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19)
118화 – 107호, 관문의 방 – ‘마녀의 숲’ (9)
– 한가인
멀리서 이변을 눈치채고 동료들이 달려왔다.
“대체 무슨 일이죠?”
“뭐냐? 갑자기 무슨 일이야?”
“으아악! 이 시체는 대체 뭐에요?”
혼란에 빠진 분위기 속에서 천천히 설명했다.
아리마가 갑자기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한참 하고, 마법적인 깨달음을 설명하더니, 뜬금없이 키스하고, 다시 태어나겠다는 소리를 하면서 자살했다.
말하는 나도 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다른 사람들도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리가 재밌다는 듯 입을 열었다.
“신기하네. 널 좋아하는 티는 냈지만, 갑자기 키스하고 자살이라니.”
“좋아하는 티를 냈어?”
“설마 몰랐어?”
“처음부터 이상한 행동을 하긴 했지만, 그냥 연기라고 생각했는데.”
“연기야 처음에나 했겠지. 그 후론 무슨 전문 배우가 아니고서는 연기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티를 내던데.”
송이도 덧붙였다.
“가끔 대화할 때 느꼈는데, 아리마는 상처가 많은 것 같았어요. 아리마가 생각하기엔 우리도 일종의 ‘마법사 파티’인데 다들 사이가 좋으니까 무척 부러워하는 것 같기도 했고.”
은솔 누나가 질문했다.
“혼란스럽긴 한데, 마녀가 죽었으니 이제 끝인가?”
“그럴 리가 없습니다. 아리마 본인이 죽기 전에 새롭게 태어날 준비가 끝났다는 소리를 했으니 분명히 다음 페이즈가 -”
하늘에서 우렁찬 알림이 들려왔다.
/참가자 여러분! 두 번째 시련, ‘마녀의 숲’의 통과를 축하드립니다./
순식간에 주변 공간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두 번째 시련의 통과라는 알림을 듣고 기뻐하는 동료들을 보면서….
난 공포에 질렸다.
아리마가 내게 했던 말들. 심상치 않은 정황. 그리고 지금의 알림.
‘저도 선생님을 모시고 싶답니다.’
‘사람의 정신이란 허상. 무의미한 집착을 버리겠다.’
‘새롭게 태어날 준비를 끝마쳤다.’
‘여자로서도 살아보고 싶었다.’
아리마는 며칠 동안 진철 형의 몸을 마음대로 건드렸다.
호텔은 진짜와 가짜를 판별할 때 육체 자체를 중요시한다.
모든 정보가 하나의 구슬로 꿰어지며 한 가지 끔찍한 결론을 가리켰다!
*
첫 번째 시련이 끝났을 때처럼 모두가 깔끔한 호텔 방 같은 공간에 도착했다.
유산의 봉인이 끝났다. 마도서의 힘이 회복되었다. 나는 정신없이 외쳤다.
“송이야! 팔찌로 진철 형 확인해!”
즉시 팔찌에서 하얀 섬광이 튀며 진철 형을 스캔하듯이 덮는 즉시 –
송이의 얼굴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어! 어엇! 꺄아아악!”
은솔 누나나 엘레나가 당황하던 사이, 아리가 설마 하는 표정으로 외쳤다.
“설마! 저거 설마 진철이가 아니라 -”
이쯤 되자 묵성 할아버지도 경악했다.
“시바아아알! 지금 ‘저것’이 깨어나려 한다!”
진철 형의 몸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바로 마도서를 소환했다.
지금 진철 형의 몸을 빼앗은 저 괴물과 대놓고 싸우면 그 희생을 감당할 수 없다!
무조건 내가 마도서로 끝을 내야 한다.
마도서의 힘이 발현되고, 내 정신이 붕 떠오른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화려한 저택에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
귓가를 간지럽히는 바이올린, 피아노 등이 섞인 음악 소리.
벽에 걸린 장식이나 촛대, 샹들리에 등 모든 것이 화려하게 빛나는 저택.
저택 주인의 사치스러운 취향이 느껴지는 공간 한가운데를 거닐었다.
처음 있는 경험.
마도서를 쓴 건 여러 번이지만, 보통 빙의하는 즉시 상대의 몸을 통제하는 식이지 이런 식으로 무슨 정신 속 세계 같은 곳에 떨어진 적은 없다.
마녀의 힘일까? 알 수 없었다.
걷다 보니 화려한 식탁이 나타났다. 건너편엔 아리마가 있었다.
“이건 네 장난질인가?”
“장난질이라기보다 그냥 초대라고 말해주세요.”
“또 뭔가 할 말이 있으신지?”
“별것 아니랍니다. 그냥 당신을 설득하고 싶어서요.”
“설득? 내 동료의 몸을 빼앗은 주제에 설득?”
아리마는 살짝 웃었다.
“이 몸, ‘차진철’의 기억을 읽어낸 후로는 충격의 연속이었답니다. 제가 존재했던 세상 전체가 단지 전능한 초월자가 빚어낸 연극에 불과했다니…. 결국 이 몸으로 넘어오기 전, ‘진짜 아리마’도 따지고 보면 가짜였다는 말이겠죠.
깨달음을 얻기 전의 저라면 이런 경험을 하는 것 만으로 돌아버렸을지 모르겠어요. 나 자신이 가짜라는 이야기니까. 하지만, 이젠 괜찮네요. 어차피 정신이란 곧 허상! 그저 집착에 불과한 것이니. 전부 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감사해요.”
아리마의 침착한 태도를 보며 나도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렇게 말해주니 다행입니다. 하지만, 진철 형의 기억을 읽었다면 짐작하셨을 것 같군요. 난 당신이 생각한 것처럼 대단한 마법사가 아닙니다.”
아리마는 오히려 의아한 태도를 보였다.
“왜 아니죠?”
“… 아직 기억을 다 읽지 못하신 모양인데 -”
“자신이 쓰는 힘을 이해하지 못해서? 사실은 어리니까? 제자라고 말했던 사람들도 따지고 보면 그냥 호텔이 준 힘을 쓰는 동료들이니까?”
다 읽었구나.
“저도 제가 쓰는 힘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요. 많은 부분은 원리도 모르면서 경험적으로 이렇게 하면 되더라 하는 식으로 쓰고 있을 뿐이지. 나이가 어리다는 점은 오히려 장점이고, 동료분들이 많은 것도 장점이네요. 힘은 마도서로부터 받았다? 마도서는 당신이 노력해서 얻은 것 아닌가요? 선생님은 틀림없이 마법사예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솔직히 말해보자.
“진철 형의 몸에서 나가주실 수는 없습니까?”
아리마는 작게 한숨을 토했다.
“그 대답은 조금 실망스럽네요.”
“차진철은 제 소중한 -”
“저보다 차진철을 소중히 여긴다거나 그런 유치한 이유로 실망했다는 말이 아니에요. 당신의 대답에서 당신이 ‘정말로’ 마도서에 담긴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새삼 깨달아서 실망스럽다는 겁니다.”
“…”
“마도서의 주인이면서 어째서 이해하지 못하시나요? 사람의 정신이란 마치 흐르는 강과 같은 것. 강물이 흐르듯이 정신은 끝없이 흐르고, 변합니다. 평범한 이들이 생각하는 불변하는 자아라는 것은 흐르는 강물을 특정 시점, 특정 장소에서 손으로 퍼 올린 것에 불과합니다. 하루 지난 후에 같은 위치, 같은 시간에서 물을 퍼도 강은 완전히 달라져 있겠죠.”
“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건지 모르겠는데 -”
“좀 더 들으세요. 당신이 저보고 ‘나가달라’고 한 건, 지금 제가 차진철이 아니라고 생각해서겠죠? 그러면 저는 대체 뭐죠?”
“아리마 아닙니까?”
아리마는 피식 웃더니, 한 바퀴 돌았다.
… 눈앞에서 ‘차진철’이 나타났다.
“이젠 차진철이냐?”
“…”
그는 다시 한번 돌아서 아리마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전 정신을 복제해서 차진철의 몸에 집어넣었습니다. 진짜 아리마의 영혼도 육체도 이미 죽었고, 복제된 정신만 이 몸에서 깨어났는데 제가 아리마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실은 아리마의 기억 일부를 이어받은 차진철이 아닐지?”
“정신만 복제해서 진철 형의 몸에 넣었다고? 영혼, 육체를 전부 포기하고? 그게 대체 자살과 뭐가 다르지?”
“왜 자살이죠? 나는 여기 있는데. 당신이 생각하는 ‘진짜 아리마’가 당신 앞에서 자살했으니, 지금의 나와 연속성이 끊어져서? 그런 연속성에 대한 집착이 무의미하다는 점이 선생님의 가르침 아니었나요?”
“난 그냥 아무 소리나 했을 뿐이야. 그 안에 마도서의 지혜가 섞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체 그딴 소리를 듣고 무슨 이런 미친 깨달음을 얻었다는 거냐고!”
“역시 쉽게 설득은 어렵군요.”
아쉬워하는 아리마의 말과 함께 화려한 저택이 무너지고, 공간조차 무너졌다.
아름다운 마녀의 몸은 순식간에 거품처럼 흩어지며 거대한 암흑의 소용돌이가 나타났다.
목소리가 내 마음속에 울려 퍼졌다.
‘기어이 어리석은 선택을 하겠다면, 힘으로 입증해라!’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기묘한 싸움이 시작됐다.
암흑의 소용돌이가 날 뒤덮으며 순식간에 내 몸이 조각났다.
하지만 난 여전히 멀쩡히 생각할 수 있었다. 어떻게 싸워야 할지도 자연스럽게 알았다.
이 싸움은 정신과 정신의 충돌, 몸 따위는 애초부터 허상에 불과하다.
사방에서 칠흑의 사슬이 솟아나며 소용돌이를 관통했다.
소용돌이는 다시금 요동치더니, 이번엔 다시 아리마가 나타나며 사방에서 번개가 번쩍거리며 사슬을 태웠다.
다시금 사슬을 뻗어 아리마의 형상을 으스러트리고, 이번엔 뒤에서 소환된 번개가 날 지졌다.
이런 식의 몽환적인 공방이 수십 차례 이어지며 깨달았다.
서로가 가진 강점.
아리마는 진철 형의 몸과 합일했기 때문에 싸움의 무대인 진철 형의 정신 세계 자체에 대한 더 강한 통제력이 있었다.
나는 그야말로 끝없는 신비의 보고인 마도서의 힘을 쓰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압도적인 강점이었다.
문제는 이 싸움이 결코 단기에 끝날 수 없다는 점이다.
본질적으로 실체 없는 상상 속의 싸움이나 다름없으니 서로에게 결정타를 먹이기가 어려웠다.
1시간 후면 또 다음 시련이 시작될 것이 분명하다. 그 전에 이 싸움을 끝내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내 정신이 ‘위에’ 닿았음을 느낀다.
현실에서 벗어난 몽환의 세계에서, 내 정신은 평소라면 결코 닿을 수 없었던 아득한 세계의 문고리를 붙들었다.
승리를 위해서 나에겐 더 위대한 힘이 필요하다.
꿈에서 현실을 불러내는 힘, 무에서 유를 끌어내는 힘!
공허 속에서 마도서가 내 앞에 나타났다.
결코 펼 수 없었던 새로운 장이 내 앞에 펼쳐졌다.
화신(化身)의 힘
이윽고, 허상의 세계에서 실체가 나타났다.
단 한줄기의 섬광이 나와 아리마가 싸우던 허무의 세계를 한순간에 꿰뚫었다.
아리마가 마치 재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건 대체 무슨 힘인가요?’
‘나도 몰라.’
‘아하하! 선생님은 정말이지 일관적인 분이군요. 분명히 알고 쓰시면서도 모른다고 믿으시다니. 정말 모르시는 건가요? 아니면 깨달음의 의미를 두려워해서 모른다고 믿으시는 건가요?’
‘…’
‘깨달음이란 곧 돈오점수라 하였으니. 한순간의 깨달음을 얻었더라도 깨달음을 체화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한 법. 명심하세요. 마도서를 얻는 순간 당신은 이미 깨우쳤습니다. 20년 동안 쌓인 사람의 기억이 진실로 위대하게 거듭나려는 당신의 발목을 잡고 있을 뿐….’
이것을 유언으로 아리마는 사라졌다.
아니, 사라졌나? 평소보다 높은 곳에 닿아있는 정신이 내게 말했다.
차진철이 완전히 죽은 게 아닌 이상 아리마도 결코 죽은 것이 아니라고.
아리마의 자아, 아리마의 기억은 사라졌다.
그러나 관문의 방 바깥에서 되살아날 형에겐 어떤 식으로든 그 흔적이 남으리라.
드높은 영역에 닿았던 내 정신이 차츰 ‘아래로’ 내려왔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화신의 힘이 진정으로 내 손에 들어오려면 무언가 근본적인 도약이 필요하다.
단순히 시간이 흐르고, 빙의에 대한 숙련도를 높이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성장이 필요하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어쩌면 호텔을 나갈 때까지도 도달할 수 없을지 모른다.
‘사람의 한계를 벗어난 마음가짐!’
… 이런 성장이 정말로 바람직할까?
고민 속에서 의식이 흐릿해졌다.
*
– 한가인
의식이 현실로 돌아오며 깨어났다.
돌아오자마자 진철 형을 바라보았다.
형의 머리는 깔끔하게 쪼개진 상태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은솔 누나가 답했다.
“오히려 내가 묻고 싶어. 대체 무슨 일을 한 거야? 네가 마도서를 쓴다 싶더니 둘 다 주저앉았고, 한 10분 정도 흐르더니 진철이 머리가 갑자기 갈라졌어.”
“그런가요….”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두 번째 시련 내내 어떻게든 진철 형을 살리겠다고 그렇게 노력했는데, 이 모든 노력이 실패했구나.
다들 어딘가 허탈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아리가 날 툭 치면서 말했다.
“그래도 수고했어. 마도서의 힘이야? 점점 더 강해지는 느낌이네. 어찌 됐든 진철이랑 우리가 싸우는 결말은 피해서 다행이다. 진철이가 별이라도 소환하면서 우리랑 싸웠으면 까딱하다간 다 죽었을지도 몰라. 마녀는 확실히 끝냈어?”
“아마도.”
“뭔가 불안한 대답이네.”
묵성 할아버지가 끼어들었다.
“그나저나 이번 일은 두렵기 짝이 없다. 너도 이미 알았겠지만, 아리와 송이 의견을 합쳐보면 그 마녀가 진철이의 몸을 빌려서 시련의 공간을 벗어나는 데 성공한 것 아니냐?”
“따지자면 그렇죠. 물론 벗어난 존재를 진짜 아리마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철학적인 문제는 넘어가자. 중요한 건 이게 일종의 ‘탈출’이라는 것이지. 관문의 방 내부, 시련의 공간에서 바깥으로 탈출한 것과 다르지 않다. 저주의 방에서도 비슷한 탈출이 가능한 것은 아니겠지?”
머리가 복잡해졌다. 참가자의 몸에 자신의 정신을 복제해서 밀어 넣은 후, 참가자가 탈출할 때 같이 나오는 형태의 탈출이라….
그 순간, 호텔에 들어온 이후로 처음 겪는 현상이 발생했다.
[현자의 조언 : 3 -> 0]뭐지? 조언을 쓴 것도 아니고, 위기는 극복한 상태인데? 심지어 3 개가 한번에 다 사라져?
[지금의 깨달음을 명심해라. 네가 호텔에서 반드시 극복해야 할 문제이니라.]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