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75
75====================
벡스
윤하늘의 전투를 보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곳 필드형 던전은 다른 곳보다 괴물의 수가 많았다. 아무래도 넓이 때문인 듯하다.
세 개체의 미스트를 만나 그 중 둘을 한순간에 정리해버린 세현이 윤하늘을 쳐다봤다.
“한 마리 남겼다.”
“네.”
윤하늘이 약간 긴장한 채 앞으로 나서며 손에 검을 만들어냈다. 마전사 클래스의 직업 패시브로 몇 가지 종류의 마력 무기를 자유롭게 만들어낼 수 있는 스킬이다.
쉬아아아악!
거센 바람 소리를 내며 미스트 한 마리가 빠르게 다가온다. 윤하늘은 순식간에 접근해오는 놈을 피해 뒤로 물러서며 허공을 베자, 그 궤적을 따라 푸른빛 기운이 잔류하며 공간을 점했다.
일직선으로 달려들던 미스트는 그 푸른빛 궤적에 몸이 꿰뚫리고서야 그게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황급히 속도를 줄이며 방향을 트는 사이, 역으로 접근한 윤하늘의 검이 놈의 몸통을 빠르게 찔렀다. 이후 반격을 피해 다시 허공에 검격을 남기며 뒤로 물러섰다.
일정 시간 허공에 잔류하는 마법적 공격으로 공간 자체를 점하며 싸우는 마전사의 전투는 꽤 흥미로웠다. 거리가 너무 많이 벌어지면 마력 무기를 활로 바꿔 원거리 공격을 쏘고, 접근하면 다시 검으로 스킬을 사용한다.
전투방식은 판이하게 달랐지만 움직임 같은 것에서 아엘라와 비슷한 흔적이 있었다. 아마 윤하늘을 훈련시킨 것이 아엘라인 모양이다.
전투는 몇 분 간이나 지속됐다. 하지만 결국,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기만 하던 미스트가 구슬픈 단말마 같은 바람소리를 남기며 사라졌다.
“후우……”
짧지 않은 전투였다. 이마에 땀이 흥건하게 베어나온 윤하늘이 숨을 골랐다.
“대단한데.”
“예? 아니……”
윤하늘이 멋쩍어했다. 미스트들을 나타나자마자 소멸시켜버리는 사람에게 들을 칭찬은 아니다.
하지만 세현은 진심이었다. 시간이 좀 걸렸다지만 아무런 상처 없이 노란색 등급의 괴물을 단독으로 처치했다. 류한 길드의 간부진들 역시 노란색 눈동자 괴물 정도는 일대일로 이길 수 있지만, 그들은 세현이 마음먹고 키운 인재들이 아닌가.
“아엘라에게 배운 듯한데?”
“어떻게 알았어요?”
“흔적이 보이니까. 어쨌든 흔쾌히 보여줘서 고맙다.”
델비아 길드의 전력이 대충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잡힌다.
벡스들을 제외한다면 류한 길드의 일개 전단 정도. 모든 벡스들이 아엘라 정도의 전투력을 가졌다고 가정할 경우, 그들까지 포함해서 계산한다면 탑 클래스.
“아엘라.”
– 네. –
“모든 벡스들이 너 만큼 강한가?”
– 저는 지도자입니다. 저 만큼 강한 벡스는 몇 없어요. –
“방금 전 보니 변신 상태에서는 눈동자가 초록색이던데. 네다섯 정도만 있으면 충분히 파란색하고도 싸울 만하지 않나?”
– 변신 상태에서 눈동자가 초록색으로 변하는 이는 저를 포함해서 셋 뿐이에요. –
셋이라면 필드형 던전을 공략하기엔 간당간당하다. 납득한 세현이 다시 앞장서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쾅! 콰쾅!
나타나는 미스트들에게 폭발하는 검기가 작렬하며 땅을 진동시켰다. 지금까지의 방식보다 좀 더 확실하게 적들을 끌어모을 수 있도록 일부러 소음을 내는 것이었다.
효과가 있었는지 사방에서 나타나는 미스트들의 수가 더욱 많아졌다.
세현은 산책하듯 걷는 속도로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그러면서 곧장 중앙으로 향하던 방향을 약간 틀어 외곽을 돌기 시작했다.
소음에 이끌려 나타나는 미스트들의 숫자는 어마어마했다.
이곳이 왜 넓어지고 있었는지를 알려주기라도 하듯, 거의 좀비 수준으로 사방에서 몰려들어 그들을 향해 적의를 드러냈다. 그러는 놈들이 전부 노란색 등급의 괴물들이다.
세현은 그런 놈들을 학살하며 조금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 류한의 간부진들을 데려와서 사냥을 시켰다면 며칠 걸렸을지언정 아주 쏠쏠한 경험치 획득이 가능했을 것이다.
윤하늘과 아엘라는 뒤쪽에서 손가락만 빨며 세현의 청소를 구경했다.
보고 또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가공할 힘이다. 윤하늘은 눈을 부릅뜨고 세현의 검격을 쫓아보려 애썼고, 아엘라는 언뜻언뜻 드러나는 그의 어마어마한 기도에 흠칫거리기를 반복했다.
쉬아아악…!
마지막 미스트가 허무한 소리를 내며 소멸했다.
여태까지 커다란 원을 그리며 이동했다. 놈들이 소리를 듣고도 반응하지 않았다면 몰라도, 근처에 있는 놈들은 모조리 몰려들었으니 아마 전부 청소가 됐을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중앙에 자리잡은 거대 쇼핑몰 건물이었다. 다른 모든 건물들처럼 완전히 은회색 결정으로 변해버린 모습이다. 보스가 있다면 분명 그곳에 있다.
그 건물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느껴지는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외곽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지금도 중앙부를 향해 사방의 마력이 회오리치듯 움직이며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이거, 위험한 거 아니에요?”
어마어마한 마력의 유동에 윤하늘이 긴장하며 말했다. 세현도 느껴지는 힘을 가늠하며 이전의 보스들과 비교하는 중이었다.
최소 파란색. 어쩌면 그 이상.
하지만 크로나드와는 비교할 수 없다.
세현이 앞장서서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그 뒤를 긴장한 윤하늘과 아엘라가 따랐다.
내부는 완전히 난장판이었다. 이리저리 부서진 건물의 잔해들과 깨어진 유리파편들이 사방에 널려있다. 하지만 어둡지는 않았다. 1층에서부터 5층까지 뻥 뚫린 중앙의 ‘ㅁ’자 공간에서 빛을 뿜어내는 한 존재 때문이었다.
미스트를 크게 확대시켜 놓은 듯한, 하지만 등에서부터 후광처럼 양옆으로 뻗어나가는 기운의 크기가 심상치 않다.
놈이 안으로 들어서던 세현 일행을 발견하고 고개를 돌렸다. 분명 아무런 소리도 없는데 이상한 공명음이 들린 듯한 기분이 든다. 한순간 놈의 은회색 몸체에서 다채로운 빛깔이 파문처럼 퍼졌다가 사라졌다.
커다란 한 쌍의 남색 눈동자가 그들 셋을 똑바로 주시했다. 그것이 일렁이며 마치 일그러지는 듯 보인다.
어째 노란색 눈동자의 괴물이 지나치게 많다 했다. 파란색이 아닌 남색 눈동자가 보스였기 때문인가.
– 더 이상……! –
놈의 의지에 반응하듯 소핑몰 내의 공간이 일렁인다. 이어 천둥 같은 포효가 터졌다.
– 더 이상은 안 돼-!! –
찌이이이잉!
“아악!”
놈의 포효와 동시에 윤하늘이 짧은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쓰러졌다. 아엘라 역시 눈이 풀리며 그대로 휘청거리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멀쩡한 것은 오직 세현뿐이었다.
그 직후 폭발이 일어났다.
눈이 멀 것 같은 섬광과 함께 거대한 충격파가 보스를 중심으로 뿜어진다. 세현은 쓰러진 윤하늘과 아엘라를 챙기며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콰과과과아아앙-!!
반구형으로 뿜어진 충격파가 대지를 갈아엎으며 가로막는 모든 것을 박살내기 시작했다.
놈이 머물던 쇼핑몰이 장난감으로 만든 건물처럼 폭발에 휘말려 사방으로 산산조각 비산한다.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소음이 사방을 울리며 주변 모든 것을 두들겼다.
쇼핑몰을 완전히 박살내버린 충격파는 주변의 건물들까지 거의 반파시키고서야 완전히 흩어져 사라졌다. 충격파에 휩쓸려 날아갔던 은회색 건물의 잔해들이 중력의 법칙에 따라 사방 곳곳으로 떨어지며 폭탄 터지는 듯한 소리를 냈다.
그 정신없는 장내의 외곽에 내려선 세현이 눈이 풀린 아엘라를 흔들어 정신을 일깨웠다.
“아엘라!”
– 네, 네! –
“윤하늘을 데리고 멀리 떨어져라. 너희까지 챙기기는 만만치 않을 것 같으니.”
아엘라는 비틀거리면서도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는 윤하늘을 부축해 빠르게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멀리 도망가는 것을 살핀 세현이 다시 고개를 돌려 보스를 쳐다봤다.
거대한 파괴의 중앙, 그곳에서 어지간한 건물 만한 크기의 놈이 거칠게 회오리치는 마력의 폭풍을 두르고 세현을 주시했다. 휘도는 마력이 점차 은회색으로 물들며 사방으로 짐승의 으르렁거림 같은 소리를 토한다.
부우우우우우웅-
별안간 놈의 주변을 감싸고 돌던 마력의 폭풍이 급속도로 응축한다. 그 직후, 심장박동 같은 소리를 터뜨리며 세현을 노리고 엄청난 속도로 쏘아졌다. 마주 휘둘러진 청월이 날아드는 마력 덩어리들을 마주했다.
힘으로 부딪히는 것보단 흘려내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이왕 흘려낼 것이면 서로 상충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그를 노리고 날아든 공격들이 청월의 움직임과 만나 백팔십도 방향을 틀었다.
한 층 느려진 듯한 세상, 그 속에서도 무서운 속도로 날아드는 마력 탄환들을 온전히 검면으로 받아내어 몸을 돌림과 함께 날아온 방향으로 날려보낸다.
날아드는 속도와 거의 비등하게 돌려보내는 통에 마치 서로가 똑같은 공격을 쏘아내며 맞부딪치는 듯한 모습이었다. 세현과 보스 중앙에서 끊임없이 폭발이 일어났다.
갑자기 사방에서 거센 바람이 불었다. 마력이 요동치며 보스를 중심으로 무서운 속도로 빨려들어 간다. 놈의 뒤쪽에 서린 휘광이 번쩍이는 섬광을 토하고는 한 줄기 빛으로 화해 허공으로 쏘아졌다.
뒤이어 은빛 유성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쒸아아아아악!
꽈앙!
콰과광!
귀청을 찢는 섬뜩한 소리가 사방을 메운다. 하늘에서부터 떨어지기 시작한 은회색 빛줄기들이 가공할 속도로 세현이 선 주변을 집중적으로 노렸다.
세현의 신형이 분신처럼 잔상을 남기며 가속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증발한 것처럼 사라졌다.
스킬 귀신걸음, 잠시지간 세현을 노리고 쏘아지던 엄청난 마력의 포화들이 주춤거리며 방향을 잃었다. 동시에 놈의 전면에서 불쑥 나타난 그의 검이 공간 자체를 대각선으로 크게 베어냈다.
자하 제 이식, 최단(最斷).
섬광처럼 쏘아진 거대한 반월형 자색 강기가 눈을 부릅뜬 보스의 마력 장벽과 부딪쳐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었다.
공간이 일그러지는 듯한 착시와 함께 사방으로 막대한 힘의 여파가 뿜어진다.
그 모든 힘의 잔여물을 무시하고 날아든 거대한 손아귀가 방금 전까지 세현이 자리하던 공간을 거칠게 할퀴고 지나갔다. 동시에 반대편 손의 움직임에 따라 몸체를 이루던 은회색 마력의 일부가 부챗살처럼 뻗어나가며 물러서던 세현을 덮쳤다.
청월이 휘둘러지고 자색 강기가 전면을 가른다. 마력의 해일을 정면으로 베어 가른 세현의 신형이 허공을 밟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허공답보와 구궁보가 펼쳐지며 그를 노리고 쏘아지는 수십 개의 거대한 마력 탄환들을 모조리 피해낸다.
– 안 돼!! 아무도 다시 나를 가둘 수는 없어-!! –
천둥 같은 목소리와 함께 놈의 신형이 크게 꿈틀거린다. 세현이 쏘아낸 비검강(飛劍罡)과 놈이 쏘아낸 거대한 마력 탄환들이 부딪쳐 사방 허공에 연속적으로 폭발이 일었다. 돌풍이 일어나며 일대의 공기가 울부짖었다.
전투에 휩쓸린 다수의 건물들이 과자처럼 마구잡이로 무너졌다. 은회색 결정으로 변해버린 것들이 사방으로 부서져 비산하며 허공에 무지개를 만들었다.
쉽사리 들어갈 틈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정말로 접근이 불가능해서 이리 견제에 가까운 공격만 날리며 시간을 끄는 게 아니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놈의 몸체를 감싸고 고리형으로 회전하는 마력의 양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저것이 전부 줄어드는 순간이 기회라는 것을 느꼈기에 이리 회피에 주력하는 것이다.
놈의 주변을 휘감고 도는 마력의 고리는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수행한다. 귀신걸음 스킬까지 사용하며 코앞에서 날린 일격을 무리없이 막아낸 것만 봐도 명백하다.
그렇다면 저 마력이 바닥나는 순간을 노린다.
그가 노리던 순간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찾아왔다.
보스의 공격이 거셌던 만큼 마력이 바닥나는 속도 역시 빨랐던 것이다.
마지막 마력 탄환이 날아들어 세현이 휘두른 검과 부딪혀 폭발하는 순간, 공간을 꿰뚫는 폭음을 동반하며 청월이 쏘아졌다.
한 줄기 빛으로 화한 청월이 거대한 보스의 가슴팍을 꿰뚫는다. 뒤이어 아주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달려든 세현의 손에서 무형검이 생성되어 상대의 머리통을 향해 채찍처럼 날아들었다.
사방에서 회오리치며 모여들기 시작한 거대한 마력의 흐름이 그것을 막기 위해 급속도로 요동쳤다. 하지만 그보다 세현의 공격이 배는 빨랐다.
채 완성되지 못한 마력의 장벽을 무리없이 베어 가른 무형검이 놈의 머리통을 무자비하게 찢어발겼다.
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우르르릉-!
날카로운 소리가 천지를 울린다. 놈의 신체를 이루던 은회색 마력의 안개가 사방으로 퍼지며 폭풍을 일으켰다. 그 혼돈 속에서 끝까지 세현을 노려보던 남색빛 커다란 눈동자 한 쌍이 차츰 흐려졌다.
마침내 모든 빛이 사라지고 은회색 마력이 사방으로 흩어져 사라졌을 때, 놈이 있던 장소에서 주먹만한 크기의 은색 구슬 하나가 천천히 떨어졌다.
– 필드형 던전의 모든 적대적 존재를 사냥했습니다. –
– 칭호 ‘폭풍 감시자’를 획득했습니다. –
– 위험도에 비례하는 경험치를 파티원과 공유합니다. –
– 상점에서 취급하는 품목이 늘어납니다. –
============================ 작품 후기 ============================
부디 재밌게 읽으셨길 바랍니다. 추천 꾹!! 눌러주세용.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