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20)
119화 – 107호, 관문의 방 – ‘지킬 앤 하이드 게임’ (10)
– 한가인
두통이 날 것 같다.
하루 사이에 혼란스러운 일을 너무 많이 겪었다.
진철 형의 정신 속에서 아리마와 싸우며 겪은 일들, 평소와 전혀 다른 형태로 주어진 조언.
머리를 감싸 쥐고 고개를 숙이고 있자 아리가 어깨를 건드렸다.
“무슨 생각이 그리 많아? 참고로 이번에도 휴식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아.”
…생각해보니 나 혼자 고민할 필요가 없다.
동료가 있어서 좋은 게 이런 점 아닐까?
바로 내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멍~ 한 표정으로 천장을 쳐다보는 송이나 승엽이도 있었지만, 은솔 누나나 아리는 곧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다.
아리가 먼저 대답했다.
“정신세계에서 겪은 일을 요약하면 이거네. 마도서가 품은 지식은 이미 네 안에 자리 잡았지만, 소화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있다. 다만 마도서의 지식을 깊이 받아들일수록 네가 뭔가 인간에서 벗어나는 듯해서 두렵다. 맞지?”
“대충 맞는 것 같아.”
“근본적으로는 네가 택할 문제겠지. 다만, 난 한가지 말해주고 싶은 게 있어.”
“말해줘.”
“마도서의 지식 이전에, 마도서의 제작자가 누구야? 태어나지 못한 신이지? 그 신이 결국 뭐 하는 놈인지 생각해봐.”
마도서의 제작자. 태어나지 못한 자.
“솔직히 말해서 히키코모리 변태 아니야?”
너무 상상하지 못한 답이 나왔다.
“뭐?”
“맞잖아? 의식이 깨어났을 때부터 엄마 배에서 나오지 못했고, 간신히 필멸자와 소통을 시작했을 땐 질투심에 가득 차서 괴롭힐 생각만 하던 놈이지.
‘태어나지 못한 자!’, ‘성운의 용의 장자!’
이런 식으로 그럴듯하게 자신을 꾸몄지만, 실체는 그냥 어두운 굴에서 평생 갇혀서 바깥세상을 질투하기만 하던 히키코모리야. 그런 놈 주제에 나름대로 신의 자식이랍시고 불교의 사상을 흉내 낸 마도를 빚어내긴 했지만, 그래봐야 음침하기 짝이 없는 사상. 그런 놈의 사상에 네가 너무 빠져들 필요가 있을까?”
“… 하지만, 그런 이해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
“받아들이지 못하면 마도서 제대로 못 쓸까 봐? 어차피 도구인데 꼭 내부의 사상을 받아들여야만 쓸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는 문제지. 결국 네가 택할 문제지만, 명심해. 신이니 악마니 하는 단어에 매몰되거나 위축되어서 무조건 그런 존재들을 추종할 필요 없어.”
뭔가 머리가 탁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새삼스럽지만 이것이 ‘관리국’의 경험이 쌓이면서 생긴 시야일까?
“도움이 됐어?”
“알 것 같기도 하고, 더 모를 것 같기도 하네.”
듣고 있던 은솔 누나가 끼어들었다.
“마도서 이야기는 아리가 도움을 준 것 같아서 다행이네. 그쪽은 나 같은 사람은 해줄 말이 없어서. 다만, 조언에 관해선 두 가지 특이점을 깨달았어.
첫째, 통상적인 조언과 달리 한번에 3개의 횟수를 다 소모했다는 점. 둘째, 하필 ‘지금’ 조언을 해줬다는 점.”
“한번에 3개의 횟수를 전부 소모한 이유는 어렴풋이 짐작은 갑니다. 보통 조언은 제 목숨이 위험할 때 자동으로 알려주는 위기 알림과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분류되는데 이번 조언은 둘 다 해당 사항이 없죠. 위기도 아니었고, 질문도 하지 않았으니까요. 일종의 규칙 위반이라 페널티가 적용된 상황이 아닐까요? 규칙을 제가 어긴 게 아니라 좀 황당하긴 하지만.”
“나도 비슷한 생각이야. 올빼미로서도 ‘무리한 조언’을 억지로 해주면서 페널티가 생긴 거지. 그래서 두 번째가 중요해. 조언 횟수를 다 소모하는 무리수를 동원해가며 ‘지금’ 조언한 이유가 뭘까? 그 점을 반드시 반영해서 조언을 해석해야 해.”
누나의 말을 들어보니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조언의 의미는 먼 미래의 대비와 관련된 내용이 아니겠군요.”
“아니라고 봐. 올빼미가 바보도 아니고, 미래를 위한 조언을 굳이 관문의 방을 진행 중인 지금 해줄 필요가 없어. 저 조언은 분명 관문의 방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듣고 있던 아리가 끼어들었다.
“너무 단정하지 않는 쪽이 좋아 보이네요. 관문의 방과 관련된 조언일 것 같다는 의견은 저도 동의하는데, 그렇다고 다른 의미는 없다고 볼 수는 없죠. 그간 경험한 바에 따르면 올빼미는 말 하나의 해석을 복잡하게 만드는 성향이 있어서.”
조언의 의미가 중의적일 수도 있다. 역시 이해했다.
조언의 의미를 고민해보자.
[지금의 깨달음을 명심해라. 네가 호텔에서 반드시 극복해야 할 문제이니라.]“지금의 깨달음이라는 건 마도서와 관련된 이야기겠지?”
“아무래도? 그래서 결국 이 조언은 너 스스로 해석해야 해. 네가 마도서에 대해 뭘 깨달았는지는 우리도 잘 모르니까.”
내가 무슨 깨달음을 얻었지?
…
너무 많아서 뭐라고 딱 단정하기가 힘들다.
화신의 힘이 무엇인가를 어설프게 느꼈고, 마도서의 숙련도를 늘리기 위해 나 자신이 변해야 한다는 사실도 느꼈다. 물론, 이후엔 아리에게 다른 관점의 견해도 들었다.
이 많은 깨달음 중 대체 ‘무슨 깨달음’을 말하는 걸까?
그리고 그 깨달음이 남은 관문의 방에 어떤 식으로 적용된다는 걸까?
한참 고민하던 중, 묵성 할아버지가 내 어깨를 짚었다.
“아무래도 머리가 복잡한 모양인데, 고민은 이쯤 해두거라.”
“네?”
할아버지는 팔을 쭉 뻗어서 허공의 알림을 가리켰다.
[22 : 33]“휴식 시간이 고작 20분 좀 넘게 남았다. 다음 시련 시작 직전까지 대가리 터지게 생각만 하다 시작할 거냐? 너도 좀 숨이라도 돌려야지.”
“그것도 그렇네요.”
“또 내 생각인데, 꼭 마도서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네?”
“조언이 뜨기 직전에 했던 이야기는 마도서 이야기는 아니지 않았냐?”
기억을 돌이켜봤다.
조언이 뜨기 직전에 했던 이야기가 뭐였지?
마녀는 정신을 진철 형에게 복제하는 방식으로 시련의 방을 탈출할 뻔했지.
“탈출에 관한 이야기를 했었죠. 그런데 그 이야기가 관문의 방과 연관이 있을까요? 우리가 무슨 정신을 복제해가면서 관문의 방에서 탈출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글쎄다. 나는 그냥 떠오르는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다들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제는 20분도 안 남았다. 결국 다들 고민을 멈추고 쉬기 시작했다.
나도 잠시 눈이라도 붙이려고 벽에 기댔다.
… 눈을 감고 쉬다 보니, 이번 조언의 특이한 점을 또 하나 깨달았다.
조언을 직접 받아왔던 나만 인지할 수 있는 기묘한 특징.
[문제이니라.]올빼미가 조언을 줄 때 이렇게 특이한 화법을 쓰던가?
보통은 평대나 반존대를 했던 것 같은데.
기묘하게 이 말투는 누군가를 흉내 낸 느낌이 들었다.
그 정도 생각하다가 까무룩 잠들었다.
–툭.
“일어나.”
“아.”
아리의 손짓과 함께 피곤함을 억지로 누르며 눈을 떴다.
[1:21]“1분 남았네.”
“그래서 깨웠어.”
“겨우 시련 두 개 통과했는데 이렇게 죽을 맛이라니….”
“난 의외로 할 만하다고 생각 중이야.”
“할만해?”
“시련은 다섯 개, 한 명만 통과해도 전원 생존! 그런데, 첫 번째 시련은 전원 통과고 두 번째 시련은 한 명만 탈락했잖아? 40%를 진행했는데 겨우 한 명만 탈락했어. 여유롭게 통과할 느낌 -”
화들짝 놀라서 아리의 입을 막았다!
아리의 말을 듣던 묵성 할아버지도 이마를 ‘탁’ 쳤다.
“에? 갑자기 왜 그래?”
“제발 무슨 플래그 같은 말 하지 말라고! 응급실에선 ‘오늘은 일이 별로 없네.’ 이런 말 절대 하지 않는 거 몰라? 호텔 같은 곳에서 ‘시련이 좀 쉬운데?’ 따위의 말을 하다니!”
“무슨 그런 미신을 -”
“아리야. 제발 좀 닥치거라. 이번에는 가인이 녀석 말에 동의한다. 네 말 듣고 호텔에서 딱 좆 같은 시련을 준비할 느낌이란 말이다!”
아리가 미묘하게 입술을 삐죽이는 동안 휴식 시간이 끝났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길함 속에서 세 번째 시련이 시작됐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44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107호(관문의 방)
현자의 조언 : 0]
– 한가인
불이 밝아졌을 때, 우리는 깔끔한 사무실에서 원탁 하나를 가운데 두고 둘러 앉아있었다.
중앙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구체가 내려왔다.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참가자 여러분은 지킬 앤 하이드 게임에 참여하시게 됩니다.
저는 사회자라고 불러주세요. 이제부터 참가자 여러분의 축복이 봉인됩니다./
그 말과 함께 상태창이 사라졌다.
지킬 앤 하이드 게임?
대체 뭔 소린가 하던 중, 허공에 알림이 떴다.
/지킬 앤 하이드 게임엔 총 3가지 역할이 있습니다. 지킬, 하이드, 의사입니다.
여러분은 지킬 입니다. 지킬들은 매 라운드 낮, 토론을 통해 여러분 중 1인에게 깃든 하이드를 찾아내고 처형할 수 있습니다. 지킬이 하이드를 찾아내서 처형할 경우, 게임은 여러분의 승리로 돌아갑니다.
하이드는 매 라운드가 시작할 때마다 여러분 중 1인에게 기생합니다. 하이드는 매 라운드 밤, 여러분 중 1인을 처형합니다. 하이드는 한 사람에게 1회만 기생할 수 있으며, 유산으로 찾아낼 수 없습니다.
의사는 매 라운드 낮, 방어할 대상을 지정할 수 있습니다. 의사가 낮에 지정한 대상을 하이드가 밤에 처형 시도할 경우, 처형은 실패합니다.
게임이 참가자의 승리로 돌아갈 경우, 게임에 참여한 사망자 중 1인을 부활시킬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게임 진행과 관련된 궁금한 점은 질문해 주세요.
30분 후, 게임이 시작됩니다./
이거 뭔가 익숙한데?
송이가 반응했다.
“이거 뭔가 마피아 게임하고 닮았는데요?”
“지킬 이라는 건 시민이고, 하이드는 마피아인 룰인가? 하이드가 우리 사이를 기생한다는 게 특이한 점 같은데?”
묵성 할아버지가 놀라서 외쳤다.
“야 야! 너희만 아는 소리 하지 말고 내게도 빨리 설명해라. 뭐? 마피아 게임? 그게 뭔데?”
은솔 누나도 크게 당황했다.
“마피아 게임은 알지만 이건 그냥 정치질하면서 노는 게임 아니야? 하이드를 대체 어떻게 찾아내라는 거야? 게다가 ‘유산으로는 찾아낼 수 없다?’. 축복은 봉인해놓고 유산으로는 찾아낼 수 없다니, 이건 뭐 찍기 싸움을 하라는 거야?”
우리 중 최고의 찍기 전문가, 승엽이는 행운이 봉인 당한 상태.
대체 뭘 어쩌라는 거지? 다들 혼란에 빠졌다.
침착하자.
“다들 진정합시다. 호텔에서 아무 의미 없는 찍기 싸움을 시킬 리가 없습니다.”
“무슨 말이야?”
“뭔가 논리가 있을 겁니다. 결국 이 게임의 핵심은 첫째, 하이드가 누구에게 기생할 것인가. 둘째, 하이드가 누굴 처형할 것인가 아닙니까?
1번을 알아냈다면 하이드를 찾아내서 처형하면 되는 것이고, 2번을 알아냈다면 의사가 처형 대상을 방어할 수 있으니까요.
기생할 대상의 선택, 처형할 대상의 선택. 나름의 논리가 있을 겁니다. 절대로 랜덤하게 기생해서 랜덤하게 처형하는 식은 아닐 거라고 봅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나도 혼란스럽다.
대체 하이드는 어떤 기준으로 기생 대상과 처형 대상을 고를까?
싸하다. 이 게임에서 우린 상당한 희생을 치르리라는 직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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