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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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 아이템
초록색 눈의 덩치는 의외로 다른 괴물들처럼 마냥 생명력이 질기지 않았다.
적당히 쪼개주자 상식적인 선 안에서 죽어준 것이다. 그 커다란 덩치를 완전히 채썰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만족한 세현은 느긋하게 응급센터를 나와 본관 건물로 향했다.
을씨년스러운 입구를 지나 멈춰버린 회전문 대신 옆의 문을 이용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순식간에 어둑어둑 해진다.
꽤 넓다고 할 수 있는 로비에는 누군가의 신발과 환자복, 겉옷, 깨져버린 유리 파편들과 망가진 채 쓰러진 휠체어 등이 보였다.
그야말로 세상이 멸망한 풍경이다. 어쩐지 묘한 기분이 들어 잠깐 제자리에서 그 풍경을 감상하던 세현은 문득, 로비의 구석에서 미약하게 움직이는 인형을 발견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여자의 신형 같다. 얼핏 보이는 팔뚝이 비쩍 마른 것을 제외하면, 뒷모습은 조금 더럽고 못 먹은 사람이라 해도 될 것 같다. 등허리까지 치렁치렁 늘어진 머리카락에서 어쩐지 음산한 기운을 풍기지만 않는다면 그렇다.
하지만 여긴 평범한 여자가 있을 만한 장소가 아니다.
탁-!
세현이 청월을 들어 옆의 벽을 쳤다. 소음이 적막하던 홀을 울리자, 미약하게 몸을 건들거리던 인형이 천천히 뒤돌아섰다.
드러난 앞면의 모습은 그야말로 호러.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빛나는 노란색 눈동자에서 흘러내린 핏물이 턱선을 타고 뚝뚝 떨어진다. 반쯤 썩어 문드러진 볼살 안으로 검게 변색된 치아가 덜렁인다.
바깥의 좀비들과 비슷했지만 눈동자의 색은 물론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세현이 실소를 자아냈다.
“여기 테마가 공포인가? 하스피럴 오브 데드, 뭐 그런 거?”
“……워.”
“뭐라고?”
“너무 추워.”
에레도스 시스템에 의해 번역되어 들리는 게 아니었다. 상대가 직접 발음하는 한국어다.
“그런데?”
“너무 추워.”
스르릉-
땅까지 끌리는 여자의 손톱이 바닥을 훑으며 서늘한 소리를 낸다.
“추워……”
그리고 갑자기 여자가 달리기 시작했다. 썩어서 덜렁이는 입가를 끌어올리며 미친년처럼 일직선으로 달려오는 광경은 꽤 무서웠다.
세현은 그 색다른 종류의 공포를 마주하고 그만 하하, 어이없이 웃어버렸다.
무림에서 별별 경험을 다했다. 지금 달려드는 이 여자보다 훨씬 더 소름끼치는 분위기를 가진 마인(魔人)들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들이 소름끼쳐도 결국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 달려드는 건 사람이 아니다.
한때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움직이는 시체라 불러야 마땅할 무언가, 진짜 ‘좀비’다.
“너도 불사냐?”
스칵!
상념이 끝나고 공간에 한줄기 자색 섬광이 그어졌다.
허나 놀랍게도 달려오던 여자가 그 선을 뛰어넘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검격을 내질렀던 세현이 살짝 감탄했다. 과연 노란색 눈동자 값은 하는 모양이다.
그럼 그에 걸맞은 공격을 해주면 된다.
꺄아아아아아악!
찢어지는 비명이 터졌다.
지척까지 접근했던 여자가 일격에 절반으로 갈라지며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쏟아지는 검은 핏물을 피해 멀쩍이 물러난 세현이 버둥거리는 괴물을 응시했다.
정수리부터 사타구니까지 정확히 반으로 갈랐다. 그 단면에서 걸쭉한 타르 같은 피를 흘리며, 그리고 썩어 문드러진 내장들을 줄줄이 흘려 달고서도 어떻게든 세현을 향해 다가온다.
바깥의 좀비들처럼 기생체가 머문 반쪽만 움직이는 게 아니다. 두 조각 모두가 각각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펄떡이며 다가오는 거다.
이건 정말 괴물이라고도 표현하기도 애매한 느낌이었다.
여태껏 만난 괴물들 대부분은 형태가 기괴할지언정 기본적으로는 생명체였다. 길드성 시험의 골렘이나 병영의 병사들 같은 무생명체라면 또 몰라도, 지금 눈앞의 이 괴물은 절대 그런 게 아니다.
지금 이 괴물뿐만 아니라 응급센터에서 처음 봤던 괴물도 수백 조각이 되어서도 꿈틀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생명체 같지는 않다.
“마법인가.”
가령 사령술 같은.
에레도스 시스템을 각성한 사용자는 직업으로 마법사를 고를 수 있다. 사람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을 적대하는 어떤 다른 존재 역시 마법을 쓸 수 있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 마법 중에 지구에서 알려진 사령술 비슷한 개념의 마법이 없을 것 같진 않았다. 요컨대 그는 지금 처음으로 마법을 상대하는 것이다.
은근한 호승심을 느끼며 그는 눈앞에서 버둥거리며 다가오던 여자의 시체에 손을 뻗었다.
뻐어엉!
어마어마한 굉음.
터지는 빛과 함께 무형의 폭발이 홀 전체를 진동시키며 다가오던 시체를 그대로 짓뭉갰다.
완전히 짓이겨져 금이간 바닥에 떡처럼 눌러붙은 살점들이 꿈틀거리는 것을 잠시 지켜보던 그가 전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큰 소음 때문인지 사방에서 소리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족히 수백은 넘는 듯하다.
일일이 찾아다닐 필요 없이 전부 와준다면 세현으로선 오히려 반가운 일이었다.
이 시체들을 조종하는 배후의 존재를 상상하며, 그는 손을 늘어뜨렸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은 손아귀에 빛이 서리며 일렁이는 검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얼마든지 퍼부어 봐라.”
이곳의 모든 것을 가루로 만들어버릴 정도의 시체들이 몰려와도, 결국 최후에는 그 혼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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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아아아!”
“끼아아아악!”
쾅! 콰과광! 쾅!
폭음과 괴성이 연달아 병원 건물 내부를 올린다. 사방을 구성하던 벽과 천장, 바닥이 폭발에 휩쓸려 무차별적으로 금 가고 무너졌다.
달려들던 괴물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딘가에 닿기 무섭게 터지는 자색빛 에너지 덩어리에 의해 괴물들은 나오는 족족 쓸려나가는 중이었다.
끝이 없다.
죽여도 죽여도 계속해서 몰려온다. 수천을 넘어 수만은 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일 뿐이다.
이곳이 아무리 크고 유명한 병원이었다 해도, 하루 오천 명 정도만이 머물렀을 것이다. 그것도 어디까지나 최대치, 괴물이 오천 씩이나 있을 리는 없다.
많아봤자 이삼천.
설령 정말로 오천이 넘게 있다고 해도 문제는 없다.
“흐읍!”
숨을 들이키며 강하게 휘두른 검을 따라 수백 줄기의 검기들이 뿜어진다. 그것은 가로막는 모든 것을 박살내고 꿰뚫어, 마침내 외부까지 뚫고 나가 건물 밖 허공에서 화려한 폭발을 터뜨렸다. 여파를 겪는 건물 전체가 부르르 진동했다.
조금만 더 이런 식으로 파괴를 자행하면 이 건물 자체가 무너질 판이었다. 하지만 세현은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제 거의 끝났다. 조금만 더 하면 된다.
아니면 정말로 이 건물을 통째로 무너트려 괴물들을 매몰시켜버리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어느 쪽이든 그는 별 상관 없었다.
세현은 천지합일(天地合一)의 경지를 이룬 정상급 무인이다.
한 번에 담아낼 수 있는 용량에 한계가 있을지언정, 시간만 있다면 무한하게 차오르는 내공을 바탕으로 끝없이 싸울 수 있다. 정신이 마모되지만 않는다면.
그의 정신은 고작 이 정도에 영향을 받을 정도로 약하지 않았다. 며칠을 내리 싸워도 멀쩡하게 버틸 것이다.
“그래, 다 와라.”
전투의 흥분에 나지막히 으르렁거린 세현이 차오르는 내공을 청월에 가득 담아 전면을 베었다.
종이처럼 얇게 펴진 검기가 반월형의 모양으로 쏘아져 달려들던 괴물들을 거침없이 토막냈다. 물론 그 정도로 죽지 않는 것들이지만, 공격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다른 손에서 뿜어진 탄지들이 허공에서 기이한 궤적을 그리며 쓰러진 괴물들에게 틀어박혔다. 순간 번쩍이는 빛과 함께 재차 충격파가 터졌다.
콰과과광!
층 하나가 통째로 무너져 내린다.
그곳에서 쏟아지는 잔해들을 박차고 치솟아오른 세현이, 순간 가공할 속도로 수 바퀴나 몸을 휘돌며 두 팔을 뻗었다. 검과 손이 춤추듯 움직이고 그를 중심으로 자색의 기운들이 만개한 꽃처럼 퍼져나갔다.
어마어마한 파괴가 일었다.
건물 중앙의 삼분지 일이 완전히 박살나 부서진다. 나머지 부분들조차 대부분 금이 가며 휘청휘청 흔들릴 정도였다. 휘말린 괴물들은 전부 최소 거동 불가능한 상태로 변해 사방으로 튕겨나갔다. 마치 태풍에 휩쓸린 가랑잎 같은 모습이었다.
검술이 아닌 마법 같은 공격이다. 현재 세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광범위한 공격이기도 했다.
폭음이 잦아들고 진동마저 멎었을 때, 끊임없이 몰려들던 괴물들은 거짓말처럼 뚝 사라진 상태였다.
완전하게 폐허로 변해버린 건물 구조물 위로 가뿐히 착지한 그가 만족스런 표정을 지으며 자신이 만들어낸 참상을 훑었다.
참 오랜만에 제대로 힘을 썼다. 이것으로 근처까지 잔뜩 몰려든 괴물들을 한 방에 처리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아직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보스 뿐이었다.
그는 잠깐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점프해 위층으로 향했다.
다른 괴물이나 함정 같은 건 없었다.
세현이 제대로 된 바닥을 밟고 서게 된 것은 9층에서였다. 그가 파괴를 자행했던 곳이 5층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폭발의 여파가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이곳을 지배하고 괴물들을 부리던 놈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능이 있을까? 다른 던전의 주인들처럼, 그에게 살려달라고 애걸하며 거래를 제안해올까?
상념과 함께 10층에 오른 그는 마침내 배후를 마주하고 멈춰 섰다.
그곳은 벽과 천장이 온통 무너져 인위적으로 하나의 넓은 홀을 만들고 있었다. 가장 위 천장에 드문드문 뚫린 구멍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내부를 밝히고, 그 중앙에서 한 존재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거대하다.
인간의 형상이었지만 몸을 일으키면 다 피지도 못할 정도로 거대한 체구였다. 입고 있는 낡은 검은색 로브는 황금빛으로 고풍스런 수가 놓였으나, 끝자락이 푸른빛으로 음산하게 빛나며 펄럭였다.
후드에서 흘러나온 기다린 잿빛 머리카락들이 바람도 없는데 흔들린다. 드러난 회색의 바짝 마른 피부를 가진 얼굴에서 유리알처럼 투명한 눈동자가 세현을 직시했다.
그 눈동자 안에서 단단히 뭉쳐 빛나는 것은 파란색 귀화.
파란색.
회색부터 시작해 무지개색 순으로 강함이 나눠지는 이 시스템에서 무려 파란색이다. 이놈은 어느 정도로 강할까?
마주한 존재가 손에 쥔 거대한 은제 스태프를 들어올리며 입을 열었다.
– 작구나. 이 세상은 모든 게 작아. 내 피조물들을 도륙내던 그대마저도 너무나 작구나. 믿을 수 없게도. –
“……”
– 그대 조그마한 인간이여, 내 영지에 침입한 이유가 뭔가? –
“여긴 네 영지가 아니다만.”
– 이제는 내 영지다. 이유가 어쨌든 그저 흥미로 침입한 것은 아닐 터, 원하는 게 뭐지? –
속삭이듯 말하는데도 덩치가 워낙에 큰 탓인지 아주 잘 들린다. 잠시 침묵하며 상대의 힘을 가늠하려 애쓰던 세현이 물었다.
“어째서 이곳을 영지라 하는 거지?”
– 나는 고향을 잃고 이곳에 왔다. 이제 여기가 내 영지이니라. –
딱히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세현이 다른 것을 물었다.
“에레도스가 뭔지 아나?”
– 아아…… 에레도스. –
상대가 침묵했다. 그리고 잠시 후, 한탄하듯 말했다.
– 저주받을 이름이여. –
누가 들어도 깊은 고뇌와 슬픔이 서린 무거운 한숨이다.
– 내 왕국을 무너트린 저주의 이름이지. 아무런 전조도 없이 나타나 세상을 망가뜨린 재앙…… –
“……음.”
고블린 우두머리가 했던 말과는 조금 다르다.
그놈은 대륙의 인간들이 ‘에레도스’를 신으로 받든다고 했다. 헌데 지금의 상대는 저주이자 재앙이라고 한다. 서로 다른 세계에서 온 것일까.
– 그래, 그래서 이곳을 공격한 건가. 나를 죽이고 보상을 취하기 위해서? –
“에레도스 때문에 당신 세상이 멸망했다고?”
– 멸망했지. 완전히…… 모든 것이 재로 화했노라. –
“가능하다면, 어떻게 멸망했는지 자세히 듣고 싶은데.”
– 그것은. –
상대가 말을 멈췄다. 이후 깊은 숨을 내쉬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 다 부질없구나. 그대는 나를 죽이러 왔고, 나는 죽어줄 수 없으니 결국 대화는 소용이 없겠지. 내가 만약 진실을 말해준다면 얌전히 돌아가겠나? –
“그래. 진실을 말해주면 돌아가겠다.”
세현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허나 상대는 오히려 인상을 일러트렸다.
– 거짓말이군. 이제 더 이상 대화는 없다. –
쿵-!
거대한 스태프가 바닥을 찍었다. 이후 놈의 신형이 한순간에 빛에 휩싸이더니 그대로 사라졌다.
“음?!”
세현이 급히 몸을 피했다. 그 뒤에서 번쩍이는 빛과 함께 나타난 상대가 스태프를 휘둘렀다. 거대한 그것이 공기를 가르고 지나치는 소리가 무섭다.
동시에 노래와 같은 주문이 장내에 울려퍼졌다.
[강철이 내게 깃들어, 밤하늘의 어둠 자락을 몸에 감고, 절망을 손에 쥐어 흔들어, 대적자에게 죽음의 공포를, 저주받은 자들아, 부름에 답해 생명을 갉아라…!]거대한 놈의 동체에 진득한 어둠과 빛이 뒤섞이며 퍼진다.
세현을 노리고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쏘아지고 거대한 은제 스태프가 회색빛 불꽃에 휩싸여 은은하게 타오른다. 마지막으로 사방에서 그림자가 요동치며 알 수 없는 소환체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제법…!”
과연 파란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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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한 졸개들은 지구를 수호하는 우주 최강 공돌이, 아이작 클라크 형님이 등장하시는 데드 스페이스를 참조했습니다. -_-* 혹시 미리 눈치 채신 분 있으신가여? ㅎㅎ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추천 꾹!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