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34
34====================
전설 아이템
세현이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응급실이었다.
처음 와보는 대학병원이었기에 잠깐 헤맸지만, 여기저기 안내도와 표지판이 있어 빠르게 찾아갈 수 있었다.
병원인데 기괴할 정도로 아무런 인적이 없다. 그 흔한 좀비조차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한때 수많은 사람들과 환자들로 북적였을 곳이, 시커멓게 물든 땅 위에서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정도로 적막하다. 기분이 상당히 묘했다.
그는 어깨를 미약하게 으쓱이곤 곧 유리문을 밀며 응급센터 안으로 들어섰다. 동시에, 그런 세현을 노리고 눈앞으로 떨어지는 무언가를 감지하고 빠르게 손을 내밀었다.
둘 사이에서 자색빛이 폭발했다.
꽝!
“키야아아아아아악!”
“……뭐야?”
한쪽 팔이 날아간 무언가가 비틀거리며 물러서고 있었다.
일단 전체적으로 사람을 닮았다. 하지만 머리에 이목구비가 없이 입만 달려 있다. 몸통에 걸쳐진 옷가지를 보면 과거에 사람이었을 게 확실한 듯한데, 팔다리 역시 머리처럼 기괴하게 변형된 채라 잘 믿기지가 않았다. 사람이 어찌 저렇게 변할 수 있을까.
“키아아아악!”
생명체가 아닌 것 같은 괴성을 내지른 놈이 다시 바닥과 벽을 박차며 세현을 노리고 돌진해왔다. 목표물이 된 그가 살짝 자세를 낮추며 허리춤의 검에 손을 가져간 순간, 폭발하듯 뽑혀나온 청월이 그대로 괴물을 갈랐다.
“캭!”
두 조각으로 쪼개진 놈이 피 몇 방울만을 흘린다. 그리고 놀랍게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다시 달려들었다. 바닥과 벽, 천장까지 이용하는 현란한 움직임이다. 어지간한 이라면 어어어 하다가 곧장 당해버릴 정도로 변칙적이었다. 몸이 두 동강난 상태로 말이다.
놀란 세현이 아낌없이 검기를 뽑아내어 달려드는 괴물에게 쏟아냈다. 순식간에 놈이 여덟 조각으로 토막났다. 다시 한 번 점점이 흩뿌려지는 검은 핏방울, 그는 더 심하게 인상을 구기며 뒤로 훌쩍 물러났다.
그가 피한 공간에 토막난 괴물의 촉수와 사지가 박혀들며 파편을 흩뿌렸다.
“왜 안 죽어?”
그르륵-! 그르극!
여덟 조각으로 나뉜 것들이 거북한 소리를 내며 제각각 살아 움직인다. 잠깐 마음을 다스린 세현이 다시 한 번 청월을 휘둘렀다. 한 번이 아니었다. 두 번, 세 번 내지른 검격을 따라 날카로운 예기가 아닌 뭉툭한 기환(氣丸)이 날아갔다.
폭발이 일고 살점들이 부서져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렇게 족히 백 조각이 넘게 되고서도, 그것들은 꿈틀거리며 살아있었다.
물론 제대로 움직일 수 없어 단지 꿈틀거리는 것에 그쳤다. 굉장히 혐오스러운 장면이었다. 거기에 냄새 또한 지독해서 시체 썩는 냄새 정도는 이미 익숙해진 세현조차 반사적으로 호흡을 멈출 정도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상대를 수백 조각내자 시야 좌측 하단에 경험치와 룬, 길드 포인트를 획득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물론 여전히 수백 조각난 그것은 꿈틀거리는 중이다.
이렇게까지 조각나고서도 움직이는 것을 그는 본 적이 없다. 좀처럼 믿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몇 가지 가정이 가능했다.
생명력이 너무너무 강해서 세포단위 수준으로 조각내도 살아 움직일 수 있다거나, 아니면 이게 본체가 아니라 뒤에서 이 고깃덩이를 조종하는 무언가가 있거나, 그도 아니면 이것이 애초부터 하나가 아닌 아주 작은 괴물들의 군체였다거나.
하지만 그 혐오스럽게 꿈틀거리는 살덩어리들을 보면 본래부터 작은 괴물은 아니었을 것이다. 기본적인 외형과 걸치고 있던 옷가지를 고려해봐도 분명 작은 괴물은 아니었다. 사람이 베이스다.
“김유린을 데려올 걸 그랬나.”
약점을 모르겠다. 위험도가 높다더니 과연 쉽지 않았다.
설마 이런 놈들이 잡몹처럼 수십 수백 마리가 나오진 않겠지.
꿈틀거리는 그것들을 내공을 발출해 가장자리로 밀어낸 세현이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다행스럽게도 그 괴물 말고 다른 존재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응급실 내부를 한 번 훑어본 후 원하던 장소를 발견하고 그곳으로 향했다.
응급실은 당연히 응급환자들이 몰려오는 곳이다. 그래서 각종 상황에 대비한 수많은 약물들을 한쪽에 종류별로 잘 분류해 수납해 놓는다.
대부분 세현이 아는 것들이었다.
수처(suture)를 대신할 수 있는 의료용 접착제 HLAT, 화상 부위 연고 실버딘(silverdine), 비타민 및 전해질인 알부텐(Albuten). 진통제인 퍼코셋과 데메롤(demerol) 그리고 모르핀(morphine).
내장 경련에 사용하는 부스코판(buscopan), 국소 마취제 리도카인(lidocaine), 심정지에 사용하는 강심제 에피네프린(epinephrine), 혈관을 수축시켜 혈압 상승을 유도하는 노르에피네프린(norepinephrine).
혈액의 페하(ph)를 조절해 다발성 장기부전을 예방하는 비본(bicarbonate), 기관삽관 및 전신마취에 사용하는 석시닐(succinylcholine)과 SUX(suxamethonium chloride)와 에토미(Etomidate), 수술에서도 사용하는 강력한 소독제 베타딘(betadine).
뇌경색을 해소하는 TPA(tissue plasminogen activator), 항경련 효과와 진정 및 수면을 유도하는 아티반(ativan), 항응고제 쿠마딘(coumadin), 혈액응고제 PCC(prothrombin complex concentrates), 테타니(tetany) 증상에 사용하는 글루콘산칼슘(calcium gluconate injection).
중탄산나트륨 앰플 소디움 비본(sodium bicarbonate), 헤파린(heparin), 안티트롬빈(antithrombin), 알테플라제(alteplase) 등등.
그런 약물들 중 안타깝게도 신선동결혈장 FFP(flesh frozen plasma)과 혈소판(platelet), 동결침전제제(cryoprecipitates)는 전기가 끊겨 냉동보관이 되지 않았기에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할 듯했다.
세현은 한때 무림의 의학과 현대 의학은 어떻게 다를까 궁금해하며 잠깐 약물에 대해 살펴본 적 있었다. 외과적인 수술법도 약간 공부했지만, 그건 현재 혜진이 대신할 수 있으니 아무래도 좋다.
“흠.”
물론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이것들의 대략적인 효능과 부작용을 아는 것하고 정확한 사용 용량을 파악해 투여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일 테니까.
당장 진통제인 데메롤이나 모르핀만 해도 잘못 사용하면 그 부작용이 작지 않다. 하물며 다른 위급한 상황에 사용하는 강력한 약물들은 오죽하랴, 그것들은 독으로 사용해도 굉장한 효과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하다.
또한, 이 약물들 중 혜진의 신성력이 대체할 수 있는 것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어쩌면 서로 상호작용 또는 악형향을 끼치는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신성력이 사람의 신체에 어떤 영향을 얼마나 끼칠 수 있는지, 부작용 같은 건 없는지 연구라도 해봐야겠다. 그래야 제대로 사람을 치료할 수 있을 테니까.
“다시 공부라도 해야 하나.”
아니면 인턴이라도 좋으니 의학을 공부한 이가 류한 길드에 들어오길 기다려야만 할까.
어쨌든 약물은 챙겨두면 언젠가 사용할 때가 올지 모른다. 그는 응급실에 비치되어있던 모든 약물들을 수납칸 채로 아공간 주머니에 쓸어담았다. 워낙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세현이 챙기는데도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모든 약물을 챙겼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다.
그는 응급실에서 사용하는 각종 의료도구도 골라 챙기기 시작했다. 혜진이 있다면 어지간한 위급상황은 커버할 수 있다. 대부분의 ‘응급’ 상황은 신체적 손상으로 인한 경우가 많으니까.
하지만 알레르기성 반응이나 질병으로 인한 응급 상황에서도 신성력이 통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니 이왕 온 김에 이것들도 챙기는 것이다.
펜라이트 몇 개와 자동 제세동기 AED(Automated External Defibrillator), 목구멍에 관을 널어 기도를 확보하는 인투베이션(itubation) 세트와 수동식 인공호흡기인 앰부백(ambubag)을 챙겼다. AED는 배터리가 따로 있고 비디오 후두경도 건전지로 작동하는 물건이다. 충분히 두고두고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사이즈의 주사기와 링거줄 같은 것들을 모조리 챙겼다. 이것들은 일회용이기에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이제 병원 내 약국으로 가서 이런 전문적인 약물이 아닌 일반적인 상비약과 연고들을 챙기면 된다. 당분간 식량이 부족할지도 모르니 영양제와 비타민도 충분히 챙기면 도움이 될 듯했다.
“그 전에.”
이곳 응급센터 건물을 모두 뒤져볼 생각이었다.
이런 던전이라면 필시 클리어했을 경우 보상이 상당할 터, 방금 전의 괴물을 잡으면서 얻은 길드 포인트도 제법 짭짤했다. 잘 안 죽는다는게 꺼림칙하긴 하나 그냥 나갈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위층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어떤 괴물들이 등장할까 걱정과 기대를 동시에 품은 채였다.
@
콰가가가가가가각!
“끼아악!”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자색의 검기다발에 달려들던 괴물 두 마리가 순식간에 믹서기에 갈리듯 수백 조각으로 썰려나갔다.
괴물들은 잘 죽지 않는다. 두 동강이 나도 엄청난 기동력과 움직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면, 아예 처음부터 완전히 갈아버리면 되는 것 아닌가?
뭍에 나온 생선처럼 펄떡이는 괴물의 고깃조각들을 내공을 발출해 한쪽으로 치워버리며, 세현이 응급의학과 ICU(집중치료실) 안으로 들어섰다.
대부분의 침상에 검갈색 핏자국만 가득하고 환자는 보이지 않았다. 몇 침상에는 완전히 뼈만 남은 시체가 반쯤 썩어버린 시트 위에 아무렇게나 뒤섞여 널브러져 있었다.
벌써 시체가 뼈만 남을 정도로 부패했을 리는 없으니, 필시 무언가가 깨끗이 발라먹은 것이다.
“흠.”
크르르르-
그 주인공이라 짐작되는 한 괴물이 난장판이 된 장내 구석에서 몸을 일으켰다.
사람의 팔다리를 몸 여기저기에 매단 기괴한, 머리가 천장에 닿을 정도의 거구 괴물. 배 부근에 달라붙은 사람의 얼굴들에서 눈동자가 휘리릭 돌아가며 세현을 훑는다.
엄청나게 그로테스크한 외견이었다. 이게 게임이라면 생긴 것만으로도 최소한 중간보스는 해먹을 것 같다.
천장에 닿아있는 머리통에 달린 커다란 한 쌍의 눈동자는 선명한 초록색이었다. 케르시타 던전의 두목 이후, 두 번째로 마주한 초록색 등급의 괴물이었다.
흥미를 가진 세현이 내공을 끌어올리며 청월을 겨누고 까닥였다.
“덤벼.”
크허어엉!
건물이 진동할 정도의 포효와 함께 놈이 달려들었다.
바닥을 무너뜨리며 뛰어오른 거체가 엄청난 속도로 세현을 노리고 팔을 휘두른다. 검붉은 갑각이 돋아난 그건 흡사 기둥이 날아드는 듯한 느낌을 선사했다. 길드성을 얻을 때의 골렘과 비슷하지만 그와 비교할 수 없이 빠르다.
콰각!
“음!”
잘리지 않았다. 자를 생각으로 휘두른 검이었거늘 얕게 박혀 움직임을 막은 것이 전부였다.
살짝 감탄한 세현이 자신을 짓눌러오는 힘을 슬쩍 흘리며 몸을 피했다. 그가 피한 자리에 간발의 차로 괴물의 다른 쪽 팔이 꽂혀들며 바닥을 무너트렸다.
커다란 구멍이 두 개나 뚫린 바닥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일어난다. 이후 거구의 괴물이 세현을 잡으려 발을 구르자 기어코 바닥이 주저앉으며 아래층으로 쏟아졌다.
커다란 시멘트 덩어리들이 끊어진 철근과 함께 떨어지는 굉음이 귀청을 찢을 듯하다. 동시에 자욱한 회색 흙먼지가 뭉개뭉개 일어나 시야를 온통 가렸다.
그 속에서 기둥 같은 팔뚝이 기습적으로 튀어나와 날아들었다.
허나 미리 그것을 감지하고 있던 세현이 공격을 가볍게 타넘으며 검을 들었다. 그곳에서 검기가 실처럼 가느다랗게 풀리더니 이내 회오리치듯 검신을 타고올라 하나의 매끄러운 형상을 만들어냈다.
무공을 익히는 모든 이들이 꿈꾸는, 단지 만들어내는 것만으로도 고수라 불릴 수 있는 절정의 기예, 강기(罡氣).
그 흉악한 파괴의 정수가 뒤이어 날아드는 괴물의 다른쪽 팔을 맞이했다. 검기에도 잘리지 않던 팔뚝이 소리도 없이 동강나며 주인의 몸을 떠나 허공을 날았다.
후웅- 후웅-!
콰광!
무거운 소리를 내며 날아가 벽을 무너뜨리는 팔뚝, 그렇게 제 신체를 잃었음에도 괴물은 비명조차 지르지 않고 곧장 다리를 뻗어온다. 허나 마주하는 것은 팔을 잘라버린 검강이다.
다리도 팔처럼 허공을 날았다. 그것이 채 땅에 떨어지기도 전, 섬전처럼 움직인 세현의 잔상을 따라 괴물의 남은 한쪽 팔과 다리까지 동시에 절단났다.
치명상을 입히고 자신을 스치듯 지나가는 세현의 신형을 선명한 녹색 눈동자가 집요하게 뒤쫓는다.
크어어어어헝!
몸뚱이만 남아 쓰러진 괴물이 바닥을 나뒹굴며 포효를 내질렀다. 제 몸을 지탱할 팔과 다리들이 전부 날아갔는데도 고통조차 느끼지 않는 듯, 눈은 오로지 세현을 노려보는 중이었다.
마치 좀비 같다.
제 몸뚱이가 박살나도 오로지 상대를 죽이려는 살의에 가득 찬, 생명체 같지도 않은 생명체. 이런 걸 정말 생명체라 할 수 있을까?
세현이 상념을 떨치며 청월을 치켜들었다. 앞으로 초록색 등급부터는 검강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 작품 후기 ============================
현재 예약을 걸어놓는 지금, 제 소설이 투베 8위에 올라있습니다.
다 여러분들 덕입니다. (__)
과분한 칭찬과 긍정적인 평가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추천 꾹!! 부탁드립니다.
p.s 간간이 의약품 나열에 대한 이야기가 눈에 띄어 간단히 말해보자면, 따져봤을 때 그렇게 중요한 부분은 아닌 거 맞습니다.ㅋㅋ 그래도 사소한 소설적 장치 정도는 되기에 넣었어요. 그냥 쥔공이 똑똑하구나 혹은 이 의약품들을 가져가서 앞으로 어디에 쓰게 될까 정도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