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23)
122화 – 107호, 관문의 방 – ‘지킬 앤 하이드 게임’ (13) Fin
– 한가인
한참 동안 고민하던 중, 시계를 보자 1분 좀 넘게 남았음을 알았다.
돌겠다. 조금만 더 생각하면 뭔가 알 것 같은데, 생각할 시간이 너무 짧다.
다행인 점은 이번의 ‘처형 대상’이 누구인지는 확신이 선다는 점.
분명히 아리다.
아까와 똑같은 방식으로 엘레나에게 아리를 방어하라고 알렸다.
하지만 결국 선택하는 건 엘레나다. 엘레나가 날 믿고 아리를 방어해줘야 할 텐데….
/이제 해가 집니다. 낮이 끝나고, 하이드의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의식이 흐릿해졌다….
*
– 6라운드, 한가인.
눈을 뜨자마자 기쁨이 차올랐다.
성공이다! 이번엔 아무도 사라지지 않았다.
사회자가 내려왔다.
/축하합니다. 하이드의 다섯 번째 처형은 실패했습니다. 의사는 올바른 대상을 방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5라운드의 하이드는 ‘엘레나’였습니다. 이제 하이드가 다른 사람에게 이동합니다./
한 턴을 버티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밝혀진 순서도 더 늘어났다.
한가인 -> 유송이 -> 박승엽 -> 김아리 -> 엘레나
기생 대상은 김묵성과 이은솔만 남았다.
사회자의 알림을 들은 엘레나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이제 말해도 되겠네요. 제가 의사입니다.”
은솔 누나가 놀라서 답했다.
“뭐? 그걸 왜 밝히는! 설마 들킨 거야?”
엘레나는 살짝 내 쪽으로 눈짓하며 대답했다.
“네. 의사로 선정되면 여러분의 이름이 적힌 홀로그램이 시야 앞에 나타나요. 하이드도 그걸 봤겠죠.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네요.”
은솔 누나가 말했다.
“어차피 이제 마지막 라운드야. 기생할 수 있는 사람이 나랑 묵성 할아버지만 남았으니까. 이번 턴만 지나가면 하이드는 확정이네.”
묵성 할아버지가 답했다.
“그럼 그냥 나랑 은솔이 중 한 명 찍어라.”
은솔 누나는 다른 견해를 냈다.
“아니, 아니 그럴 필요 있어요? 틀리면 죽는 사람만 늘어나는 건데. 이제 한 턴만 버티면 나와 할아버지 둘 중 한 명만 쓰러지고 넘길 수 있으니까 조금만 더 생각해 봐요.”
모두의 토론 속에서 나는….
이제야 하이드의 기준을 깨달았다.
처음 생각한 기준은 ‘하이드에게 위협이 되는 순서’였다.
나와 송이는 사람의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유산 소유자이니 이걸 응용해서 어떻게든 하이드를 위협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기준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하이드에게 진짜로 가장 큰 위협이 된 사람이 누구였지?
죽는 순간까지 팔찌로 아무것도 못 한 송이?
아직 혼자 생각만 하는 나?
모두 아니다.
승엽이는 시작하자마자 첫 번째 기생 대상인 송이를 찍었다.
다음 라운드에선 ‘본인이 하이드’였으므로 고르지 않은 것이 어찌 보면 정답이다.
두 번 연속 맞춘 것이나 다름없다.
‘위협이 되는 순서’가 기준이라면 1라운드에서 바로 승엽이를 저격했거나, 늦더라도 2라운드에선 승엽이를 저격해야 했는데 하이드는 3라운드까지 나만 찍었다.
게다가 ‘위협이 되는 순서’가 기준이라면 유산도 없고, 이 게임에서 아직 별다른 기여도 없는 다른 사람들의 순서를 구분할 수 없다.
고민 끝에 또 다른 기준을 떠올렸다.
호텔에서 우리를 평가하는 가장 직관적인 기준.
‘기여도’
각 방에서 큰 활약을 할수록 많은 기여도가 쌓이고, 기여도가 쌓일수록 축복을 강화한다.
우리가 기여도를 직접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있다.
축복의 성소에서의 강화.
아무래도 강화를 여러 번 한 사람일수록 그간 쌓은 기여도가 높고, 강화를 먼저 한 사람일수록 슬슬 다음 강화에 가까워진 상태겠지.
인간 목장을 해결하고 성소를 처음 들렀을 때, 강화한 사람은 나, 박승엽, 유송이였다.
상식개변 미디어를 해결하고 성소에 두 번째 들렀을 때, 강화한 사람은 나, 김아리, 엘레나, 차진철이었다. 다만 나는 강화를 한차례 미뤄서 강력한 강화를 얻기로 했었다.
공포의 저택을 해결하고 성소에 세 번째 들렀을 때, 강화한 사람은 나, 김묵성, 이은솔이다.
세다가 느꼈는데 매번 내가 있다.
와~! 이 파티, 사실 내가 캐리 중인가?
쓸데없는 생각을 치워두고 강화 횟수와 강화를 먼저 한 순으로 순위를 매겼다.
한가인>유송이=박승엽>김아리=엘레나=차진철>김묵성=이은솔.
…
지금까지 드러난 하이드가 매긴 순위와 거의 완벽히 같은 순위가 나왔다. 이거구나. 깨닫고 나자 한숨이 나왔다.
따지고 보면 기여도는 저주의 방의 해결 과정에서 쌓이고, 호텔이 유산이나 축복의 강화를 주는데 고려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인데, 왜 이걸 이렇게 늦게 깨달았을까….
하이드가 깃든 대상은 이은솔, 김묵성 둘 중 하나.
엘레나가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은솔 언니와 묵성 할아버지는 잠시 눈 감고 귀를 막아 주시겠어요?”
이제 하이드가 아님이 확실한 사람들끼리 대화할 필요가 있다.
지시대로 두 사람이 눈 감고 귀 막고, 최대한 방 가장자리로 떠났다.
나, 엘레나, 아리 셋이서 반대편에 모여서 작게 대화했다.
아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번 처형 대상은 엘레나겠지?”
“그러리라고 봐요. 제가 의사니까요.”
나도 끼어들었다.
“이번엔 본인을 방어하실 생각입니까?”
“네.”
잠시 고민했다.
내가 판단한 기여도 순서에 따르면 하이드가 매기는 순위는 다음과 같다.
한가인 > 유송이 > 박승엽 > 김아리 > 엘레나 > 김묵성 ? 이은솔.
이 리스트에서 송이와 승엽이가 사망했으니, 목표는 한가인, 김아리, 엘레나 중 하나.
나야 하이드가 포기한 상태, 아리도 이번에 방어에 성공했으니 하이드가 포기하려나?
날 노릴 때는 두 번까진 찔렀으니 아리도 한 번 더 찌를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역시 의사인 엘레나를 찌를 것 같기도 하다.
셋이 모여서 고민했지만, 하이드가 누굴 공격하리라는 확신이 생기지 않았다.
…
묘수가 떠올랐다.
“자! 시간도 거의 끝나가는데, 다들 모입시다!”
반대편에서 눈 감고 귀를 막고 있던 은솔 누나와 묵성 할아버지가 자세를 바로 세우고 테이블 쪽으로 돌았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절대로 어떤 속임수가 아니라 순간적인 실수인 것처럼 –
나는 엘레나에게 ‘살짝 크게’ 말했다.
“이번엔 본인을 지키는 걸로 알고 있을게요.”
엘레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가, 바로 또렷해졌다.
이것으로 확신했다. 더 언질을 줄 필요도 없다. 엘레나는 이 정도면 이해했을 테니까.
/이제 해가 집니다. 낮이 끝나고, 하이드의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의식이 흐릿해졌다….
*
– 7라운드, 한가인.
고개를 들었다.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지며 웃음이 나왔다!
/축하합니다. 하이드의 여섯 번째 처형은 실패했습니다. 의사는 올바른 대상을 방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6라운드의 하이드는 ‘김묵성’이었습니다. 이제 하이드가 다른 사람에게 이동합니다./
방어 성공을 보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은솔 누나가 대답했다.
“와! 아까 진짜 놀랐다. 하이드가 엘레나를 노린 건가? 의사라서?”
엘레나는 살짝 웃고 은솔 누나는 말을 이었다.
“가인아! 다음엔 조심 좀 해라. 네가 엘레나가 셀프 방어할 거라는 말을 해서 깜짝 놀랐네. 하이드가 내게 있었으면 하이드가 그 말 듣고 다른 사람 노렸을 것 아니야. 다행히 할아버님에게 있어서 -”
“나도 들었는데.”
묵성 할아버지의 말에 은솔 누나가 조용해졌다.
결국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두 분 다 들으라고 한 말입니다. 누나가 실수라고 생각한 걸 보니 하이드도 속았네요. 말씀대로 엘레나가 자기 자신을 지킨다는 정보를 하이드는 얻었고, 실제로 다른 사람을 노렸겠죠. 아마 저를 노렸을 것 같은데?”
고개를 돌려서 엘레나를 바라보자, 엘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하이드는 처음부터 가인 씨를 제일 먼저 죽이고 싶어 했으니까요. 의사인 제가 가인 씨가 아닌 다른 사람을 방어한다는 신호를 주면, 하이드는 다시 가인 씨를 노릴 것 같았어요. 맞았네요.”
이 빌어먹을 게임이 이제야 끝났다.
모두가 긴장이 풀려서 자유롭게 대화를 시작했다.
난 여태껏 내가 했던 추측, 하이드의 판단 기준을 설명했고, 다들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아쉬움도 남았다.
유산을 더 적극적으로 써봤다면, 기준을 더 빨리 알았다면, 연기로 하이드를 속이는 시도도 더 빨리 떠올렸다면!
…
의미 없다. 새삼스레 그런걸로 서로를 탓하는 사람도 없다.
고작 15분 텀으로 숨도 못쉬게 몰아치는 사이클에서 그런 생각을 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7라운드의 남은 시간이 거의 끝났다.
그제야 모두의 웃음이 잦아들고, 다소 어색하게 은솔 누나를 바라보았다.
하이드는 한 사람에게 두 번 기생할 수 없다.
좀 전에 묵성 할아버지에게 기생했으므로, 이제 남은 숙주 후보는 단 1인.
은솔 누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분위기 왜 이래? 영영 헤어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먼저 가볼 테니, 밖에서 보자! 그리고….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날 살리진 마.”
…
우리는 은솔 누나를 하이드로 지목했다.
사회자가 내려오고, 장내가 잠시 어두워졌다.
빛이 돌아왔을 때, 은솔 누나는 사라졌다.
/선택의 시간이 끝났습니다! 결과는?
.
.
.
딩 동 댕! 참가자 여러분, 축하합니다! 여러분은 하이드를 찾아내셨습니다.
세 번째 시련의 통과를 축하드립니다. 이제, 여러분은 지킬 앤 하이드 게임의 사망자 중 1인을 부활시킬 수 있습니다./
테이블 중앙에 사망자가 표시된 홀로그램이 떴다.
1. 유송이
2. 박승엽
3. 이은솔
진철 형은 없다. 역시 게임에 참여하기 전에 탈락했으므로 부활 대상이 아닌 모양이다.
누굴 살려야 할까?
남은 사람들의 회의가 시작됐다.
묵성 할아버지가 제일 먼저 의견을 냈다.
“아무래도 유산을 가진 사람을 살리는 게 정석 아니겠냐?”
엘레나도 동의했다.
“그렇죠. 다른 두 사람의 능력도 도움이 되겠지만, 역시 이 상황에선 팔찌라고 생각해요.”
나도 비슷한 생각이라 굳이 입을 열진 않았다. 의외로 아리가 다른 견해를 냈다.
“난 승엽이가 어떨까 하는데.”
“이유가 있어?”
“그냥 지금까지의 진행을 봐. 시련 1에선 축복 봉인, 시련 2에선 유산 봉인, 시련 3에선 다시 축복 봉인이었지? 순서상 시련 4에선 유산이 봉인될 차례네. 송이가 돌아와도 팔찌는 쓸 수 없을 것 같아.”
“그 부분은 네 추측 아닌가? 그 말이 맞다 해도 승엽이라고 해서 유산이 있는 건 아닌데…. 넌 유산이 없다면 승엽이의 축복이 더 유용하다고 생각해?”
“응. 사실 관문의 방을 겪으며 든 생각인데, 승엽이는 좀 황당할 정도로 운이 좋아. 첫 번째 시련에서도 승엽이는 ‘우연히’ 가장 먼저 정신 차린 가짜가 협조적이라서 날로 먹었지?
두 번째 시련인 마녀의 숲에서도 행운의 힘으로 총을 아무렇게나 쏴서 괴물 상태의 마녀를 도주하게 만들고, 이후에도 카드 장난질로 속였어.
세 번째 시련에서도 따지고 보면 두 번 연속 하이드를 찍었잖아? 우리가 승엽이 선택을 괜히 의심하지 않았으면 시작하자마자 끝낼 수도 있었어.”
“틀린 말은 아닌데, 첫 번째 시련과 세 번째 시련은 축복 봉인 당한 상태였잖아. 축복과 무관한 단순 운 아닌가?”
“그게 더 대단한 점이지. 내 추측이긴 한데, 축복은 애초에 관련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내려지는 것 같아. 은솔 언니는 원래도 돈이 많아서 부귀를 얻었고, 진철 오빠는 원래도 힘이 세서 용기를 얻었고, 묵성 할아버지는 원래도 말이 많아서 소통을 얻은 식이지.”
엘레나가 받았다.
“송이는 원래도 동물을 좋아해서 친화를 얻었고, 아리는 원래 비밀이 많아서 비밀을 얻고, 전 원래 정의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정의를 얻은 건가요?”
“그래. 승엽이는 원래도 운이 좋은 거지. 거기에 행운까지 더해져서 날개가 생긴 거야. 원래 주제로 돌아가자. 송이의 친화 관련 능력도 나쁘진 않지만, 범용성이 떨어진다고 해야 하나? ‘혼돈체’가 없으면 사실상 축복이 없잖아. 반면 승엽이의 행운은 언제 어디서나 너무 유용한 느낌이라.”
듣다 보니 미묘하게 설득이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나저나 모두가 원래 있는 능력과 관련된 축복을 얻었다면 난 뭘까? 나름대로 공부는 잘했지만, 그런게 ‘지혜’의 증거는 아닌 것 같은데….
묵성 할아버지는 여전히 반대하는 듯했다.
“네 번째 시련만 생각하면 유산이 봉인될 가능성이 크니, 축복만으로 평가해서 승엽이를 고르자는 네 말도 이해는 간다만…. 결국 관문의 방은 다섯 번째 시련까지 깨야 한다. 다섯 번째 시련에선 결국 유산이 있는 송이가 더 낫지 않겠냐?”
“다섯 번째 시련은 네 번째 시련을 넘지 못하면 갈 수도 없어. 당장 바로 다음 시련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게 맞지 않아?”
“축복, 유산만 생각하지 말고 페로도 생각해야지. 송이가 사라진 후로 페로가 뭘 하는지 봐라. 그냥 내 머리카락만 뽑고 해바라기 씨만 까먹는 게 저 새대가리가 하는 일의 전부다! 송이가 없으면 저놈을 제대로 통제하기 힘들어.”
“송이가 있을때도 페로는 할아버지 머리카락 뽑았어요. 페로가 하릴없이 노는 건 지금 실제로 할 일이 없기 때문이고, 송이가 없어도 우리를 알아보잖아요. 당연히 상세한 소통까진 아니더라도 페로는 우릴 도울 거야.”
아리 쟤는 흥분하기 시작하면 반말과 존댓말이 막 섞이는 습관이 아직도 그대로네….
그리고 페로는 언제나 할아버지 머리카락을 뽑는구나. 그런 면에선 일관성이 있다.
…
팔찌가 있는 송이를 살리자는 묵성 할아버지, 축복이 더 유용한 승엽이를 살리자는 아리의 의견이 치열하게 맞섰다.
나와 엘레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대체 누굴 살려야 할까?
승엽이 녀석이 호텔에서 기울인 노력이 아주 헛되진 않았나 보다.
아리가 승엽이를 살리자는 주장을 이렇게 열심히 했다는 사실은 나중에 승엽이에게 꼭 알려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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