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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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크로나드
“흐압!”
혜진이 힘찬 고함과 함께 창을 던졌다. 제대로 던져진 창은 제법 빠른 속도로 날아가 막 몸을 피하던 외눈박이 고릴라의 몸통을 무자비하게 꿰뚫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놈에게서 창이 빛으로 화해 스러지더니 다시 혜진의 손에서 나타난다. 그녀는 잠시간 호흡을 고른 후 다시 적당한 거리의 고릴라를 노리고 투창을 했다. 그간 가르친 보람이 있는 안정된 자세였다.
쿠와아아악!
우렁찬 표효를 내지르며 무섭게 덮쳐오는 고릴라를 마주한 것은 김유린의 창이다. 정면에서가 아닌 놈의 진로에서 살짝 빗겨난 자리에서 창을 뻗는다. 날카로운 창날이 놈의 가죽을 뚫고 내장을 헤집었다.
하지만 미묘한 각도로 약점인 심장이 빗겨갔다. 한 번에 죽지 않은 고릴라는 피를 토하면서도 김유린을 향해 갈고리 발톱을 휘둘렀다. 반사적으로 창을 놓고 물러선 그녀가 낭패한 표정을 짓는다.
동시에 자색빛이 번쩍이며 고릴라의 머리통이 박살났다.
“빗나갔다.”
“죄송해요.”
“죄송해하지 말고 좀 더 집중해. 이번엔 과도하게 힘이 들어갔어. 그래서 방향이 어긋난 거야.”
“네, 사부!”
시체에서 창을 뽑아 든 세현이 그것을 김유린에게 던지며 반대편에서 접근하는 고릴라를 장력으로 터뜨려 죽여버린다.
고릴라의 수는 대략 스물 정도, 하지만 벌써 열 마리가 죽었다. 그 중 세현이 죽인 게 네 마리고, 혜진과 김유린이 각각 세 마리씩 죽였다.
“우우으, 크후-!”
“우우, 우우우우.”
무리가 절반이 죽었는데도 별다른 피해조차 입히지 못했다. 놈들이 당황하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접근하기 꺼려졌는지 나무를 이리저리 옮겨타기만 하며 그들을 향해 주먹 만한 돌멩이를 집어던진다.
[빛이 그대를 수호하리라!]기다렸다는 듯 혜진의 보호막이 김유린을 덮어 돌멩이를 막아냈다. 한 방에 깨질 것처럼 희미해지긴 했지만 두 방은 버틸 수 있다. 또한 그 모든 활동이 혜진의 전투 기여도로 정산된다.
전투를 지켜보던 세현이 터져 나오려는 하품을 참으며 입맛을 다셨다.
다행스럽게도 고릴라들은 도망치지 않았다. 접근하면 김유린이나 세현에게 죽고, 그렇다고 거리를 두면 혜진의 투창이 끊임없이 날아든다. 아무리 봐도 승산이 없는 상황인데 멍청하게 우우우, 우우우 거리며 주변만 맴돈다.
“지능이 그리 안 좋은 것 같은데.”
“어쩌면 여기가 자기들 영역일지도 모르죠.”
김유린이 그렇게 말하며 이리저리 나무를 옮겨타는 고릴라를 주시했다. 언제 다시 덮쳐올지 모른다. 세현의 도움 없이 한 방에 격살하려면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됐다.
“쿠와악!”
중앙의 한 고릴라가 성질이 났는지 포효를 터뜨렸다. 그리고 나무에서 떨어지더니 무식하게 일자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어지간한 사람보다 큰 덩치를 가진 고릴라가 두 발과 손으로 땅을 짚으며 빠르게 돌진해오는 모습은 제법 위압적이다.
기다렸다는 듯 앞으로 나선 김유린이 별안간 창을 고쳐쥐고 자세를 잡았다. 돌진하는 고릴라에게 마주 걸어나간 그녀의 발이 강하게 땅을 찍은 순간, 뻗어진 두 팔과 함께 화살처럼 쏘아진 창날이 강렬한 기세로 고릴라의 가슴팍 중앙을 관통한다.
매화연환칠식 제 삼초, 화룡출수(花龍出手).
“윽!”
결과는 좋았으나 김유린이 잔뜩 인상을 찡그렸다. 세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공도 없으면서 무리하면 어떻게 해.”
“그, 그래도 찌를 때 형은 좋았죠?!”
“좋기는.”
오른손 손목을 부여잡고 낑낑거리는 김유린은 고릴라의 시체에 박힌 창을 제대로 뽑지도 못했다.
“다시 말하지만, 찌르고 빼는 동작이 하나다. 넌 지금 초식을 반절만 펼친 거야. 빼는 동작을 생략하는 경우는 얼마 없어. 지금은 절대 그런 경우가 아니고.”
“힝, 그게요…… 뽀, 뽑으려고 했는데 너무 아파서요.”
그렇게 중얼거리듯 말한 김유린이 세현의 눈치를 봤다. 지금은 훈련을 하는 게 아니다. 확실히 무모했다. 세현이 혼내려고 마음먹으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세현은 딱히 혼내거나 하지 않았다. 김유린이 몰라서 무리한 게 아니라, 그가 뒤에 있기에 안심하고 무리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다음부턴 그러지 마라. 수준에 맞지 않는 초식을 연습한답시고 사용하는 건 오히려 독이야. 잘못된 습관이 들 수도 있다.”
그렇게 말한 세현이 앞으로 나서며 빠르게 손을 휘둘렀다.
콰드드득!
섬뜩한 소리가 숲을 울린다. 한순간에 뿜어진 장력이 부상을 입은 김유린을 노리고 달려들던 고릴라 두 마리를 공중에서 무자비하게 박살내버렸다. 달려들던 속도보다 더 빠르게 튕겨져 나가는 그것들의 시체는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었다.
그런 세현의 뒤를 따라온 혜진이 얼른 신성력을 일으키며 김유린의 손목 근처로 손을 가져갔다. 슬슬 부어오르기 시작하던 손목이 빠르게 가라앉는다. 잠시 후, 말짱해진 손목을 빙글빙글 돌려본 그녀가 혜진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부길드장님.”
“감사는.”
여상하게 대답한 혜진이 광휘의 창을 만들어내고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힘껏 투창한다. 아슬아슬하게 고릴라를 스치고 나무에 박힌 창대가 부르르 떨렸다.
혜진이 창을 소환하며 계속해서 투창을 시도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세현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아이템을 통한 무한한 투창 공격은 매우 효과적이다. 게다가 그녀는 날 수도 있다. 이런 숲 같은 지형이 아니라면 허공에 떠서 창을 던져대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위협적인 공격이 가능할 것이다.
다른 무공을 조금 늦게 배우는 한이 있어도 투창부터 제대로 가르치는 게 나을 듯했다. 그러면 최소한의 전투력은 확보하는 셈이니까.
고릴라들은 얼마 걸리지 않아 혜진의 투창과 김유린의 창날 아래 싸늘한 시체가 되었다.
이것들 역시 시체 한 구 정도는 가져가야 하기 때문에, 세현은 김유린의 어설픈 화룡출수에 나름 깔끔하게 죽은 고릴라를 선택했다.
“저 돌아가서 그거 자랑해도 되요? 제가 잡았다고? 그것도 한 번에?”
“그러든가.”
“꺄!”
좋아하는 모습이 너무 해맑아서 실소가 나왔다. 직업으로 사냥꾼이 뜬 이유가 있긴 한 모양이다. 저렇게 자신이 잡은 사냥감을 보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그들은 다시 안쪽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이동하기 전, 잠시 뒤쪽에 내려놨던 여우 비슷한 동물의 새끼들을 챙겼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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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아아아아아-
폭포에서 떨어지는 하얀 물줄기가 시원한 느낌을 풍겼다. 그렇게 큰 폭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폭포라고 불러줄 수 있는 규모였다.
웅덩이의 물을 마시던 몇 작은 짐승들이 모습을 드러낸 세현 일행을 발견하고 후다닥 도망가는 것이 보인다.
한 다람쥐처럼 생긴 작은 동물은 날개짓을 해서 도망갔다. 그것을 보던 김유린이 귀엽다고 난리를 쳤다. 세현이 장난삼아 손가락을 겨누자, 기겁하는 모습이 더 귀엽다.
“죽이면 안 돼요!”
“눈동자는 그냥 검은색이긴 하던데, 하지만 식량으로서의 가치가……”
“사부님!”
김유린이 세현을 찌리릿 째려봤다. 감히 사부에게 하기엔 간이 큰 행동이다. 그래도 장난을 먼저 건 쪽이 세현이었다.
그들은 폭포를 앞둔 적당한 장소에 앉아 식사를 했다. 김유린은 가져온 식량 중 일부를 제가 안고 있던 동물의 새끼들에게 나눠주며 헤벌쭉 웃었다.
식사 도중 세현이 계속해서 폭포를 힐끔거렸다. 그에 혜진도 마주 폭포를 쳐다보며 묻는다.
“왜 그래?”
“폭포 뒤에 공간이 있네.”
“공간?”
“아마 동굴이겠지.”
혹시나 싶어 기감을 퍼뜨려봤더니 걸려들었다.
무림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여행 중 절벽의 중간이나 폭포의 뒤쪽은 반드시 뒤져야 한다. 전설의 영약이나 어느 은거기인이 남긴 신공절학이 있을지 모르니까.
식사를 마친 후, 그들은 혜진의 보호막을 감고서 폭포의 뒤를 향해 이동했다. 가장자리에 사람이 지나다닐 만한 길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아니었으면 헤엄쳐서 이동해야 했을 것이다.
앞장선 세현이 마침내 폭포의 물줄기를 뚫고 안으로 들어섰다. 뒤따라 들어온 혜진과 김유린도 보호막 덕분에 물을 뒤집어쓰지 않았다.
드러난 풍경은 꽤 신비로웠다.
“보석인가? 신기하네요.”
김유린의 감상이었다. 동굴 내부의 벽과 천장에 은은한 빛을 내는 돌덩이들이 수도 없이 박혀 있었다. 마치 무림에서 기보 취급을 받는 야명주를 잘게 부숴 박아 놓은 듯하다.
손으로 두부를 파내듯, 세현이 손으로 벽 한 웅큼을 떼내 아공간 주머니에 수납했다. 그렇게 세 덩이 정도를 더 수납한 후에야 그는 움직였다.
“가자.”
안으로 들어서자 입구에서의 빛이 사라지며 조금 어두침침해졌다. 하지만 밤하늘에 별처럼 점점이 박힌 수없이 많은 빛나는 돌들 덕에 시야를 확보하는 데는 문제도 없었다.
몇 번의 모퉁이를 돌아 동굴의 끝에 도달했을 때였다. 세현이 걸음을 멈췄다. 뒤따라 멈춰 선 혜진과 김유린이 깜짝 놀랐다.
누군가 동굴의 막다른 벽을 마주본 채 앉아 있었다.
다 헤진 누더기를 걸쳤지만 의외로 더럽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거친 은색의 장발 사이로 두 귀가 세모꼴로 뾰족하게 치솟아 있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상대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 뒤돌았다. 순간, 청월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던 세현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물러서.”
그리고 혜진과 김유린에게 경고했다.
파란색 눈동자를 가진 상대가 천천히 그들을 살폈다.
굉장히 수려한 외모였다. 뾰족한 귀도 그렇고 외모도 그렇고, 말로만 듣던 엘프라는 종족이 생각난다. 물론 그건 지구의 인간들이 만들어낸 가상의 종족이다. 그저 우연히 특징이 들어맞았을 뿐이다.
특이점이라면 주위의 환경과 전혀 동화되지 못하고 따로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진다는 사실이었다. 눈으로 보기에도 그랬고, 세현의 기감이나 마력감지로 느끼는 것도 그랬다.
– 이것은 시간이다. –
별안간, 알 수 없는 말을 꺼낸 상대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자신의 앞에 툭 떨어트렸다. 푸른빛을 흘리는 수정구였다.
– 이것은 실수이다. –
그리고 다시 무언가를 앞에 툭 떨어트렸다. 붉은빛을 흘리는 수정구다.
– 이것은 기억이다. –
이번에 떨어트린 것은 연한 초록빛을 흘리는 수정구였다.
– 이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
마지막으로 떨어트린 것은 칙칙한 검은색의 돌덩어리였다.
– 중앙의 제단에서 나를 부르라. –
그리고 채 뭐라 묻기도 전 조각조각 부서져 우르르 무너지더니 순식간에 증발해버렸다.
“……뭐지?”
눈과 기감, 마력감지를 통해 아무리 살펴도 그곳엔 이제 아무것도 없었다. 이 세상에서 박리된 듯 저 홀로 둥둥 떠있던 기묘한 감각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얼마간 더 기다리며 상황을 보던 세현이 천천히 앞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땅에 떨어진 네 가지 물건을 집어들었다. 은은한 마력이 느껴진다. 시선을 맞추자 은빛의 글자들이 떠올랐다.
[시간(희귀함): 시간.] [실수(희귀함): 실수.] [기억(희귀함): 기억.] [아무것도 아닌 것(하찮음): 아무것도 아닌 것.]“흠.”
잠깐 고민하던 그가 아공간 주머니에 네 물건을 수납했다.
“뭐야?”
혜진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세현은 그저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몰라. 중앙의 제단인지 뭔지에 가보면 알겠지.”
“어떻게 곧바로 사라졌지? 그, 유령 같은 건가?”
“애초부터 실체가 없었을지도.”
세현이 수납한 정체 모를 물건들을 건네주기 위한 일종의 장치였을 수 있다. 다만 그런 장치에 불과한 존재의 눈동자가 파란색이라는 사실이 어쩐지 꺼려졌다.
세현은 혹시 몰라 그 의문의 존재가 있던 자리를 샅샅히 살폈다. 하지만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셋은 별다른 성과 없이 왔던 길을 돌아 나왔다.
“어차피 중앙으로 갈 생각이었으니, 거기 가보면 답이 있겠지.”
“위험하면 어떻게 해요?”
“나도 그게 걱정이다. 아니면 주변부터 전부 돌아보고 나 혼자 가보는 방법도 있고.”
파란색 눈동자까진 어찌어찌 둘을 지키면서 싸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난 번의 왕자와 비슷한 힘을 가진 상대라면, 처음부터 전력을 다할 경우 충분히 빠르게 제압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가 그 이상의 존재라면, 아무리 세현이라도 두 명을 지키면서 전투할 수는 없다.
“일단 중앙부터 가자. 수정구를 준 걸 보면 우리가 뭔가를 해야만 하는 곳일 테니, 반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별 일 없을지도 모르니까.”
나름 합당한 추론이었다. 지금 당장 혜진과 김유린을 돌려보낼 수는 없다. 혜진은 실전경험과 성장을 위해 남아야 하고, 김유린도 실전경험과 성장, 그리고 이곳에서 등장하는 생명체들의 약점과 특징을 분석해야 했다.
그들은 폭포를 완전히 벗어나 원래 계획했던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다만 분위기는 이전보다 좀 더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이곳은 던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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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뒤에 공간있어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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