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12)
111화 – 107호, 관문의 방 – ‘도플갱어 열차’ (2)
– 한가인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쳤다.
고개를 돌려보자 진철 형이었다.
“형?”
“별일 아니다. 너 혹시 마도서 멀쩡하냐?”
갑자기 마도서는 왜?
딱히 숨길 이유는 없었기에 소환했다.
형은 갑작스레 손을 뻗어서 마도서의 표지를 넘기려 했다.
“형! 이거 저 말고 다른 사람에겐 엄청 위험해요.”
내가 막기도 전에 형은 마도서 첫 장을 살짝 들어 올렸다.
잠깐 사이에 불똥이 튀는가 하더니, 형은 눈을 매만졌다.
“진짜네. 페로가 너만 건드리고 가길래 짐작은 했지만, 네가 진짜구나.”
“갑자기 무슨 소립니까?”
“별거 아니다. 그냥 바깥 경치나 보다 보니 예전 생각이 나서 말이지.”
형은 내 옆에 풀썩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 부모님을 잃은 이야기.
대학을 다니면서 모은 약간의 돈으로 창업했고, 나름대로 성과를 거둔 이야기.
10분 정도였을까? 나름대로 가슴 아픈 포인트와 재밌는 포인트가 섞여 있었다.
…
뭔가 이상한데?
내가 알고 있는 진철 형의 과거랑 좀 다른데?
… 아까 했던 페로에 대한 이야기, ‘네가 진짜구나.’
설마 하는 생각이 들어 질문했다.
“예전에 어머니는 살아계신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창업 이야기도 이번에 처음 듣는데.”
“그럴 만하지. 나도 이런 과거가 있는 줄은 지금 알았거든.”
나와 ‘그’는 서로를 노려보았다.
다음 순간, 가짜 차진철의 두꺼운 손이 내 목을 움켜쥐었다!
“크으으윽!”
즉시 마도서의 힘으로 차진철의 몸을 강탈했다.
정신없이 일어서는 순간, 어딘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내 쪽을 바라보는 6명을 보았다.
혈전이 시작됐다.
*
—탕!
무슨 행동을 하기도 전에 김묵성의 총이 불을 뿜으며 내가 빼앗은 차진철의 머리통이 터졌다.
즉시 내 정신은 내 원래 몸으로 돌아왔다.
김묵성! 저놈의 몸을 빼앗아야 한다!
이 악물고 내 옆에서 머리가 터진 상태로 널브러진 차진철의 몸을 방패로 삼으며 일어섰다.
묵성의 분노로 가득 찬 고함이 들렸다.
“이 비겁한!”
“1대 7인데 비겁은 지랄!”
달려들면서, 이번엔 김묵성의 몸을 빼앗으려는 순간 –
– 탕! 탕! 탕! 탕!
갑자기 김묵성이 총을 바닥에 다 쏴버리더니, 어디론가 던져버렸다.
대체 뭐 하는 짓이지?
… 이해했다.
이 열차 칸의 혈전에서 가장 위협적인 무기는 총!
문제는 그 총을 쥔 사람의 몸을 내가 빼앗으면, 아무리 가짜들의 수가 많아도 힘의 추가 내 쪽으로 쏠린다.
어차피 차진철의 시체를 인간 방패로 쓰고 있어서 날 쏴 죽이기도 힘드니, 그냥 총을 빼버리고 숫자 싸움으로 몰고 가겠다는 계획이구나.
순식간에 사방에서 가짜들이 내게 덮쳤다.
“이 새끼 -”
“죽어라! 죽어 개새끼야! 왜 네놈만 이 지옥에서 나갈 수 있단 말이냐!”
“너희가 여기서 떠도는 게 나 때문이냐고!”
사방에서 달려드는 가짜들!
김묵성이 주먹으로 나를 연거푸 두들겼다. 이은솔은 내 머리를 잡아 뜯었다.
유송이는 나를 붙들었다.
“으아아악!”
순간적인 격통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다시 마도서를 소환했다.
소환과 동시에 날 공격하던 가짜들이 움찔거리며 물러섰다.
가장 큰 위협이던 김묵성의 몸을 강탈했다.
강탈과 동시에 옆에 서 있던 김아리의 목을 붙들고 비틀려던 순간 –
유송이가 손가락으로 ‘내 몸’의 눈알을 찌르려 들었다!
이래서 마도서를 쓰지 못하고 있었는데!
내 정신이 타인의 몸을 강탈하고 나면, 동료가 없는 이 열차 칸에서 ‘내 몸’은 대체 누가 지키는가?
총이라도 있었다면 순식간에 다 죽일 수 있겠지만, 바로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김묵성은 진작에 총을 어딘가로 던져버렸다!
어쩔 수 없이 내 원래 몸으로 돌아와서 바로 유송이의 팔을 떼어냈다.
—퍽!
그 순간, 다시 빙의로부터 해방된 김묵성이 내게 주먹을 날렸다.
뒤늦게 멀리서 달려온 김아리가 어디선가 구해온 날카로운 물건으로 내 어깨를 찔렀다.
…험난한 호텔에서 구르면서 신체의 고통에는 제법 익숙해졌다고 여겼는데, 아니구나.
이렇게 끝나는 건가?
—탕!
김아리의 머리가 터졌다.
—탕!
김묵성의 가슴팍에 바람구멍이 뚫렸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유송이가 뒤로 돌아서는가 싶더니 –
—탕!
유송이의 미간에 구멍이 뚫렸다.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에 가짜들이 연달아 죽었다.
…
가짜들이 뒤에서 기습하리라 생각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그걸 떠나서 소름 돋을 정도로 정확한 사격 솜씨다.
정신 차려보니 주변엔 시체들이 가득했다. 나는 넋이 나간 채로 엘레나를 쳐다보았다.
“왜…. 저를 도운 겁니까?”
“반대로, 내가 당신을 해칠 이유는 있나요?”
“…”
“가인 씨 말마따나 당신이 우리를 이 지옥에 떨어트린 것도 아닌데….”
엘레나는 총을 내게 휙 던졌다.
“더 정신을 차리면, 나도 아마 당신이 부러워서 미쳐버릴지도 모르죠. 그 전에 날 죽이세요.”
총을 집어 들었다. 잠깐 사이에 김묵성에게 호되게 얻어맞은 데다가, 유송이에겐 눈알까지 찔려서 온몸이 바스러질 것 같다.
총을 들고 꾸역꾸역 엘레나에게 다가가자, 엘레나가 내 손을 잡고 총을 자기 머리에 겨눴다.
…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엘레나는 피식 웃더니 중얼거렸다.
“가짜로 가득 찬 장소에서 당신이 진짜라서 다행이야.”
“네 원래 이름은 -”
“그냥 쏴. 난 그냥 내가 엘레나라고 생각하면서 끝내고 싶으니까.”
—탕!
…
이제 이 칸에 살아있는 사람은 나 혼자 남았다.
비틀거리는 몸을 억지로 끌고 앞칸으로 이동하기 직전, 좋은 계획이 떠올랐다.
*
– 엘레나
대체 이 열차는 뭐 하는 장소일까?
멍하니 창 바깥을 내다보면서 예전 일을 생각했다.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던 시절, 나는 소중한 꿈을 품었다.
TV에서 나오는 화려한 세계!
언젠가 바깥세상으로 나가서 다시 무대 위에 설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이상한 말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리의 목소리.
“누가 참가자지?”
송이의 목소리.
“앵무새가 엘레나 쪽을 한참 바라보다가 날아갔어. 그쪽이지.”
묵성의 목소리.
“이런 개 같은! 왜 저년만 여기서 나갈 수 있단 말이냐?”
에?
이거 대체 무슨 상황?
사람들이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영혼을 담아서 생각 또 생각!
뭔데 뭔데 뭔데!
혼란 속에서 근처에 있던 송이가 내 앞으로 다가왔을 때, 내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순발력이 발휘됐다.
일단 잘 모를때는 싸대기부터 후려치자.
그게 드라마 클리셰야.
“엘레나! 네가 뭐라고-”
—짝!
내가 송이의 뺨을 후려치는 소리가 열차 칸 전체를 울렸다.
내게 다가오던 사람들이 다들 당황한 표정으로 멈추어 섰다.
“어딜 감히 건방지게 구느냐! 눈알 안 깔아?”
아리송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던 은솔이 말했다.
“음? 당신도 가짜인가? 하지만 -”
“가짜? 내 앞에서 그런 소리를 하다니 어처구니가 없구나! 여기 가짜가 어디 있단 말이냐? 나는 -”
나는 누구라고 해야 하지? 그냥 아무렇게나 던지자!
“나는 잉글랜드의 16대 헌팅턴 백작님의 장녀다!”
헌팅턴 백작? 뭐 하는 가문이야? 나도 몰라! 그냥 떠올랐어.
…
주변에서 침묵이 감돌았다. 내가 너무 막 던졌나?
묵성의 입에서 한숨이 튀어나왔다.
“이거, 아무래도 어지간히 오래전에 잡혀 오신 모양이구려. 언제 잡혀 오셨소?”
이런 거짓말이 통하는 거야?
“1874년, 여왕께서 인도제국의 왕관을 쓰시던 날이었지. 제국의 영광이 구주에 가득하리라. 그건 그렇고, 내 앞에 있는 너는 누구냐?”
추궁당하는 대상을 돌렸다.
아까 전, 내게 뺨을 맞은 후 당황한 표정을 짓던 가짜 송이는 자그마하게 대답했다.
“저, 저는 아직 가물가물한데요, 아마 1980년 아니면 1982년도에-”
“주둥이 다물어라. 말하는 원숭이 주제에 나이까지 어린놈이 까불다니 기도 차지 않는구나! 네 주인이 널 제대로 교육 시켰어야 했는데.”
모르겠다! 그냥 세게 나가자! 인생은 기세니까.
그냥 송이를 발로 밀쳐버리고 눈을 크게 치켜뜨면서 주변을 노려보자, 다들 어어어 하면서 물러났다.
“넌 누구냐?”
이번에 지목당한 승엽이는 어물거리면서 대답했다.
“네? 저 저는 -”
“잠까아안!”
가짜 이은솔이 흐름을 끊었다.
“갑자기 하도 요란을 떨어서 당황하긴 했는데, 해명을 해야 할 사람은 당신이 먼저 아닌가? 분명히 앵무새는 당신을 쳐다보다가 날아갔어. 당신 쪽이 참가자 아니야?”
“과연, 식민지의 말하는 원숭이들 후예답게 지능의 수준이 처참하구나. 새들은 본디 반짝거리는 것을 좋아한다. 비록 지금 몸이 내 진짜 몸만큼은 아니겠지만, 제법 반짝거리니 새의 시선을 끌었을 뿐인게지. 아직도 할 말이 남았느냐?”
“아니 해명은 그렇다 쳐도, 당신 사고방식이 무슨….”
듣고 있던 가짜 가인이 나섰다.
“어이! 그쯤 합시다. 아 진짜 이 병신 호텔은 노친네를 소환하는 것도 적당히 해야지, 무슨 200년 전 슈퍼 틀딱을 불러내는 거야?”
“뭐? 이 원숭이 새끼가 -”
“이쯤 하자고! 누가 참가자야?”
“이상하게 아까부터 조용한 사람이 보이는데? 너 아니냐?”
“뭐 이 새끼야? 난 1977년도에 -”
대충 이런 느낌으로, 가짜들끼리 ‘누가 참가자인가’를 화두로 내분이 일어났다.
나는 그때마다 어떻게 하면 가장 대영제국의 꼰대 인종차별주의자처럼 들릴지 고민하며 한마디씩 얹었다.
“하! My majesty! 이 더러운 동양 원숭이들 틈에서 절 구해주세요.”
“야! 저 재수 없는 인종차별주의자 늙은이 주둥이 좀 누가 뭉개라!”
“내 질문에나 대답해. 너 왜 본인 이름도 헷갈리는 거지?”
계속 관찰하다가 느낀 건데, 이 ‘가짜’들은 기억이 뒤섞여서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자신의 원래 기억을 비교적 뚜렷이 떠올린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채로 정체성의 혼란에 빠진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과거의 기억을 뚜렷하게 떠올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의심을 사기 시작했다.
난 역설적으로 애초부터 있지도 않은 헌팅턴 백작가의 장녀라는 역할을 만들어낸 상태라, 무슨 혼란을 겪지도 않았고, 그런 당당한 태도 덕에 의심에서도 벗어났다.
그런데, 이렇게 시간만 끈다고 되나?
*
– 한가인
…
…
대체 뭘까?
빙의 능력에는 한가지 약점이 있다.
타인에게 빙의하고 있는 동안, 내 원래 몸은 무방비가 된다.
이 문제 때문에 난 내 원래 몸은 열차 칸 사이의 통로에 둔 상태로 정신만 넘어왔다.
열차 칸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결계!
내 칸의 모든 가짜를 처치한 ‘나’는 결계를 넘어갈 수 있지만, 가짜들은 결계를 넘을 수 없는 상황. 따라서, 내 진짜 몸은 결계 뒤에 두고 기다리다가 한 명이 근처에 오는 순간 그의 몸을 빼앗았다.
여기까진 계획대로인데….
이 칸의 진짜는 대체 누구야?
열차 칸 안의 분위기는 혼란 그 자체다.
가짜들끼리 서로 추궁하면서 누가 참가자인지 색출하려 드는 혼란의 도가니!
이 와중에 가장 피곤하게 만드는 사람은 창가에 서 있는 저 미친 인종차별 영국 꼰대다.
아까부터 ‘노란 원숭이’들이 자신을 쳐다볼 때마다 어찌나 화를 내는지, 도저히 가까이 가기도 힘들었다.
그러면서 계속 저놈이 의심스럽다는 둥, 저놈은 틀림없이 범인이라는 둥 툭툭 한마디씩 던지면서 열차 칸을 혼란으로 몰아갔다.
아무리 봐도 저 미친 여자는 살아생전 본인이 내분을 일으켜서 탈락한 게 틀림없다.
대체 이 칸의 ‘진짜’는 누구인가.
나는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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