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21)
120화 – 107호, 관문의 방 – ‘지킬 앤 하이드 게임’ (11)
– 한가인
일행은 머리를 싸매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지킬 앤 하이드 게임은 마피아 게임의 변종처럼 느껴졌고, 우리 중 마피아 게임이 뭔지 모르는 사람은 묵성 할아버지뿐이었다.
묵성 할아버지가 정신없이 주변 동료들에게 이것저것 묻는 사이, 나는 사회자에게 질문 시작했다.
“어디까지 답해줄 수 있지?”
/상식적인 선에서 가능합니다. 하이드가 누구에게 깃들었냐 같은 질문은 당연히 답변드릴 수 없습니다./
이런 기괴한 게임에 대한 상식이 어디 있겠는가? 그냥 제 마음대로 하겠다는 소리로 들렸다.
그러나 아쉬운 사람은 우리지 저놈이 아니다. 떠오르는 질문을 마구 했다.
“하이드는 게임이 시작하면 우리 중 누군가에 깃든다는 말이지? 깃든 대상의 유산이나 도구를 쓸 수 있어?”
/하이드는 철저히 게임의 규칙에 순응하는 존재입니다. 하이드가 참가자의 유산을 쓴다거나, 처형 이외의 수단으로 여러분을 해치는 일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하이드가 갑자기 팔찌나 마도서를 쓸 일은 없다. 이해했다.
은솔 누나도 재빨리 질문했다.
“우린 매 라운드 낮에 하이드를 찾기 위해 토론 해야 하잖아? 그 토론을 듣고 참여할 수 있어?”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마피아 게임에서 마피아들은 시민 팀의 토론에 끼어들어서 훼방을 놓는 게 주요 역할 아닌가?
/하이드는 기생하더라도 여러분의 자유의지를 빼앗지 않습니다. 따라서 토론에 참여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토론을 들을 수는 있습니다./
여기까지 듣자 하이드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느낌이 오기 시작했다.
철저히 게임의 규칙에 순응하는 존재.
기생하더라도 대상의 자유의지를 빼앗지 않는 존재.
하이드는 어떤 자의식이 있는 존재라기보다는 철저히 ‘게임’을 위해 만들어진 AI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이드가 우리의 토론에 끼어들어서 훼방 놓지 않는다는 점은 다행이다. 하지만 토론을 들을 수 있다는 점만으로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모두가 머리를 싸매며 규칙에 대해 궁금한 점을 사회자에게 물었다.
30분이라는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
– 1라운드, 한가인
—삐익!
/지킬 여러분. 지킬 앤 하이드 게임을 시작하겠습니다.
이제부터 1라운드 낮이 진행됩니다. 지킬 여러분은 15분 동안 누가 하이드인지 색출하고, 처형할 수 있습니다. 의사는 방어할 대상을 지정할 수 있습니다./
…
묵성 할아버지가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지금 하이드인지 뭔지가 우리 중 1인에게 기생했다는 말이지?”
“그런 것 같습니다. 다만 하이드는 자유의지를 빼앗지 않는다고 하니, 기생 당한 사람도 자신에게 하이드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겠네요.”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송이를 바라보았다.
송이가 팔찌로 우리를 스캔했다.
“모르겠어요.”
“애초에 유산으로는 찾을 수 없다고 했지. 페로는 어떤 반응이야?”
“지금은 축복이 없어서 제대로 소통하기도 어렵지만, 그걸 떠나서 별 반응이 없어요.”
송이의 말대로 페로는 대체 무슨 일이냐는 듯 휴식 공간에서 가져온 해바라기 씨나 까먹는 중이다.
우린 극도의 긴장 속에서 죽느냐 사느냐 하는 중인데, 세상 편안하게 해바라기 씨를 까먹는 앵무새를 보고 있노라니 한숨이 나왔다.
황금알 값 좀 해라….
팔찌로도 페로로도 하이드를 찾지 못하자 다들 말문이 막혔다.
조용히 있던 아리가 입을 열었다.
“내 피를 다들 마시고 그걸로 찾아내는 건 의미 없겠지?”
“유산으로는 찾을 수 없다고 했으니까.”
“이해가 가지 않네.”
“뭐가?”
“유산으로 하이드를 찾을 수 없는데, 왜 유산을 쓸 수 있게 한 걸까?”
“…”
“유산을 쓰지 못하게 하려면 그냥 유산도 봉인했겠지. 유산은 풀어두고 하이드를 찾는 것만 못하게 했다는 건….”
은솔 누나가 대답했다.
“하이드를 찾는 것 말고 다른 방법으로 유산을 쓰라는 의미겠지.”
15분이라는 시간은 짧았다. 벌써 5분도 남지 않았다.
“사회자!”
/네./
“의사는 이미 선정된 상태야?”
/네. 의사는 자신이 의사임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 말에 우리는 서로를 둘러보았다.
“우리 중 한 분이 이미 의사군요.”
묵성 할아버지가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오! 누구냐? 누구 방어할지도 정한 -”
—탁!
아리가 할아버지 뒤통수를 후렸다.
사실 아리가 아니었으면 내가 발로 차서라도 말릴 생각이었다.
“제발! 묵성 할아버지. 의사가 정체를 드러내면 하이드가 죽일 것 아니에요!”
“아.”
한숨을 쉬며 은솔 누나가 말했다.
“죄송하지만, 지금 우리의 대화는 하이드도 듣고 있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해 주세요.”
적어도 난 한 가지 사실을 알았다.
나는 의사가 아니고, 묵성 할아버지도 의사가 아니다.
저 할아버지가 의사면 이미 누굴 지킬까? 따위를 질문하면서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겠지.
“이제 3분 남았습니다. 그냥 아무나 한 명 찍기라도 하죠?”
아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별수 없네. 일단 하나 찍자. 승엽이가 한 명 골라봐.”
“예? 저 축복 봉인됐는데.”
“그냥 해봐.”
승엽이는 우물쭈물하더니 왼쪽에 있던 송이를 찍었다.
송이도 별말 없고, 지켜보던 사회자가 반응했다.
/지킬 여러분. 참가자, ‘송이’를 하이드로 판단하셨습니까?/
!
순간적으로 숨이 막히는 깨달음을 얻었다!
다른 사람들이 대답하기에 앞서서 내가 가장 빨리 외쳤다.
“잠까아아안! 사회자!”
/네./
“송이를 하이드로 판단했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내부에 하이드가 있으면 하이드만 소멸하나? 아니면 설마 송이도 죽는 거냐?”
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다른 동료들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하이드만 처형할 방법은 없습니다. 숙주의 제거가 하이드의 유일한 제거법입니다./
은솔 누나가 뒷목을 잡으며 욕설을 내뱉었다.
“진짜 와! 씨발 하이드만 죽는 게 아니라 숙주를 죽이는 거였어?”
아리는 다급하게 물었다.
“매 라운드 낮 한 명을 무조건 죽여야 해?”
/아닙니다. 원하지 않는다면 하이드 색출을 포기하셔도 됩니다./
사회자의 대답을 듣자마자 승엽이가 외쳤다.
“취소! 일단 취소요! 송이 누나 미안해요.”
“괜찮아. 그보다 대충 하나 찍어서 우연히 하이드를 찾는 식으로 진행할 수는 없겠네요. 우연히 하이드가 얻어걸릴 확률이 너무 낮아요.”
이쯤에서 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하필 세 번째 시련에서만 참가자 중 사망자 1인을 부활시켜줄 수 있다길래 뭔가 했더니 이게 이유였네요.”
아리가 말을 받았다.
“우리가 완벽하게 대응해서 시작하자마자 하이드를 찾아낸다 해도, 하이드가 깃든 한 명은 무조건 죽어야 해. 완벽한 대응을 해도 한 명은 죽는다는 규칙에 불합리한 면이 있으니까 1인 부활권을 줬네.”
혼란 속에서 우린 결국 그 누구도 하이드로 지목하지 못했다.
/이제 해가 집니다. 낮이 끝나고, 하이드의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의식이 흐릿해졌다….
*
– 2라운드, 한가인.
정신이 퍼뜩 들었다. 고개를 들자 다들 고개를 갸웃거리며 깨어났다.
누구지? 하이드가 누굴 처형했지?
…
전원이 멀쩡하다.
즉시 사회자가 내려왔다.
/축하합니다. 하이드의 첫 번째 처형은 실패했습니다. 의사는 올바른 대상을 방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1라운드의 하이드는 ‘유송이’ 였습니다. 이제 하이드가 다른 사람에게 이동합니다./
…
“에? 네에에? 제가 하이드였다구요?”
송이가 혼자 놀라서 뒤집혔다.
은솔 누나가 바로 송이에게 물었다.
“이질감 같은 건 없었어? 내면에 뭔가 있는 음울한 기운? 사악한 악의 목소리?”
“그런 오컬트적인 감각은 전혀 느끼지 못했어요.”
아리도 고민하기 시작했다.
“깃든 사람 본인도 절대 알 수 없는 구조인가? 그래도 1라운드는 의사가 막았네?”
묵성 할아버지는 이 와중에 혼자 또 헛소리했다.
“이야! 의사 진짜 누구냐? 게임 잘하는데? 아니 이 와중에 대체 어떻게 찍어서 맞췄대? 승엽이 너냐? 찍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은 것이 -”
“아 좀 닥치라고!”
아리가 이번엔 발로 할아버지를 걷어찼다. 할아버지는 결국 시무룩한 표정으로 조용해졌다.
아까부터 조용히 있던 엘레나가 입을 열었다.
“이미 잘하고 계신 것 같지만, 의사는 가능하면 끝까지 숨으세요.”
다들 혼란 속에서 이런저런 의견을 내는 와중에 나는….
아 씨발 씨이이이이발 으아아아아!
혼자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후회하기 시작했다!
운이든 뭐든 애초에 승엽이가 바로 송이 찍었잖아!
그냥 승엽이의 선택을 방해하지 말고 송이로 지목했으면, 송이가 죽으면서 하이드는 바로 소멸했다.
그렇게 게임을 깬 후에 송이를 부활시키면 아무도 희생하지 않고 깨는 완벽한 결말이었는데….
승엽이는 대체 어떻게 바로 찍었지? 축복이 봉인 당했는데?
그냥 순수한 운인가? 뭐든지 간에 아까워서 미칠 것 같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아리가 바로 승엽이 팔을 붙들었다.
“역시 승엽이 너밖에 없어! 그야말로 ‘순수 실력’. 축복은 거들 뿐! 한 번 더 찍어봐!”
승엽이는 막중한 부담감에 거의 짓눌린 표정을 지었다.
차라리 숙주도 죽는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한 번 더 찍었을 것 같은데, 지목한 숙주도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나자 승엽이는 더 이상 고르질 못했다.
이번에도 15분은 너무나 짧았다.
1라운드에서 우리가 알아낸 정보.
첫 번째 기생 대상은 송이. 처형 대상은 모르고, 의사가 방어에 성공했다.
이것만으로는 누가 다음 기생 대상인지, 누가 다음 처형 대상인지 알 수가 없었다.
모르겠다.
하이드가 기생할 대상, 처형할 대상을 고르는 기준은 대체 뭐지?
혼란 속에서 2라운드도 지나갔다.
/이제 해가 집니다. 낮이 끝나고, 하이드의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의식이 흐릿해졌다….
*
– 3라운드, 한가인.
정신이 들자마자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번엔 누구?
…
‘또’ 전원이 멀쩡하다.
사회자가 내려왔다.
/축하합니다. 하이드의 두 번째 처형은 실패했습니다. 의사는 올바른 대상을 방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2라운드의 하이드는 ‘박승엽’이었습니다. 이제 하이드가 다른 사람에게 이동합니다./
승엽이가 놀라서 벙 찐 사이, 나도 놀랐다.
의사가 두 번 연속 방어 성공했다고?
처음 한 번은 우연히 아무렇게나 찍었는데 맞췄을 수 있다. 그러나 두 번 연속으로?
간단히 계산해봐도 운으로 맞출 가능성은 매우 낮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어렴풋이 예상은 했지만, 역시 하이드의 판단 기준은 결코 랜덤이 아니다.
처형 대상을 고르는 어떤 우선순위가 있다.
그리고 우리 중 한 명. 사회자에 의해 의사로 선택받은 사람.
하이드의 판단 기준을 어렴풋이 이해한 사람이 있다.
나와 똑같은 사실을 이해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의느님’께서는 뭔가 깨달으신 모양이네. 문제는 의느님께서 깨달으신 ‘무언가’를 우리는 전혀 모르고 있다는 점인데….”
이제는 조금 눈치가 생긴 할아버지도 끼어들었다.
“최소한 하이드 그놈이 누굴 노렸는지라도 알았으면 좋겠는데, 알 방법 없냐?”
의사라면 알고 있겠지. 본인이 방어한 대상이 곧 하이드가 지목한 대상이니까.
고민하던 은솔 누나가 종이 여러 장을 꺼냈다.
“시간도 부족하고, 더 나은 방법은 못 찾겠다. 의사가 대놓고 우리에게 강의해줄 수는 없으니, 이런 식으로 하자.”
누나는 빠르게 종이들에 무언가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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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름과 각 라운드가 적힌 표가 그려진 여러 장의 종이들.
보자마자 의미를 깨달았다.
“다들 뒤로 돌아서 뭔가 쓰는 체라도 해. 의사가 아닌 사람은 자기 종이 건드리지 말고, 의사만 표시해줘. 괜히 글씨체로 티 날 일 없게 점 하나만 찍어.”
잠깐의 시간이 흘렀다.
모두에게 나뉘었던 종이가 다시 탁자 위로 모였다.
다른 모든 종이엔 아무 표시가 없고, 단 한 장의 종이에만 점 두 개가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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