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07)
106화 – 파티 타임 (8) – 고해
* 파티타임 2일 차 밤
– 한가인
의식이 돌아왔을 때, 나는 깔끔한 회의실 같은 장소에서 깨어났다. 아리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관리 대상은 ‘드림 이터’. 기록에 따르면 1924년, 런던 인근에서 발견되었다. 숙주의 정신 내부로 파고들어 트라우마를 자극하며 심신을 갉아먹는다. 선호하는 숙주의 특성은 어리고, 창의적이고, 감수성이 풍부한 인간. ‘식사’를 방해받지 않기 위해 숙주의 트라우마를 물리적 실체로 만들어 주변에 퍼트린다. 주변 사람들이 그 실체화된 트라우마와 싸우는 사이, 드림 이터는 숙주의 몸과 정신을 황폐해질 정도로 갉아먹는다.”
…
“최우선 절차는 파괴. 방법은 숙주보다 더 선호할만한 조건을 갖춘 요원을 숙주 근처에서 재운다. 곧 드림 이터는 숙주의 몸에서 빠져나와서 더 맛있어 보이는 사람에게 이동한다. 이후, 요원의 정신 내부에서 드림 이터를 굶주리게 한 후, 약해진 드림 이터가 요원의 신체 바깥으로 나가면 처리한다.”
“…”
“어땠어? 좀 요원 같아?”
“방금은 관리국 스타일의 브리핑 같은 건가?”
“맞아.
“그러니까, 내가 승엽이보다 더 ‘맛있어 보이는 사람’이라 골랐다는 거지?”
“사실 꼭 너일 필요는 없어. 어차피 승엽이는 거의 반 죽은 상태였거든. 드림 이터, 아니 악몽 나비가 보기엔 거의 다 먹은 식사지. 누구든지 근처에 재웠으면 옮겨갔을 거야. 널 고른 건 그냥 할 말이 있기 때문이지.”
할 말. 짐작은 간다. 다만, 그럴 시간이 있나? 승엽이는 지금도 죽어가고 있을 텐데?
“승엽이 걱정은 필요 없어. 이미 나비는 네 몸으로 옮겨온 상태니까. 사실, 지금 너랑 내가 여기서 대화하는 것 자체가 나비의 처리 과정이야.”
“이게 처리 과정이라고?”
“주변에 뭔가 보여?”
“너랑 나 말고는 없는데.”
“매우 전문적인 이야기라 설명은 어려운데, 오래된 피의 힘으로 나와 네 정신을 이 장소에 격리해둔 상태라고 해둘게. 나비는 지금도 우릴 찾아다니고 있어. 매 순간 힘을 소모 중이고, 곧 지친 상태로 네 몸에서 나갈 거야.”
“오래된 피?”
“상태창에서 내 정보가 바뀌었지?”
“그래.”
“아~ 역시 이 시기가 오긴 오는구나.”
아리는 한숨을 쉬더니 내 옆에 와서 픽 주저앉았다.
“그래서, 궁금한 점이 많을 텐데 물어봐.”
“네 진짜 축복은 뭐야? ‘???’로 뜨던데.”
“상태창 켜봐.”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34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지하, 등산의 방
현자의 조언 : 1]
아리는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어떻게 보여?이게 내 축복의 힘.
호텔의 비밀을 알아내고, 내 비밀을 감추는 힘.
축복, ‘비밀’이야.]
솔직히 놀랐다. 이렇게 대놓고 상태창을 일그러트리는 힘이 존재하다니!
“비밀?”
“그래.”
“그런 이상한 축복이 있다니…. ‘지혜’를 속이기 위한 축복이라니 이상하잖아? 저주의 방이 아니라 참가자를 상대하기 위한 능력이 있다는 것 자체가 -”
“그걸 이상하게 생각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 파티의 대단함이지.”
“뭐?”
“축복의 힘은 참가자 본인의 영향을 많이 받아. 너희의 축복에 다른 참가자를 견제하는 힘이 없는 건, 너희가 애초에 그럴 생각이 없기 때문이지. ‘비밀’도 너희 중 누군가가 얻었다면 ‘지혜’를 속이는 능력 따윈 생기지도 않았을 거야.”
“…”
“옛날이야기나 해볼게. 내가 경험했던 첫 번째 파티. 그 사람들은 객관적으로 대단히 뛰어난 인적자원이었어. 절반은 관리국 요원들이고, 절반은 특수부대 출신이나 의사, 대학교수 등이었지. 신체, 정신적으로 인류 상위 0.01%에 능히 들만한 사람들이었어. 이렇게 뛰어난 사람들을 모았으니 호텔을 탈출했을까?”
“…”
“1층을 넘기도 전에 둘이 죽고, 2층에선 아예 진행이 멈췄어. 나는 중간에 운으로 탈출했지만, 결국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르도록 아무도 지구로 돌아오지 못했지. 다 죽은 거야. 뭐가 문제였을까?”
“…”
“이 사람들은 젊은 나이부터 두각을 드러낸 인재들이었어. 평범한 사람보다 경쟁심이나 성취욕이 아주 강했지. 무슨 인격이 쓰레기였다는 말이 아니야. 다들 지구에 있을 때는 선량한 준법 시민들이었고, 사회에 크게 공헌한 인재들이었지. 그러나 질서가 없고, 끝없이 위기가 덮치는 호텔에선 감출 수 없는 본성이 드러나고 말았어. 무슨 일이 생겼는지 굳이 자세히 말할 필요 없지? 1층에서 죽은 2명은 전원 같은 파티원에 의해 죽었어.”
“혹시 네 어머니가, 그러니까….”
“무슨 생각 하는지 알겠다. 그런 곳에서 나를 낳았으니, 여러 가지 상상을 자극할 만하네. 아니야. 내 엄마는 관리국 최정예 요원, 엄청난 강자였거든. 당하기보다는 해치는 쪽이었지. 그리고 엄마는 나를 ‘낳지’ 않았어.”
“낳지 않았다니? 그건 무슨 말이야?”
“그게 바로 내가 알아내려는 점 중 하나지. 엄마는 내가 태어났을 때 이미 정상적인 소통이 힘든 상태였어. 어쨌든, 첫 번째 파티는 그 꼬라지가 났어. 내게도 끔찍한 경험이었지만, 이 호텔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게도 꽤 불쾌한 경험이지 않았을까? 적어도 이 호텔 운영자들의 목표가 인간을 데려와서 무의미하게 죽이는 건 아닐 테니까. 그다음에 뽑힌 게 너희들이야. 내가 겪은 첫 번째 파티의 장단점을 뒤집은 듯한 파티지.”
“장단점을 뒤집었다….”
“개인 단위로 보면 솔직히 많이 떨어져. 그냥 중학생, 여고생이 있질 않나, 진철이도 비슷하지. 미안하지만 진로가 막막한 체대 졸업생 정도잖아? 너도 그냥 대학 신입생이고.”
“…”
“그런데 다들 사이가 굉장히 좋아. 유산을 얻는 조건이 사실상 후반에 얼마나 기여했는가에 좌우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유산을 얻을 때쯤 서로 견제해서 쓰러트린 후 유산을 차지하려 할 법도 한데, 아무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지.”
“우리, 설마 착해서 뽑힌 거냐….”
“단순히 착하기만 한 건 장점이 아니야. 중요한 점은 ‘집단 사고’를 하고 있는가? 이 파티는 그 부분이 극도로 강해. 본인이 죽어서 팀을 위해 뭔가 알아내야 한다 싶을 땐 중학생조차도 희생함에 주저함이 없고, 압도적으로 강한 사람은 주먹으로 파티를 휘어잡으려 들 법도 한데, 전혀 그런 행동을 하지 않고 판단력이 더 나은 사람에게 주도권을 내준 상태지. 난 이런 사람들이 세상에 결코 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두 개의 파티를 경험한 아리의 평가. 지금 파티의 강점.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들은 말을 정리해보자. 아리의 축복은 ‘비밀’. 호텔의 비밀을 알아내고, 자신의 비밀을 지키는 힘이다. 다른 참가자를 견제하는 능력이 포함된 이유는 아리의 경험 때문. 아리가 겪은 첫 번째 파티는 호텔에 맞서기보다 자기들끼리 싸우는 헬 파티였고, 아리는 파티원을 견제할 생각부터 하면서 들어왔다.
“다음 질문은 뭐야?”
“네 축복은 알았어. 그렇다면, 평소에 썼던 온갖 초능력들은 뭐야? 관리국에서 가르쳐준 건가?”
“관리국이 초능력을 가르칠 수 있는 조직이면 묵성은 지금쯤 슈퍼맨이 됐겠지. 그건 유산의 힘이야. 엄마와 나누어 가진 유산, ‘오래된 피’의 힘이지.”
“오래된 피?”
“1층에서 무슨 뱀파이어 같은 존재를 때려죽이고 얻었다고 들었어. 호텔 내에선 ‘피의 마녀’라고 칭하는 존재가 되었지.”
뱀파이어.
듣고 보니, 그간 아리가 보여준 능력의 상당수가 흔히 말하는 뱀파이어의 능력과 유사했다. 하늘을 활공한다던가, 시선을 마주친 상대의 마음을 흔든다거나, 피를 통해 여러 가지 잡기술을 쓴다든가 하는 힘들은 어딘가의 창작물에서 봐온 뱀파이어의 힘이다.
“그런 것 치고는 태양 빛을 잘만 쬐던데?”
“그게 호텔의 대단함이지. 뱀파이어의 힘만 얻고, 제약은 전혀 없는 기적 같은 보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이니까. 뱀파이어들이 알면 배가 아파 죽을 일이지. 물론, 진짜 뱀파이어에 비하면 약점도 있어. 다른 사람의 피를 사용할 수는 없고, 오직 내 피만 사용할 수 있지.”
… 다른 것보다 ‘진짜 뱀파이어’라는 단어가 귀에 꽂힌다. 세상엔 ‘진짜 뱀파이어’도 있었구나. 참 혼란스러운 세상에 살았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다.
“더 궁금한 점이 남았어? 거의 다 말해준 것 같은데.”
“네가 호텔에 다시 들어온 목적은 뭐지?”
“그건 속인 적 없는데. 이미 말해줬잖아? 개인적으로는 엄마의 부활. 요원으로서는 ‘현실을 안정시키는 힘’을 찾아내는 것.”
“엄마의 부활이야 딸이니까 알겠는데, ‘현실을 안정시키는 힘’. 이건 대체 무슨 말이야?”
“몰라. 정말 몰라. 우리도 ‘계시’를 듣고 들어왔을 뿐이야.”
“계시?”
“예언자가 있다고 해둘게. 네가 요원이 된다면 언젠가 뵙게 될 거야. 관리국의 시초이자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존재지. 질문 더 있어?”
“이건 그렇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긴 한데….”
“그냥 물어봐. 지금이라면 대답해줄게.”
“… 몇 살이야? 지금도 네 나이가 계속 ???라고 나와서.”
대답해주지 않았다.
…
아리의 진짜 축복, 대략적인 과거, 유산, 목적 등을 한참 듣고 나자 머리가 아파졌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도 무언가 더 숨기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아닐 것 같다. 그냥 막연한 깨달음이 왔다. 멍하니 앉아서 서로가 마음을 정리하며 시간이 흘러갔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뭘 어떻게 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말할 거냐는 이야기지.”
“넌 내가 어떻게 하길 바라는데?”
“모르겠다. 나도 최근엔 꽤 피곤했거든.”
거짓말을 하는 일에도 지친 분위기. 애초에 왜 거짓말을 시작했을까?
돌이켜보니 짐작이 간다. 최초에 겪은 파티가 끔찍했으니 일단 자기 능력을 숨기고 싶었겠지. 유산을 숨기려니 축복도 숨겼고, 축복도 숨기려니 내 상태창도 속이고. 속인 김에 나이나 정체도 숨기면서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았다.
남의 일이 아니다.
바로 내가 겪기 시작한 문제가 아닌가? 엘리베이터를 숨기고, 조언의 조건을 숨기고, 조언의 내용도 속이고.
어떻게 해야 할까?
상태창을 바라보자 [조언 : 1]이라고 적힌 내용이 보였다. 하나 남았구나. 물어보면 또 올빼미는 나름의 대답을 해주겠지. 이제는 대답도 짐작이 간다. 어떻게 속여야 할지 알려줄 것 같다.
묻지 않겠다.
내가 언제부터 정체 모를 새의 말에 이토록 의지했단 말인가? 처음엔 저주의 방의 진행에 관한 질문만 했는데, 점차 다양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나중엔 인간 관계적인 부분까지 조언을 구하기 시작했다.
매일 질문하고,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점차 올빼미가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직접 생각해보자. 우리 파티의 가장 큰 힘은 무엇인가?
모두가 서로를 믿고, 협력할 수 있다는 점.
결정을 내렸다.
* 파티타임 3일 차 오전
정신을 차림과 동시에 날짜가 넘어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빙의 시간, 조언 횟수 등이 다시 보충됐다. 잠들어 있던 날 들어서 옮겼는지, 호텔 다과 테이블 근처의 소파에서 깨어났다.
“다 해결됐나요?”
“어? 가인이 너 일어났구나. 수고 많았다.”
주변에서 수다를 떨던 일행들이 돌아왔다. 나비의 처리는 생각보다 심심했다. 나와 아리가 잠들자 즉시 승엽이로부터 수십 마리의 푸른 나비들이 튀어나와서 내게로 옮겨갔고, 그 상태로 1시간 정도가 흐르자 나비들이 느릿해진 채로 내 몸에서 나왔다고 한다.
나옴과 동시에 누나가 그사이에 주문한 살충제를 뿌렸다.
…
어처구니없게도, 그렇게 초자연적인 존재들이면서도 그들은 진짜 ‘나비’였다. 그리고 이벤트는 끝났고 정체 모를 아이템도 하나 나왔다.
“혹시 누나 머리에 착용한 장신구가 그 아이템입니까?”
“맞아! 어울려?”
솔직히 저렇게 고풍스러운 나비 모양 브로치는 할머니에게나 어울릴 것 같다.
“어울립니다. 뭔가 능력이 있던가요?”
누나는 브로치를 내 앞에 가져오더니 쪼개듯이 열었다. 내부 공간에 조그마한 번데기가 꿈틀거렸다.
“이건?”
“짐작이 가지 않아? 아마 이 번데기가 부화하면 그 나비가 나오겠지. 내가 원하는 대상에게 나비가 날아가서 심신을 갉아먹는 그런 게 아닐까? 아직은 번데기긴 하지만.”
심신을 갉아먹는 이야기를 하자, 승엽이가 떠올랐다.
“승엽이는 괜찮습니까?”
누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105호에 재워뒀어. 특별히 부상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몸이 말라비틀어지고 정신적으로도 혹사당했는지 헛소리하더라.”
“의사가 고쳐줄 겁니다. 내일쯤에는 멀쩡하게 나올 거예요.”
“그러길 바래야지. 가인이 너는 조금 쉬고 있어. 네가 자는 동안 일정을 정했거든. 오늘부터는 관문의 방과 2층에 대해 아리가 아는 대로 말해주겠다고 하더라.”
“아리가요?”
“응. 아리답지 않게 나서서 설명해주겠다고 하더라고? 그렇지 않아도 내가 물어볼 생각이었는데.”
관문의 방. 2층. 이제 우리에게 남은 최대의 난관들. 본격적으로 ‘다음 스테이지’를 분석할 때가 되었다.
물론, 그 전에 모두에게 진심을 담은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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