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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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이게 나은 것 같습니다.”
“저도 이게 나은 듯합니다.”
모두가 한결같이 주황색 룬으로 사는 옷이 낫다는 의견을 표해왔다.
당연한 일이다. 빨간색 룬 옷은 아무래도 주황색 룬 옷보다 모양새도 뒤쳐졌을 뿐더러, 방수와 더러움 방지 기능은 있어도 그보다 중요한 온도조절 기능이 없었다.
남한테 쓰는 것도 아니고 부리는 수하들을 위한 옷이다. 세현은 이미 주황색 룬으로 사는 옷을 전부 구매해 놓은 상태였다.
덕분에 주황색 룬이 거의 바닥나긴 했지만, 충분히 의미 있는 지출이었으니 괜찮다.
온도조절은 지금처럼 추운 시기에는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기능이다. 아무리 가진 룬의 수가 빠듯해도, 빨간색 룬으로 사는 옷에 온도조절 기능이 없는 이상 둘 중 무엇을 선택할지는 고민할 대상이 아니었다.
따라서 이들을 전부 불러 모은 이유는 사실상 통보와 함께 물건을 나눠주기 위함이었다.
세현이 빨간색 룬 두 개로 사는 ‘리오론도 병사 제복’을 뒤로 치우며 다른 옷을 꺼내들었다.
주황색 룬으로 사는 것보다 좀더 고급스러운 느낌이 나는 옷이었다.
“이건 주황색 룬 5개, 또는 노란색 룬 1개로 사는 옷이다.”
모두가 테이블에 올린 그 옷으로 시선을 돌렸다.
[리오론도 장교 제복(뛰어남): 착용자를 정신계 마법에서부터 보호한다. 방수와 더러움 방지, 온도조절 마법이 부여되어 있다.*정신계 마법에서부터 보호: 각종 정신계 마법에 대한 저항력을 상승시킨다.]
“하급 지휘관 옷은 모든 길드원들에게 두 벌씩 지급할 거다. 그리고 이건 너희 같은 전단장부터 지급할 옷이야.”
“너무 비싼 것 같습니다.’
김인환이었다.
그는 세현의 지출을 걱정하고 있었다. 아무리 길드를 위해서라지만, 노란색 룬까지 드는 옷은 너무 비싸다고 생각한 거다.
그 정도 괴물은 결코 잡기가 쉽지 않다. 아주 요긴하게 사용되는 아공간 주머니를 구입할 수도 있다는 것에서 그 가치가 증명된다.
하지만 세현은 고개를 저었다.
“주황색보다 더 여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그, 그렇습니까.”
노란색 룬은 옷을 다 사고도 89개가 남았다.
전단장 급 인원이 얼마 안 되니 그만큼 소모도 적을 수밖에 없다.
“꼭 제복을 맞춰야 할 필요가 있어요?”
발표하듯 손을 들고 말한 것은 김유린이었다. 세현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 가지 필요가 있지. 첫째, 뛰어난 마법적 기능. 둘째, 구성원의 소속감 및 자부심 향상. 셋째, 보여주기.”
“보여주기요?”
앞의 두 개는 그렇다 치고, 보여주기라는 이유는 살짝 뜬금없다.
물론 그건 김유린의 생각이었다.
“남들이 이런 세상에 통일된 제복까지 차려입은 우리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어……”
“단순한 과시가 아니다. 이 자체로 사람을 끌어모을 수도, 잠재적인 마찰을 해소할 수도 있어. 이걸 입은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무서워하고 따르게 된다는 거지. 지금 당장은 몰라도 나중엔 반드시 그렇게 된다. 그건 고스란히 길드원들의 소속감과 자부심 향상으로 돌아올 테고.”
그렇게 단언한 세현이 각 전단장들, 김인환과 권태수, 신소진에게 아공간 주머니 두 개씩을 나눠줬다.
“방금 보여준 하급 지휘관 제복 70벌이다. 안에는 너희가 입을 장교 제복도 있고. 남는 건 보관하고 있다가 신입이 들어오면 보급하도록 해. 하얀색 룬으로 사는 신발과 장갑도 비슷한 수로 넣어놨으니까, 잊지 말고 나눠줘라. 사이즈나 성별은 알아서 맞춰지니 구분하지 않아도 된다.”
제복이 있으면 당연히 그와 같이 신을 부츠와 장갑 같은 것도 필요한 법.
그것은 일전에 혜진과 함께 논의하며 어울리는 것을 미리 골라놨다. 딱히 아이템이라 할 수 없는 평범한 지구의 물건이었다.
지구의 기술력은 결코 허접스럽지 않다. 마법적 기능이 없다 뿐이지 충분히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좋은 물건들이었다. 가격이 싼 것은 덤이다.
속옷은 외부로 보여지는 것도 아니고 이미 질 좋은 것들이 많으니 당장은 괜찮다. 세현이 이예슬 쪽으로 시선을 주며 아공간 주머니 두 개를 내밀었다.
“생산직이 입을 옷이다. 네 것은 여기 전단장들 것과 같으니 찾아서 입고, 말했지만 너는 생산직들의 대표야. 작업하는데 있어 내가 모르는 더 필요한 물건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때마다 바로 보고하는 것 잊지 마라.”
“알겠습니다.”
“김유린, 박수진, 너희 것들은 여기.”
그는 마지막으로 다른 하나의 아공간 주머니를 옆에 있던 박수진에게 건넸다.
“오늘 일과 끝나고 저녁에 전부 나눠주도록 해. 내일은 일과시간에 사복입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도록 숙지시키고.”
전달을 마친 세현이 혜진을 제외한 다른 이들을 내보냈다. 한창 훈련할 시간이다. 지휘관격인 이들이 계속 자리를 비워서는 곤란했다.
그들이 방을 나서자 세현이 무한의 주머니에서 길드장과 부길드장을 위한 옷과 신발 등을 꺼내들었다. 모든 길드원들이 제복을 입는데 세현과 혜진이라고 안 그럴 수는 없다.
“받아.”
혜진이 자신에게 건네지는 옷을 받아들었다. 그녀로서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중급 마법 저항력: 마법상 상태이상과 피해 효과를 상쇄시킨다.]
당연하지만 장교복과는 또 다른 디자인이었다. 약간이지만 보다 화려했다. 물론 리오론도 군대의 야전에서 사용하던 제복이니만큼 딱 적당한 수준의 화려함이었다.
“이게 우리가 입을 거야?”
“그렇지.”
“얼마 짜리야?”
“초록색 룬 하나.”
“헐.”
초록색 룬 하나, 혜진이 새삼스레 다시 옷을 살폈다.
확실히 성능이 좋긴 했다.
“내일부터 잘 입고 다녀. 모범을 보여야지.”
“알겠어. 그런데 왠지 부끄럽다……”
“응?”
“이런 걸 입어 본 적이 있어야지.”
그러면서 옷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에 세현이 피식했다.
제복 같은 것과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아왔으니 어색할 수도 있을 거다. 게다가 시작부터 최고 지휘관임을 나타내는 옷이 아닌가.
“내가 동생을 잘 두긴 했구나. 이런 것도 입게 되고. 하는 거 없이 얹혀만 가는 기분인데.”
“그건 당연한 거야. 나처럼 이세계라도 갔다 오지 않은 이상, 벌써부터 두각을 드러내고 큰일에 기여한다는 게 특이한 거지. 앞으로 잘하면 돼.”
“알겠어.”
“아 참, 이것도 받아.”
세현이 마지막으로 준비했던 아공간 주머니 두 개를 혜진에게 건넸다.
“애들 옷이야.”
“아, 어제 본 그거?”
아직 훈련에 참여하지 못할 어린아이들을 위한 옷이다. 당연히 제복은 아니었다. 그냥 활동하기 편한 것들로 하얀색 룬으로 구매하는 지구의 옷가지였다. 어제 저녁 세현과 혜진이 열심히 고른 것들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세현은 옆에서 가만 있었고 혜진이 열심히 골랐다.
“누나가 정현욱 그놈한테 전달해주면 돼.”
“그래.”
고개를 끄덕이던 혜진이 세현을 쳐다봤다.
“그 사람, 너랑 같은 세계에 있던 사람이라며?”
“어.”
“그 사람도 너만큼 강해?”
“그럴 리가. 음…… 그래도 현재로선 나 다음으로 강하긴 하지.”
“그럼 엄청 쎈 거 아냐?”
세현이 잠깐 고민했다.
정현욱 정도면 지금 상황에서 충분히 ‘엄청 쎄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런데 왜 애들이나 돌보게 해? 그거 낭비잖아?”
“낭비라니, 다 나름의 이유가 있어.”
세현이 개인적으로 껄끄럽게 생각한다는 것 외에도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중 가장 큰 것은, 항상 성에 상주하며 만약의 사태를 대비할 존재의 필요성이었다.
그러려면 애초에 어떤 임무도 맡겨서는 안 된다. 처음부터 정현욱에게 애들이나 돌보라고 못을 박은 진짜 이유였다.
물론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딱히 없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정현욱은 애들을 좋아하면서 동시에 돌보는 것에도 소질이 있었다. 무림고수의 몸놀림으로 빠르게 왔다갔다 하며 애들을 케어하던 모습은 가히 달인의 경지라 해도 손색이 없었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그놈하고 너무 친해지지 마. 겉보기엔 누나랑 비슷한 나이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10살도 더 먹고 결혼까지 했던 유부남이니까.”
“헐…… 그, 그래.”
혜진이 어쩐지 떨떠름한 표정으로 자신의 옷과 신발 등을 아공간 주머니에 챙겨 상황실을 나섰다.
혼자가 된 세현이 벽 한쪽을 가득 장식한 지도를 보며 앞으로의 계획을 점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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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약간 어색해하던 길드원들도 며칠 걸리지 않아 모두 적응했다.
당연하지만 누구도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불만은 커녕, 바뀐 옷의 외관과 성능에 더 없이 행복해했다. 다른 모든 것을 제쳐두고서라도, 일단 입고만 있어도 따뜻해지는 옷이다. 이런 대단한 것을 입으면서 불만을 표한다면 당장 쫓겨나도 할 말이 없다.
한층 사기가 오른 류한 길드는 성 주변 청소에 한층 더 박차를 가했다.
오늘 정찰 임무를 맡은 것은 김인환의 1전단이었다.
2전단은 크로나드 숲이라 이름 지은 던전에 식량을 확보하러, 3전단은 김유린과 함께 성에서 훈련을 받고 있었다.
박수진은 1전단과 함께 움직이는 중이었다.
현재 그들이 위치한 곳은 성에서 남쪽으로 4km 정도 내려온 곳으로, 길드성 지도의 생명체 탐지 범위 끝자락이었다. 이제는 이만큼 이동하지 않으면 괴물은 구경조차 못한다.
“캬아아악!”
역시나 이곳에서도 가장 먼저 그들을 반긴 것은 좀비였다.
지구에 인간이 많았던 만큼 좀비도 많을 수밖에 없다. 그중엔 지금 뛰쳐나온 놈처럼 굉장히 흉측한 것도 많았다.
뱃가죽이 완전히 찢겨져 내장을 바닥에 질질 끌고 다니는 여성 좀비였다. 그런 몸으로도 지저분한 머리칼을 휘날리며 미친듯이 뛰어온다. 그 뒤를 따르는 다른 좀비들 역시 상태가 그리 좋지 못했다.
끔찍한 모습에 인상을 찌푸린 김인환이 앞장서서 방패를 치켜들었다.
상점에서 주황색 룬으로 구매한 기사의 방패, 윗부분은 둥글고 아래쪽은 뾰족한 형태의 카이트 실드(kite shield)였다. 사람의 상반신을 가리기에 충분한 크기일 뿐더러, 지금처럼 공격적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쾅!
“꺽!”
강력한 힘이 담긴 방패 밀치기에 좀비가 비명도 못 지르고 비틀거렸다. 뒤이어 어김없이 날아든 칼날이 그런 좀비의 어깨를 꿰뚫어 완전히 침묵시켰다.
마력강화에 뇌진대력공, 레벨 업과 강인함 능력치 점수를 올린 힘까지 더해진 공격이다. 마음먹고 내지르는 그의 방패 밀치기는 일반인이라면 단숨에 절명시키고도 남을 정도로 강력했다.
콰직! 콰가각!
단순히 밀치기만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방패와 전신의 갑옷을 무기처럼 사용하며 달려드는 좀비들을 강타해 움직임을 경직시킨다. 이어지는 검격은 여지없이 어깨를 꿰뚫어 확실하게 숨통을 끊었다.
김인환이 선두로 좀비들을 돌파하면 그 뒤의 기사와 전사들이 부딪혀오는 좀비들 전부를 학살했다. 그렇게 근접 전투원들이 직접 몸을 부딪히는 전선 뒤쪽에선 사격수와 마법사들이 멀리서 몰려오는 좀비들을 노리고 지원공격을 가했다.
투타타타타타타! 타타타타!
각 전단별로 2정씩 보급받은 K-3가 엄청난 속도로 푸른빛 불을 뿜는다. 실탄은 워낙 탄이 걸리는 경우가 많고 총열의 온도가 급격하게 상승해서 오직 마력탄환으로만 운용했다.
그래도 충분히 강력했다. 사격수들 역시 평범한 인간의 신체능력을 초월한지 오래, 그들은 K-3를 일반 소총처럼 어깨견착으로 사격하고 있었다.
마법력의 소모가 엄청나긴 했지만 모든 사격수들이 번갈아 사용하는 것으로 그 단점을 상쇄했다. 덕분에 K-3는 끊임없이 푸른빛 불을 뿜어내며 좀비들을 학살했다.
스태프를 든 마법사들이 외우던 주문이 완성되어 허공을 가로질렀다. 쐐기 모양으로 위에서부터 빠르게 내리꽂힌 불덩이들이 한데 모여 달려들던 좀비들을 강타해 땅이 울릴 정도의 폭발을 일으켰다.
스물에 가까운 좀비들의 육신이 무자비하게 박살나 불타올랐다. 소음이 엄청났으니 주변의 좀비들이 모조리 몰려올 테지만, 그건 그들이 바라는 바다.
일행의 후미를 맡아 달려드는 좀비들을 도륙하는 건 다섯 정도의 근접 전투원과 박수진이었다. 당연하지만 그 중에서 박수진의 활약이 가장 눈부셨다.
내장된 마법이 발동해 불길에 휩싸인 검을 종횡무진 휘두르는 그녀의 뒤로는 어깨부터 완전히 토막났거나 구멍이 뚫린 좀비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달려드는 좀비를 피하지 않고 그대로 사선으로 썰어버린 그녀가 한 발을 회전축으로 삼아 휘돌며 두 번 연속 검격을 내지른다. 그에 접근하던 다른 좀비들이 소리도 없이 사선으로 조각났다.
썩은 피와 내장 같은 내용물을 쏟아내는 놈들을 빠르게 지나친 박수진의 검이 쉬지 않고 움직였다. 모든 움직임에 군더더기가 전혀 없었다. 이십사수매화검의 초반 여덟 초식만을 사용하는데도 암향표와 어우러지자 그 위력이 막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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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더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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