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25)
124화 – 107호, 관문의 방 – ‘에스퍼 호의 비밀’ (15)
– 한가인
아리가 기묘하게 생긴 오르골을 들고 있었다.
2차 대전 이전에 유행했던 스타일? 오르골에도 유행이 있나 보다.
“예전에 무슨 오르골이 유행했는지 어떻게 아는 거야? 본적이라도 있어?”
“일하다가 우연히 오르골의 형태를 빌린 악령 비슷한 존재를 만나봤거든. 페로가 계속 뭔가 하는 모양인데, 가서 살펴봐.”
예전엔 가볍게 농담으로 넘어갔던 아리의 나이 문제. 뒤늦게 깨달은 기묘한 모순점.
슬쩍 상태창을 다시 확인했다.
아리의 나이는 여전히 ???로 표시되고 있다.
…
이쯤 하자. 공연한 의심은 불필요한 갈등을 만들 뿐.
아리에게 나중에 묻더라도, 시련을 진행 중인 지금은 물을 타이밍이 아닌 것 같다.
페로에게 다가갔다. 페로는 역시나 부리로 열심히 벽을 찔러댔다.
그로테스크화한 상태라면 모를까, 그냥 앵무새 상태로 부리로 벽을 찌른다고 뚫릴 리가 있겠는가? 당연히 벽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 행동에도 뭔가 의미는 있을 텐데….
당장은 이해하기 어렵다. 나도 그냥 돌아다니면서 서랍이나 침대 밑 등을 살폈다.
다들 한참 동안 방을 뒤졌지만, 딱히 수상한 물건이나 알 수 없는 문서, 기묘한 금고, 비밀통로 같은 것들은 찾아내지 못했다.
결국 묵성 할아버지가 우릴 불렀다.
“다들 옷이나 다시 입어라. 이제 슬슬 디너 파티인지 뭔지 가야 할 시간이 됐다.”
결국 뚜렷한 성과 없이 우리는 디너 파티를 위해 방을 나섰다.
방을 나섬과 동시에 알림이 떴다.
/지금부터 네 번째 시련이 끝날 때까지 참가자의 유산을 봉인하겠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다.
*
– 엘레나
처음 보는 신사가 다가와서 내게 술잔을 건넸다.
“엘레나 양, 저는 스티븐슨이라 합니다.”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뒤에서 또 누군가 다가왔다.
“어머! 오늘 파티의 주인공이 오셨군요? 엘레나 양! 저희 테이블로 와주시겠어요?”
“감사합니다. 저는 -”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옆에서 또 누가 말을 걸었다.
“엘레나 양의 고귀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 자태에 어울리는 -”
…
으아! 정신없어!
파티장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모두 넋을 잃었다.
처음 시작한 방도 매우 화려하고 컸지만, 방 밖의 배는 세상에 이런 배가 있나 싶을 정도로 믿을 수 없을 만큼 화려했다.
그리고 파티장은 그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줬다.
한쪽 편에선 작은 오케스트라 팀이 고전 음악을 연주했고, 고용인들은 사방을 걸어 다니며 고급스러운 샴페인과 안줏거리를 건넸다.
벽면엔 생전 처음 보는 명화와 아름다운 장식품이 가득했다.
천장의 샹들리에에선 불꽃처럼 일렁이는 불빛이 연회장 전체를 밝게 비추었다.
가장 신기한 건 천장에서 아른거리는 금색 실이었다.
불빛이 스칠 때마다 허공에서 반짝이는 모습이 흡사 작은 은하수가 펼쳐진 듯해서 나도 모르게 천장의 실들을 한참 쳐다봤다.
“무엇을 그리 집중해서 보고 계십니까?”
고개를 돌리자 마치 고전 영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청년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천장에서 반짝거리는 실들이요. 신기하지 않은가요? 대체 어떻게 만든 걸까요?”
“아아! 거미줄 말씀이시군요.”
“거미줄요?”
“거미줄을 쳐두고 금가루를 살짝 뿌린 겁니다. 분위기를 내는 데는 그만이죠. 물론, 고작 거미줄 따위가 엘레나 양의 -”
거기까지 듣다가 돌아섰다. 미안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파티 시작하고 300번은 들어서 이젠 아무 감흥이 없다.
돌아서서 내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동료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소 다섯 명 이상의 사람들이 내 동료들 한명 한명에게 달라붙어서 자기소개한다, 선물을 준다고 하면서 난리였다.
아까 들었던 말. ‘오늘 파티의 주인공’
이 말은 나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일행 전체에 해당하는 것 같다.
신기하기도 하고, 화려하기도 하고, 음식도 맛있고 다 좋긴 한데….
뭐라고 해봐야 결국 이 장소는 ‘관문의 방’. 시련의 장소.
넋 놓고 파티나 즐길 때가 아니지.
결국 우리 중 가장 결단력도 있고, 힘도 강한 묵성 할아버지가 달라붙는 사람들을 밀쳐내며 우리를 모으기 시작했다.
파티에 참여하고 거의 30분이 지나고서야 우린 다시 모일 수 있었다.
*
– 한가인
이렇게 정신없는 경험은 처음이다.
내가 무슨 연예인도 아닌데 내 주변에 남성이고 여성이고 가리지 않고 우르르 달라붙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갑자기 무슨 선물을 여기저기서 건네고, 내가 누구다, 어디서 오셨냐 난리를 쳐서 혼이 다 나갈 뻔했다.
차라리 무슨 칼을 들고 달려드는 적이었다면 주저 없이 싸울 정도의 결단력은 길렀다고 생각하는데, 순전히 나에 대한 호의를 표하며 몰려드는 사람들은 상대하기가 더 힘들었다.
다행히 묵성 할아버지가 와서 날 비롯한 일행을 강제로 끌어내고, 테이블 하나를 잡음으로써 간신히 우리에게 안정이 찾아왔다.
멍하니 물을 마시던 송이부터 입을 열었다.
“이런 일은 처음이네요. 무슨 인기 가수라도 된 것 같아요. 엘레나 언니는 이런 일 겪어보셨어요?”
“그럴 리가요. 전 이렇게까지 인기가 많지 않았답니다.”
묵성 할아버지는 손부채질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신 사납다! 정신 사나워. 뭔가 알아낸 점은 있냐?”
송이가 바로 입을 열었다.
“저는 -”
“잠깐.”
송이의 말을 끊었다.
“잠깐 저부터 말하겠습니다.”
한가인 : 진짜 대화는 대화창 쓸 것.
“음식이 굉장히 맛있네요. 하나하나가 파인 다이닝에서나 나올만한 수준이 아닐까요?”
한가인 : 우리가 입을 열 때마다 주변 반응 보세요.
“야, 누가 들으면 파인 다이닝 가보기는 한 줄 알겠다. 김밥천국이나 열심히 갔을 것 같은데~.”
김아리 : 우리가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주변이 조용해지네. 전부 우리 말을 엿듣고 있어.
“와! 아리 너 나 무시하냐? 우리 집 잘 살거든? 아빠 승진하셨을 때 가봤거든?”
한가인 : 우리에게 관심이 매우 많음. 선물 공세와 화려한 파티장의 모습, 시끄러운 음악으로 정신을 혼란하게 만들면서 개인정보를 열심히 물어봄.
“인생 통틀어서 한 번 정도 가봤겠네. 그래 가봤다고 쳐줄게. 사실 여기 음식이 꽤 맛있긴 했어. 더 대단한 건 술이긴 했지.”
김아리 : 정작 자기 자신들끼리는 전혀 사교 활동하지 않음. 서로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다는 뜻.
“술이라…. 그러고 보니 지금 이 아이리시 위스키가 또 괜찮은 물건이지. 너희는 마시면 안 된다!”
김묵성 : 배 크기에 비해 사람이 좀 적어 보이지 않냐?
“네? 사람이 -”
송이가 육성으로 말하다가 놀라서 입을 막았다.
유송이 : 죄송. 사람 엄청 많지 않나요?
김묵성 : 배 크기에 비해선 명백히 적다. 많아 보이는 이유는 배 자체가 어이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
배 전체를 돌아다닌 것도 아닌데 할아버지는 이미 배 크기를 대충 짐작하는 눈치다.
이럴 때는 과연 관리국의 경력이 허투루 쌓인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전 술에 대해선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 샴페인은 맛있네요.”
엘레나 : 오면서 둘러봤는데, 객실 자체도 빈 곳이 많은 것 같아요.
“전 샴페인 맛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어질어질한 탄산음료 느낌입니다.”
한가인 : 다들 행동 조심하세요. 직원 중 허리에 리볼버를 찬 직원들이 여럿 보입니다. 빈 리볼버는 아니겠죠.
이 정도 대화 후 테이블에 침묵이 감돌았다.
일상적인 대화를 하면서 대화창으로 ‘진짜 대화’를 하는 건 생각보다 상당한 집중력을 소모했다.
모은 정보를 정리해보면 이 정도였다.
1. 배의 탑승객들은 자신들끼리는 이미 잘 아는 것 같다. 우리에 관한 관심이 아주 많다.
2. 배의 크기에 비해 사람의 수가 적다. 객실도 빈 곳이 많다.
3. 꽤 많은 직원은 권총으로 무장 중이다.
애매하다. 이 정도로는 뭔가 딱 와닿는 게 없었다.
조금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한번 의식하기 시작하니 계속 느껴졌다.
우리가 별 의미 없는 말이라도 한마디 할 때마다 근처가 조용해지고, 우리 중 한 명이라도 살짝 큰 행동을 하면 주변의 시선이 즉시 우리에게 쏠린다.
대체 저 사람들의 목적이 뭘까?
결국 우리는 꺼림칙함을 견디지 못하고 밤 10시가 지나기 전에 객실로 돌아갔다.
파티장을 나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배 전체를 은은히 울리던 오케스트라의 음악이 멈췄다.
마치, 파티의 목적이 사라졌으니 더 이상 음악을 틀 이유가 없다는 것처럼.
*
그 후로도 우린 방을 뒤지기도 하고, 배를 돌아다니기도 했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몇 가지 사실은 확인했다.
엘레나의 말대로 비어있는 객실이 많았고, 배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컸다.
호화 여객선이 다 이런 크기인가?
아리와 묵성 할아버지의 견해에 따르면 이 정도 크기의 여객선은 세계적으로 흔치 않다고 한다.
여객선의 시설은 그야말로 끝이 없었다.
수영장은 기본이고, 그럴듯한 식물원이나 카지노까지 있어서 감탄했다.
에스퍼 호에서 우리에게 배정된 객실의 수는 두 개였다.
아마도 남자와 여자가 나뉘어서 자라는 의도 같았다.
하지만 이 불길한 배에서 나눠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어차피 방 하나하나 크기도 커서 조금 더 큰 방 하나에서 전원이 함께 자기로 했다.
그리고 자정이 다가왔다.
우리는 아무도 잠들지 않은 채로 내 상태창에 다음 ‘시나리오’가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
— 뻐꾹! 뻐꾹!
뻐꾸기시계 소리와 함께 자정이 되었다. 시나리오를 확인하려던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조언 : 3 -> 2] [즉시 벽을 등지고 필터로 전면을 덮으세요.]무슨 생각을 하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조언에 따라 행동했다.
즉시 벽에 붙고 상태창 필터를 확대해서 전면을 가렸다.
동료들이 의아한 눈으로 날 쳐다보기도 잠시 –
— 띵 디 딩 디 리 딩~! 띵 디 딩 디 리 딩~!
귓가를 간지럽히는듯한 오르골 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침대 밑에서, 베게 뒤에서, 벽 너머에서, 시계 한편에서, 테이블 아래에서.
그야말로 온 사방에서 오르골 소리가 들려온다.
당황해서 동료들에게 시선을 돌렸을 때, 나는 ‘조언’이 오랜만에 위기 알림을 보낸 이유를 깨달았다.
순식간에 동료들이 전부 기절하듯이 잠들어 있었다.
필터를 덮은 나만 버텼다는 의미는 오르골 소리에 어떤 마법적인 힘이 깃들었다는 뜻이다.
?
등 뒤에서 움찔거리는 느낌이 든다. 무언가 물컹거리는 느낌이 –
[조언 : 2 -> 1] [잠든 체하세요.]바로 몸에서 힘을 쭉 빼고 실눈만 떴다.
…
숨이 막혀온다. 방 전체의 벽에서 ‘얼굴’이 돋아났다.
토할 것 같은 감각을 억누른 채로 나는 참고 또 참았다.
얼굴들에서 불길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깨어 있는 사람은 없나? 움직임을 느꼈는데.”
“그럴 리가 있나? 조지, 한번 확인해보게.”
“그럴 필요 없다. 앵무새 놈일 게 뻔해. 종일 벽에 부리를 박아대서 몇 번이나 모가지를 비틀고 싶었다.”
“새가 뭔가 느끼기라도 했나?”
“모를 일이지. 사람은 다 잠든 것 같다.”
굵직한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흠. 다들 마음에 드는 사람은 찾으셨는지? 없다면 -”
살짝 톤이 높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한 명 찾았는데.”
“그 금발 아가씨? 확실히 이렇게 아름다운 아가씨는 처음 보긴 하는데 말이지.”
—끼익.
무언가 바닥이 무거운 무게에 눌리는 듯한 소음.
동시에 방에서 들리던 모든 목소리가 멈췄다.
다섯 명이 있으면서도 전혀 좁지 않았던 방이 급격히 좁아졌다.
하나하나가 어린이 주먹만 한 발톱, 내 머리가 한입에 들어갈 정도로 거대한 부리, 언뜻 보면 타조를 닮았으면서도 몸 여기저기 흉측한 촉수와 비늘이 솟아난 괴수.
그로테스크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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