. 안 그래도 방어구를 걸칠 수 없는 검귀 직업, 스치는 마력의 여파만으로도 피부가 찢어지고 살점이 뜯겨나간다.
순식간에 전신이 피투성이가 되면서도 박수진은 포기하지 않고 분전했다. 그러나, 권태수와 문하랑의 전력을 다한 보조에도 한계는 명확했다.
[멈춰라.] 덜컥-펼쳐진 어둠, 그에 새겨진 마법진, 마지막 열쇠인 시동어가 더해지자 보법을 밟던 박수진의 다리가 우뚝 멈췄다. 아주 잠깐이었으나 스태프에 휘감긴 그림자 칼날이 그녀의 팔을 날려버리기엔 충분했다.
검을 든 손이 허공으로 치솟아 빙글빙글 회전하는 때, 연속해서 휘둘러진 스태프가 박수진의 두 다리를 자르고 허리를 양단하고 목을 쳤다.
그녀의 조각난 신체들이 바닥에 떨어진다. 그 사이 사격수임에도 필사적으로 돌진해온 권태수가 바로 앞에서 총기를 바꾸며 방아쇠를 당겼다.
류한제 자동 샷건이 천둥 같은 소리를 연속으로 토해냈다.
전면을 뒤덮으며 빛의 속도로 쏘아진 어마어마한 산탄들은 덧없이 허공을 갈랐다.
펑!
권태수의 바로 옆을 스치듯 지나친 검은 로브, 그의 손에서 나타난 불꽃이 상대의 머리를 폭파시켰다. 어깨 부근까지 날아가버린 시체가 총을 떨어트리며 쓰러지고, 검은 로브는 마침내 레야의 앞에 섰다.
그야말로 간발의 차였다.
지체없이 가공할 속도로 쏘아진 어둠, 그 어둠을 집어삼키며 마침내 완성된 주문이 빛으로 공간을 물들였다.
[……의 위대한 뜻으로! 지금 이곳에 현상(現象)하리니…!]너.
영원히 굳어 갇히리라.
쩌저저저저저정-!!
레야의 코앞까지 날아들었던 어둠들이 먼지처럼 부서진다. 사방을 물들인 빛이 검은 로브가 휘두르던 어둠과 핏빛의 마력, 회색빛 죽음을 가차없이 몰아내 소멸시킨다.
피할 수 없는 속도로, 시간과 공간이 만년빙처럼 얼어붙으며 검은 로브는 한순간 연보랏빛 수정 속에 꼼짝없이 갇혀버렸다.
마법이 펼쳐진 여파가 사방을 거세게 후려쳤다.
진법이 부서지고 용아병들이 여파에 휩쓸려 모조리 박살났다. 힘을 보태던 근접 전투원들이 일제히 피를 토하며 절명하고, 원거리 전투원들도 태반이 사망하거나 전투불능에 빠져 칠공에서 피를 쏟았다.
– 문하랑…! –
간신히 그 여파에서 문하랑을 보호해낸 레야가 힘겹게 외치자, 그 압도적인 마법의 여파에서 간신히 정신을 추스른 문하랑이 해야 할 일을 했다.
죽어버린 수호성인들의 아이템을 시체와 함께 최대한 빠르게 회수했다. 그렇게 회수되는 아이템 및 시체들과 함께, 그들의 영혼이 온전히 되돌아온 것을 확인하고 그녀가 레야에게 시선을 돌렸다.
레야는 더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 그러나 그에겐 아이템이 있다.
아공간 주머니에서 꺼내든 것은 절망과 좌절의 서, 이것은 사용자의 마력이 아니라 ‘긍정적 감정’을 요구한다.
펼쳐든 마법책의 페이지가 미친듯이 넘어가더니 한 곳에서 멈췄다. 레야가 끔찍한 감각에 몸서리치는 사이, 눈앞에서 순식간에 불길하고 진득한 느낌의 푸른빛 포탈이 만들어졌다.
“먼저 가겠습니다.”
망설일 시간도, 이유도 없다.
문하랑이 생성된 포탈을 통과했다. 곧장 그 뒤를 따르려던 레야는, 용케 살아남아 비척비척 몸을 일으키는 남은 전투원들에게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향했다.
“어서, 가십시오.”
그 시선을 눈치 챈 한 신성술사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가, 죽을 것을 알고… 알고 왔습니다. 우리 중 누, 누구도… 쿨럭!”
중간에 피를 토하면서도 그는 기어코 말을 이었다.
“누구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두 번이라도, 세 번이라도…!”
“우리의 승리를 위해……”
“우리의 신을, 우리의 제국을 위하여……!”
어쩌면 어리석음. 그러나 동시에 고귀하고 또한 숭고한.
이 절망적인 작전에서 꼭 필요할 수밖에 없었던, 바로 희생(犧牲).
– 반드시 다시 돌아와서, 뼛조각 하나라도 모두 수습하겠다. –
레야는 그렇게 말한 후, 그들에게 고개를 숙여 진심을 다한 경의를 표했다.
그 후 곧바로 포탈을 넘자 푸른빛을 뿜어내던 통로는 그대로 사라졌다.
살아남은 전투원들은 비틀거리고 피를 토하면서도, 또는 그나마 멀쩡한 동료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꾸역꾸역 한곳으로 이동했다.
바로 검은 로브가 갇혀버린 연보랏빛 수정, 그것에 각자의 손을 가져다 댄 그들이 이제는 티끌만큼 남은 각자의 마력을 마지막까지 쥐어짜 불어넣었다.
그렇게 무리해서 마력을 쥐어짜자 간신히 숨만 붙어 거동하던 몇 전투원들이 결국 눈을 감는 일도 벌어졌다.
미약한 마력이었으나 분명히 레야가 만들어낸 봉인에 힘이 더해지고 있었다.
이것은 레야가 진법을 구성하던 힘을 끌어내어 펼쳐낸 마법, 뜻하지 않게 그 진법을 구성하던 전투원들은 이 봉인의 가장 간단한 원리 정도는 저절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모두 죽음을 앞당긴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들의 생을 정리할 마지막 시간마저 불태워 봉인에 힘을 더했다.
모두가 믿고 따를 수 있는 신념.
목숨까지 포기하며 관철해낼 만한 가치.
세현이 세운 류한은 그것을 차고 넘치도록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최후를 바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 작품 후기 ============================
부디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추천 한 번 꾹! 부탁드립니다. (__) 수요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