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24)
123화 – 107호, 관문의 방 – ‘에스퍼 호의 비밀’ (14)
– 한가인
부활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
송이와 승엽이 중 누구의 능력이 더 유용할까?
“엘레나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가인 씨가 고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음. 엘레나가 자연스럽게 선택을 내게 맡기자 묵성 할아버지와 아리도 내게 시선을 돌렸다.
이거 뭔가 부담스럽네.
차근차근 두 사람의 능력의 장단점을 비교해봤다.
송이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나 팔찌의 끝없는 유용성, 페로에 대한 뛰어난 통제력, 괴물 유형의 적에게 특출난 효력을 보이는 축복으로 볼 수 있다.
단점은 다음 시련에선 팔찌를 쓸 수 없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 적이 괴물이 아닐 때는 축복이 없는 것과 다름없다는 점이다.
송이와 승엽이를 개인 대 개인으로 비교할 때는 누가 낫다고 딱 고르기 힘들었다. 하지만 현재 남은 생존자 팀 전체를 기준으로 보자 판단이 명확히 섰다.
“지금 우리 파티엔 송이가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아리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설명을 더 이어갔다.
“현재 생존자는 저, 엘레나, 묵성 할아버지, 아리 이렇게 네 명입니다. 우리의 약점이 뭡니까? 진철 형이 쓰러지면서 물리적인 무력이 부족하다는 점이죠. 호텔은 총으로 상대하기 힘든 적이 많고, 제 강림이나 엘레나의 정의는 제약이 심하니까요.”
묵성 할아버지가 동의하는 의견을 냈다.
“그 약점을 저 새대가리가 제법 메꿔줄 수 있다.”
“그렇습니다. 예전에 페로가 폭주했을 때를 떠올려 보세요. 그때 마침 폭주한 페로를 한 주먹으로 날려버릴 수 있는 진철 형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로테스크화 한 페로는 상당한 괴수입니다. 송이의 페로에 대한 통제력은 우리에게 매우 유용합니다.”
아리가 애매한 반응을 보였다.
“팀의 약점을 송이가 메꿔준다는 말은 일리 있긴 한데, 근거가 페로 뿐이야?”
“하나 더 있어. 엘레나와 송이의 축복이 조합이 괜찮다고 생각하거든.”
옆에서 듣던 엘레나가 끄덕였다.
“예전에 송이랑 했던 이야기긴 하네요. 기본적으로 적은 인간 아니면 괴물인데, 인간일 때는 제 축복이 유용하고, 괴물일 때는 송이의 축복이 유용하니까요. 물론 둘 다 먹통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여기까지 의견을 나누자 아리도 물러섰다.
결국 우리는 송이를 부활시키기로 했다.
… 하지만 아리가 승엽이를 살리자고 강력히 주장했다는 사실은 승엽이에게 반드시 알려줘야지.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44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107호(관문의 방)
현자의 조언 : 0]
– 한가인
휴식 공간에서 깨어났다. 송이는 자연스럽게 다시 나타나서 놀란 눈으로 주변을 돌아보더니 상황을 파악했다.
“절 살리신 건가요?”
엘레나가 송이에게 다가갔다.
“맞아요! 우리 모두 송이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아리가 움찔했다.
“하하! 송이야. 사실 전부는 아니고 -”
‘아리는 너보다 승엽이가 필요할 것 같다고 했어!’
라는 말은 아리가 내 다리를 걷어차서 삼켰다.
동료들끼리 서로 기쁨의 재회를 시작한 모습을 바라보며 상태창을 확인했다.
축복이 돌아와서 상태창도 돌아온 것까진 좋은데, 역시 이놈의 조언 횟수가 0이다.
올빼미 놈이 아직도 의미를 알 수 없는 조언을 해주겠답시고 횟수를 다 써버렸다.
날짜가 지나가야 조언이 다시 찰 텐데, 지킬 앤 하이드 게임은 엄청난 스트레스에 비해 순식간에 끝나버려서 조언 횟수가 차오르지 않았다.
시나리오는 쓸 수 있겠지? 다음 시련까지 세 시간 남았다.
묵성 할아버지가 방 중앙으로 왔다.
“잠깐 주목!”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여태 쓸 타이밍이 애매해서 그냥 가지고 있긴 했는데, 이젠 한번 고민할 때가 된 것 같다.”
할아버지가 손을 펼치자 ‘빨간 약’이 나타났다.
엘레나의 눈이 동그래지며 말이 나왔다.
“앗! 그러고 보니 우리에게 저 약이 있었죠? 완전히 잊고 있었네요. 진철 씨에게 맡긴 후로는 떠올리지도 못했어요.”
“그동안엔 쓸 타이밍이 애매하기도 했지. 요전에 진철이가 쓰러졌을 때, 내가 챙겨뒀는데 이후로도 쓸 타이밍이 애매하더라. 지킬 앤 하이드 게임에서 쓸까 했는데, 이 약이 하이드를 막아낼 것 같지도 않았고. 하이드는 정신 공격이라고 보긴 어렵지 않았나?”
“그 약을 이제 누가 챙기는 게 좋을까요?”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탁자 위에 약을 올려두고 다들 고민하던 차, 갑자기 송이가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
“어? 어?”
“왜 그래?”
“페로에게 뭔가 -”
—푸드덕!
뭔가 반응을 하기도 전에 송이 어깨에 있던 페로가 날아오르더니, 한입에 빨간 약을 삼켜버렸다.
…
??????
“으아아아아악!”
“꺄아아악!”
“저 새 개 새 개새끼 저 미친 새끼가 저!”
“묵성 너는 좀 닥쳐봐! 엘레나! 새 잡아봐. 가인아! 새 부리 벌려! 지금이라도 빼면-”
순식간에 전원이 돌아버렸다!
유일하게 정신을 잡고 있던 사람이 모두를 진정시키려 시도했다.
“다들~! 다들 잠시 제 말 좀 들어줘요!”
“물 올려라! 내가 오늘은 저 비둘기 털을 다 뽑아야겠다!”
“집게 같은 물건 없어? 가인아 손가락을 쑤셔 넣어서 부리 벌려봐!”
“이 새끼 왜 이렇게 부리를 꽉 다물고 있어? 이래도 안 벌려? 이래도 안 벌려? 안 되겠다! 내가 마도서로 빙의해서 강제로 토하게 해볼게! 일단 -”
“좀 다 들 닥 쳐 봐 요!”
휴식 공간 전체를 쩌렁쩌렁 울리는 송이의 고함이 터졌다.
그제야 다들 조용해졌다.
…
“에, 송이야?”
“페로가 무언가 특별한 힘을 쓴 게 분명해요.”
“그게 무슨 말이야?”
“조금 전만 해도 페로는 아무 반응 없었어요. 그런데 빨간 약을 보는 순간.”
갑자기 송이가 조용해졌다. 참지 못한 아리가 물었다.
“보는 순간?”
“뭔가 뭔가 뭔가?”
“뭔가 뭔가 뭔가가 대체 무슨 소리인데?”
“엄청난 사념이 페로의 정신을 가득 채웠다? 엄청난 정보가 페로의 머리에 쏟아졌다? 설명이 어려운 이상한 일이 페로에게 생기더니 갑자기 페로가 달려들어서 저 알약을 삼켰어요.”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사실 저도 잘 모르겠네요.”
결국 다 함께 조용해졌다.
여하튼 저 새가 단순히 장난이나 배가 고파서 빨간약을 먹은 것은 아닌 것 같다.
황금알에서 나온 우리의 페로. 아직도 무언가 숨은 능력이 있는 걸까?
잠깐의 난리로 모두 지쳐버려서 그냥 벽에 기대서 쉬기 시작했다.
페로는 내 옆에 다가와서 사정없이 물어뜯기 시작했다.
“얘는 왜 자꾸 날 물어뜯는 걸까.”
“네가 싫으니까 그렇겠지.”
“왜 맨날 날 싫어하냐?”
“그걸 질문이라고 해? 평소엔 자꾸 빙의해서 비행 연습한다면서 다치게 하고, 조금 전엔 알약을 토하게 하려고 부리에 손가락을 밀어 넣었잖아. 널 좋아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 아닐까?”
“부리에 손가락을 넣은 건 네가 시켰잖아.”
“하지만 페로는 내가 시켰다는 사실을 모르지.”
“…”
왠지 기분이 나빠졌다.
결국 송이가 페로를 가져간 후에야 쉴 수 있었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44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107호(관문의 방)
현자의 조언 : 0]
– 한가인
정신을 차렸을 때, 우리는 대단히 화려한 방 안에 서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했다.
나와 묵성 할아버지는 아주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각진 턱시도를 입고 있었다.
아리, 송이, 엘레나 등은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위에는 보드라운 털이 덮인 숄을 걸치고 있었다.
무슨 파티라도 나가는 분위기인가?
아리가 기묘한 반응을 보였다.
“이 드레스는 엄청 오래된 스타일인데….”
오래된 스타일? 잘 모르겠다. 애초에 서양식 정장 느낌이라 나로선 온통 혼란스러웠다.
시나리오부터 확인했다.
/시나리오 : 관문의 방 – ‘에스퍼 호의 비밀’
호텔 일행은 화려한 호화 여객선에서 깨어났다. 아름다운 음악 소리가 들려온다. 직원이 디너 파티에 대한 안내를 위해 도착했다. 파티에 참석해서 정보를 모아보자.
다음 내용은 자정에 확인해 주세요./
주변의 음악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클래식인가? 녹음된 음악을 재생 중인 게 아니라 직접 연주 중인 것 같았다.
어째 복장이 심상치 않더라니, 호화 여객선? 디너 파티? 직원?
— 딱! 딱! 딱!
재빨리 내용을 동료들에게 알렸다.
“이 장소는 호화 여객선이랍니다. 곧 고용인이 올 모양인데요? 디너 파티에 참가하라는 것 같아요.”
“호화 여객선? 크루즈 말하는 건가?”
“아마도 그런 것 같네요. 이런 곳에 와보신 분?”
나머지 사람은 고개만 갸웃거렸고, 관리국 팀만 애매한 반응을 보였다.
“임무 중에 와보긴 했는데 정상적으로 경험해본 건 아니다. 황당한 괴물이 나와서 처치하려고 잠입했지.”
— 딩 동!
벨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자 직원이 들어왔다.
직원은 시나리오의 설명대로 방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과 디너 파티에 대한 안내를 했다.
직원은 몇 번이나 신신당부했다.
“방 내에선 옷을 편하게 입으셔도 됩니다만, 파티에선 반드시 드레스 코드를 맞춰주십시오. 지금 입고 있으신 턱시도와 드레스면 충분합니다.”
직원이 나가자마자 회의를 시작했다.
— 딱! 딱! 딱!
묵성 할아버지부터 입을 열었다.
“계속 드레스 코드를 맞추라는 게 수상쩍은데? 한번 옷을 다르게 입고 가볼까? 어떻게 생각하냐?”
아리가 대답했다.
“격식 있는 파티라면 드레스 코드는 원래 맞추긴 해야지. 꼭 수상한 이유는 아닐지도 몰라.”
나도 궁금한 점이 생겼다.
“디너 파티까지 아직 3시간은 남았는데, 그때까진 뭘 할까요? 배 탐색?”
엘레나는 조심스러운 의견을 냈다.
“탐색하더라도 다 같이 다니는 게 어떨까요?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스럽네요. 가인 씨, 시나리오는 변동 없나요?”
“네. 디너 파티에 참석해서 정보를 보아라. 다음 내용도 자정에 확인해라 식입니다. 본격적인 진행은 디너 파티부터 시작되는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뭔가 하긴 해야겠죠.”
아리도 입을 열었다.
“방 바깥으로 나가기 전에 방 내부부터 한번 뒤져보자. 뭔가 나올지도 모르니까.”
그 말을 끝으로 다들 방을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딱! 딱! 딱!
…
“다 좋은데, 페로는 왜 아까부터 벽에 붙어서 저러는 거지?”
페로는 아까부터 벽에 달라붙어서 쉴 새 없이 부리로 벽을 찍었다.
송이도 아리송한 분위기로 대답했다.
“아까부터 뭔가 답답해하고 있네요. 그렇게 좁은 공간은 아닌데….”
평범한 새라면 그냥 동물이라 그런가 보다 하고 말 텐데, 비범한 새가 저러고 있으니 이유가 궁금해졌다.
“이건 오르골인가? 굉장히 오래된 스타일이네. 2차대전 이전에나 유행했던 스타일인데…”
멀리서 무언가 찾아낸 아리의 목소리.
아리의 말을 듣자마자 평소 어렴풋이 생각했던 의구심이 되살아났다.
요전에 서로 마음을 털어놓는 과정에서 아리에 대해 알게 된 정보.
아리가 평소 보여준 모습 사이에는 양립할 수 없는 모순이 한 가지 있었다.
… 물어봐도 되는 문제일까?
갑자기 머릿속이 헝클어지는 기분이 들어서 피곤해졌다.
네 번째 시련, ‘에스퍼 호의 비밀’
이 배는 비밀로 가득 차 있다. 이번 시련도 심상치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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