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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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화
“도감은 이대로만 하면 될 것 같고, 당장은 크게 할 일이 없으니 여자들 잘 챙겨줘. 이상한 행동 하는 사람 있으면 바로 보고하고.”
“네 사부님.”
다소 딱딱한 대화 후 세현이 이예슬이 있던 숙소를 나왔다.
현재 제자들 중 세현과 가장 친하지 않은 이를 고르라면 단연 이예슬이다.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가 되었어도 아직은 거리감이 있었다.
세현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이예슬은 전투직이 아니다. 무공이라는 힘의 대단함을 알긴 아는지, 나름 열심히 훈련하고 있긴 하지만 설령 지금보다 무공수련에 덜 열심이었어도 크게 뭐라 할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그런 쪽으로는 기대하지 않으니까.
그녀는 생산직이었다. 시간이 지나 조직이 어느 정도 구색을 갖춰야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때 그의 제자라는 타이틀을 이용해 중간 관리직 정도의 역할을 무리없이 해준다면 더 바랄 게 없었다.
복도를 지나가는 세현을 본 길드원들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며 길을 비켜섰다. 세현은 자연스럽게 그 인사를 받으며 지나쳤다.
그들에게 세현은 매우 어려운 사람이다.
보여준 무력이 막강하거니와 단체의 수장이고, 기존의 길드원이던 김유린과 김인환, 이예슬도 세현에게 존대하며 어려워하는 상황이니 자연히 그들도 그렇게 된다. 윗사람이라는 인식이 박히며 저절로 공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의도한 대로였다.
길드를 계급제로 돌리기로 한 이상, 어설픈 상호존중과 배려는 기강을 어지럽힐 뿐이다. 물론 인간적으로 따듯하게 대해주는 상급자도 분명히 필요하다. 허나 그건 김인환이나 김유린이 충분히 해줄 수 있다.
그는 류한 길드의 수장이었다. 수장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겠지만 그가 생각하는 수장의 역할은 무림의 그것과 비슷했다.
집단의 대략적인 방향성을 설정하고, 가장 강한 무력으로 외부의 위협을 막아주는, 그것으로 구성원의 신뢰와 존경을 받으며 모두가 든든하게 여길 수 있는 존재.
길드원 모두가 그를 인간적으로 좋아할 필요는 없다. 설사 무서워하더라도 신뢰만 줄 수 있으면 된다. 그의 밑에 있으면 어떤 위기가 와도 헤쳐나갈 수 있을 거란 신뢰를.
“여기 있었군.”
“아……”
세현은 복도에서 박수진을 찾아냈다. 화장실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중이었던 듯하다. 그녀는 세현을 마주하고 잠깐 당황했지만, 이내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따라와라.”
세현이 몸 돌려 자신의 집무실로 향했다. 그 뒤를 영문 모를 박수진이 불안한 마음으로 뒤따랐다.
잠시 후, 3층 집무실에서 서로 마주한 채 앉아 세현이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널 제자로 삼을 거다. 처음 말했던 것처럼.”
“네.”
“약속대로 배움에 최선을 다해줬음 좋겠어. 주의할 점은, 만약 나중에 네가 나를 배신한다면, 안타깝지만 나는 널 죽일 수밖에 없다. 내가 가르치려는 건 그런 힘이야.”
박수진이 긴장한 상태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내일 아침에 벌모세수부터 하지.”
“벌모세수가 뭔가요?”
“일종의 체질개선 시술이다. 네 몸은 일반적인 경우라면 무공을 배우기엔 너무 늦었어. 그걸 바꿔주는 거지. 하고 나면 냄새가 심할 테니까 바로 씻을 수 있는 장소에서 하는 게 좋고. 벌모세수를 할 때는 네 옷을 전부 벗어야 된다.”
박수진이 흠칫했다. 아주 미약한 반응이었지만 세현의 눈까지 피할 수는 없었다.
이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자로 확언할 겸 미리 불러 말해준 것이다. 박수진은 속내를 내색하지 않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제가 뭘 준비하면 될까요?”
“아까 말했던 것. 최선을 다해 배우려는 마음가짐.”
“……저, 길드장님.”
“사부라고 불러라.”
“네, 사부님.”
김유린 등의 다른 제자들이 세현을 부르는 명칭이다. 박수진은 금방 적응했다. 세현이 가만히 기다리자 망설이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솔직히, 제가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재능이 있다고 하셨지만 전 그런 건……”
“그냥 최선을 다해 배우기만 하면 돼. 만약 결과가 안 좋아도 널 탓할 생각 없으니 걱정 마라. 혹시 어렸을 때 운동 잘 한다는 소리 들은 적 없어?”
“있긴 있어요. 아주 어릴 때지만.”
박수진이 잠깐 상념에 잠겼다.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그녀는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운동을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줄넘기나 달리기 그리고 피구 등 체육시간에 하는 모든 활동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잘 한다고 칭찬을 들으니 꽤 흥미도 가졌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러지 않게 됐다. 부모님의 뜻에 따라 공부에 집중하면서부터 그랬던 듯하다. 무언가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만약 네가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면 아주 뛰어난 성과를 냈을 거다. 노력과 환경 여하에 따라 세계적인 선수가 되었을지도 모르고.”
“어떻게 그런 걸 알 수 있나요?”
“일종의 안목이지.”
세현이 미약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더 물어볼 것 없으면 그만 가도 좋아. 아, 이진혁하고 이하연 좀 불러주고. 누군지 알지?”
“예, 알겠습니다.”
옥상에서 함께 있던 남매인데 모를 리 없다. 박수진이 집무실을 나섰다.
잠시 후, 이진혁과 이하연 남매가 안으로 쭈뼛거리며 들어왔다. 현재로서 류한 길드에 있는 유일한 미성년자들이다.
“앉아라.”
둘이 자리를 잡고 앉고서야 세현이 말을 꺼냈다.
“나는 너희가 어리다고 봐줄 생각 없다. 남들과 똑같이 훈련시킬 거고, 잘못을 저지르면 똑같이 처벌할 거다. 이진혁 네가 15살이던가?”
“넵!”
“……”
어쩐지 과도하게 군기가 들어간 모습이다. 군대도 안 갔다온 녀석이 각까지 만들어 정자세로 앉아있는 걸 보니 약간이지만 황당할 지경.
아무래도 옥상에서 본 세현의 무력 때문인 듯하다. 무슨 생각을 했기에 이러는지 몰라도 나쁜 건 아니었다. 길드원의 열의가 대단하면 좋지, 그렇게 생각하며 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다 큰 거야. 이제부터 너희는 성인이다. 이게 내가 너희를 개인적으로 신경 써주는 마지막일 테니, 앞으로 잘 해주고.”
“알겠습니다! 저, 그런데……”
이진혁이 세현의 눈치를 봤다.
“저도 제, 제자가 되, 될 수 있을까요?”
얼마나 긴장했는지 말까지 더듬는다. 세현이 피식 웃었다.
“내가 왜 그래야 할까?”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건 너무 당연한 거고.”
이진혁이 할 말을 잃고 어버버거렸다.
이제 15살이다. 자신을 어필할 제대로 된 계획을 짜서 갖고 왔을 확률은 낮다. 그리고 만약 그렇게 준비했다 해도, 세현은 그를 제자로 받을 계획이 없었다.
김유린 가족은 성을 얻기 전부터 함께 했기에 초대 길드원으로서 모두 제자로 받아준 것이다. 이제는 조금이지만 사람도 모였거니와 앞으로는 더 많이 모여들 것이다. 그들이 원한다고 모두 제자로 받아줄 생각은 없다.
하지만 약간의 당근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하는 것 봐서 고려해보마.”
이진혁이 환하게 웃었다.
“열심히…! 그러니까, 뼈가 닳도록 열심히 하겠습니까! 아니, 하겠습니다!”
“됐고, 더 물어볼 것 없으면 그만 나가봐.”
세현이 손을 저었다. 이진혁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구십도로 허리를 숙였다. 그런 동생의 인사에 이하연도 덩달아 같이 구십도로 인사는 것을 보고 세현이 저도 모르게 실소를 흘렸다.
그가 보기엔 이진혁은 완전히 꼬마였다. 확실히 나이가 어려서인지 다른 이들처럼 체면 생각하며 움직이질 않는다. 아무래도 나이가 어린 만큼 생각이 짧을 수 있겠지만, 그야 시간이 흐르면 해결 될 일이고.
문득, 앞으로 길드에 미성년자들이 더 생길 수도 있다는 것에 신경이 미쳤다.
“음……”
이진혁과 이하연 남매에겐 다른 이들과 똑같이 훈련시킬 거라 말했다. 하지만 어떠한 일로 그들보다 더 어린 길드원이 나타나게 되면, 그런 식으로 다룰 수는 없다. 그렇다고 무작정 모든 일과에서 배제시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최소한 뭔가 교육을 시키긴 해야 할 테니까.
아직 눈앞에 닥친 일은 아니지만, 이건 좀 고민을 해봐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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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군인들이 결정을 내렸다. 길드에 가입하는 쪽의 결정이었다. 태블릿을 이용해 모두 가입한 후, 이곳 생활에 필요한 이런저런 질문을 해오기에 세현은 성의껏 대답해줬다.
그들을 이끌던 리더는 권태수라는 이름의 남자였다. 부대에서는 중사 계급의 통신반장이었는데, 세상이 엉망이 된 이후로는 딱히 통신반장이라는 직책에 걸맞는 일보단 호텔의 주변을 돌며 물자를 확보하는 정찰조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이제 너흰 신입 길드원이다. 위치를 잊지 말도록 해. 같은 계급이라면 서로간에 어떻게 부르고 대하든 신경 쓰지 않겠다만, 계급이 차이가 나게 되면 제대로 하길 바란다.”
“예, 알겠습니다.”
상명하복체제의 군대에 있던 이들이라 말이 잘 통했다.
이들은 미쳐가던 집단에서도 스스로의 신념을 잃지 않았던 이들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고급 인력이라 할 수 있는데, 게다가 당장 전투가 가능한 인원이기까지 했다.
“각성한 사람이 누구지?”
정찰조 역할을 했다 하더니, 놀랍게도 전원 각성자였다.
8명이 총기를 다루는 사격수였고 3명은 기사, 나머지 1명은 신성술사였다. 신성술사인 이는 원래부터 의무병이었다니 꽤 적절한 직업을 고른 셈이다.
“기사?”
“좀비가 근처에서 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 방패로 틀어막는 역할이죠.”
납득이 가는 구성이었다. 이들에게서 장비를 압수할 때 진압방패가 왜 있나 했더니 그런 용도였던 모양이다.
“약점은 알고?”
“좀비 놈들이 어깨가 약점이라는 건 압니다.”
“훌륭하군. 첫날부터 미안하지만, 당장 전투 가능한 인원이 너희 뿐이야. 식량을 좀 구해줘야겠다. 주변에 편의점이나 중소규모 마트가 적지 않으니 어렵진 않을 거야.”
“어렵진 않겠군요. 따로 더 구해야 할 물자가 있습니까?”
세현은 고개를 저었다.
“일단 식량만 확보하면 충분해. 이걸 주마.”
그러면서 아공간 주머니 두 개를 건넸다. 병원에서 얻은 화폐로 이번에 새로 산 물건이었다.
“아공간 주머니라는 거다. 사용법은 어렵지 않으니 차차 살펴보고, 병사 열 기도 딸려 보내줄 테니 잘 써먹도록 하고. 참고로 병사는 성 주변 2km밖에 움직이지 못하니 유의해라. 만약 위급한 일이 생기면 P97K로 연락한 다음 최대한 버티는 것에 주력해. 도우러 갈 테니까.”
“이건……”
그가 말을 흐렸다. 아공간 주머니를 받아서가 아니라, 세현의 말에 꽤 많이 안심한 듯했다. 어쩌면 약간 감동까지 했을지 모른다.
모든 장비를 돌려주고 세현이 권태수에게 건네준 P97K와 자신의 것의 채널을 맞췄다. 호텔에서 챙겼던 장비들 중엔 P97K가 꽤 많았다. 그건 그곳에서 얻은 최대의 수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탐색 중에 생존자를 발견하면 어떻게 합니까?”
권태수가 다시 물어왔다.
“네가 판단해서, 질 나쁜 놈들이면 되도록 사살해.”
“예?”
“어차피 살아봤자 피해만 끼칠 놈들이야. 탐색하다 보면 알겠지만, 근처에 이곳으로 오는 표식을 많이 만들어뒀다. 다른 생존자가 그걸 보고 오다가 그런 놈들에게 피해를 입을 수도 있겠지?”
“……으음, 알겠습니다.”
“어디까지나 나쁜 놈이라는 확신이 들 때 이야기야. 잘 모르겠으면 알아서 대처해. 데리고 보호하다가 같이 복귀하든가, 아니면 길을 알려주든가. 그냥 길을 알려주는 쪽이 더 안전할 거다. 주의할 점도 따로 알려주고. 자칫하면 병사들한테 공격당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만반의 준비를 시켜 그들에게 병사 10기의 통제권을 일부 빌려준 후 배웅했다.
다른 이들이 각성해 제대로 전투가 가능해지기 전까진 저들이 계속 수고해야 할 것이다. 그들로서도 꼭 나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만큼 이곳에서 입지를 다질 수 있을 테니까.
군인들이 떠나는 것을 지켜본 후, 2층의 샤워실 출입을 통제하고 박수진을 벌모세수 시켰다. 확실히 그의 누이나 김유린 가족을 벌모세수 할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혈도를 뚫기도 수월하고 근골 또한 탄탄한 것이 느껴졌다.
모든 작업을 끝마친 후, 그녀가 씻을 시간을 준 그는 김유린을 불러 길드원 전원을 한 시간 후 성벽 안쪽 공터에 모이도록 했다.
이후 여유 시간 동안 집무실에서 상점을 살폈다.
병원에서 엄청난 양의 룬을 얻었다. 빨간색 룬 정도는 발에 채일 정도로 많아졌고 노란색 룬도 두 자리 수를 넘겼다. 무엇보다, 왕자를 죽이고 파란색 룬을 얻었다. 이건 신중하게 사용할 예정이다.
상점에도 엄청난 양의 물건들이 추가됐다. 공통점이라면 그것들 전부가 ‘리오론도’에서 사용하던 물건이라는 설명이 붙었다는 점이다. 옷과 방어구, 포션, 무기와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종류는 다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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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한숨 돌리는 파트가 될 듯하네요. 소수지만 대충 사람도 모았으니 이제 각성도 시키고 그래야겠죠?
모두 재밌게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추천 부탁드립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