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ogenous Zone RAW novel - Chapter 36
에필로그.
창진 주 회장 생일이라고 알 만한 인사들은 죄다 모였다.
최시백은 노친네가 오래 산 게 뭐 자랑이라고 잔치까지 하냐며 못마땅해했지만 재연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어차피 최시백이 옆에 있는데, 믿는 구석이 있으니 덩달아 마음도 한결 편해졌다.
오랜만에 만난 황 여사와 작게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사위가 소란스러워졌다.
살가죽 구석구석, 죄의 낙인을 숨기지 않고 달고 다니는 남자. 엄중한 분위기가 길러 낸 쌀쌀맞은 눈빛을 숨기려 들지도 않는, 예의 따위는 개나 준 깡패. 삽시에 주변 시선을 끌어모은 남자는 결코 정결하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였지. 그를 향해 달라붙는 시선 속에 곱지 않은 것들도 있을 텐데, 수군거리는 목소리마저도 그와 어울렸다. 숨어서 하는 손가락질, 혀를 차면서도 내보이는 관심과 시선. 날것의 어떤 것을 품고 있는 눈동자가 윤겸에게 뭐라 지시를 하고 있다.
스케줄을 끝낸 그가 왔다.
재연은 들고 있던 주스를 내려놓고 곧장 눈으로 자신을 찾는 그에게로 다가갔다.
서재연을 발견하고서야 안심하는 눈이 말없이 손을 잡는다. 사방에서 달라붙는 관심에도, 재연은 그가 내미는 손을 잡고 곁에 붙어 섰다.
“뭐 좀 먹었어?”
“이제 먹으려구요.”
주 회장에게 인사를 하러 가려는지 손을 놓으려는 그의 손가락을 붙들었다.
“저도 아직.”
주 회장 앞에 서재연 얼굴 보여 주는 것도 하기 싫은 기색이 역력한 그의 삐딱해진 눈썹조차 보기 좋았다.
함께 손 붙들고 축하 인사를 받는 주 회장에게로 걸었다.
“어, 최 이사. 오랜만입니다.”
남자의 시선이 최시백에게 찰나 머물고 금방 그녀에게로 떨어진다. 그리고 꼭 붙잡고 있는 손으로, 묘한 표정. 그건 비단 주 회장뿐만이 아니었다. 한창 시끄럽던 이혼 소식에도 정작 두 사람은 입장 표명을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더 많은 루머에 휩싸였던지라. 깡패새끼랑 결혼해서 뭐 얼마나 잘 살 거라고. 그럴 줄 알았다는 눈초리들을 따갑도록 받아 왔었다.
성 회장이 파문당한 게 저 여자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의심스러운 시선들을 숨기지 못하면서도. 다정하게 나타난 두 사람의 모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는 눈치들이다.
“먼저 가서 식사해.”
“같이 갈래요.”
혼자 가진 않겠다는 표현에 순간 뭉클, 감격을 적재하는 최시백 눈동자가 정적이다.
곁에 있겠다는 말에 딱 붙여 놓고 싸고돈다.
주 회장과 이런저런 얘기를 짤막하게 한 그가 다소 이르게 자리를 떴다. 아마도 곁에 있는 서재연 때문인 거 같긴 한데, 저 남자가 여자한테 뭘 살갑게 굴고 눈길 한번 제대로 줄 남자가 아닌데, 의심하는 눈이 여럿이었다. 그럴 만도. 최시백이 대외적으로 여자 하나 곁에 둔 적이 있었나. 서재연이랑 결혼하더니 임신시키고 제대로 가정까지 꾸리려 한다.
“여보 잠깐 나….”
“배 아파?”
멈칫하며 허리를 조금 숙이자, 가던 걸음을 멈추고 돌보는 남자가 핑거스냅 몇 번으로 제 오른팔들을 부른다.
“아니이, 애가 갑자기 움직여서.”
됐으니까 그만 가 보라는 손짓에 물러서는 남자들은 익숙하다는 눈치였다.
“그년이 그랬잖아, 갈수록 심해질 거라고.”
“응, 의사가.”
“괜찮겠어?”
“응. 괜찮아요.”
괜찮은데, 다만 곁에 꼭 붙어 있어 주길 바라는 제 아내의 바람을 모르지 않는 그가 어깨를 감싸 안는다.
식사를 하는데도 제 아내 입에 들어가는 것만 저 사늘한 눈으로 살피는 남자는 진심이었다.
꼭꼭 씹으라고 스테이크를 먹기 좋게 썰어 주고, 버무려진 양념도 얹어 주고.
잘 씹다가도 그녀의 저작 운동이 시원찮으면 대번 하던 칼질을 거두고 안색을 살핀다.
아이 생각해서 먹으려고는 하는데, 더는 못 먹겠다는 말에 옅은 한숨.
과일이라도 먹으라고 매니저 불러다 대령한 식후 디저트까지 들이민다.
저 닮은 뽀얀 청포도 하나 입에 넣고도 한참을 오물거리는 여자, 그보다 더 한참을 머무는 남자의 시선.
유별나게 굴지 않는데, 이상하게 남자의 행동이 다정하게 느껴졌다.
시선 한번 길게 두는 것뿐인데, 눈짓 몇 번 하는 게 단데도, 꼭 정 주고 사랑 주고 아낌없이 마음을 내어주는 거 같은. 한 가닥으로 설명하기 힘든 분위기.
“먼저 들어가.”
“오늘 늦어요?”
“조금.”
“새벽이구나.”
“보고 전화할게.”
“응. 알았어요.”
재연은 희원이 열어 주는 뒷좌석 문 안으로 올라탔다.
포켓에 양손을 찌른 채 멀어지는 차를 말없이 바라보는 그의 실루엣을 아주 오랫동안 담았다.
아마 그녀보다 최시백이 그 자리에서 그녀를 더 오래 보고 서 있겠지만.
* * *
밤 10시가 넘은 시간.
케이크 속 딸기를 찍어 먹다 옆에 얹어 둔 핸드폰을 힐끔거렸다.
늦으면 늦는다고 꼭 전화 주는데, 아무 연락이 없는 걸로 봐선 분명 오늘 일찍 온다는 건데. 혼자 자야 하나.
예정일이 그렇게 많이 남지 않았다 보니 밤중에 홀로 남겨지면 이따금씩 불안이 찾아왔다.
생크림을 깨작대며 먹다 씻으려고 일어서는데 현관 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 시간에 도우미가 다시 오진 않을 테니. 분명 문을 열고 들어올 사람이라고는 함께 사는 동거인밖에 없는데.
재연은 조금 젖은 모습으로 나타난 그에게 다가갔다.
“비, 와요?”
“조금.”
“아, 모르고 있었어요. 당신 젖은 거 보니까 꽤 오나 봐요. 잠시만요.”
보아하니 집으로 들어오다 잠깐 맞은 거 같진 않고, 또 어디 작업이라도 나갔다 그대로 비를 맞으며 일을 본 듯싶었다.
욕실로 들어가 마른 수건 하나를 꺼내고 그에게로 다가가 물기를 닦아 주었다. 어깨도 털고, 뺨도 닦고, 젖어 조금 흐트러진 머리카락 물기도 훔치는데 내내 요지부동으로 서재연 하는 짓을 보고만 있던 그가 조용히 눈을 움직인다.
스르륵, 다가온 눈초리에 머리칼을 닦던 그녀가 의아함을 느끼고 뻗고 있던 손을 내렸다. 까치발이 힘들어 손만 힘겹게 뻗고 있었다.
“씻어야겠는데.”
“아, 바로 씻을래요? 젖은 옷은 런더리 룸에 두시면 아주머니가 내일 세탁….”
수건을 쥔 손목이 붙잡혔다. 왜 그러냐고 그 눈을 보는 순간 알았다. 모를 수 없는 눈짓.
바로 벗고 들어오라는 눈신호. 가만히 눈 한 번 느리게 감았다 떴을 뿐인데도, 재연은 그 시그널을 알아차렸다.
찰랑거리는 물속으로 몸을 담그자 미리 욕조에 기대앉아 있던 그가 풍덩, 잠기는 몸을 안아 준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불러가는 배를 두 손으로 고쳐 안는 그가 뜨뜻미지근한 목이며 뒷덜미까지 입술 도장을 찍는다. 꼭 인두로 지지는 것만 같은 뜨거운 낙인에 고양된 숨이 절로 샜다.
포물선을 타고 오른 손이 배 못지않게 언덕진 젖통을 두 손으로 붙잡는다. 두둑하게 살이 오른 젖꼭지를 손가락으로 뭉개고 짜내자 성화에 못 이긴 유즙이 주룩 밀려 나온다. 유두를 손끝으로 툭, 툭 쳐 대는 걸로 대번 뜻을 알아들은 재연이 웅크린 몸을 일으켜 그와 마주 보며 앉았다.
한결 자세가 편해지자 그가 곧장 꼭지를 입에 담고 빨기 시작한다. 그를 알아보고 점막에 착 달라붙는 알맹이가 속살을 잔뜩 드러내며 탱탱하게 섰다. 입천장으로는 젖부리를 한껏 뭉개면서도 혀로 사정없이 알을 건드리면, 쾌감에 심지가 찌릿찌릿 울부짖었다.
그 압착력에 배겨 내지를 못하는 젖줄이 찔끔거리며 그의 입 안을 적셔 준다.
쪽, 쪽 젖 빠는 소리를 내며 모유가 가득 들어찬 양쪽 모유 통을 맛보는 그가 쉼 없이 혀를 굴려 탐하면서도 치뜬 눈으로 이따금씩 그녀를 응시했다. 그 탐탐한 시선에 아랫배가 몽글거린다. 그를 향한 애욕이 아닐 리 없는.
헤벌어진 잇새로 한껏 간드러진 교음을 흘리면서도 최시백 어깨만 꾹 붙들고 버티는 여린 생명체. 아귀힘 한 번에 으스러질 여자. 자칫 흥분해 휘두른 힘에 으깨질까 아이를 밴 제 여자를 살피는 남자의 눈이 세심히 번뜩였다.
한참을 고루 빨며 심을 후리는 데 열중하던 그가 녹아내리는 여체를 안아 들고 욕실을 나왔다.
흐물흐물하게 늘어지는 재연을 눕힌 그가 아이를 낳을 준비에 한창인 고리 조임근을 입술로 짓이기듯 엎눌렀다. 빠끔, 벌어졌다 닫히는 구멍이 내뿜는 열기를 포식하듯 먹어 치우는 그가 불쑥 혀를 내 안까지 삭삭 닦음질했다.
저런 엄중한 표정으로, 꼭 중요한 서류 검토하듯 진중한 눈으로 보지를 살피고 빨 때면 재연은 미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섹스할 때도 늘 삼엄하다. 이 남자 성격이라 그런가, 물샐틈없이 달라붙는 시선은 딴생각 한 번을 못 하게 만들었다. 그랬다간 대번 눈치채서 뭐라 할 것만 같기도 하고.
아이가 나올 구멍을 주도면밀하게 빨던 그가 혀를 꺼내자마자 벌끈 올라선 좆을 제자리에 맞추고 제 여자를 먹어 해치운다.
허우적거리면서도 두 손을 뻗으면 그는 묻지 않고 깍지를 끼워 주었다.
열 손가락 꼭 붙들고 떡 치고 싶다고.
그녀의 의중은 늘 묻지 않아도 귀신같이 알아채는 남자.
안까지 한데 물린 것이 한결 묵직하게 사잇벽을 벌려낸다. 빨라지는 피치에 맞잡은 손이 박자를 무시하고 마구 흔들거린다. 그때마다 꽉 힘을 줘 당겨 쥐는 최시백이 미간을 좁히고선 처박질에 집중한다. 그가 젖줄 길을 터놓아, 작은 몸이 낭창낭창 한들거릴 때마다 빗물 새듯 모유빛 젖이 흘렀다.
그럼에도 때움질은 계속됐다. 후질궁까지 꽉꽉 채워 휘돌리고, 자궁까지 전후면 샅샅이 맞비비고, 쾌락에 넋이 나간 사잇면까지 잊지 않고 앞뒤로 흔들어 주고, 아이가 놀고 있을 자궁 입구도 살살 귀두로 핥아 주며.
어느 곳 하나 빠뜨리지 않고 좆이 드나들었다. 힘 조절이 무용하게도 두툼한 귀두 테두리가 치받을 때면 속을 휘저으며 불침질을 하는 것만 같다.
“아흐, 아, 여보, 잠깐, 너무, 흐으, 강해, 나, 잠깐, 아!”
조금만 살살 뚫어 달라고 하는 애원에도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평소엔 서재연에게 불편한 기색이 있으면 그녀의 몸을 용의주도하게 보호하면서도 떡 칠 때만큼은 결코 헐렁하게 봐주는 일이 없다.
“아앙! 아흐아! 여보, 아! 아흣! 앙! 아!”
이렇게 박아도 다치지 않을 걸 알기에, 불어난 내벽으로 속살이 꽉 막힌 통로를 무자비하게 털어 대는 것이다. 사정없이 뚫고, 질궁 상단에 포진한 성감대까지 무참히 뭉개 찍어댔다.
넘어가는 몸이 더는 어찌 담아 둘 수 없는 오르가슴을 터트리고, 울어 젖힌다. 최시백에게 좆으로 얻어맞아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다.
눈물 바람을 하면서도 그녀는 끼고 있던 깍지를 풀고, 출렁거리는 모유 통 두 짝을 움켜잡고 버텼다. 흘러내리는 유즙으로 손바닥 가득 진줏빛 액체가 척척하게 엉긴다.
그는 자지 대로 자궁을 붙박아 고정시켜 놓고 은근하게 귀두를 밀어 대는 행위를 계속했다. 그러면서도 재연이 움켜잡고 있는 손을 걷어치우고 움팬 유두구를 빨아 젖힌다.
이른 아침 일어나도 간단하게 우유 한 잔 마시는 걸 본 적이 없는 남자였다. 한데도 이리 집착이 강한 남자였나 싶을 만큼 강한 젖욕에 진저리까지 쳐졌다. 정확하게는 젖물보다 가슴에 집착한다는 표현이 맞겠으나. 어쨌든 젖에 관한 것이라면 모든 걸 가지려 들었다. 퉁퉁 부어 손가락 마디처럼 벌떡 일어선 알이 잘착잘착 씹힌다.
몸서리치며 앙! 울자 괜찮다며 혀로 씹은 부위를 훔치개질한다. 그래 봐야 2차 공격일 뿐인. 그가 무자비하게 밀어 넣어 주는 젖 오르가슴이 그녀를 폭행했다. 깡패새끼라서 달래는 것보다 폭압에 익숙하다. 잠자리라고 다를 리가.
훔쳐 닦은 부위가 자극으로 오동통하게 뒤떨자 다시금 빨아대기 시작했다. 쭉쭉 뽑혀 나가는 유즙을 부드럽게 목 넘김 하며 거칠게 아기 밥통을 주물거렸다.
받아 마시겠다는 의도가 명백한 행위에 굵은 뿌리가 심겨진 보짓물속까지 비틀며 자지러졌다.
아래는 박히고 위는 빨린다. 숨 한번 고를 여유는 진즉 앗아 간 짓거리에 일방적으로 쏟아붓는 쾌감만 꼼짝없이 맞아야 했다. 흠뻑. 온몸이 젖도록.
이 보지가 맛있어서 당장 죽어도 따먹어야겠다는 집념이 담긴 행위에 죽어나는 건 재연이었다.
“아흐, 나, 보지, 아파아, 잠깐!”
“안 아픈 거 알아.”
“흐으, 여보, 나, 아니, 아앙!”
그래. 아픈 것만은 아닌데, 그렇지 않고서는 아득한 이 성감을 더는 못 버틸 것 같아서.
울음을 참느라 코끝이 시큰거렸다.
“보지 아파?”
“하으흐, 아니, 흐응.”
그렇게 한참을 떡 치는 소리만 난무하던 침실 위로 넘어가는 재연의 교음이 정점에 다다랐다.
이제 싸 달라는 신음.
한껏 물러진 보지 육질 위로 씨를 듬뿍 뿌리겠다는 좆질.
재연은 싸겠다는 신호를 보내는 귀두 놀림에 다리를 쩍 벌려 조금이라도 편히 절정을 받아들이려 애썼다. 그렇지만 조금의 편법도 용납하지 않는 깡패가 두 다리를 한데 모아 발목을 한 손으로 붙잡아 올린다. 질구가 정액을 쏘는 자지를 꽉 죄어 묶었다.
“흐아아! 응, 아!”
이렇게까지 강하게 치면 안 되는데, 아이가 놀라는데. 엄마만 믿고 있을 텐데.
이성이고 정신 줄이고, 한 줌도 남김없이 타 버린 텅 빈 눈동자. 텅텅 빈 그곳을 가득 채우는 건 그가 퍼지르는 성감뿐이었다. 짐승 같은 육욕과 본능만이 남은 침대 안의 세계.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해 결국 어떤 죄의식도 사념도 무장 해제 돼 버린 몸뚱이.
절정이 평소보다 깊고 진하게 찾아왔다. 어떻게든 쉽게 이 위기를 지나가 보려는 몸부림도 몽땅 무용지물이 됐다. 재연은 그가 살뜰히 뿌려주는 애욕에 몸을 바르르 떨었다. 아이가 들어찬 자궁 입구로 흠뻑 살수해주는 정액. 늘 임신이 잘되도록 자궁구에 맞춰 각도와 방향까지 조준해 싸던 그였다. 덕분에 한참 전에 들어섰는데도 늘 하던 대로 싸 준다. 요도구를 한참 동안 뻐끔거려 가며, 아기집 대문을 열 기세로 흔적을 뿌려 칠하고.
더 깊이, 더 뜨겁게 오르가슴의 열탕 안에 갇혔다.
그 어떤 극한 물속에 잠기는 것보다 더한 온도. 그가 끼얹는 쾌감은, 사랑은 그랬다.
* * *
출산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재연은 그녀가 출산 휴가로 부재할 동안 병원 운영에 힘써 줄 동료 의사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했다.
치과를 나와 택시를 탔다.
차를 보내겠다는 그 사람의 말을 거절했다. 갈 곳이 있었다.
오랜만이었다. 엊그제 입국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삼촌 계시지?”
마당 입구를 지키고 있는 남자, 은림이다.
“예.”
“왔다고 해줘.”
말없이 고개를 까딱이는 은림이 집 안으로 들어간다.
할 말이 있어 왔다. 죄송하다는 말을 해야 할지,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할지, 그도 아니면 용서해 달라고 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할지 정하지 않았지만, 아이를 낳기 전에 꼭 얼굴을 봐야 할 거 같아서.
이쪽으로 따라 들어오라는 남자의 수신호에 재연은 마당을 지나 긴 복도를 걸었다.
그토록 원하던 아이, 곧 태어나는데, 웃을 수만은 없는 지금의 상황이 어쩌면 삼촌과 자신이 받는 벌일지도 모르지.
조카딸을 이용해 천수라도 누리고 싶었던 성원형과 성원형이 자리에서 물러나도록 만든 자신.
주고받은 셈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으나, 모든 게 제 탓인 것만 같은 죄책감이 늘 응어리처럼 가슴 한편에 고여 있었다.
재연은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그렇게 오래 생각에 잠겨 있었던 것 같다.
늘 그녀보다 높은 온도를 유지하는 최시백의 품에서 따뜻하게 잠이 들었다.
늦어지는 날도 많았으나 다녀오면 꼭 혼자 쌕쌕대는 몸을 가슴 깊이 품어 주니 매일 따뜻하게 잠이 든 건 사실인 셈이었다.
몸이 달아 들어온 날엔 자고 있는 서재연 보지를 빨며 깨웠고, 재연은 금세 불타오른 몸으로 환영하듯 구멍을 열었다. 예정일을 코앞에 두고는 자제하는 중이라, 바짝 선 자지를 손으로 풀어 주고 입으로 빨아 주고, 흠뻑 젖은 보지에 꽂아 줄 수가 없어 안타까워하는 그가 귀두로 클리를 비비며 자위를 도와주곤 했다.
그러다 결국 더 큰 자극을 원하며 펑펑 우는 구멍을 벌려 조심히 찾아들었다. 곧 출산을 앞둔 구멍을 앞뒤로 야물게 찔러 주는 그가 평소보다 자상하게 추삽질을 가했다. 그러다 절정에 올라선 고삐가 풀려 억세게 쑤셔 주었지만.
곧 완전히 벌어질 자궁구에 뿌연 씨물을 뿌리고 아빠 연고도 발라 주었다.
그 어느 날보다 고요한 새벽이었다.
그의 품에 안겨 뒤척이던 재연이 숨을 헐떡거렸다. 평소와 다르게 자꾸 몸이 가라앉는 기분. 화장실에 가서 물이라도 한번 빼려 상체를 일으키는데 아래가 울컥울컥, 쏟아져 나온 느낌에 이불을 들어 보았다. 사색이 된 얼굴로 최시백을 흔들었다.
“여, 여보, 여보. 최시백.”
그녀의 부름에 늦지 않게 눈꺼풀을 든 그가 놀란 얼굴을 하고 있는 재연을 살폈다.
새벽에 자다 말고 양수가 터져 오들오들 떨고 있는 제 아내의 모습에도 그가 침착하게 겉옷을 그녀의 어깨 위로 두르고 전화를 건다. 언제든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걸 미리 예상이라도 한 사람처럼. 이런 상황이 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시뮬레이션이라도 돌려 본 사람처럼.
그가 재연을 안아 들고 침실을 나왔다.
예정일보다 앞서 나오는 아이. 긴장으로 땀범벅이 돼 이마에 눌어붙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 주는 그가 괜찮다며 떨고 있는 허벅지 한쪽을 손아귀에 넣고 꾹 힘을 준다.
이젠 어디에도 가지 않고 곁에 있을 거라는 신호 같기도 했다.
한시도 네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무언의 몸짓.
곁에 있을 테니 떨지 말라는 사랑의 다짐.
재연은 허벅지를 그러쥐고 있는 그의 손등 위를 겹쳐 잡았다.
대번 손을 뒤집어 깍지를 끼는 그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마음의 준비가 됐다.
외전.
누군가가 생각나는 눈동자였다.
섬세하고 차가운 잿빛 눈동자. 그렇지만 쓸쓸함 대신 온기가, 냉기 대신 다정함이 있는.
아이가 동그란 입을 쪽쪽대며 젖을 야무지게 빠는 게 신기해 재연은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생에 대해 아무것도 알 리 없는 아이가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낸다. 최시백이나 서재연에게서는 느껴지지 않는 그런 유의 집념. 배가 빵빵해질 때까지 고집스레 물고 있던 엄마 젖을 툭 떨구며 나른한 숨을 쉰다.
젖내가 가득 나는 아이에게서 느껴지는 최시백의 향기라니. 기분이 이상하다. 재연은 최시백과 똑같이 생긴 입술을 닦아 주고 아이를 안아 등을 토닥였다.
모든 게 서투른데도 투정 한번 부리지 않는 아이가 엄마 품에 폭 안겨 있다.
이상한 감격이다. 태어나 처음 맛보는 종류의 감정. 뭐랄까, 기분이 좋다, 나쁘다 같은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의 갈래. 어쩌면 행복일 수도 있는.
사실 열 달 동안 오롯한 기쁨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초기엔 살아 내느라, 중기엔 최시백에게서 버텨 내느라, 그 시기를 넘기고 나니 어느새 출산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비겁하게도 아이를 받아들이기로 결정을 하고서도 기쁨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그런데도 아이는 살아 내기 위해 열심히 젖을 빨고 숨을 쉬고 쉼 없이 활동을 한다. 기특하게도.
아이를 고쳐 안고 최시백의 유전자를 받아 태어난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뭘 알지도 못할 텐데, 엄마를 빤히 들여다보는 아이가 미동 하나 없이 눈맞춤을 하고 있다.
신생아는 좀 더 시간이 지나야 또렷이 보인다는데, 뭐가 보이긴 하는 건지.
다들 공부하고 아이를 맞을 준비를 할 때, 자신은 그저 품에 담고만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할 도리는 다 한 거라고 생각하며. 마음 한편으론 외면하고 있었던 거다. 아이가 없었다면 어느 선택이든 더 쉽지 않았을까. 못난 형체의 원망이 들붙어 자신을 괴물로 만들었다. 못내 이 아이가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거라고. 생도 사도 어느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게.
죽을 위기를 넘길 때마다 살아 낸 건 자신만이 아니었다. 품속에 있던 아이 역시 매한가지였다.
재연은 아이 뺨 위로 툭 떨어지는 눈물방울을 서둘러 훔쳤다.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꼭 다 아는 것처럼 그녀를 보고 있다. 모체의 괴로움도 외로움도 덩달아 먹고 자랐던 생명. 눈 키스라도 하는 것처럼 눈을 깜빡거리는 최시백의 딸.
“…….”
자신을 위로하는 밤톨이 최시백을 빼다 박아서 기분이 더 묘하다.
최시백과 결혼할 때부터 제 계획에 있던 아이였다. 그 남자에게서 떠나면 둘이서 생을 함께하자고. 우리 둘이라면 외롭지 않을 거라고. 멋대로 제 인생에 끼워 넣었다. 귀찮게 되자 성가셔졌던 존재.
결국 참지 못하고 포근한 아이 머리맡에 입술을 묻고 펑펑 울었다.
소리를 죽이느라 입술을 꾹 눌렀더니 솜털 같은 아이 머리카락이 축축하게 젖는다.
전화 통화를 하러 나갔던 그가 돌아왔는지 젖내가 가득하던 공간 속으로 남자의 체향이 끼어들었다. 빠르게 눈가를 비비고 벌게진 눈으로 남자를 올려다봤다.
왜 울었는지 묻지 않는 그는 아이 대신 재연에게로 완연한 시선을 둘 뿐이다.
“당신도 안아 봐요.”
괜히 말을 돌리며 꼼지락거리는 품 안의 온기를 나누자 건넸다. 짭조름한 입술로 눈물을 훑어 없애고 아이를 건네자 다가오는 그가 쥐콩만 한 생명체를 안아 간다. 저 손으로 누구 모가지나 꺾을 줄 알았지, 작고 연약한 것을 돌볼 줄이나 알까 싶기가 무색하게도 그는 꽤 안정된 자세로 아이를 안았다.
그렇지 않아도 작은데 저 손안에 있으니 정말 자칫하다간 부러질 것 같다. 목덜미며 손가락이며 질 나쁜 그림을 몸에 난도질하듯 죄 그려 놓고서는 그 손으로 신생아를 안고 있다니.
이상한 그림이었다. 저 손으로 유축한 모유가 든 젖병을 아이에게 물리는 상상까지, 쉼 없이 이어졌다. 곧잘 할 거 같아서 더 기묘하다.
“이상해.”
첫딸은 아빠를 닮는다지만, 이렇게까지 붕어빵일 일인가. 이렇게 보니까 최시백 옆에 작은 최시백이 있네. 그럴듯한 폼으로 아이를 안는 최시백도 묘하다. 아기랑은 상극일 거 같은데, 편하게 호흡하는 갓난아이는 오히려 엄마 품보다 더 안락해 보인다.
재연이 느닷없이 툭 내뱉은 말에 잠시간 아이에게 시선을 두고 있던 그가 언뜻 온온한 기운을 접고 이쪽을 본다. 여전히 사늘한 눈매, 태생이 가진 만듦새지만 아주 설핏 안온한 안광을 본 것만 같았다. 따뜻한 눈으로 볼 줄도 아는 남자인가, 이 남자가.
“안 어울리는데 어울려.”
“무슨 말이야.”
“모르겠어요, 나도.”
그렇게 오래 시간을 뺄 수 없다는 걸 아는데도 가지 않는 그가 벌써 며칠째 곁에 있다.
그러자 오히려 좌불안석이 된 건 그녀였다. 괜히 바쁜 사람 발목 잡아 두는 거 같아서. 일 보고 와도 되는데, 시커먼 깡패새끼들이 병원 복도까지 와서 몇 날 며칠을 진을 치고 있으니, 이런 광경이 낯설지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신경 쓰이지 않는 건 아닌지라.
“일 보고 와요. 괜찮아요.”
이제 본격적으로 모유 수유 시작하면 두 시간에 한 번은 먹일 텐데, 그때마다 덩달아 도와 달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산후조리원으로 가든 집에서 전문 도우미들을 쓰든 도움받을 곳은 많았다.
밤마다 한 침대에서 잠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입을 열었다 닫았다 입술을 달싹거리니 말을 할 때까지 추궁하지도 않고 지켜만 보고 있다.
“난 괜찮다구요. 당신이 다녀와야 내 마음이 편할 거 같아요.”
터질 것처럼 빵빵하게 부푼 제 가슴 두 쪽을 밤마다 주물러 주는 그는 아파 흐느끼는 유두를 달래며 살뜰히 빨아주었다. 아이가 힘껏 빨 때와는 다른 결의 유두통이었다.
밑에선 야릇한 곡소리를 내는데 위에선 침착하게 빠는 그가 조용히 자신을 살피며 내려다볼 때면 아픔보다 더한 수치심에 휩싸였다. 이리저리 전 같지 않은 몸을 살피며 만져주는 남자는 그렇게 한참을 올라타고 나서야 곁에 누웠다.
“일 마치고 돌아오기만 하면 돼요. 난.”
저 근육질 팔로 꼼지락거리는 갓난쟁이를 눕히는 광경도 이상하다. 무엇 하나 조심히 다뤄 본 적도 없는 손이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것을 만진다. 하물며 제 아내 보지를 만질 때도 거칠게 씹질하던 손가락이, 아이에겐 퍽 힘 조절이란 걸 한다.
번데기처럼 보에 싸여 꿈틀대는 아이를 침대에 눕힌 그는 셔츠 차림이었다. 매일 거의 비슷한 착장이지만 셔츠의 종류도 모양도 조금씩 달라진다. 도우미가 세탁을 마치고 정리해 두면 마지막 점검을 하는 건 자신이었다. 세탁물에 예민해서 제대로 세탁이 되었는지, 어디 구김 간 곳은 없는지 확인을 꼭 하고서야 드레스 룸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어떤 셔츠를 입었는지 모를 리 없지. 그는 현장이 어울리는 사람이다. 깡패가 적성에 맞는 나쁜 놈. 저 셔츠를 입고도 주먹질을 하러 가는 남자. 그게 어울리는 천성이 깡패. 그런 개새끼를 사랑하는 자신도 정상은 아닌 건가. 그런 걸 따지고 있을 시기는 벌써 한참 전에 지난 걸 알지만 문득문득 반추할 때가 있다.
깡패새끼들이랑 한바닥에 버무려져 사는 게 제 팔자인 걸 알면서도, 제 처지가 피부로 와 닿을 때, 지금처럼 피할 수 없을 때. 그럼에도 최시백이 좋을 때, 답이 있을 리가.
벌써부터 제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기라도 하듯 갓난아이는 잘 울지도 않았다. 아이가 운다 해서 설마하니 최시백이 손을 들 것도 아닌데. 그것마저 기분이 이상하다. 그에게 일방적으로 배려받는 생명체가 존재하는 것도.
어느새 다가서 그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는 그를 발견했다. 어쩌면 오래전부터 이렇게 자신만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한번 딴생각에 빠지면 한참을 멍하니 있곤 하니까. 사람이 오고 가는 줄도 모르고.
“왜요?”
가만히 자신만 보던 그가 말없이 침대에 걸터앉았다.
뭘 말하는지 몰라 한참을 쳐다만 보고 있자 이리 오라고 허벅지를 두드린다.
아, 작은 탄성과 함께 그의 어깨를 짚으려 손을 뻗었다. 허리를 받쳐 안아 주는 그가 안정감 있게 올라앉는 그녀를 사뿐하게 받아 내 품에 안는다. 신생아와 비할 수 없는 사이즈인데도 아이를 안을 때보다 더 안정된 몸짓.
당연했다.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매일을 이렇게 안겼다. 자연스럽게 키스를 시작하고 목덜미로 이동하는 그의 입술이 퉁퉁 불어 있는 가슴으로, 이내 다리 사이로, 백발백중 섹스로 끝이 나는 몸짓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지금은 어떻게 끝이 날지 한 치 앞도 모른 채 그가 건네는 키스를 받는다.
“후으, 아, 왜, 왜, 안 가요?”
바쁜 거 아는데도 갈 생각이 없어 보이는 그가 병원복을 들추고 탱글탱글하게 올라선 유두를 찾는다. 아이가 빨아 놔 모유로 번들거리는 알맹이를 기다렸다는 듯 이로 당겨 물었다. 등허리를 단단하게 받치고 있는 손이 뒤로 넘어가는 몸을 지탱했다.
“나중에.”
“나, 중에, 으응, 언제? 흐아!”
“더 나중에.”
“후으응, 여보, 아, 잠시, 흣.”
아기 밥물로 촉촉하게 젖은 젖알 두 개가 사정없이 흠빨린다. 평소보다 배로 커진 꼭지라 넓고 뾰족한 면적이 한꺼번에 압착되며 열감에 시달렸다. 배꼽 아래가 저릿하고 클리가 이로 씹혀 꼭 오줌을 싸고 싶은 것만 같은, 익숙한 감각. 성감이 발현될 징조.
어깨를 짚고 있던 손도 놓고 부르르 떨자 낭창거리는 몸을 눕히는 그가 본격적으로 젖 두 개를 움켜잡고 한데 모은 꼭지 두 개를 젖소 젖 짜내듯 주무르며 분사물을 목구멍 안으로 쐈다.
제대로 된 강약 조절에 젖이 쭉쭉 밀려 나온다. 젖꼭지는 가슴 두 쪽에 달려 있을 뿐인데 성감은 전신을 짓누르며 사지를 묶는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얼얼한 유두를 대준 채 일방적으로 밀어 넣는 쾌감에 버둥질 치는 것뿐.
그저 생존 본능으로 엄마 젖을 빠는 아이와 달리 오르가슴을 뽑아내고자 하는 의지가 확고한 빨질이다.
얼룩진 젖무덤을 꼼꼼하게 핥고 배꼽 아래로 떨어지는 혀가 지긋이 떨고 있는 부위를 엎누른다. 차분한 혓바닥이 언제 그랬냐는 듯 배꼽을 핥았다. 부드러운 혀유두 돌기가 덜덜대는 살갗을 훔친다.
“왜 자꾸 못 보내 안달이야.”
“그게 아니라….”
“때 되면 알아서 가니까 그만 내쫓아.”
그런 거 아닌데. 꿈찔거리느라 답이 느려지자 다시 입술을 찾아 오르는 혀가 한참을 입 속에 박혀 활개 친다. 은은한 모유 맛이 났다. 웃기게도 아는 맛이었다. 젖이 돌기 시작하고부터 이와 같은 키스를 계속 해왔으니까. 젖이 빨리고도 최시백답지 않게 다급하게 다시 입술을 찾고.
사실 생각해 보면 아이를 낳기 전에도 그랬었다. 서로의 온갖 곳을 다 핥고 빨고도 급하게 잇새를 찾아 혀를 삽입하고 쑤시고 박고, 안 해 본 게 없었으니까. 부끄러워하는 거 알면서, 말도 못 하고 그저 눈만 꾹 감고 있으면 할 때까지 말없이 밀어붙였다. 그럼 또 끝내 다리 사이로 내려가 무섭도록 직립한 성기를 물고, 그의 입으론 털이 무성한 음부를 들이밀고.
차라리 저열하게 겁박했으면 밉기라도 할 텐데, 먼저 할 때까지 말없이 압박만 하니 결국 원하는 것은 이쪽이 되어 버린다. 물론 그녀라고 이 남자를 원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어쩐지 억울했다.
재연은 한참을 혀를 섞는 데 집중하다 말고 너른 어깨를 꾹 밀어 최시백과 눈을 맞추었다.
“쫓아낼 거면 그냥 입을 닫아.”
“응. 가지 마요. 그랬으면 좋겠어.”
“서재연.”
“응.”
한참을 침묵. 쳐다보는 눈시울만 일렁거릴 뿐. 그래도 충분하다 못해 넘쳐서 괴롭다. 말 한마디보다 보여 주는 몸짓이 더 많은 말을 해서.
“내가 사랑한다고 했었나?”
목 안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솟구치는 기분에 순간 목구멍이 턱 막혔다.
“…응. 지난번에. 퇴근하고 새벽에 들어왔을 때, 섹스하면서….”
“그래.”
주룩 눈가를 타고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지만 가쁜 숨소리는 숨길 수가 없다.
“서재연.”
“응.”
“난 안 가.”
“응.”
“그러니까 그만 쫓아내.”
네가 등 떠밀어도 어디에도 가지 않는다고 고하는 남자는 여전히 서늘한 눈매를 지녔다.
본디가 그런 남자. 그래서 사랑했고, 사랑하므로 제 현실이 이렇다 해도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자만이고 만용인 거 알지만, 어쩔 수 없는. 어떻게 막아 볼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 * *
재연은 유축해 둔 젖병을 들고 조용히 서재로 들어갔다. 스피커 밖으로 들려오는 남자 목소리는 심상치 않은데, 전화를 받고 있는 최시백은 한 팔로 품은 아이를 무심히 다독이고 있었다.
거멓게 팔뚝을 색칠한 문신은 여전한데, 손안에 든 것은 조용한 집 안에 새로 불쑥 나타난 갓난쟁이였다. 아기처럼 따스하고 포근한 생명체는 어울리지도 않는 삭막한 집 안이었다. 그래서 태어날 아이가 이 집안과 어울릴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자신이라고 부모가 될 준비가 제대로 되지도 않았는데 집 안이라고 다를까.
이 집과 새 생명은 여전히 위화감이 들지만 최시백과 젖내 나는 아이 조합이 보기 나쁘지만은 않았다. 봐도 봐도 적응이 안 되는 그림인데 또 자꾸 눈길이 가는 신묘한 투샷이라고 해야 할까. 무튼 예사롭지 않았다.
아이를 안아 갈 생각으로 다가가는데 그가 남은 손을 뻗는다. 쥐고 있던 젖병을 건네자 빠끔 벌어지는 동그란 아이 입술 사이로 능숙하게 젖병 꼭지를 물리며 재차 통화를 이어 갔다.
마디마디 이어진 검은 잉크와 손아귀에 든 젖빛 젖병. 기이한 조합에 자꾸만 눈이 간다.
아이 역시 젖병을 쭙쭙대면서도 가만히 아빠를 들여다본다. 뭘 안다고 저렇게 뚫어져라 보는 걸까. 꿀떡꿀떡 엄마 젖을 마시면서도 젖병을 쥐고 있는 아빠 새끼손가락을 꼭 쥐어 보는 아기가 눈을 끔뻑거렸다. 수화기 속 무시무시하게 들려오는 상대방 욕설을 듣다 말고 문득 보드라운 촉감을 느낀 그가 아이를 내려다본다.
부들부들한 아기 손가락이 검측하게 도색한 그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린다. 갓 나와 때 하나 타지 않은 깨끗하고 정결한 것이 세상 검고 더러운 명암은 다 만진 손을 만작만작 오래도록 만져 본다. 뽀송하게 솜털이 선 손등이 아빠를 툭툭 건드린다.
-야, 이 새끼야. 듣고 있냐? 딸 잡냐?
최시백에게 저딴 식으로 떠들 사람은 제가 알기로 김종섭 그 사람뿐인데. 시백이 승진을 했건 어쨌건 제멋대로 떠드는 김종섭의 아가리질을 귓등으로 흘리는 최시백의 눈동자는 아이에게 고정돼 있었다.
“…너는 상관에 대한 경외심이란 게 없어?”
-애심 그게 뭔데. 업장에 새로 들어온 년이냐? 아니, 이 좆팔 놈아. 큰형님 작업 치신 건 말하고 있는데 넌 뭔 업소 보지 얘기를 하고 앉았어. 어떻게 할 거냐고. 갈 거야, 말 거야.
작은 한숨과 함께 꿀떡꿀떡 젖을 삼키는 아이를 내려다보던 그가 말없이 두 사람을 바라보고 선 그녀에게로 다가와 아이를 건넸다. 재연은 아직 젖병에 남은 모유를 마시고 있는 아이를 받쳐 안고 핸드폰을 집어드는 그를 힐끗거렸다.
엄마 품에 안착한 아이가 젖을 동내고 꼭지를 뱉어냈다. 재연은 아이를 안아 등을 토닥이며 서재를 빠져나왔다. 따끈하고 몰캉거리는 것이 작게 버둥질한다. 조금은 능숙하게 자세를 잡아 주자 쪼그만 것이 금세 아늑함을 느끼는지 푸근한 숨을 내쉬었다.
아이를 안고 거실을 서성이고 있는데 얼마 있지 않아 서재에서 그가 나왔다.
엄마 품에 손 타는 버릇 들면 재연이 힘들어질까, 그가 집에 있으면 아이를 주로 돌보는 건 최시백이었다. 웃기지만, 그랬다. 더 웃긴 건 번듯한 치과 의사 서재연보다, 멀쩡한 놈도 잡아 조지는 데 특출난 재능이 있는 최시백이 애를 더 잘 본다는 거였다. 두들겨 팬 남자들 배때기 속 곱창 손질이면 모를까. 그도 육아가 처음인 건 매한가지였다.
사실 별다른 것도 없었다. 아이가 울면 안아 달래고, 기저귀를 갈고, 뒤척이면 토닥이고, 그런 건데 그 무신경한 손길에 애는 더 안정감을 느끼는 듯했다. 희한한 일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상할 것도 없었다. 체격도 좋고, 품도 넓고, 손도 더 크니 아이를 안정감 있게 보는 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저 이런 건 엄마가 더 잘한다는 세상의 편견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걸지도.
재연은 자연스레 그에게 아이를 넘기려고 다가섰다.
할 수 있는 건 아빠 품에 안겨 삐악대는 것뿐인 어린 딸을 그가 다시 안아 간다.
재연은 위화감 속에서 묘하게 안정을 이루는 기이한 구도를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분간은 꼼짝없이 담배 없이 살아야 하는 그에게 아이 젖내가 풍기는 기묘한 광경.
저 성정으로는 갓난쟁이든 뭐든 품에 안고 뻑뻑 담배를 피웠겠지만, 서재연이 눈에 불을 켜고 절대 안 된다고 하니 또 참는 것이다. 벌써 아이를 품에 안은 채 불붙이지 않은 담배를 물다 한번 걸린 적이 있었다. 달리 대거리는 하지 않는데 아마도 습관성 같아 보이기는 했다.
주방으로 향하다 말고 물끄러미 두 사람을 보고 있던 재연은 고개를 드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김종섭 그 남자의 지랄로 봐서는 무슨 일이 있는 거 아닌가. 꼭 가 봐야 하는 일이라면 나가 봤겠지만 이렇게 여유를 부리는 걸 보면 김종섭 그 남자의 일방적인 지랄일지도.
지금 둘째 얘기를 꺼내면 절대 반대하려나. 피임 없이 이대로 있으면 곧 둘째가 들어설 것 같은데. 첫째 때 그 고생을 한지라 둘째는 절대 없다고 생각했으면서도 첫째 아이를 낳고 나니 또 둘째 욕심이 생긴다. 저 눈과 똑 닮은 딸아이를 보자니 더 그랬다. 그래서 어제도 그냥 안에 싸라며 사정액을 뿌리려는 그의 성기를 자궁구에다 꾹 붙이고 있었다.
그러다 임신하면 어쩌려고. 넘어가는 제목을 딱 붙여 받치고서 그렇게 뇌까리는 그의 목소리가 기분 좋게 노곤했다.
둘째까지만 낳고 피임해도 될 거 같은데. 재연의 속내를 눈치챈 거 같기도 한데 워낙 뭐든 내색을 안 하는 사람이라.
외출 생각이 없어 보이는 그가 가까이 다가오라 눈짓한다.
자신을 향해 있는 남자의 눈동자는 어느새 아이에게서 관심이 달아난 기색이었다.
다가가면 뭐 하려고. 재연은 알면서도 조심히 다가섰다.
가다 말고 멈춰 서자 남은 거리를 그가 마저 다가온다. 망설임은 결코 두지 않은 걸음으로, 입술이 닿을 때까지. 한 발자국 뒷걸음질 치자 조금 멀어지는 것도 예민하게 구는 그가 무섭게 다가와 맞부딪혀 왔다. 거세고 뜨거운 파도처럼, 서재연이 그에게 푹 잠기도록.
끝
― 각주
⑴ 마진을 의미하는 은어
⑵ 마무리를 의미하는 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