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13)
112화 – 107호, 관문의 방 – ‘도플갱어 열차’ (3)
– 한가인
침착하자. 내가 있던 칸과 이 칸의 구조가 다를 것 같진 않다.
똑같이 한 명은 진짜, 나머진 가짜.
진짜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둘 중 하나다.
내가 차지한 ‘아리’가 진짜이거나, 진짜가 가짜 흉내를 내고 있거나.
잠시 내가 차지한 아리의 머릿속을 뒤져봤다.
마도서에 대한 내 숙련도는 원래 주인이었던 공포의 저택의 사도의 숙련도에 비해 훨씬 부족하다.
따라서 사도처럼 빙의하자마자 대상의 정신을 완전히 읽어낼 수는 없었지만, 알아낸 일부의 파편화된 기억만으로 확신했다.
아무리 봐도 아리의 것으로 볼 수 없는 기억들이 느껴졌다.
게다가, 아리가 진짜였다면 내 빙의를 떨쳐낼 수 있다는 건 이미 확인한 사실이다.
이렇게 저항하지 못하고 내게 몸을 빼앗긴 것만 봐도 이 아리는 가짜다.
그렇다면 이 방의 진짜 동료는 가짜를 흉내 내는 상태다.
골똘히 한명 한명 생각해 봤다.
우선 이 방의 한가인과 김아리는 무조건 가짜다.
다음으로 차진철과 박승엽도 가짜다.
그 둘에겐 미안하지만, 이렇게 순식간에 반응해서 연기를 시작할 정도로 연기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또 진철 형이라면 이런 상황에선 무슨 연기 보다는 별을 꺼내서 싸우는 생각을 먼저 했으리라 본다.
진철 형과 비슷한 맥락에서 송이도 가짜 같다.
유산 소유자들끼리 공유하는 느낌인데, 유산을 얻은 사람들은 위기에 처하면 무슨 연기 같은 행동을 하기 전에 일단 유산부터 쓰게 되어 있다.
심리적으로 유산에 의지하는 바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묵성 할아버지도 가짜다. 본인만 진짜라면, 총을 가진 묵성 할아버지가 무슨 연기를 할 필요가 있겠는가?
가짜들은 유산, 축복이 모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묵성 할아버지는 혼자서도 전원을 죽일 수 있다.
이렇게 한가인, 김아리, 박승엽, 차진철, 유송이, 김묵성까지 가짜로 판단했다.
남은 두 명, 엘레나와 이은솔에 대해선 머리가 복잡해졌다.
페로의 반응을 생각하면 엘레나가 진짜 같기도 한데, 그냥 바라보고 간 정도로는 좀 애매하다는 생각도 든다.
무엇보다 창가에 기댄 저 여자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역겨울 정도로 오만하고 악질적인 인종차별주의자의 본성이 느껴졌다.
…
주변을 관찰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짜들은 점점 가짜들 자신의 기억을 더 명확히 떠올리기 시작했고, 이에 반비례해서 호텔이 주입한 진짜의 기억은 빠르게 잊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짜들끼리 유산을 꺼내서 진위를 판단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차진철이 먼저 별을 꺼냈다. 가짜였다.
한가인이 마도서를 펼쳤다. 당연히 가짜다.
유송이는 애매했다. 팔찌는 설령 진짜라 해도 쓰지 않으면 가짜와 구분할 방법이 없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나, 정확히는 내가 빙의한 김아리에게 쏠린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
– 엘레나
진짜 어떻게 할까?
혼신의 연기로 의심은 피하고 있지만, 그것뿐.
내 힘으론 이 사람들을 제압할 방법이 없다.
그냥 다른 칸에서 동료들이 오기만 기다려야 하는 걸까?
내가 고민하던 중, 이 칸의 가짜들은 유산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한가인, 차진철, 유송이에 이어서 김아리에게 모두의 주목이 쏠렸을 때!
아리가 이상한 행동을 했다.
주사기로 자기 피를 뽑아본다더니, 이상하게 자기 가슴을 계속 만졌다.
계속 각도를 바꿔가며 이리저리 만졌다. 주사기가 저런 곳에 있나?
예전 기억으론 허리춤의 주머니에 있던 것 같은데?
저걸 보고 있으니, 예전에 식사 시간에 아리가 농담했던 기억이 났다.
가인 씨가 아리의 몸에 빙의하자마자 가슴을 만지려 해서 당장 쫓아냈다면서, 치한이라고 놀렸었지.
가인 씨는 당황해서 무슨 말이냐고 허둥대고, 다 같이 정신없이 웃던 기억이 생생하다.
…
???
설마! 저 아리는!
내가 순간적으로 놀라서 표정 관리를 실패한 순간!
아리는 ‘날’ 바라보며 가볍게 웃었다.
아리의 손에서 갑자기 두꺼운 책이 나타났다.
나는 본능적으로 눈을 감았다.
—펄럭!
“으아아아아악!”
“우웨엑!”
“꺄아아악!”
순식간에 열차 칸이 비명으로 가득 차며 가짜들이 나뒹굴었다.
주인이 아닌 그 누구도 감히 내용을 볼 수 없는 마도서의 마력!
열차 칸 내의 모두가 아리를 주목하던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아리가 갑자기 마도서를 소환해서 확 펼치자, 미리 이변을 눈치채고 눈을 감은 날 제외한 가짜들이 한순간에 무력화됐다.
가짜들은 죄다 눈에선 핏물을 쏟아내고, 입에선 토악질을 내뱉으며 대항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아리, 아니, 아리에게 빙의한 가인 씨는 태연하게 가짜 묵성의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낸 후 나머지를 전부 쏘아죽였다.
“…대체 언제 아리에게 빙의한 건가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곧 이 몸은 자살할 텐데, 엘레나가 뒤쪽으로 가주시겠어요? 제 몸 상태가 꽤 엉망이라 부축이 필요합니다.”
“많이 다치셨어요?”
“그럭저럭이요.”
가인 씨가 총으로 빙의한 아리의 머리를 겨누는 광경을 보며 열차 칸 뒤로 향했다.
—탕!
총소리와 함께 내 칸에 있던 모든 가짜가 죽었다. 결계가 사라졌다.
결계 너머에 있던 가인 씨는 본인 말대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잠깐만 부축했는데도 뼈 여기저기가 부러진 게 아닌가 싶었고, 눈가에서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정말 괜찮으세요?”
“이 정도면 호텔에선 경상 아닙니까?”
“이 와중에도 농담을!”
“아하하…. 사실 아프네요.”
“갑자기 마도서를 펼치실 줄은 몰랐어요. 그런 식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니?”
“저도 남들 앞에서 일부러 펼쳐서 공격하는 식으로는 처음 써봅니다. 이전 칸에서도 이걸 조금 일찍 떠올렸으면 조금 더 쉽게 통과했을 텐데.”
“얻은 지 얼마 안 됐잖아요? 활용법을 차차 익혀가야죠. 상태창을 쓰다가 필터를 터득했던 것처럼.”
가인 씨를 부축한 채로 열차 앞칸으로 가다 보니, 순간적으로 웃음이 나왔다.
“아니, 갑자기 가슴을 만진 건 대체 뭐에요?”
“가짜들이 슬슬 진짜의 기억을 거의 다 잊은 것 같더군요. 제 동작의 의미를 알아볼 사람은 진짜뿐이다 싶어서….”
“아무리 그래도 그 순간 할 동작이 가슴 만지기 뿐? 진짜 순수한 마음으로 한 것 맞아요?”
“엘레나도 하고많은 연기 중에 굳이 인종차별주의자 연기를 한 이유가 뭡니까?”
“그냥 그 순간 그 역할이 떠올랐어요.”
“저도 그 순간 가슴 만지기만 떠올랐어요.”
“그 대답은 꼭 아리에게 전해줄게요.”
이런 느낌.
자기 몸 하나 가누지 못할 만큼 다친 가인 씨를 부축하면서도, 우린 나름대로 웃고 떠들며 다음 칸으로 나갔다.
*
– 한가인
엘레나와 웃으면서도 내심 걱정스러웠다. 이 몸 상태로 남은 열차 칸들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다행히 그런 고민은 필요하지 않았다.
통로에 도착하자마자, 반대로 우리 쪽으로 넘어오던 일행을 발견했다.
진짜 호텔 파티 전원이 모든 방의 가짜를 처치하고 합류하는 순간.
열차 전체에서 안내방송이 울려 퍼졌다.
/참가자 여러분! 첫 번째 시련, ‘도플갱어 열차’의 통과를 축하드립니다./
안내방송과 함께 마치 저주의 방이 해결될 때처럼, 주변 공간이 무너졌다.
…
주변이 다시 밝아졌다. 상태창이 돌아왔다.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37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107호(관문의 방)
현자의 조언 : 3]
우리는 105호와 유사한 디자인의 호텔 방 같은 장소에서 모였고, 주변엔 간이침대나 약간의 먹을거리들이 있었다.
정면의 디스플레이에서 안내문이 떴다.
/1시간 후, 두 번째 시련이 시작됩니다./
1시간. 휴식이 없다고 했을 때 짐작은 했지만, 진짜 숨만 간신히 돌릴 시간 아닌가!
심지어 몸 상태도 완전 맛이 갔는데!
엘레나에게 나 정도면 호텔에선 경상 아니냐고 했던 말은 불행히도 진실이었다.
살아있는 게 신기한 진철 형의 상태를 보자 말문이 막혔다.
동료들끼리 만나서 기뻐할 틈도 없었다.
묵성 할아버지가 정신없이 내게 다가와서 응급 처치하기 시작했다.
“참아라!”
–또각!
“으아아악!”
“뼈 맞춰야 하니까 좀 버둥거리지 말고 참아라. 누가 가인이 팔 좀 잡아라!”
“네~! 가인 오빠 입 꽉 무세요.”
격통 속에서 온몸을 떨면서 생각했다.
나는 그나마 응급처치할만한 수준으로 다쳐서 할아버지가 이리저리 손을 쓰고 있지만, 진철 형은 그냥 답이 없다.
의사들이 배를 열었다가 한숨 한번 쉬고 도로 닫는다는 딱 그런 상태.
축복 없이 별을 쓴 대가는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리 축복이 돌아오고, 재생력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해도 저 상태에서 회복할 수 있을까?
–또각!
“아, 이 각도가 아닌가?”
“으아아아아악! 미친 뭐가 이게 아니에요!”
“야 인마! 나도 이렇게 본격적으로 해본 건 너무 오랜만이라 그래.”
… 남 걱정할 때가 아닌 것 같다.
1시간은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긴커녕 다친 사람 응급처치만 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이었다.
결국 진철 형은 정신도 차리지 못하고, 난 여전히 팔을 제대로 들어 올리지도 못하는 상태로 다음 시련이 시작됐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37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107호(관문의 방)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모두가 정신을 차렸을 때, 우리는 정체불명의 숲 한복판에 있었다.
[시나리오 이해]역시! 관문의 방에서도 쓸 수 있다.
/시나리오 : 관문의 방 – ‘마녀의 숲’
호텔 일행은 정체불명의 숲에서 깨어났다. 음산한 분위기 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귀곡성이 들려온다.
동료 중 큰 부상자가 있는 상황. 반드시 휴식이 필요하다. 주변을 돌아보자, 수상하기 짝이 없는 목조 주택이 나타났다. 저 주택이라면 푹신한 침대와 약간의 요깃거리가 있지 않을까?
다음 내용은 수상한 주택에서 확인해 주세요./
—아아아아아~!
시나리오를 읽고 있자, 기다렸다는 듯이 소름 끼치는 아이 울음소리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동료들은 다들 표정만 굳힌 상태였다. 확인한 내용을 동료들에게 알렸다.
묵성 할아버지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 이름부터 ‘마녀의 숲’. 진짜 좆같긴 하다.”
“일단 주택부터 찾아봅시다. 그쪽으로 가야 진행될 모양이니까요.”
진철 형을 부축하던 아리가 대답했다.
“휴식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야. 진철이부터 따듯하고 푹신한 장소에 두자.”
다행히 주택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끼이익!
거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주택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환자 취급인 나와 진철 형 빼고 바쁘게 움직였다.
은솔 누나는 캔들 라이터로 화로에 불을 피웠고, 묵성 할아버지는 위층에서 푹신한 이불을 찾아오더니 화로 앞에 자리를 만들어서 진철 형을 눕혔다.
엘레나가 어디에선가 푹신한 방석과 옷가지를 구해와서 내가 누울 자리도 만들어줬다.
그렇게 앉아서 화로를 보던 중, 아리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어땠어?”
“응?”
“만져본 감상.”
“으악! 에, 엘레나! 그런 걸 왜 -”
“와! 너 진짜 만졌구나? 엘레나는 그냥 내 몸에 빙의했다는 말만 했는데.”
“…”
아리가 어딘가 질려버린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나도 그냥 진철 형처럼 기절하는 게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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