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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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 손놈들
살기가 뿜어지며 칭호 ‘무리 학살자’의 효과가 발동했다.
세현에 비해 한참이나 수준이 낮은 군인들은 돌이라도 된 것처럼 굳어 아무 움직임도 보이지 못했다. 그저 눈만 간신히 깜빡이며 미약하게 몸을 떨 뿐이었다. 정신적으로 완전히 제압당했다.
그런 군인들을 슥 훑어본 세현은 짓밟힌 채 컥컥대는 대령에게 시선을 돌렸다.
“나는 나한테 검이나 총 따위를 겨눈 놈을 살려둔 적 없어. 알아?”
“으으……”
“백 명도 안 되는 병력으로 남의 영토에서 그 수장에게 총을 겨누다니, 너 같은 저능한 놈이 어떻게 대령이나 달았을까.”
그 독설에도 불구하고 대령은 반응하지 못했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니 당연하다.
“선택권을 주마. 첫째, 얌전히 항복하고 붙잡힌다. 둘째, 여기서 전부 죽는다. 골라.”
“크허억!”
동시에 가슴을 부숴버릴 것처럼 내리누르던 압력이 사라졌다. 엄청난 통증에 신음조차 내지 못하고 연신 기침만 하던 그는 뒤이어 손목에서 느껴지는 타는 듯한 통증에 얼굴을 창백하게 물들였다.
“내 말 안 들리나?”
“히익…!”
완전히 공포에 젖은 김재훈 대령의 가랑이가 별안간 눅눅해졌다.
오줌을 지린 것이다. 손목이 날아가고 질식 직전까지 몰린 그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나약해 빠진 정신력이다. 무려 대령 씩이나 되는 지휘관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후.”
한숨과 함께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하긴, 대한민국 군대가 썩어버린 게 어디 하루이틀의 일인가. 이놈은 전투가 뭔지 쥐뿔도 모르면서 그럭저럭 봐줄 만한 행정능력과 줄타기 실력으로 승진한 놈이 분명하다.
살려달라는 말도 제대로 꺼내지 못하고 버벅대는 모습은 굉장히 추했다.
“이봐, 너. 네가 대답해라.”
세현이 어정쩡하게 굳어 있던 양복 사내를 가리켰다. 지목받은 그가 크게 움찔했다.
“얌전히 항복할래, 아니면 다 죽을래?”
상대는 대답하지 않았다. 세현이 말을 걸어준 덕분에 간신히 공포에서 벗어난 그가 눈알을 굴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총기류를 든 인원은 고작 10명 정도.
근처의 민간인들도 나름의 무장은 했을지언정 총을 들고 있지는 않다.
반면 그들은 총을 든 군인들의 수만 70명을 넘는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싸워서 질 리가 없다.
그가 대답을 머뭇거리며 머리를 굴리는 사이, 속내를 짐작한 세현이 쓰러진 대령을 힐끗 쳐다보고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빤히 보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사람이 사라졌다. 놀라서 눈을 부릅뜬 양복 사내 앞에 귀신처럼 나타난 세현이 거칠게 멱살을 잡아챘다.
“대가리 굴리지 말고 대답해. 어떻게 할 거냐?”
“쏴! 쏴버려!”
양복 사내가 발작적으로 고함치며 세현에게 주먹을 뻗었다. 평범한 사람치곤 나름대로 매서운 주먹질, 허나 그 주먹이 미처 다 뻗어지기도 전 세현의 검집이 먼저 움직였다.
콰직!
“꺽!”
하얀색 이빨 조각들이 허공을 난다.
거의 턱이 부서지다시피 한 남자가 눈을 까뒤집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여전히 공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군인들은 반사적으로 총을 들어올리다 다시 굳어버렸다.
세현의 신형이 다시금 사라졌다. 그리고 두 번째 양복 사내 앞에서 나타났다. 기겁해서 본능적으로 도망치려는 그의 멱살을 잡아챈 세현이 으르렁거리며 물었다.
“말해, 어떻게 할 거냐?”
“하, 항복! 항복하겠습니다!”
마침내 원하는 대답이 나왔다.
직속 지휘관은 아니지만 자신들을 이끌던 대령과 같이 움직이던 사람들이다. 그런 자들 중 하나가 항복을 입에 담자 안 그래도 갈팡질팡하던 군인들은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다.
“다 제압해. 감옥으로 데려갈 거다.”
“예!”
뒤쪽의 류한 길드원에게 명령을 내린 세현이 P97K를 들어 성으로 상황을 알렸다.
이들을 어떻게 할지 아직 완전히 정하지 못했지만, 일단 별다른 전투 없이 생포했으니 천천히 고민해 볼 생각이었다. 감옥을 활용하는 제대로 된 방법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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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용인……”
한 여자가 중얼거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시체 하나 찾아볼 수 없는 깨끗한 거리에 드문드문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각자 무기를 차고 있긴 하지만 서로를 경계하거나 좀비의 존재를 걱정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성으로 향할수록 그런 이들의 모습은 더욱 많아졌다. 심지어는 도로를 통해 차들이 굴러다니고 있기도 했다.
자신들의 지역보다 훨씬 더 안정된 모습이다. 아니, 단순히 그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미 기반이 마련됐다.
이대로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이곳은 도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보이는 모습의 뒷면에는 그녀가 짐작할 수도 없는 엄청난 노력의 산물이 있을 터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이 성주인가 봐요.”
– 더욱 만나야겠군요. –
뒤쪽에서 선 두 여자들 중 한 명이 대답했다. 앞장 섰던 여자는 뒤돌아 서서 자신의 일행을 살폈다.
거기엔 후드를 푹 눌러쓴 채 서 있는 여자 두 명이 있었다. 이곳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오로지 이들 덕분이다. 지금의 그녀를 만든 것 또한 그렇다.
그래서 더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자칫 일이 틀어졌다간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니까.
“정말 그걸로 괜찮을까요?”
– 탐지계열 스킬이나 아이템이 없다면 알아낼 수 없습니다. 걱정 마세요. –
후드 사이로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이 살짝 드러났다. 평범한 밤색 눈동자로 맞은편의 그녀를 바라보며 안심하라는 살짝 웃어 보인다.
하지만 그건 진짜 모습이 아니다. 그래서 걱정하는 것이다.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들켰을 때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짐작할 수 없었다. 자신도 처음엔 이들을 보고 얼마나 경계했는지 모른다.
문제는 그렇다고 여기서 그냥 돌아갈 수도 없다는 점이었다. 그들이 처한 상황에서 돌파구를 만들어내려면 외부의 도움을 받는 방법이 유일하다.
“만약 들키면 어떻게 해요?”
– 최악의 상황이라도 탈출 정도는 가능할 거예요. 그리고 혹시 아나요? 상대가 길드장님만큼 이성적일지. –
“으으…… 저도 처음엔 안 그랬잖아요.”
– 심적으로 여유가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이 정도 세력을 일굴 정도의 사람이라면 그때의 길드장님처럼 날카로운 상태도 아닐 거고, 우리 정체가 발각되어도 다짜고짜 죽이려 들 정도로 생각이 짧지도 않을 거예요. 마지막으로, 지금 와서 다른 방법을 찾을 수는 없잖아요? –
그렇다.
여자가 입을 깨물며 각오를 다졌다. 이곳까지 오면서 허비한 시간만 상당하다. 이미 다른 선택지를 고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가요. 당연하지만 이야기는 저만 할게요. 만약에 말을 해야 할 상황이 되면, 아시죠?”
– 그럼요. –
그들은 곧 멀리서 어렴풋이 보이는 성을 향해 다시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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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훈 대령 무리를 붙잡아 가둔지도 삼일이 흘렀다.
영주가 된 후로 벌어들이는 길드 포인트의 양이 껑충 뛰었다. 덕분에 식당과 숙소, 훈련장과 감옥 등을 무리없이 업그레이드 할 수 있었다.
식당의 경우 기대했던 자판기의 음식 종류 추가는 없었다. 그저 딱딱하던 빵이 조금 부드러워진 정도가 끝이었다.
아무래도 자판기에서 괜찮은 여러 종류의 음식이 나오게 만드려면 꽤 많이 업그레이드를 해야 할 듯하다. 어쩌면 끝까지 업그레이드를 해도 빵만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의 경우 8인실이었던 것이 넓이는 그대로인 채 6인실로 바뀌며 방들의 개수가 많아졌다. 훈련장은 반 배는 더 넓어져 더 많은 인원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게 됐고, 지하 감옥의 변화도 숙소와 마찬가지로 꽤 극적이었다. 기존엔 훈련장과 붙어 있던 구조였던 감옥이 약간의 낮은 계단을 통해 반 층 정도 아래로 파묻히며 넓어진 것이다.
언젠가 쓸 일이 있겠지 싶어 업그레이드를 해놨던 그곳에 근 80명에 달하는 인원들이 들어차게 됐다.
손목이 잘리고 턱이 부서졌던 놈들은 응급조치를 끝내고 독방에 넣어둔 상태였다. 오늘이나 내일 중 그들을 통해 서울의 대략적인 상황을 좀 알아볼 생각이었다.
그들을 생포해 감옥에 처박았다는 것은 일단 이승원 소령에게만 알렸다. 당시에 무전기로 오고간 대화가 떠오른다.
– 그 사람들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
“아직 결정한 건 없어. 일단 서울에 대한 정보를 좀 캐내고, 그 다음 죽이든 돌려보내든 해야겠지. 회유할 수 있는 인원은 영지민으로 흡수할 거고.”
– 음…… 서울에서 무전이 오면 그냥 잘 모르겠다고 둘러대는 게 낫겠습니까? –
“그게 좋겠지.”
어차피 통신망이 불완전한 세상이다.
서울 쪽 이들은 아직 김재훈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도 모를 것이다. 시간이 더 지나 무언가 이상을 감지한다 해도,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려면 직접 사람을 파견할 수밖에 없다.
그때쯤이면 이미 필요한 정보는 모두 캐내고 대응방침을 세웠을 것이다.
그가 당시의 이승원 소령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서울 쪽 일을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던 중이었다.
허리춤에 매달린 P97K가 울렸다. 정문 근무자의 보고였다.
– 정문입니다. 강원도 평창 쪽에서 찾아왔다는 세 명의 사람들이 길드장님을 뵙고 싶다고 합니다. –
“강원도 평창?”
– 예. 성주를 뵙고 싶다고 말하는데, 일단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들 세 명이고 별다른 무기는 없습니다. –
“……성주를 찾아왔다라.”
세현이 머릿속에서 한반도 지도를 떠올리며 각 지역의 거리를 가늠했다.
류한 길드가 자리잡은 용인과 강원도 평창은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이곳에서 대전까지의 거리와 비슷하다. 그들이 무슨 용건을 가졌든, 강원도 쪽의 상황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날 가치가 있었다.
게다가 성주 운운한 것을 보면 성의 존재를 알고 있는 듯하다.
“요즘따라 손님이 많은데.”
며칠 전에는 대전에서 왔다는 이강혁이, 그 다음에는 징발을 운운하던 손놈들이, 그리고 지금은 강원도 평창에서 왔다는 정체불명의 사람들까지.
살짝 공교롭긴 하지만 이런 방문자들이 계속해서 나타나도 별 이상하지 않은 시기이긴 하다.
이전처럼 치안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였다면, 다른 곳에서 사람이 왔더라도 그냥 스치듯 지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는 P97K를 조작하며 말했다.
“들여보내. 먼 곳에서 왔다는데 만나는 봐야지. 따로 제제를 가할 필요는 없다.”
– 알겠습니다. –
집무실에 있던 세현은 1층의 홀로 향했다.
그가 먼저 도착하고 잠시 후, 내성의 문이 열렸다. 길드원의 안내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서는 세 명을 본 세현이 미약하게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들을 안내했던 길드원이 다시 제 위치로 돌아가며 문을 닫자, 1층에 잠깐 침묵이 내려앉았다.
“앉아라.”
그는 반대편 소파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세 명의 여자들은 조심스레 움직이며 그곳에 앉았다. 상점에서 구입한 듯한 느낌의 로브를 입고 두 명은 후드를 깊숙이 눌러쓴 상태였다.
“반갑습니다. 저희는……”
“인간이 아니군.”
세현이 말을 끊었다.
먼저 입을 연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둘이 인간이 아니다.
세현의 눈에는 그들의 진짜 모습이 보였다. 리오론도 왕가의 서클렛은 모든 거짓과 환영을 간파한다. 껍데기처럼 뒤집어쓴 환영 안으로 인간과 유사하지만 확실히 다른 모습이 보인다.
인간과 괴물일지도 모르는 이종족의 조합이라.
단순하게 생각했던 상황이 꽤 흥미롭게 됐다.
“어, 어떻게 아셨어요?”
중앙의 여자가 조심히 물어왔다.
감추려던 사실을 들켜 적잖이 긴장한 듯한 모습이다. 근무자의 보고대로 나이는 많아봤자 30을 넘지 않을 듯한 외모, 경험이 부족해서인지 더 많이 티가 나는 것 같다.
“네가 대표인가?”
“윤하늘입니다.”
“한세현이다. 이야기 전에 옆의 둘에 대한 것부터 듣고 싶은데. 적인지 아닌지는 알아야지.”
그의 시선이 윤하늘의 양옆에 앉은 둘을 훑었다. 그들은 정체가 발각난 것 치고는 꽤 침착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완전히 동요를 감추지는 못하고 윤하늘을 곁눈질하기도 했다.
꼴을 보면 적어도 인간에게 무조건 적대적인 존재는 아닌 모양이다. 윤하늘이란 여자가 저 둘에게 강제로 조종당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윤하늘 왼편의 존재가 천천히 후드를 벗었다. 그리고 선명한 노란색 눈동자가 세현을 직시한다.
– 반갑습니다. 저희는 벡스, 라는 종족입니다. 이곳의 개념으로는 엘프에 가깝습니다. 변신할 수 있다는 점에선 라이칸스로프와도 비슷하죠. 먼저 말씀드리자면, 저희는 인간과 공존하고 싶어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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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내용을 좀 더 부드럽게 만드려고 다듬다보니 다시 늦었습니당. ㅜㅜ 혹시 기다리신 분 계시다면 사죄의 말씀 올립니다. (__)
부디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추천 꾹!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