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22)
121화 – 107호, 관문의 방 – ‘지킬 앤 하이드 게임’ (12)
– 한가인
1라운드, 2라운드 하이드가 택한 처형 대상은 ‘나’였다.
내가 순간적으로 말문을 잃은 사이 동료들이 바쁘게 대화하기 시작했다.
“왜 가인이가 최우선 타겟이지? 잘 모르겠는 사람도 무조건 입 열어. 그래야 의사도 회의에 자연스럽게 참여할 테니까.”
은솔 누나의 강권에 평소엔 조용하던 승엽이가 입을 열었다.
“형이 항상 생각을 많이 해서가 아닐까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송이는 다른 이야기를 했다.
“그런 추상적인 이유보다는 명확한 이유 아닐까요? 예컨대, 유산이 있으니까.”
나도 그쯤 해서 끼어들었다.
“유산은 나만 있는 게 아니잖아? 송이 너도 있고, 아리도 있고. 이 자리에 유산 소유자만 셋인데.”
아리가 의견을 냈다.
“네 유산이 하이드에게 치명적인 것 아니야? 하이드를 죽일 수 있다거나?”
“유산으로 하이드를 찾아낼 수 없다고 했잖아.”
“찾아낼 수는 없지만 죽일 수는 있다거나?”
찾아낼 수는 없지만 죽일 수는 있다?
그럴듯하면서도 헷갈렸다.
하이드가 우리 중 나를 최우선 타겟으로 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제일 똑똑해서! 는 솔직히 아닌 것 같다.
유산은 나 말고도 두 명이나 더 가지고 있다.
마도서의 능력 자체가 하이드에게 위협이 되기 때문에? 이건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어떤 의미로 위협이 된다는 걸까? 죽일 수 있다? 모르겠다.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지킬 앤 하이드 게임 시작 이후로 사회자는 우리에게 항상 시간을 보여줬다. 2분 남았다.
고심 속에서 3라운드가 끝났다.
/이제 해가 집니다. 낮이 끝나고, 하이드의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의식이 흐릿해졌다….
*
– 4라운드, 한가인.
퍼뜩 눈을 뜨자마자 주변을 둘러봤다.
!
한 명이 사라졌다. 바로 동료들 사이에서 반응이 나왔다.
“송이야?”
“송이 누나!”
사회자가 내려왔다.
/안타깝습니다. 하이드의 세 번째 처형은 성공했습니다. 의사는 올바른 대상을 방어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3라운드의 하이드는 ‘한가인’이었습니다. 이제 하이드가 다른 사람에게 이동합니다./
첫 번째 희생자가 발생하자 장내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하지만 아직은 괜찮다. 한 명까진 문제없다. 부활시킬 수 있으니까.
3라운드의 하이드가 기생한 대상은 나였다.
처형 대상도 나에게서 송이로 바뀌었다. 나에게 기생한 김에 날 처형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하이드가 기생한 숙주를 처형하는 ‘숙주 처형’은 불가능한 건가?
직접 물었다.
“사회자. 하이드는 기생한 숙주를 직접 처형할 수 없는 거냐? 혹시 그 경우 하이드가 죽나?”
/처형할 수는 있습니다./
‘수는’ 있다? 뭔가 숨기는 듯한 단어 선정이다.
바로 아리가 지적했다.
“하이드가 숙주를 처형하면 무슨 일이 생기지?”
사회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회자의 침묵이야말로 우리에게 답을 알려줬다. 아리가 자신감 있는 태도로 말했다.
“숙주가 죽으면 하이드도 죽는 게 틀림없어! 애초에 하이드를 소멸시키는 방법 자체가 숙주의 처형이잖아?”
“즉, 하이드의 숙주 처형은 생존자가 단 1명 남았을 때나 하는 건가?”
“그렇겠지.”
“그래서 처형 대상도 나에게서 송이로 바꾼 건가? 내게 기생한 상태로 날 죽이면 게임이 끝나니까.”
은솔 누나는 조금 다른 견해를 냈다.
“다른 해석도 가능하지. 두 번 연속 널 죽이려 했는데 의사가 방어했잖아? 의사가 너만 방어하니까 널 죽일 수 없다고 판단한 게 아닐까?”
두 번 연속 처형에 실패하자 대상을 바꿨다? 일리 있다.
이 게임은 하이드에게도 마냥 쉬운 게임이 아니다. 하이드의 가장 큰 페널티는 ‘한 사람에게 두 번 기생할 수 없다.’라는 점.
지금이야 숙주 후보가 여럿 남아 이 단점이 두드러지지 않지만, 몇 라운드 더 지나면 하이드가 기생할 수 있는 숙주 자체가 몇 명 남지 않아서 찾아내기 쉬워진다.
하이드에게도 일종의 턴 제한이 있는 게임이다.
조용히 있던 묵성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너도 하이드가 기생했던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냐?”
“네. 전혀 못 느꼈습니다. 그래서 마도서로 하이드를 소멸시킨다거나 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뭐, 제가 마도서를 30년 정도 수련하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의미 없는 이야기다. 다들 혼란스러워하던 중, 엘레나가 입을 열었다.
“우리의 이런 대화 자체가 악수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이드가 듣고 있으니까?”
“네. 우리끼리 열심히 고민해서 하이드의 판단 기준을 알아낸다 해도, 우리가 알았다는 사실을 하이드도 알게 되면 기준 자체를 바꿀지도 몰라요.”
점점 머리가 아파졌다. 하이드의 흉계를 파헤치려 토론 중인데, 그 토론의 내용을 하이드도 듣고 있는 상황.
결국 토론 자체도 위험할 수 있다는 견해에 설득력이 실린다.
엘레나의 지적 이후로는 토론도 잠잠해지고 다들 각자의 생각에 파고들기 시작했다.
혼자 고민하던 아리가 입을 열었다.
“내 느낌인데, 다음 처형 대상은 -”
—탁.
은솔 누나가 아리의 팔을 잡았다. 아리도 즉시 눈치채고 입을 다물었다.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했다. 다음 처형 대상이 누군지 짐작이 간다.
하지만 이 사실을 대놓고 말해선 안 된다.
처형 대상을 우리가 짐작 중이라는 사실을 하이드가 알게 되면 하이드가 다른 대상을 처형할지도 모른다.
판이 점점 혼란스러워질수록 주도권은 하이드에게 넘어가고, 의사는 방어하기 어려워진다.
… 침묵 속에서 모두의 머리가 정신없이 굴러가기 시작했다.
첫 번째 처형 대상은 나, 두 번째 처형 대상은 송이.
둘 모두가 유산 소유자다. 우연일 리가 없다.
하이드는 말하자면 ‘가치가 높은 참가자’를 처형 중인 걸까?
이 추측에도 문제가 있다.
유산 소유자들이 가치가 더 높다고 쳐서 처형 순위가 높다면, 내 순위가 송이보다 높았던 이유는 뭘까? 강림도 있으니까?
강림도 있는 나는 그렇다 치고, 똑같은 유산 소유자인 아리보다 송이의 순위가 높은 이유는 뭘까?
그리고 유산이 없는 나머지 4명, 이은솔, 박승엽, 김묵성, 엘레나의 순위를 나누는 기준은 뭘까?
점점 머리가 복잡해졌다.
뭔가 유산 보유와는 별개의 기준이 있을 것 같았다.
게임 참가자 7인 전원의 순위를 매길 수 있는 기준.
당장 이번 라운드의 대응부터 생각해 보자. 이 흐름대로면 다음 타겟은 아리다.
의사도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을까?
고민하던 중, 한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하이드는 똑같은 대상에게 두 번 기생할 수 없다.
이제 하이드가 내게 기생할 일은 없으므로 나는 의사가 누구인지 알아도 된다.
내가 입을 열지만 않으면, 하이드는 나만 알고 있는 정보를 알아낼 방법이 없으니까.
의사를 찾는 방법은 바로 떠올랐다.
마도서로 하이드를 찾을 수는 없지만, 의사는 찾을 수 있지.
탁자 밑에 마도서를 소환한 채로 동료들을 한 번씩 돌아봤다.
다들 눈치가 빨랐으면 좋겠는데….
한 명씩 순서대로 빙의해보기 시작했다.
먼저 은솔 누나.
…
의사가 아니다.
나오면서 혹시나 했지만, 역시 누나는 눈치가 빨라서 내가 나간 후로도 눈만 살짝 크게 떴을 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음으로 묵성 할아버지.
…
의사가 아니다.
나오면서 살짝 불안했는데, 게임 규칙에 무지한 것과 별개로 할아버지도 눈치가 없는 사람은 아니라 별 반응 없이 헛기침만 살짝 했다.
다음으로 엘레나.
…
깃들자마자 알았다!
엘레나의 시야 정면에 ‘상태창’과 심히 유사한 홀로그램이 떠 있었다.
홀로그램엔 모두의 이름과 선택 칸이 있었다.
의사의 정체는 엘레나였다.
엘레나는 왜 두 라운드 연속 날 방어했던 걸까?
나에겐 유산도 있고 강림도 있다. 아무래도 내가 관문의 방을 클리어할 확률이 가장 높다고 판단한 게 아닐까?
아무래도 좋다. 내 원래 몸으로 돌아오기 직전, 엘레나의 펜으로 손에 살짝 글씨를 적었다.
‘아리’
방어할 대상의 선택은 엘레나 알아서 할 문제지만 내 의견만 적고 돌아왔다.
엘레나의 눈이 살짝 커지긴 했지만 별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슬슬 15분이 끝나간다.
/이제 해가 집니다. 낮이 끝나고, 하이드의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의식이 흐릿해졌다….
*
– 5라운드, 한가인.
긴장 속에서 눈을 떴다.
“아…!”
동료들의 입에서 침음성이 들려왔다.
우리 중 최고의 행운아, 승엽이는 이번에는 버텨내지 못했다.
사회자가 내려왔다.
/안타깝습니다. 하이드의 네 번째 처형은 성공했습니다. 의사는 올바른 대상을 방어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4라운드의 하이드는 ‘김아리’였습니다. 이제 하이드가 다른 사람에게 이동합니다./
힘이 쭉 빠진 목소리로 은솔 누나가 말했다.
“이 게임 시작한 지 한 1시간 됐나? 벌써 두 명이 아웃이네…. 한 명은 부활시킨다 쳐도.”
의사, 엘레나는 방어에 연달아 실패했기 때문인지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나도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나와 송이에 이은 다음 유산 소유자, 아리가 처형 대상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오히려 아리에게 빙의해서 승엽이를 처형했다.
… 엄청나다.
호텔에 들어온 이후 각양각색의 시련을 경험해왔지만, 이번 시련은 손꼽힐 정도로 막막하게 느껴졌다.
‘적’이 눈앞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냥 손도 못 쓴 채로 규칙에 따라 동료들이 둘이나 순식간에 처형당했다.
정신력이 강한 편인 은솔 누나도 허탈한 표정만 짓고 있고, 나머지 사람들은 아예 정신적으로 무너진 느낌까지 들었다.
집중하자. 이럴 때일수록 한 사람이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아까부터 내가 해왔던 모든 추측은 한 가지 전제에서 시작했다.
‘하이드는 결코 운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
이 자체에 별다른 근거는 없다.
다만 호텔은 결코 우리를 무의미하게 죽이기만 하는 장소가 아니므로, 이런 게임의 진행이 단순한 운에 좌우되지는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다.
하이드가 운에 따라 행동하는 게 아니라면, ‘처형 순서’를 정하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 기준은 우리를 특정한 순서대로 나열할 수 있는 기준이어야 한다.
이전과 조금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봤다.
이전까지는 하이드의 ‘처형 순서’에 집중했다면, 이번엔 ‘기생 순서’가 유송이 -> 박승엽-> 한가인 -> 김아리로 이어진다는 점을 고민해봤다.
처형 순서에 기준이 있다면, 기생 순서에도 기준이 있겠지.
처형 대상은 한가인 -> 한가인 -> 유송이 -> 박승엽 순.
기생 대상은 유송이 -> 박승엽 -> 한가인 -> 김아리 순.
공통점이 보였다. 두 순서 모두 유송이 다음이 박승엽이다.
여기까지 깨달았을 때.
번개가 내리치는듯한 깨달음이 내려왔다!
처형 대상을 택하는 기준과 기생 대상을 택하는 기준은 사실 동일한 기준이다!
하이드는 단 하나의 기준으로 우리를 줄 세웠다. 밝혀진 순서는 다음과 같다.
한가인 -> 유송이 -> 박승엽 -> 김아리.
정리해보자.
1. 하이드는 특정한 기준에 따라 우리의 순서를 매겼다. 순서는 한가인 -> 유송이 -> 박승엽 -> 김아리 순이다.
2. 하이드가 기생한 숙주를 처형하는 경우, 본인도 소멸한다.
이 점을 고려해서 여태까지의 게임 진행을 분석했다.
하이드에게 최우선 처형 대상은 나다. 따라서 날 처형하기 위해 내 다음 순서인 유송이, 그 다음 순서인 박승엽에게 차례로 기생해서 날 저격했다. 의사는 두 번 연속 방어했다.(1라운드, 2라운드)
하이드는 날 처형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처형 대상을 나 다음 순서인 유송이로 옮겼다. 처형 대상을 바꿨으므로, 더 이상 날 기생 순서에서 배제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원래 순서대로 나에게 기생해서 유송이를 저격했다.(3라운드)
의사가 살아있으므로 하이드는 여전히 날 처형할 수 없다고 판단 중이다. 따라서 처형 대상은 박승엽이다. 한가인, 유송이, 박승엽에 모두 기생해 봤으므로, 다음 기생 순서는 김아리다. 따라서 김아리에 기생해서 박승엽을 저격했다.(4라운드)
현재까지의 추측이 맞다면 다음 처형 대상은 김아리다. 하지만 기생 대상은 누구지? 아직은 근거가 부족하다.
여전히 하이드가 기생할 수 있는 대상은 엘레나, 김묵성, 이은솔 셋이나 남았다.
하이드를 찾아내려면 하이드가 우리의 순위를 매기는 정확한 기준을 알아내서 엘레나, 김묵성, 이은솔의 순서까지 알아야 한다.
대체 무슨 기준이지?
무슨 기준이길래 나와 송이가 1, 2번째면서 승엽이의 순위는 아리보다 높을 수 있는 걸까?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