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03)
102화 – 파티 타임 (4) – 마도서와 강림에 대한 상담, 조언 사용
* 파티타임 1일 오전
– 한가인
– 마도서에 대한 상담.
마도서로 빙의할 때 나타나는 현상, 상태창의 소멸과 타이머.
“우선, 내가 이런 추측을 시작한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어. 넌 아까 마도서를 얻음으로써 ‘영생’을 얻었다고 말했지? 그 말대로라면, 사실상 넌 호텔에서 치트키를 얻은 것이나 다름없어.
마도서의 원주인인 사도와도 또 달라. 그는 신을 부활시키기 위해 공포의 저택 인근 지역을 벗어날 수 없었고, 반드시 부활을 위해 여러 가지 행위를 해야만 했어.
그는 목적 때문에 지역적, 행위적 제약이 생겼고, 그래서 우리가 그를 찾아낼 수 있었지.
넌 사도와 같은 제약이 없어. 진입과 동시에 NPC들의 몸을 빼앗으며 세상 어딘가로 한없이 도망 다니면, 대적자가 널 죽일 수 있겠어? 죽이는 건 둘째치고 찾는 것부터 힘들겠지.
이런 ‘탈출 치트키’ 같은 힘을 호텔이 허용할까? 그걸 막기 위한 제약이 무조건 있겠지. 네 설명을 듣고 보니 확신이 섰어.”
과연 호텔 2회차인가?
정작 힘을 얻은 나 자신은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는데, 아리는 바로 떠올린 사실.
빙의 능력은 제약이 없다면 사실상 무조건 탈출하는 힘이나 다름 없다.
NPC의 몸을 쉴 새 없이 빼앗으며 세상 어딘가로 끝없이 도망가면, 대적자가 날 어떻게 찾겠는가!
아리는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여기서부턴 좀 어려울 테니 잘 들어. 사람의 정체성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데카르트는 이른바 심신이원론에 근거해서 사람의 몸과 마음은 별개이고, 그 둘을 연결하는 고리가 송과선이라고 주장했지.
물론 현대과학에 따르면 틀린 이론이야. 마음은 두뇌가 만들어내고, 뇌는 명백히 물질적인 신체 기관이지. 과학적으로 따지면, 몸과 마음의 구분은 의미가 없어. 심신일원론이야말로 진실이지.
너는 어떻게 생각해?”
어려운 이야기 도중에 갑자기 질문이 들어왔다.
굳이 따지면, 난 마도서의 힘으로 다른 존재의 몸을 강탈할 수 있다.
따라서 몸과 마음이 분리된 상태.
“지금은 몸과 마음이 분리된 상태니까, 네가 말한 표현을 빌리면 심신이원론에 가까워진 게 아닐까?”
“그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마도서를 얻기 바로 직전까지만 해도, 네 자아는 분명히 두뇌가 만들어내는 전기신호의 총체였고, 넌 심신일원론적인 존재였지. 그런데, 마도서를 얻자마자 더 이상 두뇌에 의존하지 않는 심신이원론적인 존재가 되었다는 거야?”
“그냥 딱 풀어서 설명해줘.”
“좋아. 마도서의 힘으로 빙의를 쓸 때, 너는 의식이 빠져나온 육신과 타인의 몸에 들어간 정신으로 분리되지. 너는 당연히 ‘진짜 한가인’은 타인의 몸에 들어간 정신이고, 육신은 껍데기라고 생각하겠지.
정말 그럴까? 네 몸 전체는 여전히 따로 있는데? 심지어 그 몸엔 네 자아를 만들어낸 두뇌가 여전히 남아있는데?
다른 관점에서 보면, ‘진짜 한가인’은 뒤에 남은 몸이야. 타인의 몸에 들어간 정신은 마도서가 진짜 한가인의 정신을 ‘복제’해서 만들어낸 유령 같은 존재지.”
무슨 말인지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내가 빙의할 때 뒤에 있는 몸은 아무 생각도 못 하는데?”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사실 진짜 한가인은 움직이지 못할 뿐, 계속 생각 중일 수도 있어. 몸에 남아있던 정신은 마도서에 의해 복제된 정신이 타인의 몸에서 한가인의 몸으로 돌아올 때, ‘덮어쓰기’당하는 걸지도 모르지.”
… 섬뜩한 설명이다.
“물론, 단순히 내 추측이라는 건 명심해. 다시 원래 의문으로 돌아가자. 빙의할 땐 왜 상태창이 사라질까? 타이머의 의미는? 난 이렇게 생각해.
호텔은 타인에게 빙의한 너는 더 이상 ‘진짜 한가인’이 아니라고 보는 거야. 당연히 상태창도 쓸 수 없지.
그런 맥락에서 보면, 타이머의 의미도 달라져. 바로 ‘사망 판정이 뜰때까지의 시간’이지.”
“참가자의 자격을 잃는다?”
“만약, 호텔이 네가 타인에게 빙의한 순간부터 ‘진짜 한가인’이 아니라고 본다면, 사실상 빙의를 쓰는 순간 진짜 한가인은 죽어. 그런데, 이렇게 빡빡한 기준을 넣으면 넌 마도서를 쓸 수 없어. 그래서 한 시간의 유예 시간을 준거지.
그 시간을 넘는 순간, 진짜 한가인은 죽었다고 판정하고, 남아있는 ‘타인에게 빙의한 한가인’은 그냥 원본을 복제한 가짜라고 판단하는 게 아닐까?”
긴 설명을 요약하면 간단한 이야기였다.
호텔이 생각하기에 타인에게 빙의한 나는 진짜가 아니라는 것.
따라서 상태창도 쓸 수 없게 되고, 한 시간 내로 원래 몸에 돌아오지 않으면 ‘진짜 한가인’은 죽었다고 판단한다는 게 아리의 추측이다.
이 말대로라면, 타인의 몸을 빌려서 끝없이 탈출하는 식의 활용은 불가능하다.
– 강림에 대한 상담
“이제 강림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해줄게. 이것도 결국 ‘너의 정체성’과 연결된 문제야. 강림 후의 하늘의 아들은 대체 무엇인가? 너와 완전히 별개의 존재일까?
그렇다면, 호텔은 네가 강림하자마자 죽었다고 판단했을 테고, 유산을 주지도 않았겠지. 호텔은 네가 강림한 후로도 여전히 ‘참가자 한가인’이라고 판단했어. 타이머 같은 게 뜨지도 않았고, 해결 후엔 유산도 주어졌지.”
“몸이 그대로이기 때문인가?”
“그럴 수도 있고, 더 복잡한 판단 기준이 있을 수도 있지.
내 말은, ‘강림’후의 너를 지금의 너와 지나치게 분리해서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야.
전에 네게 설명을 듣다가 느꼈어. 넌 강림 직후에 ‘탈각’과 관련된 생각에 깊이 빠져들면서 강림 전후의 네가 완전히 달라질 것으로 생각했지.
그 생각 자체가 널 지나치게 바꿨을지도 몰라. 다음에 강림할 땐 좀 다르게 마음먹어봐. 나는 나일 뿐이다! 이런 식으로.”
아리의 설명을 들으면서 조금 의아해졌다.
사실, 아리나 묵성 할아버지는 관리국 사람들.
인류를 위협할만한 초자연적인 힘을 배척하는 집단이 아니던가?
‘하늘의 아들’은 강림하자마자 수없이 많은 민간인을 학살했을뿐더러, 극도의 오만함을 드러내는 존재였다.
“나는 네가 가능하면 강림을 쓰지 말라고 할 줄 알았는데.”
“너무 위험한 힘이라?”
“응. 정신적으로도 뒤틀리잖아.”
“쓰지 말라고 하면 안 쓸 생각? 우리가 전멸해서, 영원히 호텔을 떠도는 망령 신세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자제할 생각이야?”
“… 쓰겠지.”
“그러니까 쓰지 말라는 말은 안해. 의미 없잖아. 어차피, 위기에 처하면 무조건 쓸 텐데. 어차피 쓸 힘이라면 ‘잘’ 쓸 생각이나 하는 게 맞아.”
자연스럽게 설득되었다.
아리 말마따나, 어차피 쓸 때가 되면 또 쓸 힘이다.
공연히 두려워해 봐야 답이 없다.
아리 말대로 ‘잘’ 쓸 생각이나 하자.
다음에 쓸 때는 마음가짐을 바꿔보기로 했다.
“혹시, ‘주’의 의도에 대해서 짐작 가는 점은 없어?”
“전혀 없어. 사실 나도 정말 이해가 안 가거든.”
“정확히 뭐가 이해가 안 가지?”
“‘주’가 대단한 존재 같지만, 그래봐야 그런 존재들을 방 하나에 가둬둔 게 호텔. 호텔은 ‘주’를 따위로 여길 만큼 아득히 초월적인 장소지. 그런데, 방 하나에 갇힌 ‘주’가 무슨 꼼수로 참가자에게 힘을 내려서 음모를 꾸미는 게 가당키나 할까?”
“…”
“부처님 손 위의 재롱잔치라는 거지. 의아한 점은, ‘주’ 자신도 그걸 알 거라는 거야. 그래서 모르겠어. 부처님 손 위에서 손오공이 재롱잔치 중인데, 그걸 두고 보는 부처님 마음도 모르겠고, 재롱잔치 하는 손오공 마음도 모르겠어.
내가 내린 결론은 하나뿐이야.”
“무슨 결론인데?”
“104호는 가능하면 가지 말자. 어차피 우리는 이미 관문의 방에 도전할 수 있잖아? 대놓고 뭔가 개수작을 부린 게 분명한 죄수가 있는 장소에 갈 필요가 없지. 지금 우리에게 104호는 관문의 방보다도 위험할 수 있다고 봐.”
그걸 끝으로 길었던 상담이 끝났다.
나름대로 상담을 요약해서 상태창에 메모해봤다.
– 마도서
1. 호텔은 빙의 후의 나를 진짜가 아니라고 보는 것 같다.
2. 빙의 시간이 1시간이 넘어가면 ‘진짜 한가인’은 죽었다고 판단할 것 같다.
– 강림
1. 위기에 처하면 결국 또 쓸 힘이다. 두려워하기 보다는 잘 쓸 생각을 하자.
2. 다음에는 ‘달라진다’라는 생각에 집착하지 말고, 내 자아를 유지할 방법을 생각해보자.
3. 주의 흉계를 더 파헤치기 전엔 104호로 가지 말자.
*
아리와의 상담이 끝나고 다시 불 근처로 돌아왔다.
나와 아리가 둘만의 대화를 하는 사이, 다른 사람들도 나름대로 계획을 짜고 있었다.
은솔 누나가 말을 걸어왔다.
“그래, 고민 상담은 다 끝났어?”
“할 말은 다 한 것 같네요.”
“둘이 저쪽에서 어찌나 길고 진지하게 대화 중인지, 우리가 뭐 끼어들지도 못하겠더라. 심지어 무슨 데카르트가 어쩌고 하는 거창한 이야기까지 들리던데?”
“굉장히 어려운 이야기긴 했습니다.”
“나중에 우리에게 요약이라도 알려줘. 여하튼, 우리가 너네 없는 사이에 고민해봤거든? 호텔로 돌아가는 즉시 축복의 성소부터 가기로 했어.”
축복을 강화할 때 하루 잠드는 문제도 있고, 새롭게 강해지는 축복의 실험도 해봐야 하니 최대한 빨리 진행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그 전에 할 일이 있어.”
“뭐죠?”
“이번에 성소 가면 가인이 너는 축복 강화하고 잠들겠지? 그러니까, 잠들기 전에 네 ‘조언’을 다 쓰고 가자.”
이해했다. 나와 아리가 없는 사이에 질문 리스트도 고민해봤는지, 질문으로 빼곡히 찬 노트를 들고 나타났다.
“예전에 들은 네 설명을 참고했어. 네가 ‘전혀 정보가 없는 분야에 관한 질문’은 정상적인 답변이 나오지 않는다길래, 이미 관련 정보를 얻었지만, 해석이 어려운 점 위주로 질문을 정리했어.”
리스트를 읽으며 조언을 썼다.
첫 번째 질문.
‘부귀의 활용성이 지나치게 낮다. 개인의 강화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도 평소에 했던 생각인데, 누나 본인도 엄청 아쉬웠나 보네.
대답을 전달했다.
“아니! 진짜 짜증 나게 하네? 애초에 축복 써먹기가 힘들어서 후원자를 만나질 못하고 있는데!”
“음, 누나. 이건 누나 생각만큼 나쁜 대답이 아니에요.”
“무슨 말이야?”
“직접 대답하지 않은 이유는 아마 일종의 ‘권한’ 문제 아닐까 생각합니다. 축복은 각자의 후원자의 권한이니까, 침범할 수 없는 개념 아닐까요? 아니면 축복으로 축복을 알아내는 건, 소원으로 소원의 수를 늘리는 것 같은 꼼수로 여겨서 차단했을 수도 있죠.
그런데, 그동안 조언을 쓰면서 느꼈지만 ‘직접 대답해줄 수 없는 질문’의 경우, 살짝 돌려서 말해주곤 하거든요?”
은솔 누나는 바로 이해했다.
“오늘 직접 물어보라는 말이 설마! 이번엔 후원자를 만날 수 있다는 의미야?”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굳이 ‘오늘’ 직접 물어볼 것 같은 표현을 썼다는 건, 오늘 성소에 가면 누나는 후원자를 만날 수 있다는 거죠.”
누나가 기뻐하는 사이 나는 종이에 적힌 질문 중 축복에 관한 질문을 전부 지웠다.
아무래도 축복 자체에 관한 질문은 허락하지 않는 것 같다.
두 번째 질문.
이번엔 내가 궁금한 걸 묻자.
‘화신의 힘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조언이 필요하다.’
질문하면서도 솔직히 불안했다. 전형적인 ‘전혀 모르는 사실’에 대한 질문 아닌가?
하지만, 파티 타임이 아니라면 조언을 이런 호기심 해결 용도로 쓰기 어렵다.
조언과 위기 알림이 같은 횟수를 공유하는 이상, 저주의 방에 가는 날엔 ‘위기 알림’ 용도로 조언 횟수를 아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설픈 대답이라도 얻길 바랐다.
[조언 : 2 -> 1] [빙의는 이해하고 쓰는 중인가?]… 뭐지?
생각보다도 더 기묘한 대답. 질문과 대답을 모두에게 알렸다.
의외로 이 대답을 이해한 건 송이였다.
“아! 저, 알겠어요. 저 대답의 의미는 ‘유산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라는 의미에요. 애초에 전 팔찌를 쓰지만, 팔찌의 원리는 전혀 몰라요.
그냥 TV 리모컨과 다르지 않아요. 리모컨에 담긴 과학기술은 전혀 모르지만, 버튼을 누르면 TV가 작동하는 건 알죠. 딱 그 정도 감각으로 팔찌를 쓰고 있어요.
가인 오빠도 똑같을 거예요. 빙의의 힘을 이해하고 쓰시는 게 아니잖아요? 그냥 활용법만 머리에 들어와서 쓰는 거죠. 화신의 힘도 애초에 이해하지 못하는 게 정상이라는 대답이에요.”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까진 알겠는데, 그러면 어떻게 쓰라는 거야?”
“제 생각엔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 같아요. 저도 팔찌를 처음 얻었을 때와 지금은 실력이 많이 다르거든요.”
결국 더 오랜 기간 마도서를 써본 후 다음 단계의 힘에 대해 고민하기로 했다.
세 번째 질문.
이번엔 은솔 누나가 굉장히 중요한 질문을 적었다.
‘낙하산을 통한 탈출은 가능한가?’
“누나? 이건….”
“얼마 전에 우연히 든 생각이야. HP 마켓에 이불이나, 단단한 끈을 팔더라고. 이런 걸 잘 섞으면 낙하산 비슷한 물건을 만들 수 있잖아? 이걸로 정문 바깥으로 탈출할 수는 없을까?”
호텔 2회차, 아리 쪽을 쳐다보았다.
아리도 그저 고개를 갸웃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다는 의미.
조언을 썼다.
…
이건 또 무슨 말일까.
쉽게 말해주면 병이라도 걸리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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