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00)
99화 – 파티 타임 (1) – 복기와 휴식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32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복도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102호에서 나왔다.
평소에도 저주의 방에서 나오면 잠시 머리가 어지럽곤 했지만, 오늘은 좀 심하다.
아예 인간에서 벗어난 상태로 있었기 때문일까?
자연스럽게 내 손에 들린 ‘마도서’를 보았다.
이전에 별을 얻었을 때는 ‘선택의 시간’ 어쩌고 하면서 유산을 누가 얻을지 논하게 했는데, 이번 마도서는 그런 것 없이 바로 내 손으로 들어왔다.
마지막 결전을 사실상 나 혼자서 해서 기여도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이겠지.
푸르스름한 빛을 뿜어내는 마도서는 누가 봐도 ‘나 유산’하고 외치는 중이었다.
방에서 나온 다른 사람들도 신기한 눈으로 마도서를 바라보았다.
근처로 온 엘레나가 신기하다는 투로 말을 걸었다.
“이게 그 마도서인 건가요?”
“그런 것 같습-”
중간에 끼어든 아리가 외쳤다.
“엘레나! 그런 예의 없는 말은 자제하세요!”
“에? 네?”
“감히 하늘의 아드님께 무슨 그런 말을! 하늘의 아드님께는 이제 말 한마디 할 때마다 허리를 숙여야 한답니다.”
아! 진짜 좀!
“제발 그만해….”
“하늘의 아드님? 혹시 제가 불쾌하게 해드렸나요? 이번엔 절을 하면 될까요?”
승엽이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누나? 무슨 말이에요?”
“이제부턴 가인 더 지저스께 뭔가 여쭐 때는 꼭 허리를 90도로 숙이고, 손을 양손으로 모은 채 말을 해야 한단다. 내가 그걸 지키지 않아서 저주의 방에서 천사님 손에 맞아 죽을뻔했거든.”
…
105호에 도착할 때까지 아리는 쉴 새 없이 날 놀렸다.
구경하는 게 너무 재밌었는지 송이나 승엽이도 내게 말을 걸 때마다 기도하고,
진철 형은 어디서 구했는지 조그마한 십자가로 성호를 긋기 시작할 때쯤.
105호에 도착했다.
아니, 하늘의 아들인지 뭔지 하는 개새끼는 뭔 이렇게 요란한 신 행세를 하고 다닌 거야?
솔직히 지가 신도 아니고, ‘주’에게 힘을 끌어다 쓴 거잖아?
이거 무슨 부모님이 번 돈으로 잘난척 하는 드라마의 금수저냐?
남이 준 힘으로 무슨 신 코스프레는 그렇게 열심히 했나 모르겠다.
그리고 이 인간들은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단합을 잘하게 된 거야?
*
예상대로, 105호로 돌아오자마자 폭죽 소리와 함께 요란한 안내창이 떠올랐다.
/사랑하는 고객 여러분! 축하합니다!
호텔의 임직원 일동은 고객 여러분이 세 번째 보물을 찾아내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대적자! 몸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공포! 탄생을 꾀하는 악신!
그 모든 시련을 이겨 낸 여러분은 틀림없이 우리가 기다렸던 영웅들이십니다.
내일부터 4일간의 휴식! 보물에 익숙해지시는 게 좋을 겁니다.
오늘의 깜짝 이벤트 : 파티 타임! 이 시작됩니다.
# 파티 타임은 4일간 유지되며 그동안 위험한 일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
파티타임도 여러 번 봐서 대충 내용을 외워서인지, 보자마자 평소와 약간 달라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동안의 파티 타임 안내창과 뭔가 다른데요? 대충 축하한다, 쉬어라, 연습해라 이런 건 항상 나오던 말인데, ‘파티 타임에만 정체를 드러내는 비밀을 찾아라.’ 부분이 사라졌네요.”
누나가 갸우뚱하며 대답했다.
“이런 문장 변화가 의미 없이 일어났을 리는 없을 텐데. 설마….”
“이젠 더 찾을 비밀이 없다는 뜻일까요?”
다들 잠시 침묵했다. 조언을 써볼까?
쓰기 전에 바로 아리가 대답했다.
“그 의미가 맞아요.”
아리의 대답으로 우리의 고민이 끝났다. 역시, 호텔 2회차!
… 가끔 하는 생각인데, 아리의 기억은 좀 편의적인 것 같다.
본인이 대답하고 싶을 때만 기억나는 듯한 이 느낌은 무엇인가.
어쨌든 그 말대로라면 이번 ‘파티 타임’에는 더 이상 탐색이 필요 없다!
102호에서 나온 후, 105호의 식당에서 식사하며 내가 어떻게 해결했는지 말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마지막에 해결한 사람이 나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설명은 내가 했다.
“여태까지의 말, 대략 이해하셨나요?”
말하는 나부터가 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싶을 정도로 초현실적인 이야기들.
당연히 듣는 사람들도 그저 뭔 소리야! 하고 외치고 싶은 기분을 참는 느낌이다.
그나마 지하 진입 직전에 나와 마주쳤던 만큼, 조금은 상황을 이해하던 아리가 말했다.
“대충 알았어요. 쉽게 말해서, 악신의 탄생을 막지 못해서 사실상 망했는데 대천사 가인이 기도해서 깼다는 거죠?”
주저 없이 펜을 꺼내서 아리의 눈을 향해 휘둘렀다!
내 신속한 기습에 아리는 반응도 못 하고 시야가 가려지더니, 얌전히 식탁 위로 올라와서 무릎 꿇었다.
“언제까지 절하면 되나요?”
근데 사실 잘 요약한 것 같다. 내가 잘 기도해서 깬 게 맞는 듯?
약간 고개를 갸우뚱하던 은솔 누나가 대화에 끼었다.
“악신과 싸우고, 용이 깨어나고~ 하는 부분은 솔직히 전혀 못 알아듣겠어. 미안하지만, 설명하는 가인이 너도 잘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은데?”
“맞습니다. 이미 말씀드렸지만, 강림한 후엔 제 자아가 사라지는 느낌이라서요. 저도 머릿속에 남은 정보를 짜 맞춰서 설명 중인데, 솔직히 설명이 어렵습니다.”
“다만, 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을 말하고 싶어. 가인이가 깨고 나서 나온 알림창 내용이 좀 그렇네?”
“좀 그렇죠.”
“솔직히 다른 부분은 그냥 잘했다, 수고했다 하는 의례적인 말이고 ‘다음번엔 이렇게 ‘자체 하드모드’로 가지 마라.’, 이게 진짜 하고 싶던 말인 것 같아.”
“호텔에선 우리의 이번 해결을 그다지 좋지 못했다고 보는 듯합니다. 이유는 짐작이 갑니다. 우리는 네 번째 시도에서 너무 치명적인 실수를 했거든요.
세 번째 시도가 끝난 시점에서 힌트의 의미는 ‘지하로 가지 말라’로 거의 확정된 상태였습니다. 이걸 명심했다면 이세현이 뭐라고 현혹하든지 간에 지하의 제단 따위에 갈 리가 없었죠. 만약 우리가 지하로 가면서 분산된 게 아니라면….”
묵성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결정은 기다리다 보면 사라졌을 테고, 사도 따위는 종만 치고 있으면 진철이가 혼자서도 패 죽였겠지. 저택의 괴물이 깨어난다든가 하는 귀찮은 일도 없었을 테고, 설령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우리가 모여있었다면 충분히 박살 냈을 거다.”
진철 형이 다소 헷갈리는 표정으로 질문했다.
“하지만, 마도서가 지하에 있는데 지하를 안 갈 수가 있었습니까?”
그 부분은 내가 답을 떠올렸다.
“애초에 마도서를 미리 얻으려 할 필요가 없었죠. 별 조각도 사실상 다 끝난 후에 보상으로 얻지 않았습니까?
그냥 할아버지 말대로 다 같이 결정 옆에서 기다리다 보면 결정이 결국 사라졌을 겁니다. 그 후에 종 치면서 사도를 죽이고, 이계의 성소를 별로 쓸어버리면 해결하지 않았을까요?”
“생각해보면 애초에 우리가 지금 있는 곳이 1층 아니야? 갑자기 무슨 신의 아들씩이나 되는 존재와 싸워서 이기는 게 해결 조건 일리가 없어.”
한참 듣던 승엽이가 긴 대화를 요약했다.
“한마디로, 우린 선택지를 실수해서 배드 엔딩 루트로 들어갔는데, 엔젤 가인이 강림이라는 치트키를 쳐서 억지로 깼네요. 그래서 호텔 반응이 저렇게 별로인가 봐요.”
주저 없이 승엽이의 눈도 그었다.
대체 이 펜의 성능은 어디까지인가! 이렇게 유용할 줄이야.
승엽이도 곧 아리 옆에서 절하기 시작했다.
절하고 있던 아리는 허리가 아팠는지, 일어서며 투덜거렸다.
“하여튼 지랄은! 애초에, 사람이 하는 일에 실수가 없을 수가 있어? 갑자기 시나리오가 갈아엎어지고 지랄이 났는데, 실수하는 게 정상 아니야?”
틀린 말은 아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실수를 하는 게 당연하지. 하지만….
우리는 ‘보통 사람’이 아니어야 한다.
“평범한 사람이야 앞에 사자 한 마리만 나타나도 주저앉아서 넋이 나가겠지만, 영웅이라면 그런 상황에서도 이성을 유지하거나 사자를 때려죽이거나 하겠지. 호텔은 그런 영웅을 찾으려는 게 아닐까?”
“아무래도 좋아. 어찌 됐든 가인이가 유산은 얻었으니까 된 걸로 치자. 나 이제 눈 좀 깨끗하게 해줘.”
은솔 누나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아니, 아무래도 좋다고 가볍게 넘어갈 일이 아니야. 왜 그런 실수를 했고, 앞으로 어떻게 방지할지 생각해야지. 난 오늘 솔직히 이야기할게.
그간 회의의 흐름을 보면, 나랑 가인이, 묵성 할아버님이 한 95% 이야기하고 나머지는 그냥 듣기만 할 때가 많아. 8명이 모여있지만, 실제 회의는 두세 명만 할 때가 많다는 거지.”
갑자기 나온 은솔 누나의 팩트 폭력. 주변 사람들이 다들 조용해졌다.
“세 번째 시도 후에도 우린 회의를 했어. 문제는, 그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후다닥 회의하고 넘어갔지.
왜 그랬을까? 별 이유 없었을 거야. 그냥 그때 우연히 3명이 좀 지친 상태였겠지.”
뭔가 선생님에게 혼나는 분위기.
참지 못하고 송이가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아니, 내가 누굴 훈계하는 게 아니야. 회사에서 여럿이서 모여서 회의하다 보면 자주 생기는 현상이거든. 테이블엔 20명이 넘게 앉아있는데, 가만 보면 진짜 생각 중인 사람은 한 3명이고, 나머진 ‘시간아, 흘러가라!’ 하고 있을 때가 대기업에서도 드물지 않아.
그럴 때 내가 썼던 방법이 하나 있어.”
궁금해졌다.
“뭡니까?”
“악마의 대변인이라고 해. 한사람이 무조건 반대 의견을 내는 거야. 나는 앞으로 아리가 그 역할을 좀 해줬으면 해.”
누나는 ‘아리’를 지목해서 회의에서 ‘다른 의견’을 내는 역할을 맡아주길 요청했다.
아리가 대답했다.
“앞으로는 좀 더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가인아. 이제 진짜 눈 좀 지워줘.”
회의에 대한 피드백은 이 정도면 충분한 듯하다.
이번 파티타임을 어떻게 보낼지 나름대로 고민한 부분을 말했다.
“앞으로 회의는 그런 식으로 하도록 합시다. 꼭 아리가 아니더라도, 한두 분은 반드시 다른 관점의 이야기를 해주세요.”
“아니, 가인아. 일단 눈 좀 지워달라니까?”
“이번 파티 타임은 어떻게 보낼지도 고민해봅시다. 요번엔 ‘탐색’이 필요 없으니, 시간이 꽤 남아요. 이 기간에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좀 고민해봐야 합니다.”
“내 눈에 대해서도 좀 고민해줘.”
“우리의 축복. 너무 비밀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우린 아직도 자신의 축복에 대해 잘 모릅니다. 서로 틈날 때마다 축복에 관한 이야기를 해봅시다.”
묵성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좋은 생각이다. 그걸 위해서 네 조언을 적극 활용하는 게 좋아 보인다. 한동안은 네 조언을 매일 신중하게 다 쓰면서 우리의 축복 자체를 좀 연구할 필요가 있겠지.”
이 정도 선에서 오후의 회의는 끝났다.
결국 아리가 내 목을 조르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눈을 지워준 후, 방으로 돌아갔다.
*
– 김묵성, 김아리
김묵성 : 개인 톡. 더 이상 숨겨진 요소 없다는 말 진짜임?
김아리 : 응.
김묵성 : 어떻게 안 것?
김아리 : 나침반.
김묵성 : 숨은 방 3개, 숨은 NPC 3명? 방은 축복 성소, 기념품 상점, 사파리고 NPC는 의사, 상인, 상점 소녀?
김아리 : 아님. 숨은 방 2개, 숨은 NPC 2명. 사파리는 호텔이 직접 알려준 것. 숨은 방 아님. 상점의 소녀는 상점 구성요소. 별도 NPC 아님.
김묵성 : 지하는 이제 뒤질 필요 없는 것?
김아리 : 2층으로 올라가면 숨은 요소가 새로 추가될지도 모름. 지금은 더 없음.
김묵성 : 나침반을 계속 숨길 필요 있을까?
김아리 : 고민 중임.
*
– 한가인
방에서 휴식하면서 생각했다.
‘탐색’이 사라진 이번 파티타임.
뭘 해야 할까?
대충 정리해서 상태창에 메모했다.
1. 각자의 축복에 대해 깊이 고민해볼 것.
2. 유산, 화신의 서에 대해 알아볼 것.
3. 축복의 성소 들르기
4. 강림에 대해서도 고민해보기.
5. 다음에 갈 방 정하기.
와! 엄청 많은데?
… 잠깐 잠이나 자자.
이따가 저녁에 다 같이 모였을 때 고민해보고, 조언도 쓰고 하면 될 것 같다.
…
그날 저녁, 저 위의 리스트를 전부 압도하는 일이 발생했다.
‘알’의 부화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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