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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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 손놈들
“그걸 어떻게 믿지? 내가 본 이종족들은 일단 공격부터 해오던데.”
– 에레도스 시스템 때문입니다. 그에 대해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세현의 움직임이 잠시지간 멈칫했다.
“이름이?”
– 아엘라 슬 벡케스입니다. 아엘라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
세현이 침묵하자 여자, 아엘라가 다시 말을 이었다.
– 일단 먼저, 저희는 강원도 평창이라는 지역의 인간들과 공존하여 길드를 창설했다는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
“뭐?”
– 길드의 이름은 델비아, 저희 언어로 조화와 공존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즉, 저희는 이미 시스템 적으로도 인간의 편에 속한 존재들입니다. –
“……”
흥미로운 이야기에 세현이 몸이 저도 모르게 약간 앞으로 쏠렸다.
아엘라라는 여자는 세현으로서도 몇 번 본 적 없을 정도의 미모를 가졌다. 아직 이름을 밝히지 않은 다른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머리카락의 색이 눈처럼 새하얗다는 것도 특이했다. 위쪽으로 치솟은 귀도 상당히 길고 뾰족했다.
변신할 수 있다는데 어떤 모습일지, 절로 궁금해진다.
– 대부분의 ‘이주자’들이 인간에게 적대적인 이유는 힘 때문입니다. 인간들이 괴물을 사냥해 강해질 수 있듯, 저희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주자들은 힘에 대한 갈망이 다소 맹목적이다 싶을 정도로 강합니다. 그런 자들이 많이 살아남았으니까요. –
자신의 세계가 멸망할 때까지 어떻게든 살아남은 존재들이다. 확실히 그럴 만했다.
“이주자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나?”
– 멸망한 세상에서 옮겨왔기 때문입니다. 저희끼리는 이주자라고 부르고 있어요. –
“그런데도 인간과 협력할 수 있다고?”
– 가능합니다. 이런 방법을 떠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이미 저희 세상에서 비슷한 사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먼저 저희와 전쟁을 원하지 않고 함께 한 존재들이 있었지요. 그렇기에 저희도 인간과 협력해서 힘을 기른다는 선택지를 고를 수 있었던 겁니다. –
그 뒤로도 이야기는 계속됐다.
다른 세상에서 에레도스 시스템을 미리 겪었을 이들의 경험을 듣는다는 건 제법 가치 있는 일이었다.
왕자가 했던 대략적인 설명이나 뜬구름 잡는 소리만 펼쳤던 다른 놈들의 것보다 훨씬 알찬 정보였다.
“그럼 혹시 에레도스의 목적이 뭔지도 아나?”
– 저희도 그건 모릅니다. 결국은 견뎌내지 못하고 멸망했으니까요. 그렇기에 더더욱 이곳의 인간들과 힘을 합쳐야 한다고 생각한 겁니다. 저희끼리만 뭉쳐서 힘을 키워봤자 한계가 있을 테니, 결국은 끝나지 않는 전쟁을 계속해서 치르게 될 뿐…… 에레도스의 시련을 견뎌내면 반드시 평화가 올 것이라고, 그렇게 믿습니다. –
세현이 윤하늘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은 듯한데.”
“네. 이분들이 아니었으면 성도 갖지 못했을 거예요.”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인 세현이 잠시 생각에 빠졌다.
죽이거나 지배하거나, 아니면 협력하여 공존하거나.
고블린들을 지배할 수 있고 트윈테일을 길들이는 것을 보며 한 번 생각해본 적 있는 가정이었다.
만약 세현이라면 그런 위험부담을 감수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도 믿지 못하는 판에, 능력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다른 존재를 왜 믿는단 말인가?
하지만 눈앞의 윤하늘이라는 여자는 이미 이들에게 도움을 받아 성까지 먹고 나름대로 세력도 만들었다.
“너희 같은 경우는 아주 드문 케이스겠지.”
– 그럴 겁니다. 인간들이 다른 존재를 믿지 못하듯, 이주자들도 섣불리 인간을 믿지 못하니까요. 저희도 처음 윤하늘 씨와 협력관계를 만들기까지 상당한 노력을 쏟았습니다. 그게 이 전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
여태까지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리오론도 왕가의 서클렛은 반응하지 않았다. 전부 진실이거나 적어도 진실이라도 믿고 있다는 뜻이다.
“적이 아니라는 건 알겠다.”
– 믿어주시니 감사합니다. –
“감사는 됐고. 이제 날 찾은 이유를 들어보지.”
아엘라는 윤하늘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제부터는 그녀의 차례라 말하는 듯한 모습이다.
시선을 받은 윤하늘이 작게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저희 델비아 길드는 강원도 평창 지역에 성을 하나 갖고 있습니다. 그곳을 거점으로 점점 주변을 정리하고 세력을 확장할 생각이었죠.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그래서 혹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하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이곳에 또 다른 길드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거든요.”
“소식을 들었다고?”
“네. 생존자들에게서요.”
가족을 찾아온 생존자들이 몇 있었다는 모양이다. 그들을 통해 이곳의 상황을 전해 듣고 류한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길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정확히 왜 도움을 원하는데?”
“지원병력을 좀 파견해주셨으면……”
“아니, 왜 도움을 원하냐고 묻는 거야.”
“그, 근처에 필드형 던전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영역이 점점 넓어지고 있어서 가만 놔두면 성이 있는 곳까지 괴물들이 출몰하게 될 텐데, 저희끼리 공략하기엔 너무 위험해요. 가능하다면 안전하게 공략하고 싶어요.”
“아아.”
필드형 던전의 생성이라. 확실히 필드형 던전의 난이도는 다른 이들이 공략하기엔 조금 높다.
“원래는 없던 던전이 생긴 건가?”
“아니요. 원래부터 있던 던전이에요. 그런데 최근에 갑자기 범위가 넓어지기 시작하더니 그 속도도 점점 빨라지고 있어요.”
거기까지 말한 윤하늘이 잠시 머뭇거렸다.
“도와주실 수 있나요?”
세현이 섣불리 대답하지 않고 고민에 잠겼다. 일단, 뭔가를 숨기려 하지 않고 솔직하게 정보를 오픈하며 도움을 구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게 단순히 나이가 어려서 순진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필드형 던전을 처리해주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거리가 조금 멀긴 하지만 그가 마음먹고 움직이면 하루도 걸리지 않는다.
“도와주면, 대가는?”
하지만 그렇다고 자원봉사를 해 줄만큼 손쉬운 일도 아니다.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그에 들어가는 시간과 수고의 문제였다.
“대가는 던전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전부 드릴게요.”
나름대로 비장한 표정으로 말해오는 그녀에게 세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그, 그리고……”
말을 더듬으며 열심히 눈을 굴리는 게, 세현의 반응이 상정 외였던 모양이다. 당황하는 그녀를 도와주려는 듯 아엘라가 나섰다.
– 전력으로 도와주실 필요는 없어요. 노란색 등급의 적과 싸울 수 있는 전력을 조금만, 그 정도면 충분해요. –
“아, 우리더러 완전히 정리해달라는 게 아니라, 부족한 전력을 보충만 해달라는 거군.”
– 네, 맞아요. –
전력만 일부 보충해주면서 던전에서 나오는 부산물은 전부 갖는다.
그렇게 생각하면 썩 나쁜 제안은 아니다. 서로 비슷한 기여를 하며 던전을 클리어한다고 가정했을 때 말이다.
“우리의 전력만으로 그 던전을 완전히 클리어해주면?”
– 그게 가능한가요? –
“가능하니 말하는 거지. 사실 그편이 더 편해.”
괜히 어설픈 전력을 빌려줬다가 희생이라도 발생하면 오히려 손해다.
아이템이나 경험치 같은 것은 얼마든지 보충할 수 있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게다가 남의 일에 손을 빌려주다 발생한 희생이라면 내부적인 불만이 생길 수도 있다.
“어차피 그 던전의 처리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상황 아닌가?”
– 그렇지요. –
“그럼 이렇게 하지. 우리 힘만으로 정리해줄 테니, 대신 휘하 조직으로 들어와라.”
“……그 말씀은?”
“자세한 내용은 이걸 참고하면 되겠군.”
세현이 무한의 주머니에서 예의 그 계약서를 꺼내들었다. 윤하늘은 물론 아엘라와 다른 한 명까지 허공에 생겨난 검은 구멍에 상당히 놀라워했다.
– 아공간의 일종이군요. –
“그렇지.”
여전히 무한의 주머니에 대해 궁금한 눈치였지만, 눈치를 보는 건지 그 이상을 묻지는 않았다.
윤하늘은 계약서를 받아들어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다만 그러면서도 자신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에 조금 혼란스러운 듯했다.
몇 번이나 계약서를 다시 살피는 그녀를 세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려줬다.
특별한 구속력이나 공증인 같은 것도 없는 계약이지만, 그래도 계약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감이 전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것 자체로 하나의 명분이 될 수도 있다.
물론 공증인이 없는 만큼 한쪽이 그런 적 없다고 우긴다면 특별히 증명할 방법은 없다. 오로지 세현의 류한 길드 스스로를 위한 장치일 뿐이다. 자신들만 납득할 수 있다면 다른 생존자 집단과의 전투로 결속력이 흔들릴 일은 없을 테니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아, 네. 아무래도……”
“보면 알겠지만 딱히 어느 한쪽에 불리한 제안이 아니다. 지금 보여준 계약서는 우리가 주변의 다른 생존자 무리들과 맺은 계약 그대로야.”
“주변의 세력하고도 이런 계약을 맺으신 건가요?”
“그래. 그게 서로에게 좋으니까. 우리는 무리하게 덩치를 불리지 않고도 넓은 지역에 영향력을 뻗칠 수 있고, 그들은 조직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필요한 지원을 받으며 생존률을 올릴 수 있지.”
거기까지 말한 세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자리를 비켜주는 게 편할 거다. 잠시 후 다시 올테니 서로 논의해 보도록 해. 아, 혹시나 문제를 일으킨다거나 하진 않았으면 좋겠어.”
“그런 건 걱정하지 마세요.”
그는 고개를 끄덕인 후 성 밖으로 나섰다. 다른 길드원들이 한창 훈련을 하고 있을 시간이다. 잠시 그들을 봐주고 돌아오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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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겠어요.”
잠시 후 돌아온 세현에게 윤하늘이 말했다.
“그럼 서명하지.”
“예. 그런데, 이런 계약이 의미가 있나요?”
“협의서라고 생각하면 의미가 있지. 서로의 역할과 무엇을 어디까지 요구할 수 있는지 정해두는 것이니까. 이런 것도 없이 그냥 무작정 휘하로 들어온다는 계약을 맺고 싶나?”
“아,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과정은 빠르게 이뤄졌다. 볼펜으로 각각의 계약서 하단에 이름을 적는 것으로 끝이었다.
세현이 계약서 한 부를 윤하늘에게 내밀며 다른 한 부를 챙겨 무한의 주머니에 넣을 때였다.
– 조건을 만족하여 성에 새로운 시설을 건설할 수 있습니다. –
“음?”
언제 한 번 들어본 적 있는 메시지가 머릿속을 울린다. 그가 태블릿을 꺼내들어 당장 확인에 들어갔다.
그런데 윤하늘 역시 같은 메시지를 들은 모양이다. 서로 동시에 태블릿을 꺼내들었다가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먼저 어색하게 웃었다.
“혹시……?”
“그래. 새로운 시설.”
세현이 만든 계약서가 시스템적으로 큰 의미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단 서로 다른 두 길드가 동맹을 맺기 위한 모종의 행위를 했다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태블릿으로 추가된 시설을 살피던 세현은 자신도 모르게 턱을 매만졌다.
순간이동 게이트, 서로의 길드성을 연결하는 통로를 만들어내는 시설이었다. 한 번 게이트를 이용한 자는 12시간이 지나야 다시 이용할 수 있고, 설치비용은 그리 비싸지 않다. 양쪽의 합의가 있어야 설치 가능하고 어느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폐쇄할 수도 있는 구조물이었다.
이게 시사하는 바가 아주 지대했다. 앞으로 추가적인 성을 먹거나 다른 길드와 동맹을 맺으면, 적어도 성과 성 사이에서는 즉각적인 이동이 가능하다는 뜻이었으니까. 성이 여러 개로 늘어나도 영토 관리가 엄청나게 수월해지는 것이다. 12시간의 쿨타임이 있긴 하지만 그 유용성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수준이다.
“혹시 영지민에 대한 시스템 메시지는 뜬 게 없나?”
“네? 그게 뭐죠?”
“아니, 됐다.”
영지민이 되는 조건은 아무런 소속이 없을 것, 그리고 영지민이 아닐 때의 불이익은 전부 전투와 관련된 것이다. 이미 소속이 있고 류한의 영토 안에서 전투를 치르지 않는다면 자신이 불이익을 받는지도 모른다.
그걸 알면서도 물어본 이유는 혹시 동맹을 맺으며 무언가 특별한 게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아쉽게도 빗나갔지만.
“어쨌든 덕분에 시간을 줄이겠군. 시설 설치를 할까 하는데?”
“그, 그런데 저희가 길드 포인트가……”
“우리가 부담하지.”
세현의 입장에선 정말로 별 것 아닌 포인트였다. 그가 태블릿을 조작해서 홀의 여유공간 한 곳에 구조물 설치를 설정했다. 윤하늘에게도 비슷한 과정이 필요한 건지 그녀가 허둥거리며 태블릿을 조작했다.
잠시 후, 다른 시설을 설치할 때와 비슷한 현상이 벌어졌다. 허공에서 생겨난 푸른빛의 입자들이 설정한 자리에 모여들어 반투명한 구조물의 형체를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별로 크지 않은 시설이었기에 과정은 길지 않았다.
두 개의 계단 위로 아치형으로 만들어진 게이트 내부에 건너편의 모습이 은은하게 비추는 푸른빛의 장막이 물결치고 있었다. 크로나드 숲으로 통하는 포탈과 거의 유사한 모습이었다. 자리에서 일어서서 그것을 살핀 세현이 뒤쪽의 윤하늘 일행에게 고개를 돌렸다.
“먼저 건너가서 상황을 전해라. 갑자기 생겨난 시설에서 낯선 사람이 나타나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 나는 잠시 후 따라가마.”
“아! 알겠습니다.”
그녀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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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추천 꾹! 부탁드립니다. (__)
사는 게 쉽지가 않네요… 후… ㅠ 소설처럼 딱딱 생각한 대로만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소설에 제가 생각하는 현실성을 반영하면 엄청난 고구마 글이 탄생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