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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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태래(否極泰來)
쿨럭!
보호막을 불태우는 화염이 거세지자 레야가 몇 번째일지 모를 각혈을 했다.
용광로처럼 달아오른 하늘 건너편으로, 양손에 백열하는 화염의 구를 들어 힘을 방출하는 적의 모습이 보인다.
마력을 뿜어내는 두 팔의 살점이 논밭처럼 갈라지며 피가 터졌다. 이미 쌍코피 정도는 우습고 두 눈과 귀에서도 피를 쏟아내는 중이다. 전체적으로 완전한 혈인, 레야는 그 끔찍한 상태에서도 안간힘을 쓰며 버텼다. 주변에 선 백 명이 넘는 신성술사들의 치유를 받으면서도 그 정도였다.
진법의 힘을 이용하여 검은 로브를 상대하던 때와는 다르다. 그때는 레야가 상대의 힘을 온전히 받아낸 것이 아니었으니까.
허나 지금, 온전한 보라색 등급의 힘을 정면으로 맞부딪치자 이것들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힘을 가졌는지 체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야말로 세계급 재앙.
저 화염의 폭풍이 보호막을 뚫고 떨어진다면 버틸 수 있는 자는 한 손에 꼽는다.
거의 모두가 잿더미로 불타오를 것이다. 전신이 갈갈이 찢겨지는 고통 속에서도 버틸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한편, 서승태에게 빙의한 아크리치 마젤란은 검은 로브를 상대하고 있었다.
서로가 흑마법을 다루기에 둘의 싸움은 어둠이 어둠을 집어삼키는 형태로 흘러가고 있었다. 아사드와 레야의 싸움과 다른 점이라면 마법과 동시에 근접하여 붙은 둘이 실시간으로 공방을 주고받고 있다는 점이었다.
어둠과 냉기, 죽음과 저주를 흩뿌리며 두 흑마법사가 맞붙는다. 포탄처럼 쏘아진 주먹에 대응한 스태프가 천둥음을 토하며 팔을 부러트린다. 그 사이 날아든 발은 검은 로브의 회피를 따라붙어 후드의 옆을 길게 베어냈다.
– 악마족의 강화술인가? –
“아는 것도 많군.”
킬킬대는 아크리치의 웃음소리에 섞여 어둠이 칼날처럼 몰아쳤다. 냉기가 사방을 굳혀 얼리고 어둠이 공간을 비틀어 쥐어짠다. 그에 대응하여, 보다 진한 어둠이 그림 위를 덧칠하듯 모든 것을 먹어치워 방금 전까지 마젤란이 있던 공간을 붙잡아 우그러뜨렸다.
아사드의 힘으로 펼쳐진 불바다, 그 위에서 싸우는 둘의 모습은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으나 그 어떤 싸움보다도 존재감이 뚜렷했다. 마법과 마법, 신체와 스태프가 충돌할 때마다 구름까지 흩어버리는 굉음이 터져나오고 일 초에 수백 미터를 주파할 마력의 파장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휘두르고 막는다. 다시 찌르고 피한다. 경지에 이른 무인들의 싸움과 다를 것 없는 고도의 수싸움, 머리카락 한 올 만큼의 실수가 치명타로 연결될 수 있는 살벌한 곡예 같은 전투에서, 아크리치가 빙의한 서승태의 육신이 연신 비명을 내질렀다.
다행스럽게도 검은 로브의 상태도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일전의 전투에서 가슴팍에 부상을 입었고 봉인까지 당했다. 풀려난 후로는 힘을 채 회복할 시간도 없이 이곳으로 왔다.
– 네놈을 먹으면, 내 전성기 때 이상으로 강해질지도 모르겠구나. –
귀청을 찢는 폭음들을 뚫으며 진득한 탐욕에 잠긴 목소리가 울렸다. 단순하게 내뱉는 말에서도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영적 파장이 담긴 일종의 정신공격, 하지만 그것은 검은 로브의 앞에서 늪에 빨려드는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너는 좋은 재료가 될 거다.”
뱀파이어의 육체.
아크리치의 영혼.
어떻게 사용할지는 아직 모르겠으나 검은 로브로서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엄청난 재료들이다. 이 싸움의 절박함과는 별개로 그의 공격에 한층 더 힘이 실리는 이유였다.
그렇게 하늘에서 재앙들이 싸우는 사이.
지상에선 인간들의 전투가 한창이었다. 도시 외곽에 건설된 장벽으로 돌진해온 이데아의 병력과, 그런 놈들을 막으려는 류한의 병력이 맞붙어 싸웠다.
전투는 하늘의 상황과는 달리 류한 측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수성의 이점도 있고 머릿수도 앞섰으며 개개인의 전투력까지 뛰어나다. 도저히 질 수 없는 싸움이다.
“돌격!”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되자 서영환이 곧장 명령을 하달했다. 지휘관들이 그 명령을 복창하며 앞장서 방벽을 벗어났다. 실시간으로 수십 수백의 생명이 꺼져가는 전장 위로, 거대한 눈동자 같은 것이 떠올라 아래를 굽어보고 있었다.
[파멸의 주시(유일함): 대규모 전장에 설치시 죽은 적군의 힘을 흡수해 공포의 오오라를 흩뿌린다. 충분한 힘이 모이면 시야에 닿는 모든 적이 죽을 때까지 정신지배 마법과 파괴광선 마법을 시전한다.*정신지배: 대상의 정신을 지배해 조종한다.
*파괴광선: 화염과 어둠 속성피해를 주는 빛줄기를 쏘아낸다.
– 지옥 깊숙한 곳에 서식하는 쌍두마룡 도그바스니아즈의 눈동자로 만들어진 병기. 코로바 제국은 철저한 준비를 갖춘 소환의식을 통해 도그바스니아즈의 한쪽 머리만을 소환하는데 성공했다. 성공적으로 잘라낸 마룡의 머리는 다양한 아티팩트로 제작되었는데, 제국은 그것들을 채 사용해보기도 전에 분노한 마룡 본체의 습격을 받아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몰락의 길을 걸었다. – ]
서영환이 일본을 정복할 당시 톡톡하게 한몫을 해냈던 아이템이다. 아직 충전이 덜 되었음에도 뿌려지는 공포의 오오라가 적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데아의 전체적인 사기는 심각하게까진 꺾이지 않았다. 자신들의 이념에 대해 놀랍도록 맹목적인 믿음을 보이는 그들은, 명백하게 불리한 전황 속에서도 용맹을 잃지 않고 달려들었다.
철커덕!
그런 맹목적인 돌진을 일차적으로 막아내는 것은 무려 삼만에 달하는 리빙 아머 병사들이었다.
일반 병사는 노란색 등급에 불과했기에 노도처럼 달려드는 이데아의 병력 앞에서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으나, 그러면서도 상당한 피해를 강요하며 숫자의 힘으로 적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초록색 등급인 삼백의 백인장들과 파란색 등급인 세 만인장들은 붕괴하는 병사들의 전열을 붙잡는 버팀목 역할을 했다.
“밀어 붙여라!”
“마법사들 공격!”
그런 상황에, 일사불란한 지휘와 정령 인공지능 시스템의 보조가 더해져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는 연계가 이어졌다. 하늘을 뒤덮어 가리는 마법의 폭우와 탄환 세례들이 적의 후열을 노리자 병사들의 진군에 힘이 붙는다.
사람의 생명을 불태우며 버티던 이데아의 군대가 돌진은커녕 이제는 밀려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럴 듯한 공성전으로 시작됐던 전투는 점차 둥그렇게 싸여 포위당하는 형세로 변하고 있었다.
“버텨라!”
그럼에도 이데아의 지휘관들은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을 내려댔다.
이대로라면 꼼짝없이 둘러싸여 녹아내릴 것이 분명한데도, 버티라는 목소리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그 확신의 정체는 그리 오래지 않아 드러났다.
화악!
콰지지직!
한순간, 이데아의 군대를 둘러싸가던 병사들의 외곽 끝에서 어둠이 폭발했다. 그림자에서 튀어나오듯, 집채만한 크기의 늑대가 전신에 암흑과 핏빛의 오오라를 두르고 남색 눈동자를 빛내며 이를 드러냈다.
포효하듯 벌어지는 입에서 섬뜩한 백색 광선이 쏘아진다. 대지를 그어 오르는 움직임에 불꽃이 폭발하며 그에 휩쓸린 병사들이 볏짚인형마냥 허공을 날았다. 물에 녹아드는 형상으로 휘둘러진 꼬리는 수십여 미터를 늘어나 근방에 자리하던 모든 존재를 가르고 으깨버렸다.
– 죽어라 벌레들아! –
검은 로브에게 종속당했던, 분명 몽골 지역에 있어야 할 남색 등급의 늑대형 악마였다.
몽골에서 모습을 드러냈다던 남색 등급 괴물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아니나 다를까, 늑대가 나타난 반대편에서 흡사 불교의 아수라를 연상시키는 형상의 악마가 대지를 가르며 모습을 드러냈다.
세 쌍의 팔에 검과 도끼와 망치 같은 갖가지 무기를 들고 전신에는 초록빛 불꽃을 휘감아 태우는, 키는 십여 미터에 이르며 다리와 팔뚝의 두께가 어지간한 빌딩의 기둥보다 두꺼운 거인형 악마였다.
– 으오아아아-!! –
분노를 담아 포효하는 놈의 두 눈동자에서 남색빛 안광이 어둠 속 등불처럼 선명하게 타오른다. 그대로 대지를 박차고 점프하자 지진 같은 흔들림이 발생했다. 떨어지며 휘두른 무기는 백인장 하나를 그대로 양단하며 폭발을 일으켰다.
사방으로 튀어오른 녹색의 불꽃이 땅에 닿자 치지직 소리를 내며 녹아내렸다. 휩쓸린 병사가 비명과 함께 녹아내리고 심지어 같은 편인 이데아의 전투원들 역시 일부 휘말려 목숨을 잃었다.
“이런 빌어먹을…! 역시 불러들였나!”
천공성에서 포탈을 통해 내려와 전장을 지휘하던 김인환이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상황이 유리하다 싶은 순간 저 둘의 등장으로 순식간에 전황이 다시 팽팽해졌다. 남색 등급이 둘, 막지 않으면 진형이 통째로 붕괴해버릴 테니 나서야 한다.
그가 땅을 박차며 튀어나가는 것과 동시에, 약간 떨어진 옆에서도 비슷한 속도로 서영환이 치고 나왔다.
둘의 시선이 찰나간 마주쳤다. 그들은 따로 합의한 적 없음에도 놀랍도록 신속하게 인원분배를 이뤄냈다.
“김유린, 박수진, 권태수, 문하랑, 베이마라는 내게 붙어라! 늑대를 맡겠다!”
김인환이 소리치고.
“신소진, 윤하늘, 박상영, 안테아, 왕자는 내쪽으로! 저 팔 많은 놈을 처리한다!”
뒤이어 서영환이 명령하며 악마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바노프. 적 지휘관들을 암살하라.”
“명을 받듭니다.”
천공성에 남아있던 혜진의 명령에 이바노프가 수십의 암살자와 사냥꾼들을 데리고 포탈을 열어 사라졌다.
그 사이 김인환과 서영환은 각자의 목표물에 도달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크허엉!
콰광!
늑대의 돌진을 가로막은 전설급 방패 뒤에서 빛살처럼 쏘아진 검이 눈을 노린다. 풀쩍 뛰어 물러서는 악마를 향해, 권태수의 저격과 베아마라의 저주마법이 날아들고 김유린과 박수진이 측면을 점하며 각자의 공격을 쏘아냈다. 그런 수호성인들에게 문하랑의 버프가 쏟아지며 일순간 자색빛 휘광을 번쩍였다.
푸르르르륵!
– 쿠와아아악! –
반대편에선 살벌하게 포효하는 여섯 팔 악마의 녹색 불꽃과 서영환의 주홍빛 불꽃이 뒤섞이며 기이한 소리를 일으켰다. 뒤이어 부딪힌 장검, 태양의 맹세와 악마의 도끼가 굉음을 일으키며 주변을 태우던 불꽃들을 한순간 흩어냈다.
강원의 영주 윤하늘이 마검사 스킬을 통해 악마의 주위를 점하고 움직임을 방해했다. 부산의 영주 박상영은 움직임을 보조하는 버프마법을 캐스팅했고, 신소진이 공중에서 적의 신경을 분산하는 틈에 왕자는 주문으로 악마의 정신을 찔러 틈을 만들었다.
[셀렌느 게브뤼아의 진언으로, 나 마법에 몸을 담았으나 순리를 따르리라!]사방으로 퍼져나가면서 대지를 녹이고 지독한 산성의 안개를 만들어내던 녹색 불꽃을 향해, 안테아의 광역 정화마법이 펼쳐져 깨끗이 치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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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 편만 더 지나면…!
설 연휴가 코앞이네요. 안전하고 즐거운 연휴 되시길 바랍니다. 수요일은 아마 휴재하게 될 것 같아요. 월요일 연재에서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부디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추천 한 번 꾹!! 부탁드립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