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15)
114화 – 107호, 관문의 방 – ‘마녀의 숲’ (5)
– 한가인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37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107호(관문의 방)
현자의 조언 : 3]
시나리오 이해에서 언급한 시간. ‘자정’.
그 말에 송이가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러면 자정까지 기다리면 될까요? 다행히 아직 시간 여유가 -”
“아니야. 시나리오 이해는 그렇게 막연히 기다리는 느낌으로 쓰는 게 아니야.”
내가 바로 단호하게 끊자, 다들 당황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시나리오 이해의 인도대로 하는 것 같은데, 정작 축복의 주인이 아니라고 하니 당황할 만하다.
하지만, 그간 올빼미의 괴팍한 축복을 사용해온 입장에선 슬슬 감이 오기 시작했다.
“몇 번 쓰다 보니 슬슬 느낌이 왔어. 시나리오 이해, 이거 미묘하게 그간의 ‘위기 알림 능력’하고 닮았어.”
아리가 대답했다.
“네 목숨이 위험할 때 자동으로 경고해주는 기능? 최근엔 잘 쓰지 않는 것 같던데?”
“응. 그 기능의 가장 큰 문제점은 위기가 닥치기 직전에 알려준다는 점이거든. 알림이 떴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야.
예컨대, 위기 알림이 조용하길래 안심하고 기다렸더니 ‘3초 후, 핵미사일이 떨어집니다.’ 이런 미친 알림이 나올 수 있어. 생각보다 믿을만한 능력이 아니야.”
“시나리오 이해도 그것과 비슷하다?”
“좀 전에 우리가 겪은 위기를 생각해 봐. 시나리오 이해가 갱신되지 않으니까 갱신되길 기다리면서 우리끼리 잡담이나 하고 있었지? 뒤늦게 갱신되어서 괴물이 덮쳐온다는 걸 알았을 때는 들이닥치기 10초 전이었지. 만약, 시나리오 이해가 애초부터 없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행동했을까?”
내 말을 가장 먼저 이해한 사람은 묵성 할아버지였다.
“애초에 그 능력이 없었다면 우리 중 누군가는 저택 바깥에서 상황을 살폈을 게 분명하다. 우리 집이 아닌데 우리가 차지한 상황이니, 집주인이 들이닥친다는 건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지.”
“그리고 누군가 밖을 살피고 있었다면 마녀가 덮친다는 것도 훨씬 일찍 알았을 겁니다. 저 거대한 덩치의 괴물이 오는데 설마하니 소음이 없었겠어요?
하지만 시나리오 이해 능력이 있으니까 다 같이 언제 내용이 바뀌나 생각하며 넋 놓고 잡담이나 하느라 괴물 공격 10초 전까지 아무도 몰랐던 거죠.”
이 긴 대화의 요약은 간단하다.
시나리오 이해는 내용이 바뀌기만 기다리면서 의존하라고 만든 힘이 아니다! 그렇게 방심하면 오히려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 힘과 무관하게 우리는 할 일을 해야 하고, 도중에 시나리오가 뜨면 그때 가서 참고하라고 주어진 힘이다.
…
이 깨달음은 단순히 시나리오 이해뿐만이 아니라, 내 축복 전체에 적용된다. 위기를 경고하는 힘, 조언을 해주는 힘, 시나리오를 알려주는 힘.
모든 능력에 적용되는 한 가지 원칙.
축복만 믿으면서 뭔가 알려주길 기다리지 말고 능동적으로 행동하면서 축복을 참고할 것.
‘축복은 거들 뿐.’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아주 오랜만에 한 가지 알림이 떴다.
[축복에 대한 이해가 늘었다.]뭔가 올빼미가 ‘이제 알았냐?’ 하는 느낌이 든다.
‘시나리오를 엊그제 얻었는데 당연히 써봐야 알지, 올빼미 이 짜증나는 놈아!’
속으로 올빼미에게 한마디 한 후, 우리는 즉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한가인
일행을 나눠서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가 여전히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 보니, 아리와 내가 저택 내부를 탐색하는 역할을 맡았다.
… 저택 내부는 뒤지면 뒤질수록 끔찍한 것들만 튀어나왔다.
“아, 마녀인지 뭔지는 무슨 한니발 렉터야? 무슨 저장식품 비슷한 건 다 사람이네.”
“그냥 마음 편히 생각해. 돼지인가보다~ 그러면 별 느낌 안 들어.”
“대놓고 손가락이 있는데 어떻게 돼지라고 생각하라는 거야? 아즈텍 출신이냐?”
“그럼 계속 구역질이나 하든가.”
이렇게 우리는 서로 틱틱거리면서 주변을 뒤적였다.
벽 근처를 서성거리던 아리가 무언가 발견했다.
“이거 뭔가 익숙한데?”
“공포의 저택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레버네.”
레버를 당기자 예상대로 지하실로 통하는 계단이 나타났다.
지하 공간은 굉장히 넓었고, 수많은 유리병과 날카로운 칼, 정체를 알 수 없는 다양한 색의 돌과 이상한 종이들로 가득했다.
공간 한편의 탁자엔 두꺼운 책이 한 권 있었다.
책의 내용은 장대한 실험의 일지였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아 아리에게 넘겼다.
아리는 한참을 읽더니 요약해서 알려줬다.
“일종의 사악한 실험 일지야. 여러 사람을 붙잡아다가 여 썰고 저 썰고 하는 이야기가 가득하네.”
“그것까진 나도 알았는데, 무슨 영육의 분리니, 육의 씨앗이니 하는 해괴한 단어가 많던데?”
“나도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었는데, 실험의 목표는 간단해. 마녀 본인은 어떤 사악한 힘을 얻었는데 그 힘을 쓰면 쓸수록 신체에 부작용이 누적되는 모양이야. 그래서 어느 시점에 갑자기 괴물이 됐고, 하루 중 절반의 시간에만 사람으로 남아있을 수 있었어. 그렇게 비틀린 본인 몸을 고치는 게 목표야.”
“부작용이 누적되는 힘이면 좀 포기를 할 것이지…. 그래서, 고치는 방법은 뭔데?”
“적힌 바에 따르면 다른 인간의 몸을 자기 몸에 이식하고, 이식한 몸이 안정화하면 자기 원래 몸은 떼어내는 느낌인데? 말하자면 네가 마도서로 하는 몸 갈아타기를 시도하는 거지.”
“아니, 다른 사람의 몸을 이식하는 게 그냥 갖다 붙이면 되는 거냐? 무슨 혈액형이니 뭐니 따질 것도 많고, 면역 억제제 같은 것도 맞아야 하는 것 아니야?”
“‘마녀’라는 단어가 나온 시점에서 이미 의학적인 현실성을 따져봐야 의미가 있을까? 그냥 그런가 보다 하자.”
그 정도 찾아보고 올라갔다.
다시 위로 올라가자 동료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무언가 대화하는 게 보였다.
“뭡니까?”
묵성 할아버지가 표정만 굳히고 있자, 은솔 누나가 대답했다.
“진철이 상태가 나아지질 않아. 축복이 돌아오면서 재생력이 생겼지만, 여전히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어.”
“조금 더 기다려보는 게 어떻습니까? 보통 사람이면 진작에 죽었을 겁니다. 아직 살아있는 걸 보면 재생력이 뭔가 기적을 일으키는 중 아닐까요?”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네 말대로 하염없이 기다리다 보면 깨어날 수도 있겠지. 그런데, 우리가 그럴 수가 있냐? 이대로라면 한 달이 지나도록 누워있을지도 모른다.”
대놓고 말하는 사람은 없지만,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이쯤 해서 진철 형을 포기하자는 것. 관문의 방의 시련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형을 우리가 업고 가면서 진행하기엔 너무 어렵다.
포기한다 해서 형이 영구히 죽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관문의 방을 통과만 하면 멀쩡히 다시 만날 수 있겠지.
의견을 냈다.
“무슨 결정을 내리든지 존중합니다. 어차피 형을 포기하고 진행하더라도, 관문의 방을 통과만 하면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까요. 다만, 오늘 밤까진 기다려봅시다. 내일까지도 계속 의식을 차리지 못한다면, 다수결로 정합시다.”
다들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엔 지하에서 나와 아리가 알아낸 사실을 전했다.
마녀는 사악한 힘을 남용하다가 괴물이 되었으며, 하루 중 일정 시간만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다. 괴물이 된 몸을 원래대로 돌리는 것이 마녀의 목표인 듯하다.
“마녀는 본래 분명 인간이었군요!”
엘레나가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답했다.
본래 인간이었다는 근거가 나온 이상, 다음의 전투에선 ‘정의’가 작동할 수 있겠지.
“다른 분들은 무언가 찾으셨습니까?”
은솔 누나가 대답했다.
“불길한 이야긴데, 이 숲의 괴물은 마녀뿐이 아니야. 사실 이 숲 자체를 나가는 게 일종의 탈출이 아닐까 싶어서 탈출 루트를 찾아봤거든? 괴물이 넘쳐나더라. 머리 두 개인 늑대는 기본이고, 문어 다리가 달린 새도 있었어.”
“숲에서 저택에 오는 동안엔 그런 괴물을 못 봤는데 신기하네요.”
“저택을 좀 벗어나야 괴물들이 나와. 괴물들은 절대 저택으로 오지 않아. 아마 마녀를 두려워하기 때문이겠지.”
서로 할 말을 하고 나서 시계를 보았다. 슬슬 자정이 다가온다.
마녀와의 첫 번째 전투 이후 마녀의 목적, 숲의 상황 등을 알아냈다.
여전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는 확실치 않지만, 적어도 마녀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다음 전투 때는 엘레나가 활약할 수 있을 것 같다.
…
자정이 되며 시나리오가 갱신됐다.
/시나리오 : 관문의 방 – ‘마녀의 숲’
저택 지하에서 마녀의 정체와 목적을 알아냈고, 마녀의 숲은 괴물이 많아 탈출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아낸 일행.
일행이 고심 끝에 회의하던 중, 자정이 되었다.
하늘에 뜬 달이 자애롭게 빛을 발하자, 마녀는 광기로부터 정신을 되찾았다.
마녀가 저택으로 다가온다. 무언가 제안할 것이 있는 듯한데?
제안을 받을 것인가? 문답 무용으로 처단할 것인가?
다음 내용은 내일 확인해 주세요./
‘마녀가 정신을 차렸다, 저택으로 다가온다 ’까진 알겠다.
무언가 제안할 것이 있다? 무슨 소리지?
—탁! 탁!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급히 대화창을 썼다.
한가인 : 마녀 인간화. 저택 접근. 제안할 것 있는 모양.
김묵성 : 그냥 죽이면 안 됨?
한가인 : 모르겠음.
김아리 : 무슨 말 하는지는 들어보자. 엘레나가 제압할 수 있을 것.
마음을 편히 먹었다.
아리 말대로 엘레나가 정의를 쓸 수 있게 된 지금, 우리 파티의 무력은 훨씬 강해졌다. 얼마든지 대처할 수 있다.
묵성 할아버지가 문을 열었다.
…
인간화한 마녀의 외형은 아까 싸운 괴물과는 정말이지 전혀 닮지 않았다.
키는 160cm 정도인가? 송이보다 살짝 크다.
나이대는 20대 후반 정도 되어 보였다. 전체적으로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옷차림부터 패션을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제법 화려하고 고급스러워 보였고, 머리의 장신구, 팔의 팔찌 등이 하나하나 격조 있어 보였다.
왼팔로 지팡이 하나를 쥐고 있었는데, 그 지팡이도 범상치 않은 물건이다.
마녀라는 걸 모르고 만났다면 그냥 어딘가의 귀족 집안 따님 같은 분위기.
할아버지가 총을 들이대며 거칠게 말했다.
“대체 무슨 수작이냐?”
“그걸 여러분이 말하는 건 너무 염치없지 않나? 여긴 원래 내 집인데. 예의를 갖춰라.”
참, 그러고 보니 여기 원래 마녀 집이지?
“이 안에서 우리가 발견한 흉악한 것들만 아니었어도 예의를 갖춰드렸겠지. 미안한데, 아가리 닥치고 할 말이나 해라!”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엘레나에게 흐릿한 빛이 느껴졌다.
정의를 바로 발동시킨 건 아니고, 거짓말 탐지를 쓰는 중인 듯하다.
“아까 꽤 요란히 싸우다가 알게 되었는데, 그대들 중 상태가 심각한 환자가 있는 것 같던데?”
“…”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내가 그를 치료해주겠다.”
이게 마녀의 제안이었나!
시나리오에서 ‘제안을 받을 것인가? 문답 무용으로 처단할 것인가?’라는 말이 나왔을 때 심상찮은 제안이 나오리라 짐작했다.
우리가 마녀를 즉시 죽이는 것을 포기하고 마녀의 제안에 대해 고민할 정도의 제안!
진철 형의 회복이라면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단순히 형과 친해서가 아니다. 형의 무력은 우리 중 독보적이면서도 안정적이다.
특수한 조건이 필요한 엘레나, 소모성에 정체불명인 내 강림과 달리 별다른 조건 없이도 막강하다.
특히 별을 얻은 후 진철 형의 물리적 강함은 일행 전체의 무력의 7할 8할을 차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형이 식물인간이 되었는데도 우리가 여태 포기하지 않고 끌고 가는 이유가 바로 그런 점 때문이다.
다들 머리가 복잡해진 게 보였다.
마녀가 눈앞에 있다 보니, 즉시 대화창에 불이 났다. 마음이 급해서인지 다들 활자를 아끼지도 않고 쏟아냈다.
유송이 : 가능할까요?
김아리 : 사람 몸을 본인에게 이리저리 붙여대는 능력자인 걸 보면….
김묵성 : 설령 가능하다 해도 어떻게 믿냐?
엘레나 : 거짓말 탐지 중인데, 진실로 하는 제안이긴 해요.
한가인 : 더 들어봅시다. 원하는 것도 있겠죠.
내가 나아가서 물었다.
“그냥 치료해주겠다는 건 아닐 테고, 뭔가 바라시는 게 있는 듯한데 뭡니까?”
질문을 하자 마녀가 나를 또렷이 바라보았다.
…
계속 바라보았다.
…
거의 1분을 나만 바라보자, 동료들이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뭐 하시는가? 가인이 놈 얼굴이 볼만하긴 한데, 그것만 온종일 보러 오신 건 아닐 테고.”
“멀리서 봤을 때 설마 했는데, 진짜네.”
“뭐가 진짜라는 -”
“넌 좀 비켜.”
마녀는 지팡이로 묵성 할아버지를 툭 치고 내게 다가왔다.
할아버지는 어이없어하면서도 막진 않았다.
… 어딘가 애틋한 표정. 촉촉하게 젖어 드는 눈빛
대체 뭐임? 이 이상한 분위기 대체 뭐냐고? 하필 식인 마녀가 대체 왜 이러는 거지?
못 참고 입을 열었다.
“제게 할 말이 있으십니까?”
“당신은 마법사구나.”
대체 뭔 소리야? 간신히 추스르고 대답했다.
“대체 그게 무슨 -”
“숨길 필요 없어. 난 보면 아니까. 우리는 서로를 도울 수 있을 거야.”
애틋하기 그지없는 목소리 –
지랄 말자 제발. 아까 니가 만든 눈알 장아찌만 다섯 통을 봤다!
나는 황당함에 말문을 잃었다.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