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06)
105화 – 파티 타임 (7) – 시나리오 이해
* 파티타임 2일 차 저녁
– 한가인
하필 아리가 나에게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던 때.
호텔 전체에 불빛이 번쩍거리고, 심상찮은 괴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입을 열려던 아리도 당황한 표정으로 날 살폈다.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움직이자!”
“숙여!”
뒤로 돌아서는 순간 –
—훅!
아리의 경고를 듣자마자 무언가 날아들었고, 나는 바로 허리를 숙였다.
이놈은 또 뭐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거한. 키는 2M쯤 돼 보였고, 양손엔 복싱 글러브가 있었다.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이상한 소리를 지껄였다.
“요즘 애들은 근성이 부족해. 그깟 팔, 다리 좀 부러지는 게 대수냐? 내게 복싱을 배워라. 내게 복싱을 배워!”
아리가 뒤쪽에서 뭔가 하려는 듯한 소리를 냈지만, 그럴 필요도 없지.
순간적으로 놈의 몸을 빼앗았다.
…
뭔가 이상한데?
머릿속에는 그 어떤 ‘기억’도 없다.
방금 내뱉은 요즘 애들이 어쩌고 하는 대사 하나만 들어있다.
이런 존재가 인간이 맞는 건가?
대충 놈의 다리를 부수고 원래 내 몸으로 돌아왔다.
“방금 저놈에게 빙의해서 자해하고 돌아온 거야?”
“응. 이놈 대체 뭐지?”
“모르겠네. 일단 동료들하고 합류하자.”
105호를 향해 움직이다 보니 정신없이 옷을 걸쳐 입고 나온 은솔 누나가 나타났다.
“너희 괜찮니!”
“저흰 괜찮아요. 다른 분들은?”
“지하로 가자. 아까 다들 지하에서 논다고 내려가는 것 같았거든.”
셋이서 함께 지하로 내려갔다. 내려가자마자 엘레나, 송이, 묵성, 진철 등 동료들이 나타났다.
아까 내가 처리했던 미친 복싱선수가 10명이 넘게 널브러져 있는 광경이 보였다.
“다들 괜찮으십니까?”
솔직히 물어보면서도 걱정은 들지 않았다.
그냥 힘 좀 강한 미친 복싱선수 따위가 우리에게 위협이 될 리가 있겠는가?
“물론 괜찮지. 그런데, 이놈들이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지? 무슨 땅에서 솟아나기라도 하는 건지 죽여도 죽여도 나타난다.”
나와 달리 동료들은 지하의 디스플레이를 통해 상황을 파악한 상태였다.
“참가자의 요청으로 깜짝 이벤트요? 악몽? 대체 누가 요청했다는 말입니까?”
묵성 할아버지도 황당한 분위기였다.
“내 말이 그 말이다! 대체 누가 요구했다는 건지 모르겠다.”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인 은솔 누나가 입을 열었다.
“아마…. 내가 요청했을 거야.”
요청했다. 도 아니고, 요청했을 거야.
잠시 자초지종을 듣자 어이가 없었다.
‘탐욕의 손’에 쓸만한 무기를 달라고 했더니, 호텔을 이렇게 뒤집었단다.
의외로 진철 형은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누님. 걱정하지 마십쇼. 어차피 별놈들도 아닌 것 같고, 이런 놈들 몇 놈 잡고 쓸만한 무기를 얻을 수 있다면 아주 남는 장사입니다. 잘하셨습니다.”
“그, 그렇지?”
“언니 괜찮아요!”
“다 좋은데, 승엽이는 지금 어딨는 거죠?”
“어? 어라?”
“가인아! 위치정보로 승엽이 위치 좀 확인해 봐라.”
…
“가인아?”
주변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는 사이, 나는 상당히 놀란 상태였다.
상태창에서 ‘시나리오 이해’가 번쩍이기 시작했다.
저주의 방에서만 쓸 수 있는 게 아니구나!
호텔에서라 해도 지금처럼 이상한 이벤트가 일어나서 ‘시나리오’가 존재하는 상황에선 쓸 수 있다.
누르는 순간 긴 창이 내 시야를 가렸다.
/시나리오 : 호텔 이벤트 – 악몽
모두가 웃고 즐기던 평화로운 호텔의 밤, 이룰 수 없는 사랑에 고통받던 소년은 담력을 기르기 위해 홀로 산을 올라 신비한 나비와 만나게 되는데….
다음 내용은 호텔 지하, 등산에서 확인해 주세요./
정신없이 읽던 차, 누가 내 어깨를 쳤다.
“어?”
“뭐가 어? 냐. 가인이 너도 이상해진 줄 알았다. 상태창에 뭐가 뜬 거냐?”
“아, 시나리오 이해가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두에게 내용을 바로 전했다.
“소년이면 승엽이 고놈 이야긴가? 담력을 길러? 홀로 산을 올라? 이게 대체 뭔 소린지 모르겠다. 일단 지하 등산으로 가자!”
혼란 속에서 다들 호텔 지하, ‘등산’을 향해 움직였다.
내 설명을 들은 아리의 표정이 새파래졌다.
내가 뭘 지적하기도 전에, 이미 뭔가 느낀 송이가 아리에게 물었다.
“아리야. 뭐 짐작 가는 것 있지?”
“… 어제 승엽이가 하도 달라붙길래 농담 한마디 했는데.”
“농담?”
“난 소심하고 겁이 많은 아이는 싫어~ 라고 했어.”
그 말에 묵성 할아버지가 감탄한 목소리를 냈다.
“캬! 그래서 아리 네 말 듣고 담력을 기르려고 이 밤에 등산하러 갔단 말이냐?”
“…”
“산이나 갑시다. ‘등산 방’에 들어가면 가인이 ‘시나리오 이해’가 뭔가 더 알려줄 모양이니.”
*
다 함께 ‘등산 방’으로 이동했다.
호텔의 시간이 밤이었기 때문일까?
‘등산 방’ 내부도 완전히 어두컴컴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가져온 손전등을 진철 형이 켰고, 나는 다시 ‘시나리오’를 확인했다.
/시나리오 : 호텔 이벤트 – 악몽
신비한 나비의 정체는 ‘악몽 나비’.
나비와 만난 소년은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진 악몽과 맞섰고, 결국 견디지 못한 채 트라우마 속에 빠져들고 만다.
이윽고, 소년의 악몽이 세상으로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위기의 순간, 소년과 함께하던 동료들이 구출하기 위해 산에 도착했다.
다음 내용은 산 중턱에서 확인해 주세요./
“산 중턱까지 올라가면 된답니다!”
“야간에 대체 무슨 개지랄인지 모르겠다.”
혼란스러운 것과 별개로 내 기분은 나쁘지 않다.
이제야 ‘시나리오 이해’가 대충 어떤 능력인지 감이 오기 시작했다.
해당 방에서 우릴 위협하는 존재가 누구인지, 문제 해결을 위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안내해주는 기능이 아닌가?
이게 없었다면 우린 하염없이 호텔 지하를 헤매며 적이 누군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랐을 것이다!
이런 능력이 일찌감치 있었다면 상식개변 미디어 같은 방은 완전히 날로 먹을 수 있었다.
올빼미가 호언장담했던 ‘강력한 강화’의 위력을 깨닫기 시작했다.
산을 오르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골치 아픈 싸움이 시작됐다.
어둠 속에서 여기저기서 솟아난 괴물들이 우릴 덮쳤다.
우리는 대형을 갖춘 채로 맞서기 시작했다.
김묵성, 차진철, 나, 김아리, 유송이 이렇게 전투력이 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각자의 능력으로 괴물들을 공격했고, 엘레나와 은솔 누나가 대형 안쪽에서 보호받기 시작했다.
새삼스럽지만 우리 이제 진짜 강해진 것 같다.
괴물들 하나하나가 공포영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기괴한 존재들인데, 별다른 위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진철 형은 그냥 괴물들 틈바구니로 날아들어가서 양 사이의 늑대처럼 날뛰었고, 송이는 손만 까딱거리면서 마법사 같은 일을 벌였다.
나는 아까부터 덩치 큰 뱀 같은 괴물의 몸을 빼앗아서 난동을 부렸다.
아리나 묵성 할아버지도 잘 싸우고 있었다.
이 정도면 우리 이미 전설적인 영웅의 반열에 가까워진 상태가 아닌가?
그나저나 괴물들은 그야말로 끝이 없었다.
하나하나는 지금의 우리에겐 별 볼 일 없는 잡졸들인데, 이상하게 죽여도 죽여도 한없이 솟아났다.
이러다가 이런 장소에서 ‘빙의’의 제한 시간을 다 소모할 것 같아 내 몸으로 돌아왔다.
남은 빙의 제한 시간은 이제 20분 정도였다.
날짜가 지나가면 다시 회복되겠지만, 3일 차가 시작되기까지 아직도 2시간 정도는 남았다.
대화창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김묵성 : 주목! 이게 아닌 듯. 죽여도 끝이 없음.
김아리 : 시나리오 제목이 악몽. 소년의 악몽이 세상으로 번져갔다는 내용. 이 괴물들은 승엽이의 악몽 속 존재인 듯.
이은솔 : 그러면 승엽이를 찾아서 깨워야 하나?
차진철 : 내가 별을 써서 앞으로 달려 나가며 길을 열어봄.
결국 진철 형이 별을 쓰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우리는 잠시 대기하며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옆에서 지친 듯한 송이가 바닥에 주저앉자, 페로가 송이 어깨에 앉아서 뺨에 부리를 비비기 시작했다.
귀여운데?
“괴물이 들끓는 상황인데 페로는 괜찮아? 쟤까지 변신해서 날뛸까 봐 걱정했는데 얌전하네.”
“페로는 아주 똑똑해서 괜찮아요!”
“똑똑해서 괜찮다?”
“페로는 본능적으로 주변인의 강함을 느낄 수 있어요. 페로가 생각하기에 이 산의 괴물들은 우리 일행보다 형편없어요. 그래서 전혀 겁먹지 않고 있어요.”
페로의 생각을 전달 중이라 그런가? 송이 말투가 어색하게 들렸다.
얼마 전에 겁먹었을 때는 혼자 있을 때, 진철 형이 때렸을 때였지.
후자는 당연히 무서울 상황이니, 앞으로 전자만 신경 쓰면 되겠구나.
나도 만져보고 싶어서 송이 쪽으로 다가갔다.
—삐이이익!
순식간에 페로가 괴성을 토해내더니 송이 옷으로 들어갔다.
“앗! 오빠는 저쪽에 계세요!”
“…”
대체 왜 나를 이렇게 싫어하지?
… 생각해보니 싫어할 요소가 너무 많다.
파티타임 첫날, 은솔 누나가 ‘낙하산’에 대한 발상을 떠올린 후, 나는 페로에 빙의해서 호텔 밖을 날아서 확인해 보자는 발상을 떠올렸다.
그 후로 페로에게 3번 정도 더 빙의해서 ‘비행 연습’을 했다.
사람의 정신이 새의 몸에 들어간다 해도 하늘을 나는 건 엄청나게 어렵다는 사실만 배웠다.
내가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 페로는 한 움큼의 털이 빠져야만 했다.
그 후로 페로는 날 볼 때마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다.
내가 어색하게 서 있는 동안, 아리가 툭 쳤다.
“적당히 해. 황금알에서 나온 귀한 동물인데, 너 때문에 탈모가 오게 생겼어.”
이 정도면 됐겠지?
별을 꺼내 들고 진철 형이 위로 달려 나간 지 2, 3분은 흘렀다.
우리도 다시 출발했다.
확실히 형이 괴물들의 어그로를 끌면서 별로 쓸어버린 결과, 사방에 비틀린 괴물들의 잔해가 가득했고, 길은 안전해진 상태였다.
산 중턱까지 도착해서 다시 상태창을 켰다.
/시나리오 : 호텔 이벤트 – 악몽
동료들은 깨어날 수 없는 악몽에 빠져든 소년을 발견했다. 악몽 속에서 시시각각 죽어가는 소년! 동료들이 소년을 구하고, ‘악몽 나비’를 처치할 수 있을까?/
‘발견했다?’
먼저 올라간 진철 형이 이미 승엽이를 찾은 모양이다.
느낌상 마지막 내용이다. 어디로 가라는 말도 사라졌고, ‘목표’도 알려줬다.
승엽이를 깨우고, ‘악몽 나비’라는 괴물을 잡으라는 것.
시선을 돌리고 동료들이 모여있는 장소로 갔다.
진철 형이 옷으로 감싼 채 승엽이를 푹신한 곳에 둔 상태였다.
“승엽이는 괜찮습니까? 지금 ‘시나리오 이해’에선 죽어가고 있다고 하던데요?”
“와서 봐라. 상태가 진짜 안 좋다.”
가까이 가보자 침음성이 나왔다.
원래도 승엽이가 살집이 있는 편은 아니고, 전형적인 얇은 체형이긴 했다.
이젠 흡사 아프리카의 다큐멘터리에서나 나오던 기아에 시달리는 소년과 같았다.
몸이 뼈만 남은 듯이 말라붙었다.
모두가 당황한 사이, 유일하게 당황하지 않은 두 사람이 있었다.
“아는 괴물이다. 호텔에선 이걸 ‘악몽 나비’라고 부르는 건가?”
“아신다고요?”
“지구에도 있다. 관리국에선 ‘드림 이터’라고 부르긴 하는데, 똑같거나 비슷한 종류가 분명하다. 주로 서구권, 특히 유럽 지역에서 흔한 녀석들이지.”
… 지구에도 있어? 심지어 유럽 가면 흔해?
대체 내가 살던 지구는 무슨 장소였을까.
아무래도 좋다. 정체를 안다면 대처법도 알겠지.
묵성 할아버지가 아리에게 눈치를 줬다. 아리는 살짝 고민하는듯하더니, 내게 다가왔다.
“마셔.”
“또 네 피를 마셔야 하냐? 뭘 해야 -”
“촉박하니까 설명은 ‘들어가서’ 할게. 바로 마셔.”
들이켰다.
… 순식간에 의식이 멀어지는 듯하더니, 몸이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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