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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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 준비
“진짜로 벗어?”
혜진이 미묘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세현은 아무 동요도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미 설명했잖아. 평범한 마사지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곤란해.”
“그러니까, 지금 나보고 네 앞에서 홀딱 벗으란 거잖아?”
“속옷은 입어도 된다니까? 끝나고 나면 버려야겠지만…… 어쨌든 필요한 일이야.”
진지한 표정의 세현을 보던 혜진은 여전히 할 말이 많은 표정이다.
허나 결국, 그녀는 동생의 말을 듣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애초에 필요하지 않으면 이런 걸 요구할 동생이 아니다.
“하……”
“몸매 보고 비웃거나 하지 않을 테니까 안심해.”
“뭐? 네가 뭘 비웃어?”
기가 막히다는 듯 코웃음치는 혜진을 보던 세현도 픽 웃었다.
“그러니까 얼른 준비하고 누워. 부탁입니다.”
“내가 어쩌다가……”
투덜거리면서도 혜진이 머뭇머뭇 옷을 벗었다.
“아, 브래지어도 벗어야 돼.”
“이것도 속옷인데?”
세현은 그저 어깨만 으쓱했다. 잠시 그런 세현을 못마땅하게 보던 혜진이 마저 옷을 벗었다.
“그럼 여기 누워. 엎드린 자세로.”
세현이 거실에 미리 깔아놓은 커다란 타올을 가리켰다. 3장이나 겹쳐 깔아놓은 그 자리에 혜진이 눕자 세현이 그 옆에 앉아 눈을 감았다.
몇 초 동안, 명상 비슷한 것을 하던 그가 눈을 뜨며 말했다.
“중간에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움직이거나 입 열지 마. 절대로!”
“알겠어.”
강력한 경고에 혜진이 약간 긴장하며 대답했다.
“내 말 명심해. 절대 움직이지 말고 입 열지 마. 큰일 날 수도 있으니까.”
다시금 주의를 준 세현이 두 손을 혜진의 척추 부근에 올리고 정신을 집중했다. 손에서부터 뿜어진 대량의 내공이 더 이상 조심스러울 수 없는 속도로 혜진의 몸에 흘러들어갔다.
그것을 느낀 혜진이 미약하게 움찔거렸다. 외부에서 그녀의 조그마한 단전으로 조심스레 흘러들어간 내공, 자하신공이라는 이름에 따라 자색의 기운을 띈 그것은 혜진의 단전으로 들어서 그곳을 한 바퀴 휘돌았다.
이윽고 영역을 확인하고는 막혀 있던 혈도를 뚫기 위해 한 걸음 내딛었다.
혜진의 몸이 퍼드득 떨렸다. 세현은 혜진의 등 부근을 붙잡아 누르며 자하기를 운용하는 것에 정신을 집중했다.
벌모세수(伐毛洗髓)는 지고한 깨달음을 얻은 무인이 스스로의 몸을 근본부터 뒤바꾸는 환골탈태(換骨奪胎)를 인위적으로 재현하기위해 시작됐다.
힘이 곧 전부이자 진리인 세상에서, 그것을 손에 쥐려는 인간들의 탐욕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은 결국 수천, 어쩌면 수만이 넘어가는 인체실험 끝에 갓난아이를 대상으로 환골탈태와 같은 효과를 내는 비전의 기공술을 개발해내는 것에 성공했다.
그게 바로 최초의 제대로 된 벌모세수다.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혈도가 깨끗한 갓난아이를 대상으로는 벌모세수를 펼치기가 굉장히 용이했다.
이윽고 세월이 흐르며 기술은 점점 발전했고, 마침내 불가능으로 여겨졌던 성인을 대상으로 한 벌모세수까지 가능해졌다. 물론 아무나 펼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게 가능한 이는 무림에서 한 손에 꼽았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세현이다. 또한 그는 그 중에서도 스스로가 최고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주입된 자하기가 혜진의 몸 속에서 마치 드릴처럼 꼬아지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신중을 기한 탓에 양은 미약했지만 회전력은 그야말로 강철이라도 뚫을 만큼 무시무시한 정도, 조금만 잘못하면 혜진의 혈도가 종잇장처럼 갈가리 찢겨나갈 것이다.
하지만 가공할 속도로 회전하는 자하기는 혈도에 조금의 손상도 입히지 않은 채, 그 난폭한 돌파력으로 거침없이 길을 주파하며 불순물을 태워버렸다. 단 한 차례도 멈추지 않은 자하기가 눈 깜짝할 사이에 무인들의 꿈이라는 임독양맥으로 질주했다.
그리고 생사현관이라 불리는 그 악명이 무색하게 순식간에 뚫어버렸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전신의 중요 혈도를 모조리 타통한 자하기가 전신 세맥으로 그 범위를 늘리며 미세혈도까지 타통하기 시작했다.
만약 지금 혜진의 몸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무림의 사람들이 보았다면 도저히 믿지 못했을 것이다. 동시에 세현을 천하제일인이라 부르기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신묘한 기예였다. 그 기예의 혜택을 온전히 보는 것은 바로 누이 한혜진이었다.
대혈이 타통되고 전신 세맥이 열리는 기분은 느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그녀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정신이 몸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하다.
어느 순간, 혜진은 자신의 몸속을 누비고 다니는 자하기를, 그리고 몸 근처의 기운까지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날 뻔했던 그녀는 간신히 움직임을 참고 그 신비로운 감각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평생 눈을 뜨지 못했던 장님이 눈을 뜨고 처음 세상을 바라본 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현재 그녀가 받은 충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물론 좋은 쪽으로의 충격이다.
그렇게, 영원처럼 느껴졌던 시간도 결국은 끝이 났다.
마지막 세맥 하나까지 완벽하게 청소한 세현의 자하기가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혜진은 자신도 모르게 아쉬움을 느꼈다.
“끝났어.”
어쩐지 기진맥진한 것처럼 들리는 세현의 목소리를 들으며 혜진이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 불현듯 인상을 팍 찡그렸다.
“……이게 무슨 냄새야?”
“무슨 냄새긴, 누나 몸에서 나는 냄새지.”
“뭐?”
저도 모르게 자신의 팔을 들어 냄새를 맡은 혜진이 헛구역질을 했다. 그리고 세현이 뭐라 하기도 전에 후다닥 일어나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안에서 물을 트는 소리가 잠깐 들리더니, 닫혔던 문이 슬그머니 열리며 혜진의 목소리가 들린다.
“내 속옷좀 갖다줘.”
“네, 네. 대령합죠.”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였다.
띵동-! 띵동-!
누군가 현관문의 벨을 눌렀다.
– 안에 아무도 없습니까? –
문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소리, 세현은 고개만 빼꼼 내민 상태의 혜진에게 말했다.
“신경 쓰지 말고 씻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아, 응.”
그는 극도로 집중했던 탓에 뻑뻑해진 어깨를 이리저리 돌리며 문으로 향했다. 그렇게 문 앞에 서는 사이, 성질이 급한 건지 다시 벨을 연타하는 소리와 함께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 안에 사람 있는 거 다 압니다. 잠깐 문 좀 열어봐요. –
“누구십니까?”
세현이 묻자, 건너편에서 잠깐 웅성이는 소란이 일었다.
이미 혼자가 아니라는 걸 파악하고 있던 세현에겐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 24층에 사는 사람입니다. 지금 바깥 상황에 대해 혹시 아십니까? –
“네, 아는데요.”
– 대책을 논의하고 싶습니다. 일단 문부터 열어주세요. –
“……그걸 왜 나하고 논의합니까?”
– 이럴 때일수록 힘을 합쳐야지요. 나쁜 의도는 없습니다. 정 불안하시면 걸쇠라도 걸고 여시든가요. –
세현은 버릇처럼 턱을 매만지다 말고 피식 웃었다. 그리고 걸쇠를 걸지 않은 채 문을 열었다.
전자 도어락의 경쾌한 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바깥에서 누군가 문을 확 잡아당겼다.
“반가워, 학생?”
방금전과는 전혀 다른 차가운 어조의 인사가 날아든다.
보이는 인원은 총 다섯, 모두가 무기가 될 만한 것들을 든 채였다. 빠루를 든 가장 선두의 남자가 허락도 없이 집 안으로 들어서려 발을 내딛었다.
물론 그걸 두고 볼 세현이 아니다. 옆으로 한 걸음 움직여 막아서자, 대번에 남자의 매서운 눈초리가 쏘아졌다.
“상황 안다 했지? 길게 말 안 할게. 일단 지금 이 아파트 동의 안전은 우리가 확보했거든?”
그러면서 남자는 자신이 든 빠루를 슬쩍 흔들어보였다. 이제 보니 살짝이지만 피가 묻어 있다.
“여기 사람들끼리 식량을 전부 모아볼까 해서. 그러니까 잠깐 실례할게?”
“아, 그래서 지금 여기 식량을 가져가시겠다?”
“오해는 말어. 강탈이 아니니까. 공평하게 전부 모아서 나누자는 거야.”
그렇게 말한 남자가 세현을 밀쳤다. 하지만 석상처럼 꿈쩍도 않자 약간 당황한 눈치였다.
“학생, 좀 비키지?”
“싫어. 뭐든 나눌 생각 없으니까 다른 데로 가라.”
그러면서 세현은 슬쩍 남자의 가슴팍을 밀쳤다. 정체불명의 힘에 의해 두세 걸음이나 밀려난 남자를 일견하고 세현이 문을 닫았다.
닫으려고 했다.
“야!”
고함과 함께 문틈으로 빠루가 들어왔다. 그리고 강하게 잡아당기는 힘에 의해 다시금 벌컥 열렸다.
“상황파악 안 돼?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그렇게 이기적으로 나오면 안 되지, 응?”
그렇게 말하던 남자가 문득, 문이 닫힌 채 샤워 소리가 들리는 거실과 연결된 화장실을 쳐다봤다.
“누구 있어?”
“알 바 없고, 지금 당장 안 나가면 후회할 거다.”
세현은 가볍게 손을 풀었다. 남자는 그를 신경 쓰지 않고 현관을 훑었다. 그러다 여성용 신발을 발견하고서는 다시 경계를 늦추며 세현에게 손을 뻗었다.
“비켜.”
명령조의 말이다. 명백하게 힘으로 밀쳐버릴 생각, 그때 가볍게 혀 차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부서졌다.
“……어?”
멱살을 잡아 밀치려던 손이 기괴하게 뒤틀렸다. 한 발 늦게 밀려오는 고통에 남자가 비명을 지르려는 순간 세현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여 그의 목을 짚었다.
나오려던 소리가 그대로 사라진다. 아혈이 제압당한 남자는 제 부러진 손을 잡고 몸을 뒤틀어대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손에서 놓친 빠루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나머지 네 명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저 얼빠진 표정만 짓고 있었다.
“지금 뭐, 뭘 한 거야?”
“10초 줄게. 저 놈 데리고 꺼지든지, 아니면 다 같이 박살나든지 골라라.”
세현은 웃으며 말했다.
네 명의 남자들이 손에 든 무기를 엉거주춤하게 들어올렸다가, 그의 미소가 더욱 짙어지는 것을 보고 슬그머니 무기를 내렸다.
알 수 없는 위기감이 그들의 목을 조른다.
“가, 갈게. 간다고.”
“5초 남았다.”
남자들이 허둥지둥 손이 망가진 사내를 부축하며 계단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던 세현은 조용히 문을 닫았다.
쓰레기 같은 놈들이지만, 아직은 아니다. 죽이거나 불구로 만들 정도는 아니었다.
적어도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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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추천!! 꾹!! 부탁드립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