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17)
116화 – 107호, 관문의 방 – ‘마녀의 숲’ (7)
– 한가인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38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107호(관문의 방)
현자의 조언 : 3]
아리마의 ‘치료’가 시작됐다.
“으아아아악!”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손 떼라. 붙잡아!”
…
상상을 초월하는 ‘치료’에 우리 일행은 말문을 잃었다.
아리마는 호위들을 시켜 노예들을 붙잡더니, 산채로 피부를 뜯어내어 진철 형의 몸에 가져다 붙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너무 놀란 송이가 즉시 루카 – 송이는 그 잠깐 사이에 쌍두 늑대에게 이름까지 붙였다. – 를 시켜 마녀를 공격하려 했다.
내가 즉시 제지하지 않았다면 이미 싸움이 벌어졌겠지.
마녀는 우리의 당황하는 모습을 즐기는 듯했다.
송이는 여전히 분을 참지 못했다.
“저게! 저게 대체 뭐죠? 저런 게 무슨 치료에요? 당장 – ”
김묵성 : 유송이! 대화창!
묵성 할아버지의 ‘소통’이 강화된 후, 대화창의 활자 제한은 굉장히 많이 늘어났다.
지금처럼 섣부른 대화가 상대에게 얕보일 수 있는 상황에선 매우 유용하다.
유송이 : 당장 멈춰야 하는 것 아님?
김아리 : 진정 바람. 마녀 능력 생각하면 저런 식의 치료일 게 뻔했음.
김묵성 : 잔혹하긴 하지만 진철이를 살리는 게 더 중요.
유송이 : 저런 식으로요?
… 오랜만에 관리국 팀과 나머지 일행의 괴리감을 느꼈다.
잔혹하고 기괴한 광경에 익숙한 관리국 팀은 철저히 실용적으로 판단 중이지만, 나머지 사람들 처지에선 솔직히 괴로웠다.
아리마가 노예의 피부를 벗겨내기 시작하자 나도 어쩔 수 없이 시선을 돌려야 했다.
침착하자.
최대한 얼어붙은 마음으로 생각했다.
관리국 팀의 판단이 맞다. 새삼 잔혹함을 따지는 게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이미 살기 위해 저주의 방 내부의 NPC들을 무수히 죽여왔다.
진철 형을 살리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
치료는 대략 30분 정도 이어졌다.
피부가 벗겨지던 노예의 비명이 잦아들 때쯤, 진철 형의 피부는 사람처럼 돌아왔다.
무슨 혈액형이고 면역 억제제고 다 필요 없이 그냥 노예의 피부를 떼어다 붙이니까 OK라니, 의사들이 봤으면 기절초풍할 일이다.
물론 마법이 존재하는 시점에서 의사들이 나올 상황은 아니긴 하다.
아리마에게 다가갔다.
“피부가 한결 깔끔해졌군요? 언제쯤 깨어날 수 있겠습니까?”
“그건 제게 달린 문제가 아니랍니다.”
“…”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흉하게 일그러졌는지 모르겠지만, 신체 내부의 장기까지 다 멋대로 비틀렸군요.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에요. 물론 치료는 가능합니다만….”
거기까지 말하고 아리마는 내게 눈웃음을 보였다.
돌려 말했지만, 이해하지 못할 내가 아니다.
더 본격적인 치료를 원한다면 마법을 가르쳐 달라는 뜻이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손짓으로 아리를 불렀다.
아리마가 의아하다는 투로 질문했다.
“이 분은? 꽤 아름다운 아가씨네요?”
“내 수제자입니다. 이제부터 아리마 양에게 비전을 강의할 테니, 인사라도 하시지요.”
아리마의 표정이 바로 굳어졌다.
“전 마법사께 직접 배우는 줄 알았는데요?”
미안. 내가 알려줄 지식이 없거든.
최대한 비웃는 투로 피식 웃었다.
“…무슨 의미이신지?”
“말에는 곧 힘이 담겨있는 법! 내가 좋게 좋게 말해주니, 네가 나와 같은 급이라 생각하냐? 넌 내가 쓴 글자 하나도 감당하지 못한다.”
“대체 무슨 -”
주저 없이 마도서를 소환해서 살짝 폈다.
과연 마녀인가? 일부러 느릿하게 펼치기도 했지만, 그 사이에 위기감을 느꼈는지 바로 시선을 돌렸다.
다만 옆에서 피부가 반쯤 벗겨진 채 신음만 내뱉던 노예는 반응하지 못했다.
순식간에 노예의 눈알이 녹아내리고 한 줄의 비명을 토해낸 후 숨이 끊어졌다.
… 차라리 다행이다. 저 상태로 더 살아있는 건 고통의 연장일 뿐이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리마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직도 직접 배우고 싶으신가? 아리마 양은 눈알 여분이 많은 듯하니 괜찮을 것 같기도 한데?”
“…우선은 제자분께 한 수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나쁘지 않다.
잔혹한 광경으로 인해 넘어간 심리적 주도권이 다시 내 쪽으로 넘어온 느낌.
자연스럽게 아리가 아리마에게 다가가서 떠들기 시작했다.
“이론부터 들으세요. 비전의 핵심은 곧 제행무상! 만물은 끝없이 변화하니, 물질도 정신도 흔들리는 물결과 같노라. 성한 것은 쇠하고, 쇠한 것은 성한다. 보름달이 차면 기우는 것과 같은 이치. 결국 영원한 것은 없다. 정신은 결코 육체와 일체가 아니니, 흔들리는 물결 속에서 정신은 흡사 파동처럼 번져나간다-….”
뭐라는 거야? 도대체 알 수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대화창을 썼다.
한가인 : 대체 뭔 소리임?
김아리 : 멍멍!
어처구니가 없지만 억지로 표정 관리도 하고, 중간중간 추임새도 넣었다.
“흐음. 아리야. 그 부분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드려. 제행무상의 묘는 곧 제법무아의 이치에서 비롯되었다. 이 우주에 어찌 ‘나’가 있겠는가? 삼라만상의 모든 것이 곧 연에 따라 형성되고, 연에 따라 변화하는 허망한 것. ‘나’란 곧 공허한 그림자와 같으니, 그림자는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다….”
김묵성 : 넌 대체 무슨 소리 중이냐?
한가인 : 야옹?
김묵성 : 아주 지랄 났다! 지랄 났어!
이은솔 : 어릴 때 절이라도 다녔니?
아리가 열심히 개소리를 지껄이고, 내가 고양이 소리로 추임새를 넣은 지 한 시간.
아리마는 뭔가 큰 깨달음을 얻은 반응을 보이며 질문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노라니, 오랜 세월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그림자가 걷어지는 느낌입니다. 말씀인 즉, 인간의 정신을 두뇌에 속박된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유동적인 파동처럼 생각하라는 의미인지요?”
… 얘는 또 뭔 소리야?
한가인 : 얘는 혼자 무슨 소리임?
김아리 : 개소리를 듣다가 깨달음이라도 얻었나 봐.
한가인 : 깨달음이 그딴 식으로도 오냐?
김아리 : 원효 대사는 썩은 물만 마시고도 깨달음을 얻었대.
잠깐 쉬자고 말하며 의자에 앉았다.
개소리와 고양이 소리로 가득한 강의가 감명 깊었던 까닭일까?
아리마는 다시 진철 형 근처로 가더니 뭔가 치료를 시작했다.
30분쯤 흘렀을까? 아리마가 일어서서 내게 말했다.
“선생님께 더 많은 가르침을 얻고 싶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제가 사람으로 있을 수 있는 시간에 한계가 있어 오늘은 더 진행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자정에 다시 오겠습니다.”
정말로 ‘공손해진’ 태도. 호칭까지 선생님으로 바뀌었다.
진짜 나를 무슨 마법의 대가로 여기는 듯한 공손한 인사와 함께 아리마는 물러갔다.
… 우리가 제일 황당해서 서로를 쳐다봤다.
은솔 누나가 물었다.
“설마 해서 하는 말인데, 마도서를 보고 이해한 내용을 알려주기라도 한 거야?”
“마도서는 아랍어로 적힌 양자역학 같았다니까요…. 그냥 아무 소리나 지껄였어요.”
“근데 저 여자는 반응이 왜 저래?”
“저도 모르겠습니다.”
묵성 할아버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의견을 냈다.
“야, 너네는 다단계 홍보 못 들어봤냐? 걔네 말 듣고 있으면 다 그럴듯하다. 어차피 제대로 된 전문가 아니면 그럴듯한 개소리와 진짜 전문 지식을 구분 못하는데 저 마녀라고 다르겠냐? 대충 제 마음대로 이해한 거지. 신경 쓰지 말고 진철이나 살펴봐라.”
모여서 진철 형을 살펴봤다. 두 번째 치료는 신체 내부에도 효과가 있던 걸까?
무언가 숨을 더 고르게 쉬는 느낌이다. 딱 어떻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이젠 편안하게 자는 사람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엘레나가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말 무언가 치료가 진행 중인 느낌이네요. 이대로라면 조만간 깨어나지 않을까요?”
진철 형의 확연한 회복세가 느껴지자 파티의 분위기가 밝아졌다.
마녀도 떠났겠다, 다들 마음 편히 쉬는 분위기다.
나도 오랜만에 한숨 돌리며 눈을 붙였다.
*
– 한가인
낮 동안 다음 계획을 동료들과 준비하고, 진철 형의 상태도 관찰하고, 내용이 추가된 시나리오 이해도 체크했다.
자정이 되자 마녀가 도착했다.
또 비슷한 일이 반복되었다.
마녀는 먼저 진철 형 근처로 와서 잔혹한 ‘치료’를 시작했다.
이번엔 3명 정도의 노예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죽어갔고, 진철 형의 신체 내부까지 안정화되기 시작했다. 정말 이 흐름대로면 조만간 형이 깨어나지 않을까?
그리고, 강의가 시작됐다.
이번엔 강의 주제를 살짝 바꿨다.
“아리마 양은 ‘행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네? 어라…. 그게 선생님의 비전과 관련이 있나요?”
“관련이 없다면 이야기를 꺼냈겠습니까? 집중하십시오. 범속한 운명을 살아가는 이들은 행운을 그저 하늘이 내린 주어진 운명처럼 여기곤 합니다. 자신이 통제할 방법도 없고,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니 그들에겐 합당한 태도지요. 하지만, 우리가 범속한 사람들입니까? 아리마 양은 그렇게 살아가실 생각이신지요?”
“아닙니다! 저는…. 저는 속된 운명을 넘어서기 위해 이 길을 걸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지 않습니다. 악마니, 마녀니, 요란스럽게 굴고, 주기적으로 절 죽이겠다고 사냥꾼이니 사제니 하는 사람들도 찾아오죠. 그럼에도 전 멈출 수 없었습니다.
날 때는 하찮은 존재로 태어났을지언정 계속 그렇게 살아가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전 하늘의 별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요. 이 세계에 숨겨진 끝 없는 비밀! 그 비밀의 일부라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
갑자기 격렬한 반응이 나왔다. 어제의 헛소리로 가득 찬 강의가 정말 아리마에게 무언가 깨달음이라도 준 걸까?
나는 그냥 던지듯이 평범하게 살 생각이냐 한마디 했을 뿐인데, 아리마는 엄청난 감정 변화를 보이며 감상적인 태도로 자신의 꿈을 말했다.
당황하면서 대충 다음 대화를 이어갔다.
“아리마 양의 꿈에 관한 이야기를 듣자니, 저도 80년 전, 처음으로 비전을 탐구할 때가 떠오르는군요. 모든 마법사의 시작은 소박한 법이죠.”
김묵성 : 지랄한다 또! 이젠 무슨 100살 먹은 마법사 행세냐?
“행운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행운이란 곧 믿음! 오직 믿음으로 살 것. 의심하지 않는 삶에 대한 태도. 나에 대한 확신. 내가 행하니, 세상이 따를지니라. 이는 곧 행운이 사람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행운을 이끌기 위한 비전인 법. 승엽아!”
미리 약속한 대로 승엽이가 다가왔다. 승엽이는 아무렇지 않게 주사위를 툭 던졌다.
당연하다는 듯이 6.
이제 슬슬 자신감이 붙은 승엽이는 더 재미난 쇼를 시작했다.
장난치듯이 카드를 꺼내서 휘리릭 돌리다가 한 장을 뽑아서 아리마의 가슴팍에 꽂았다.
아리마는 당황해서 카드를 꺼내 뒤집었다. 퀸이 나타났다.
승엽이는 역시 아무렇지 않게 카드를 뽑아서 내게 줬다. 뒤집자, 당연하다는 듯이 킹이 나타났다.
… 행운을 아는 내가 봐도 신기하다.
이대로 도박판에 가면 도박의 신이 되겠는데?
당연히 아리마는 아예 눈이 휘둥그레져서 승엽이를 보다가, 나를 보기를 반복했다.
“이런 것도…. 익힐 수 있는 건가요?”
밀당으로 치면 이번엔 살짝 뺄 타이밍인가?
“이건 어렵습니다. 타고난 자질의 영향을 많이 받거든요. 다만, 아리마 양께 마법의 여러 가지 가능성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축복 없으면 이런 짓 못 해.
“정말 선생님 같은 분은 처음 봅니다. 저 바다 건너 제국의 수석 마법사나, 숲 동쪽 왕국의 마술사 왕도 이렇게 다양한 힘을 가졌을 것 같진 않아요.”
이 무대엔 무슨 제국이나 왕국도 있나? 실제로 그 지역까지 구현이 됐을까?
이 정도 느낌으로 오늘의 강의도 끝냈다.
아리마는 오늘도 아침 해가 뜨기 전에 저택을 나섰다.
아리마가 떠난 후, 낮에 떴던 시나리오의 내용을 떠올렸다.
대부분 내용은 별 의미 없었다. 우리가 무슨 계획을 짰고, 아리마가 곧 저택을 온다는 정도의 가치 없는 이야기들.
그러나, 한 문장은 상당한 위기감을 느끼게 했다.
/사악한 지혜에 한 발자국 다가간 마녀는 오늘도 큰 꿈을 가지고 저택에 도착했다./
… 후단은 단순히 저택에 왔다는 말이지만, 전단의 내용이 심상치 않다.
‘사악한 지혜에 한 발자국 다가간 마녀’
정말 나와 아리가 내뱉은 개소리를 듣고 무언가 깨달았다는 말인가?
저택 바깥으로 나와서 산책하며 생각했다.
진짜, 설마, 혹시, 만약에.
정말 그 마녀가 무언가를 깨닫는 건 아니겠지?
아리가 했던 말을 되새겼다.
원효 대사는 해골 물 한 컵 마신 것 만으로 큰 깨달음을 얻었지.
아이작 뉴턴은 사과가 떨어지는 광경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깨달음이라는 건 꼭 전문가의 복잡한 강의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무 기초도 없는 초보라면, 떨어지는 사과나 썩은 물 한 컵으로 뭔가 얻을 수는 없다.
하지만 평생 사악한 지혜를 탐구해온 사람이라면….
사악한 진리에 단 한 발짝만 남겨둔 채 문고리를 두들기는 마녀라면.
때로는 사소한 발상의 전환만으로 한걸음 도약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불길한 직감이 느껴진다.
설마하니 성장하는 악역이라니!
시시각각 성장하는 적, 아군의 치료 때문에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우리.
이 선택의 어려움이 시련의 핵심이었나?
내일 끝을 보자. 이젠 진철 형의 치료보다도 마녀의 처단이 중요하다는 판단이 섰다.
한 가지 의문이 남았다.
정말 저 마녀가 무언가 ‘깨달음’을 얻는 중이라면, 대체 무슨 깨달음을 얻고 있는 걸까?
무언가… 범인의 사고방식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악독한 깨달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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