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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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신
점령한 성의 정리가 끝나갈 무렵, 아직도 기절한 채인 이창규의 옆에서 태블릿 하나가 툭 하고 튀어나왔다.
그것을 가장 먼저 발견한 건 포로들을 감시하던 류한 길드원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그 태블릿을 주워 세현에게 전달하려다가, 채 잡기도 전에 짜릿한 스파크 맛을 보고는 줍는 것을 포기했다.
아무나 손 댈 수 없는 물건이다. 어째서 주울 수 없는지까지 메시지로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결국 세현이 올 때까지 태블릿은 아무도 손을 댈 수 없었다.
이곳저곳을 돌며 상황을 정리하느라 뒤늦게 도착한 그는 떨어진 태블릿을 집어드는 것으로 이곳의 성에 대한 모든 권리를 획득했다.
– 해당 성과 주변 지역이 류한 길드의 영토로 편입됩니다. –
– 대한 길드가 해체됩니다. –
“아, 안 돼…!”
기절했던 중에도 제 길드가 해체되었다는 메시지를 들은 것인지, 이창규가 정신을 차리며 헛소리처럼 중얼거렸다.
부서졌던 턱은 이미 응급조치를 마친 상태. 그래도 완치시키지는 않아 통증이 상당할 텐데, 그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의 몰락을 체감했기 때문인지 눈물을 줄줄 흘리는 모습이 꽤나 비참했다.
물론 세현에게는 별 감흥 없는 모습이었다. 패자의 모습이란 어디서나 다 비슷한 법이다. 무림에서도, 이곳에서도.
“너희를 어떻게 할지는 일단 가둬놓고 고민해야겠다.”
“이…… 악마 같은 놈!”
이창규가 씹어먹을 듯한 어조로 울분에 차서 말했으나, 세현은 아무 반응도 없이 그냥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제 분에 못이겨 발광을 시작하는 그를 신경도 쓰지 않고 자리를 옮기며 태블릿을 살폈다.
대전 성의 수준은 얼핏 살펴봤던 것처럼, 병영 시설에만 집중적인 투자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이 성을 용인의 본성 정도로 만드려면 상당한 양의 길드 포인트가 필요하다.
이번 공성전으로 그의 일부를 충당할 수 있는 꽤 많은 양의 길드 포인트를 얻었다. 케르시타를 토벌하며 얻은 길드 포인트와, 그간 저축했던 길드 포인트까지 일부 투자하면 당장이라도 본성과 같은 수준으로 이곳을 끌어올릴 수 있다.
물론, 그렇게까지 급하게 이곳을 업그레이드 할 생각은 없었다. 필수적인 몇 시설만 투자하면 충분하다. 혹시 이보다 더 급한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포인트를 함부로 막 사용하는 것은 그리 현명한 생각이 아니었다.
그는 새로 얻은 태블릿을 허공에 수납하며 피해자들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그들은 이제 김인환의 심문에서 벗어나 멀뚱멀뚱 눈만 굴리며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세현은 가장 먼저 김주영에게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그를 보자마자 웃으며 인사해오는 모습이 아주 사근사근하다. 어지간한 남자라면 단번에 호감을 얻어낼 수 있을 외모였다.
“네가 김주영인가?”
“예. 제가 김주영입니다.”
확인을 마친 세현이 슬쩍 손을 움직였다. 아무도 모르게 그와 그녀를 감싸고 소리를 차단하는 기막이 형성된다.
“내 제안은 잘 알아들었더군.”
“그…… 감사합니다.”
약간 아리송한 표정을 하면서도 일단 감사를 표한다. 주위를 힐끗 살피는 것이 이런 대화를 나눠도 되는지 의문인 모양이다.
“소리는 차단했으니 편하게 말해도 된다.”
“아, 그렇군요. 역시 능력이 대단하시네요.”
“아부는 됐고, 이제 네가 원하는 걸 말해봐라.”
세현이 그녀에게 흘렸던 조건이기도 하다. 김주영은 기쁨을 감추지 않고, 하지만 경망스럽지 않은 태도로 차분하게 말했다.
“길드에 들어가고 싶어요.”
“불가.”
“감… 예?”
1초도 망설이지 않고 튀어나온 거절에 김주영이 당황한다. 하지만 세현은 그녀를 비웃듯 피식 웃었다.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하지만……”
“거래 이야기를 꺼낼 생각이라면, 고작 이 정도 일을 한 것으로 내 길드에 들어오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해주지. 네가 한 일과 비례하는 수준의 원하는 것을 말하는 게 좋을 거야.”
그녀는 살짝 당황한 듯했다. 그러면서 주위에 있는 다른 여자들을 쳐다봤지만, 그녀들은 세현과 김주영이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입만 뻐금거리는 듯한 모습에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하지만, 앞으로도 저희의 협조가 필요하시지 않나요?”
거짓 증언을 계속 유지해야 할 필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건 너희가 우리 영토에서 안전한 삶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조건이고. 내가 말한 계약의 대가는 포상의 개념이지, 너희에게 마땅히 지불하는 대가가 아니다.”
“그, 그렇군요.”
의외로 그녀는 꽤 침착했다. 하지만 무엇을 요구해야 하나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오로지 제 자신의 안위만 위하는 이들이다. 특히 김주영이 그렇다. 이런 여자들을 길드에 받아들일 수는 없다.
가능하다면 영지민으로도 두고 싶지 않지만, 그녀들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이상 완전히 내칠 수는 없었다. 영지에 살 곳을 마련해주고 약간의 지원 겸 감시를 하는 정도가 최선이다.
“잘 생각해보고 나중에 말하도록 해라.”
고민에 빠진 그녀를 내버려둔 세현이 기막을 해제하며 최용선에게 다가갔다. 그는 세현과 김주영이 들리지 않는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눈치가 빨라서 좋더군.”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그는 감옥에서와 달리 존대를 사용했다. 눈치가 있다면 당연한 일이다. 태도 역시 보다 공손했다.
“직업이 뭐지?”
“연금술사입니다.”
그리 나쁘지 않은 조합이다. 의사와 연금술사라.
“우리 길드에서 일해볼 텐가?”
“음……”
그는 고민하는 듯했다. 세현은 이번에도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생각해보고, 결심이 서면 그때 말해라. 네가 들어온다고 하면 남은 사람들도 긍정적으로 검토해보지.”
감옥에서 한 달 이나 회유의 유혹을 받으며 끝끝내 남았던 자들이다. 어떤 이유에선지는 몰라도 일단 정신력 하나는 인정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최용선은 다른 이들까지 긍정적으로 검토해준다는 말에 흔들리는 듯했다.
아마도 들어오게 될 것 같다. 유명한 의사였던 그가 길드에 들어온다면, 단순한 연금술사로 놔두기보단 의료원 하나를 운영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김주영과 최용선의 일을 처리한 세현은 공격대가 전투의 흔적을 마저 정리하는 것을 지켜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대전을 손에 넣었다. 이곳의 책임자로는 김인환을 임명할 예정이었다. 이후 안정화가 끝나면 부산으로 진출할 것이다.
예상대로라면 부산에도 성이 있다. 그곳까지 접수하면 서울을 제외한 과거 대한민국의 영토의 전부를 먹는 셈이다.
서울에는 성이 없다. 여태까지 확보한 각 성의 거리를 계산했을 때, 다섯 번째 성은 평양에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곳을 시작으로 과거 북한이었던 지역 전부를 먹는다.
한반도를 완전히 접수한 후에는 중국으로 간다. 그 이후 어느 방향으로 진출할지는 그때의 정보를 갖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할 일이 너무나 많았다.
지구는 넓으니까, 어쩌면 평생이 걸려도 정복을 마치지 못할지도 모른다. 에레도스 시스템에 의한 변수 때문에 정복 활동이 별 의미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는 데까지는 해보고 싶었다. 무림은 이미 너무 정체된 세상이라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지만, 지금의 지구에서는 전혀 아니다.
세상이 망가진 것은 분명한 비극이다. 하지만 인간의 역사를 살펴보면 항상 비극 속에서 크게 성공하는 자들이 있었다.
세현은 그런 자들 중에서도 꼭대기에 설 생각이었다.
살아있는 내내 절대적인 권력과 명예, 그리고 막대한 부를 누릴 것이다.
그리고 죽어서도 길이길이 기억될 수 있도록 인류의 역사에 깊은 발자국을 새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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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금방 지나갔다.
어느새 두껍게 차려입지 않으면 추울 정도로 날이 쌀쌀해졌고, 조금 더 지나자 밖에 물을 내놓으면 꽁꽁 얼어버릴 정도가 됐다.
문명이 사라진 겨울은 혹독하다. 살아남으려면 어떻게든 불을 피워야 하는데, 난로를 켤 전기나 기름이 없다. 연탄 같은 것도 없음은 물론이다. 멀쩡한 목재가구를 부수거나 책을 모으는 것 등으로 쓸 만한 모든 뗄감을 확보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어렵사리 불을 피우고 유지한다 해도 따뜻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얼어죽지 않을 정도, 딱 그 정도가 될 뿐이다.
허나 그 혹독한 겨울도 빗나가는 장소가 있다. 바로 길드성이다.
풍신 길드는 본격적인 추위가 오기 전, 부산의 성을 점령하는 것에 성공했다.
생각만큼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성벽을 오를 도구를 미리 여럿 준비하고 순식간에 들이닥쳐 공격을 감행했다. 미처 대비를 못하고 있던 ‘바다 길드’가 황급히 반격에 나섰을 때는 이미 성벽 대부분이 점령당한 상태였다.
그렇게 성은 함락됐다.
거점을 잃은 바다 길드는 저절로 해체되었고, 풍신 길드가 관리하는 포로들의 수는 더욱 늘어났다.
그들이 포로를 관리하는 방법은 이러했다.
일단, 무력을 가진 전투원의 경우 두 손과 발을 제대로 쓸 수 없도록 구속구를 채운다. 볼일을 볼 때는 꼭 감시자 한 명을 대동하고 손의 구속구만 풀어주는 방식을 취한다.
외부에서의 작업이 있으면 모든 구속구를 풀어주지만, 총을 든 풍신의 길드원들이 사방에서 감시하므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몇 번 탈출을 시도한 자들이 있었으나, 곧바로 사살된 탓에 포로들이 겁을 먹어 한층 관리가 쉬워지는 일이 있긴 했다.
전투력이 없는 생산직이나 비각성자의 경우 관리가 수월하므로 성에서도 최소한의 제약만 걸어둔 채 잡일을 시킨다. 청소와 빨래 같은 것에서부터 풍신 길드원들의 자잘한 심부름까지, 사람의 손이 필요한 잡일은 전부 그들의 몫이다.
딱히 쓸모가 없는 포로임에도 죽이지 않고 먹을 것을 준다.
그 명분을 빌미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이다. 실상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일이었으나, 실질적인 명칭을 노예라 하지 않으니 반발은 매우 적었다.
처음에는 포로들의 처우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같은 사람이기에 막 대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몇 풍신 길드원은 존대를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것은 점점 변했다.
시작은 몇 극우성향의 한국을 싫어하던 풍신 길드원이었다.
그들은 이전부터 포로들에게 모욕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에 한 남성 포로가 분기를 참지 못하고 욕설을 내뱉었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맞았다. 그리고 삼 일 정도를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죽었다.
포로들은 경악했고, 막상 일을 저질렀던 풍신 길드원 또한 찔끔해서 몸을 사렸다. 포로를 허락도 없이 단순 분풀이로 죽였으니, 질책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거다.
하지만 그런 건 없었다. 길드장의 오른팔을 자처하는 타메모토가 지나가듯 슬쩍 말을 흘린 것이 전부였다.
“조심해서 다루게.”
마치 물건을 고장내지 말라는 듯한 충고였다.
그때부터 확연하게 분위기가 변했다.
포로들에게 존대를 하는 이가 사라졌다. 그래도 같은 사람이라고 약간이지만 배려하던 모습도 사라졌다.
얼마가 더 지나자 포로들을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도 없어졌다. ‘야’ 또는 ‘너’ 같은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몇 길드원들은 포로들을 ‘춍’이라고 불렀다.
그러다 한 길드원이 여성 포로에게 손을 댄 일이 벌어졌다. 분위기상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이번에도 처벌 같은 것은 없었다. 심지어 저번의 경우처럼, 조심해서 다루라는 말도 없었다.
포로들이 자신의 진정한 처지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현실적으로도 처지를 바꿀 힘이 없었지만, 여태까지 포로 생활을 하며 짓눌려온 정신과 마음에는 스스로의 존엄과 자유를 지킬 의지를 품을 공간이 없었다.
그렇게 포로들은 노예가 됐다.
“아악!”
한 방안에서 여자의 비명성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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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월요일이 오고야 말았군요……ㅠ
부디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추천! 꾹! 부탁드립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