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16)
115화 – 107호, 관문의 방 – ‘마녀의 숲’ (6)
– 한가인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37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107호(관문의 방)
현자의 조언 : 3]
갑작스러운 분위기 변화와 함께 던져진 말.
‘당신은 마법사구나.’
의미 파악은 어렵지 않다. 내게는 마도서가 있으니까.
의아한 점은 마도서는 호텔에 의해 봉인 당했다는 것이다.
대화창으로 급히 물었다.
한가인 : 마도서 때문인 듯? 봉인 당했는데 어떻게 알지?
김아리 : 빙의의 흔적이 육체나 영혼에 남은 듯.
한가인 : 일단 장단 맞춰보겠습니다.
생각하자. 내가 무슨 영화배우도 아니고, 저 마녀가 바보 천치도 아닌데 갑자기 날 보고 첫눈에 반했을 리가 없다. 심지어 마녀는 악독하기 그지없는 존재가 아니던가?
무언가 내게 원하는 것이 있으니까 저러는 것.
저택 지하에서 봤던 일지, 내 마도서의 능력을 생각하자 흐릿한 그림이 떠올랐다.
마녀는 악의 힘을 휘두르다가 그 반동으로 육신이 괴물로 변해가는 상황.
내게 빙의의 힘을 얻어내서 타인의 몸으로 이동하려는 걸까?
표정을 펴고, 자세를 바로 세우고, 마녀의 앞으로 나아갔다.
“대단히 정체를 감추고 있던 것은 아닙니다만, 레이디께서 한눈에 알아보실 줄은 몰랐군요.”
김묵성 : 레이디? 레이디이이? 너 술 마셨냐?
“어머! 제가 변변찮은 산골 마녀긴 하지만 눈뜬 장님은 아니랍니다. 마법사님의 영이 육을 벗어난 흔적이 이토록 빤한데, 어찌 제가 모르겠어요?”
“하하! 아무래도 제가 한 수 배워야 할 모양이군요? 참, 레이디의 성함을 여쭤도 되겠습니까?”
“아리마 니트라세라 해요. 마법사님의 성함은?”
“한가인이라 합니다. 아리마양.”
김묵성 : 대체 뭘 배우려고? 인간 소시지 제조법?
이은솔 : 아 좀 닥쳐봐요. 대화에 집중 좀 합시다. 중요한 이야기 중이잖아요.
한가인 : 제발 대화창 좀 멈춰.
“마법사 한, 우리는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사람의 몸이 품은 신비에 대해 잘 알고, 마법사 한께서는 사람의 정신과 영혼에 대한 비의를 터득하신 분. 우리의 깨달음을 합치면 마도의 극치에 도달할 수 있을 거예요.”
김아리 : 분위기 엄청 좋네! 결혼해도 될 듯? 레이디는 좀 웃겼어.
“좋은 생각입니다만, 제 동료의 상태가 시시각각 악화하는 중이다 보니 걱정을 금할 수 없군요.”
“물론 제가 충분히 치료해드릴 수 있답니다. 다만…. 마법사님께서도 성의를 보여주실 수 있겠지요?”
유송이 : 저 말을 믿을 수 있을까요?
엘레나 : 계속 감시해야죠.
이런 느낌으로 마녀와 대화하며 일종의 협상안을 만든 후, 마녀는 저택을 떠났다.
1. 마녀는 주기적으로 차진철을 치료한다.
2. 나는 마녀가 빙의의 마법을 쓸 수 있도록 가르친다.
3. 치료와 강의는 병행한다.
세부적인 내용들도 있었지만, 핵심은 세 조항이 끝이다.
협상안은 계약의 문외한이 보기에도 뻔한 문제가 있었다.
은솔 누나가 황당해하며 지적했다.
“이것 참 웃기는 협상안이네. 회사에서 누가 이런 걸 협상안이랍시고 가져오면 즉시 종이비행기로 접어서 그놈에게 날렸을 텐데.”
“종이비행기를 왜 날리냐? 네가 그런 짓을 하니까 대양 그룹이 욕먹었지.”
“할아버님. 갑자기 그 말이 왜 나와요? 어쨌든, 이 협상안은 서로가 약속을 어겼을 때 어떻게 응징할지의 내용이 전혀 없어. 배신하기 딱 좋네.”
아리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배신 방지 조항 같은 걸 넣을 필요 있어요? 배신은 서로 주먹으로 응징할 생각 만만인데. 마녀야 괴물 상태로 한번 붙어보니 우리 힘이 별것 아니라고 느꼈을 테고, 우리는 첫 충돌과 달리 이젠 엘레나가 싸울 수 있으니 마녀를 죽일 수 있다 생각 중이고. 둘 다 곧 서로를 죽일 생각이니 계약도 단순해지네요.”
묵성 할아버지는 아직도 아쉬운 듯 답했다.
“난 아직도 마녀를 고이 보낸 게 맞는 판단인지 모르겠다. 인간 상태로는 그리 강해 보이지 않았는데. 진철이를 회복시키겠다는 마음이 너무 강해서 판단을 실수한 것이 아닌가 두렵다.”
“저도 고민은 많이 했습니다만, 인간 상태라고 해서 약하리라 단정할 수 없어요. 정말 약하면 인간 상태로 혼자서 우리 앞에 나타났을까요? 게다가 관문의 방은 아직도 많이 남았습니다. 여기서 진철 형과 별을 잃으면 향후 진행이 어렵습니다. 엘레나?”
“네?”
“정의는 쓸 수 있는 상황인가요?”
“언제든지요. 설명하긴 어렵지만, 마녀를 볼 때마다 축복이 들끓는 느낌이 들어요. 당장에라도 마녀를 으스러트리고 싶은 걸 억지로 참는 느낌. 참는 게 어렵지, 쓰는 건 당장에라도 자신이 있어요.”
든든하다. 아리가 끼어들었다.
“마녀를 죽이는 건 가능한 모양이니, 이제 그놈의 ‘강의’를 어떻게 할지나 고민해. 마녀가 몇 시간 후에 치료를 위한 재료를 준비해서 온다니까 그 전에 준비해야 하잖아. 가르쳐주는 흉내라도 내야 치료도 해줄 테니까.”
강의라….
마녀가 빙의 마법을 원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서 가르쳐주겠다고 약속은 했지만, 대체 뭘 가르친다는 말일까? 애초에 마도서를 쓰는 나부터 딱히 이해하고 쓰는 게 아니다.
은솔 누나가 질문했다.
“대화를 듣다가 궁금해진 건데, 마도서를 꺼낼 수는 있어? 유산은 봉인했다길래 아예 가져간 줄 알았는데.”
바로 송이와 아리가 답했다.
“아니에요. 팔찌는 지금도 제 팔에 있어요.”
“오래된 피는 이름 그대로 제 피와 일체화한 상태에요. 이걸 가져갔으면, 전 즉시 죽어요.”
듣다 보니 나도 궁금해졌다.
마도서를 소환하자 즉시 나타났다. 살짝 들춰보자, 특유의 마기도 여전했다.
단지 빙의를 쓸 때의 그 감각!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내 정신을 붕 띄우는 듯한 그 감각은 사라졌다.
“아마 유산의 초자연적인 힘만 봉인하는듯합니다. 실물은 그대로 있네요. 주인 말고는 볼 수 없는 기능도 여전히 남아있고.”
은솔 누나가 질문을 이어갔다.
“그러면 마도서의 내용을 가르칠 수 있어?”
“누굴 가르칠 수 있을 리가 없죠. 저도 이해하고 쓰는 게 아닙니다. 가끔 읽어보긴 했는데, 그냥 외계어처럼 보입니다. 단순히 어렵다 정도가 아니고, 아랍어로 써진 양자역학 같다고 해야 하나?”
“아랍어로 써진 양자역학…. 까마득하네.”
아리가 대화를 끊었다.
“잠까아안! 이 사람들, 뭔 생각 중이야? 설마 진짜 가르칠 생각?”
“그건 아니지.”
“당연하지. 가르칠 수 있어도 가르치지 말아야 해. 어떻게 속일지나 고민해야지.”
“상대방도 마법을 익힌 사람인데 가능한가?”
“가능하다고 봐. 이건 일종의 전문 분야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지. 천체 물리학자도 반도체 공장에 가져다 두면 일반인과 다름없고, IT 전문가도 GMO 개발 연구소에 데려다 놓으면 입 한번 뻥긋 못할 거야. 비슷한 느낌으로 가자. 어차피 마녀가 마도서를 직접 읽을 수도 없으니까 더 쉽네.”
그렇게 우리는 한참 동안 어떻게 마녀를 잘 속여먹을지 연구한 후, 각자의 역할을 정립했다.
아침 해가 밝아올 때쯤, 마녀, 아리마가 거대한 무리를 이끌고 저택에 돌아왔다.
*
– 한가인
“오셨군요. 아리마 양.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머! 제가 너무 늦었나요? 치료 준비도 준비지만, 조금 ‘대접’을 해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아리마의 뒤를 보았다.
제법 건장한 체격의 남자 9명은 품질이 좋아 보이는 갑옷과 냉병기로 무장한 상태다. 아마도 아리마의 호위인 듯하다.
그 뒤의 20여 명의 인간은 아무리 봐도 노예였다. 옷차림도 거의 헐벗은 상태였고, 신체 여기저기가 훼손된 사람들. 누군가는 팔이 없고, 누군가는 다리가 없다.
그런 몸으로 험한 숲을 걸어오면서 몸 여기저기에서 피가 흘렀다. 그러면서도 마녀가 어찌나 두려운지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진철 형이 깨어나는 대로 저놈의 마녀는 반드시 대가리를 터트려주리라.
하지만, 오늘 우리는 마녀만큼이나 잔혹해져야 한다.
“아리마 양. 혹시 부탁 좀 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이번에 들인 ‘애완동물’이 배가 좀 고픈 모양입니다. 한 명이면 충분할 겁니다.”
“네? 갑자기 무슨 -”
한가인 : 지금 시행 부탁.
유송이 : 꼭 해야 함?
김아리 : 기세에서 밀려선 안 됨.
송이의 나직한 목소리가 퍼졌다.
“루카!”
—쾅!
저택 뒤편에 엎드려있던 황소만 한 크기의 쌍두 늑대가 마녀가 끌고 온 무리 사이로 뛰어들었다.
아리마와 그 일행이 반응하기도 전에 늑대의 입이 벌어지며 호위 한 명의 상반신을 물어뜯었다.
찰나의 침묵.
직후에 장내에 비명이 가득 찼다.
“으아아아아아악!”
그 잠깐의 반응만으로 무리의 수준을 파악할 수 있었다.
마녀의 9명, 아니 이젠 8명의 호위는 그 순간에조차 침착하게 무기를 꺼내 들고 마녀 주변에 모여들었다. 제법 숙련된 인력. 어중이떠중이는 아니다.
반면 노예들은 아예 자지러지며 나뒹굴면서도 도망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눈앞에 황소만 한 쌍두 늑대가 나타났는데도 여전히 마녀가 두려운 것이다.
침착하게 아리마의 기색을 살폈다.
마녀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
나는 그녀의 손을 재빨리 붙잡으며 말했다.
“실례했습니다. 우연히 숲에서 만나 길들인 녀석인데, 워낙 배고파해서 말이죠. 설마하니 바로 달려들 줄은 몰랐습니다. 이 점은 사과드립니다.”
“…차라리 노예를 한 마리 달라고 하셨으면 기꺼이 내드렸을 텐데요.”
“죄송합니다. 다 아리마 양에게 자그마한 재주를 보여드리려는 제 부족함 때문입니다.”
“자그마한 재주?”
걸려들었다.
“숲에 제법 흉포한 동물들이 많더군요. 이들을 길들여서 수족처럼 부리는 힘! 어떻습니까? 지금 부리시는 저 허술한 호위들과 비교가 되겠습니까?”
마녀의 표정이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
이제는 느껴진다. 이 마녀는 무언가를 탐내기 시작하면 이런 태도가 나온다.
“어머나. 마법사께서 이런 신비한 비의도 익히고 계셨군요? 이런 것도 가르치실 수 있는 건가요?”
나는 살짝 웃으며 송이에게 손짓했다.
송이는 내게 다가와서 다소곳하게 고개를 숙였다.
“제 제자입니다. 부족한 아이입니다만, 개 한 마리 길들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마녀의 눈이 호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우선은 마법사 한의 동료분 치료부터 시작할까요?”
“감사합니다. 우리의 교류가 서로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좀 전에 사람 한 명이 늑대에 잡아먹힌 일 따위는 우리 사이에선 이미 없는 일이 되었다.
아리마의 손을 붙잡고 저택 내부로 들어섰다.
송이의 첫 번째 기선제압, 이후 사기를 이어갈 승엽이와 아리가 공손한 태도를 보이며 나타났다.
호텔 바깥에서 사기 사건 뉴스를 볼 때마다 했던 생각이 있다.
사람을 어리석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인가?
사회적으로 문제시되는 사기 사건 중, 사기꾼이 엄청난 지략으로 속을 수밖에 없는 대단한 함정을 판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많은 사기 피해자들은 신문, 뉴스, 은행 등에서 수백 번 수천 번을 경고해준 뻔한 수법에 속고 또 속으며 평생을 노력해서 쌓아 올린 재산을 잃고 만다.
어째서 그런 뻔한 수법에 당할까?
원인은 바로 탐욕. 쉽게 얻을 수 없는 이득이 눈앞에서 어른거릴 때, 우리는 이성을 잃고 현혹된다. 그 뒤에서 사기꾼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고 만다.
관문의 방, 두 번째 시련.
나는 세상에서 가장 신비롭고, 끝없는 비밀을 감춘 마법사가 될 것이다.
마녀가 내가 품은 신비에 대한 탐욕으로 정신이 나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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