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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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김혜빈이라고 합니다. 그…… 어디로 모실까요?”
“지하로 가지.”
세현의 말에 김혜빈이 앞장서서 지하로 향했다.
내려가는 도중 마주친 남자들은 전부 당장이라도 전투에 나설 수 있는 복장이었다. 아마도 근처에 갑작스레 나타난 공격대를 경계한 모양이다.
반면 간간이 눈에 보이는 여자들은 전부 김혜빈과 비슷한 차림이었다. 드레스 까지는 아니어도 대부분 치마를 입고 화장을 했다. 여자 전투원으로 보이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도착한 훈련장의 모습은 별 특이한 점이 없었다. 하지만 감옥 쪽은 아니었다.
업그레이드를 거치지 않았다면 훈련장과 감옥은 이어져 있다. 감옥은 텅 비어있을 거란 예상과 달리 꽤 많은 사람들이 수감되어 있었다. 얼핏 세어도 스무 명이 넘는다.
감옥에 사람을 가둬둔다는 것은, 굶어죽일 생각이 아니라면 쓸모없는 입이 늘어난다는 뜻과 같다. 그런데 이창규는 얼마 전 세현에게 식량이 빠듯하다는 말을 했다. 앞뒤가 맞질 않았다.
이들은 왜 갇혀있는 걸까.
세현이 감옥의 한 방으로 다가가자, 맥없이 늘어져 있던 그들 중 일부가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누구…?”
“왜 갇혀 있지?”
감옥은 여섯 구역으로 격리되어 있다. 그 중 세현이 앞에 선 방에는 세 명의 남자가 수감되어 있었다.
시선을 받은 남자는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누구십니까?”
“용인의 류한 길드장이다.”
“……그런 분이 여기엔 어쩐 일로?”
“일종의 견학 중이지. 대한 길드가 어떤 곳인가.”
“대한 길드?”
남자가 별안간 피식 웃었다. 그러면서 들을 때마다 촌스러운 이름이라고 궁시렁거린다.
“어째서 갇혀있는지 알려주면 좋겠는데.”
“자세히 말하긴 길고, 그냥 뒤통수 맞았습니다. 원래는 저 형씨가 길드장님이었거든요.”
세현의 눈이 남자의 손가락을 따라 뒤쪽으로 이동했다. 그곳엔 초췌한 얼굴로 벽에 기대어 앉은 한 남자가 있었다.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듯, 그는 자신을 가리킨 남자에게 손을 내저었다.
“쓸데없는 소리 말아.”
“뭐 어떻습니까? 어차피 할 수 있는 일도 없는데.”
“그 사람이 누군지 알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다 해?”
“중요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미 여기 사람들은 다 아는 일이고.”
그렇게 서로 대화하는, 한때 길드장이었다는 남자의 생김새가 어쩐지 눈에 익었다. 순수 한국인이 아닌 백인 혼혈이다.
그를 뚫어져라 보던 세현이 불쑥 물었다.
“최용선?”
“……역시 알아보는군.”
“TV에 많이 나왔지 않나?”
“그랬지.”
최용선 의사, 유명 대학병원의 외과의사다. 묻지마 폭행 범죄로 죽을 뻔했던 여대생을 살려낸 것으로 본격적인 유명세를 탔다. 이후 TV 예능프로그램에 많이 나오며 얼굴을 팔았다.
무림에 갔다 온 세현이 기억할 정도면 상당히 유명하다는 뜻이다.
세현은 그에게 직접 물었다.
“하위 길드원은 상급자에게 해를 끼칠 수 없을 텐데, 어떻게 뒤통수를 맞았다는 거지? 사람들이 집단 탈퇴라도 했나?”
“지금 여기를 먹은 놈들은 외부인이었소.”
“그들이 훨씬 강했나보군? 병사들까지 있는 당신 길드를 제압할 정도로?”
“그게 아니라, 내부에 배신자가 있었지.”
그 말을 할 때는 날카로웠던 최용선의 말투가 얼핏 차분해진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건 치솟는 분노를 다스리기 위함이었다.
그런 최용선을 대신해 처음 세현과 대화를 나눴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한때 길드장님의 애인이었던 여자가 배신했지요. 그냥 애인도 아니고 무려 부길드장이었는데, 병사들의 통제권을…… 그러니까 병사들이 뭐나하면.”
“그건 뭔지 아니까 설명 안 해도 된다.”
“아, 그럼 편하지. 통제권을 그 여자가 갖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성문도 열어버리고 병사들도 가만히 있게 만들고, 외부에서 조용히 들어온 놈들이 자고 있던 우리를 제압하고…… 그렇게 이 모양 이 꼴이 된 겁니다. 한 달 정도 됐죠.”
“그 후로 계속 갇혀 있었던 건가? 아무짓도 하지 않고?”
“회유하려 하더군요. 우리가 딱히 쭉정이는 아니니까. 그리고 서로 죽고 죽일 정도로 막 나가는 관계도 아니고.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라고, 그리 말합디다. 뭐 그런 상황입니다. 솔직히 이제는 못이기는 척 넘어갈까 생각도 들고.”
그러면서 자조적으로 쓰게 웃는 것이, 초췌한 몰골 만큼 마음도 약해진 듯했다.
부길드장의 배신, 게다가 그 배신으로 고꾸라트린 상대를 회유하려 드는 상황이라.
제법 흥미롭다.
“굳이 너희를 회유하려는 이유는? 내 생각엔 위험할 것 같은데. 원한을 품고 배신을 계획할 수도 있으니까.”
“그거야 이창규 그놈이 생각할 문제죠. 우리 정도는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지가 엄청난 리더십을 갖고 있다고 착각하거나. 그도 아니면…… 뭐, 그놈 생각을 어찌 압니까.”
잠시 침묵하던 세현은 다른 것을 물었다.
“부길드장이란 여자는 왜 배신했는지 말해줄 수 있나?”
“글쎄요.”
남자는 모르는 눈치였다. 세현의 시선을 받은 최용선도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모르오. 뭐, 아이템 같은 거라도 받았겠지.”
최용선의 뒤편으로 붉은색 휘광이 보였다. 거짓말이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할 이유는 뭘까. 사실은 그들과 한패라서? 알려도 달라질 게 없으니까?
“이유를 아는 것 같은데.”
“모른다니까.”
아무래도 말해줄 생각이 없는 듯하다.
“그럼 당사자에게 물어볼 수밖에.”
대충 파악은 끝났다.
세현은 감옥에서 떨어져서 뒤편의 김혜빈을 불렀다.
“들었겠지만, 원래는 여기가 대한 길드가 아니었다고 하는데?”
“네. 원래는 아니었죠. 저는 자세한 건 잘 몰라요.”
거짓말이다.
“부길드장이 왜 배신했는지 알아?”
“말씀드렸지만, 저는 몰라요.”
역시 거짓말이다.
딱히 무언가 대단한 진실을 감추기 위함이라기보단, 외부인에게 길드의 속사정을 말해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럴 권한도 없을 것이고.
어쨌든 떳떳한 이유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가능하면 그 부길드장도 만나보고 싶군.”
그는 여기서 시간을 오래 끌 생각이 없었다.
궁금한 것은 하나뿐이다. 이들을 가만 놔둬도 되는지, 안 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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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부길드장을 만나는 것은 실패했다. 3층을 제외한 성 전부를 돌았는데도 만나지 못했다. 아마 3층의 숙소에 틀어박혀 있는 모양이다.
아무리 이곳을 돌아보길 요청했다지만 길드장과 부길드장의 숙소, 그리고 상황실이 자리한 3층에 올라갈 수는 없었다. 계단 앞에서 올라갈까 고민하고 있으려니, 어느새 나타난 이창규에게 바로 제지당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돌아보지 않았습니까? 3층에는 제 개인적인 숙소와 중요한 장소가 있는지라, 외부인인 당신들에게 공개할 수 없습니다. 이미 많이 배려했다고 생각합니다만……”
딱히 억지로 3층에 올라갈 필요는 없다. 세현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궁금했던 것은 그에게 물어봐도 충분하다.
그들은 다시금 1층의 홀에 자리잡았다. 이후 이창규가 먼저 말을 꺼냈다.
“요청대로 안내자까지 붙여드렸는데, 어땠습니까?”
그러면서 은근히 불쾌한 기색을 내비친다. 딱히 감추지 않는 것을 보면 생색을 내려는 모양이다. 아무런 기별도 없이 다짜고짜 방문한 세현의 요구를 들어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호의를 보여준 상황이라고.
물론, 사실은 호의가 아니라 그저 세현이 끌고 온 공격대의 위용에 알아서 자세를 낮췄을 뿐이다.
서로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굳이 말로 꺼낼 필요는 없었다. 상대의 기분만 상하게 만들 테니까.
“원래는 대한 길드가 아니었다던데.”
세현이 곧장 본론을 꺼냈다.
“네. 원래는 DSU 길드였습니다. 대전 생존자 연합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바뀌었군. 듣기로는 부길드장이 배신을 했다던데……”
“그런 것까지 말해줘야 합니까?”
“해주는 게 서로에게 좋겠지.”
이창규가 인상을 찡그렸다. 허나 세현은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용인과 대전에 길이 뚫린 이상, 우리는 좋든 싫든 교류를 하게 될 거다. 그러면 적어도 어떤 상대와 교류하는지 정도는 알아야지.”
“우리도 당신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나중에 얼마든지 구경시켜주지. 솔직히, 원래 있던 길드를 내부의 배신자를 통해 뒤엎었다는 게 살짝 꺼림칙해서 말이야. 서로 좋은 관계를 이어가려면 이 정도 의문은 해소시켜줄 수 있지 않나?”
고민하던 이창규는 자신도 모르게 피곤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세현의 양옆에 자리한 혜진과 김유린을 힐끗 살핀다.
“류한 길드라고 했죠.”
“그래.”
“당신들과 우리는 분위기가 꽤 많이 다를 겁니다. 자칫 오해를 할까 우려되는군요.”
“차분하게 들을 테니, 그런 점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뭐, 감춘다고 감춰지는 것도 아니고, 전부 말씀드리겠습니다. 헌데 부길드장이 배신했다는 이야기는 누구에게 들었습니까?”
“감옥의 최용선에게서.”
“그게 썩 틀린 말은 아닙니다. 제가 원래 DSU의 부길드장이었던 김주영을 꼬드겼거든요. 저는 성을 먹고 싶었고, 결과적으로 성공했죠.”
원래 있던 길드의 뒤통수를 쳤노라, 담담하게 고백하는 모습이다.
“어떻게? 최용선과 연인 관계였다고 하던데.”
“서로 의견차이가 생긴 것을 이용했습니다. 그녀는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겼고 최용선은 자신의 생각대로 그녀가 제몫을 하길 바랐죠.”
“……안전을 보장해주고 배신하게 만들었다는 건가?”
세현의 의아한 표정을 본 이창규가 오히려 이상하다는 기색을 내비쳤다.
“뭐가 부족한가요? 위험한 일에서 전적으로 빼주면서 권리만 누리게 해주겠다는 건데, 그녀가 최용선과 결혼한 것도 아니고, 옆에서 제가 꼬드기기까지 했으니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실제로 일어났고.”
“……”
“……원래 있던 길드를 무너트렸다고 안 좋게 보지 마십시오. 우리는 기존 길드원들을 다치거나 죽게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대부분 회유에 성공했죠.”
“수완이 좋은 모양이군.”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줬으니까요. 여자들은 위험한 일에서 빠질 수 있도록, 남자들은 원하는 때에 욕구를 풀 수 있도록.”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혜진과 김유린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그것을 캐치한 이창규가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는 당신들과 분위기가 많이 다를 겁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끼리 합의된 규칙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게 잘못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가 꺼리던 것의 실체가 드러났다.
이곳에 오며 마주쳤던 기묘한 여성들의 모습이 설명되는 순간이었다.
그녀들은 몸을 허락함으로써 다른 역할을 부여받지 않고 안전을 확보했다. 어느 한쪽의 강요로 이뤄진 일이 아닌, 서로 합의가 된 일이라고 한다. 서클렛이 잠잠한 것을 보면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말이야.”
그때, 세현이 다시 의문을 표했다.
“처음에 나한테 사람을 줄 수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랬죠. 당신들이 우리를 쥐어짜려는 줄 착각했으니까.”
“길드장인 당신 재량으로 사람을 물건처럼 넘길 수 있다는 소리인가?”
“어쩔 수 없이 뭔가를 털려야 할 상황이라면, 그나마 여유가 있는 사람을 내주는 게 길드장으로서 가장 합리적인 판단이었을 뿐입니다.”
이것도 딱히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확실한 게 하나 있다.
이창규는 여자를 무시한다.
김주영을 언급하며 그녀를 이용했다고 말할 때의 뉘앙스와, 처음 세현의 곁에 자리한 혜진과 김유린을 보고 뭔가를 착각하여 사람을 내주겠다고 말하던 모습으로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다.
여자를 남자보다 못한, 상황에 따라 먼저 소모할 수 있는 존재로 여긴다.
무림에서 아주 흔하게 보던 유형의 인간이었다. 또한 원래 대한민국에도 여전히 남존여비 사상을 가진 남자들이 일부 있다. 그들 중 하나가 이창규라고 특별할 건 없었다.
아마 그렇기에 이런 식으로 조직을 운영했을 것이다.
그들은 결코 넉넉한 환경에서 지내오지 못했다. 근처의 케르시타들에게 끊임없이 위협당하며 대부분의 길드 포인트를 병영에 집중 투자해야 했을 정도.
그런 상황에서 여자들에게 이따위 역할만 부여하는 것은 엄청난 낭비였다. 이창규가 여자의 존재와 성장 가능성을 무시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에레도스 시스템이 있는 이상 조건만 갖춰진다면 남녀노소 누구나 강해질 수 있다. 허나 이곳 대한 길드에선 이미 남녀의 역할이 뚜렷하게 나눠졌다. 전투와 같은 중요한 일은 남자가 하고, 여자는 그런 남자들의 욕구를 풀어주는 존재로 기생하듯 살아간다.
이렇게 된 것에는 김주영이란 여자의 영향도 클 것이다.
“최용선은 여자들도 싸우고 일을 하길 바랐나.”
이창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합니다. 그걸로 김주영과 마찰이 생겼죠. 다른 여자들도 최용선의 의견에 반발하는 상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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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신기한 게, 아무리 일찍 쓰기 시작해도 왜 항상 지각하는 걸까요…… ㅠㅠ 다 제 능력이 부족한 탓입니다.
열심히 썼습니다. 부디 재밌게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추천도 꾹!! 부탁드립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