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26)
125화 – 107호, 관문의 방 – ‘에스퍼 호의 비밀’ (16)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45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107호(관문의 방)
현자의 조언 : 1]
– 한가인
최대한 잠든 체를 하며 기이한 대화를 엿듣던 차, 페로가 그로테스크로 변해서 우리 사이에 나타났다.
잠시 쥐 죽은 듯이 조용하던 얼굴들이 다시 불길한 말을 시작했다.
“저건 대체 뭐지? 저런 생물도 있나?”
“악마도 있는 세상인데 괴물 새 정도가 신기할 건 없다.”
“속 편한 소리나 지껄이는군. 오늘 한 놈은 바쳐야 한다는 사실을 잊었나?”
“… 왜 저 새는 잠들지 않지? 오르골이 동물에겐 통하지 않는 건가?”
“그럴 리가 없다. 그동안엔 개나 고양이에게도 예외 없이 통했어.”
“평범한 동물이 아니니까 좀 다를지도 모르죠. 그냥 죽이면 되는 것 아니겠어요?”
“레이디 아미앵, 싸우다가 이 사람들이 깰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이런 괴물을 부리는 걸 보니 평범한 사람들이 아닌 듯합니다. 요란하게 싸움을 벌이는 일은 피합시다. 기회를 보아 저 괴물을 적당히 제압해둡시다. 마침, 적절한 ‘새장’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오늘은….”
“오늘은 ‘예비’를 쓰도록 합시다. 어차피 누굴 바치기도 애매한 상황 아니었습니까?”
“그건 맞다. 다들 쓸 데 없이 말을 아끼더군. 이름 정도밖에 알아내지 못했다. 어차피 조금 더 알아내야 한다.”
실눈을 뜬 상태라 대화자들을 정확히 구분하긴 힘들었다.
목소리를 기준으로 나눠봤다. 나이 든 남성 둘, 톤이 높은 ‘아미앵’이라고 불리는 여성 한 명, ‘예비’를 쓰자는 의견을 낸 젊은 남성 한 명 정도인 것 같다.
조금 더 알아내야한다는 말을 끝으로, 방에서 느껴지던 불길한 기척들은 사라졌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아침이 될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깜빡 잠들기 직전까지 내가 들은 대화의 내용을 분석했다.
*
정신이 들었을 때, 동료들은 이미 깨어나서 간단한 아침을 먹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깨어난 날 보면서 손을 흔들었다.
“어이~! 이제 일어났냐? 와서 빵이나 좀 먹어라.”
“가인 오빠 일어났네요? 어제 피곤하셨나 봐요. 아침에 흔들어도 안 깨어나시던데.”
… 다들 이 경쾌한 분위기 뭐지?
시나리오가 뜨길 기다리다가 기절하듯이 잠들었으면, 아침에 깨어나자마자 심상치 않음을 느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다들 아무 의심도 없이 편안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바로 다가가서 지적했다.
어제의 일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자, 모두가 눈이 휘둥그레 커지더니 식사를 멈추고 내 말을 경청했다.
기억나는 대로 ‘얼굴’들의 대화를 전달한 후, 할아버지가 의견을 냈다.
“네 지적을 듣기 전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확실히 자정에 뜬다는 네 시나리오를 기다리다가 갑자기 단체로 기절했으니, 깨어나자마자 의심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아리는 원인을 직감하는 듯했다.
“오르골 소리가 들리니까 우리가 전부 잠들었다고 했지? 오르골에 일종의 최면 효과도 있나 보네. 어제는 아무 일 없었다. 너희는 편히 쉬어라. 이런 느낌의 최면을 거는 게 아닐까?”
“가인 오빠. 시나리오는 확인하셨나요?”
“어젯밤은 자는 시늉을 밤새 하느라 눈을 아예 뜰 수가 없어서 못 했어. 지금 봐야겠다.”
/시나리오 : 관문의 방 – ‘에스퍼 호의 비밀’
자정이 되자마자 오르골의 힘으로 잠든 채 위기에 처했던 호텔 일행.
다행히 그로테스크 앵무새의 활약으로 계약의 첫날밤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일행을 노리는 마수는 시시각각 좁혀온다.
호텔 일행은 오늘 밤의 위기도 넘길 수 있을까?
다음 내용은 자정이 되면 확인해 주세요./
앞의 두 줄은 이미 발생한 일에 대한 설명인데, ‘계약의 첫날밤’이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계약’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오늘 밤의 위기’에 대한 경고도 포함되어 있다. 어젯밤과 같은 위기가 오늘도 찾아온다는 의미임이 분명하다.
새삼스럽지만 시나리오 이해 없이 그동안 저주의 방을 어떻게 돌파했는지 신기할 정도로 편리한 능력이다.
일행과 회의를 시작했다. 주제는 단연 어젯밤에 들은 수상한 얼굴들의 대화와 조금 전 확인한 시나리오에 대한 분석이었다.
아리부터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어젯밤에 엿들었다는 대화에선 두 가지 특징을 깨달았어. 첫째, ‘오늘 한 놈은 바쳐야 한다.’ 바쳐야 한다는 걸 보니 우리 중 1인을 대상으로 사악한 의식이라도 할 계획이었나 봐. 둘째, ‘예비’를 쓰자. 사악한 의식을 하려다가 페로 때문에 막혔는데, ‘예비’를 바치자고 한 걸 보면 우리 말고도 배 어딘가에 희생자가 잡혀있는 모양인데?”
묵성 할아버지도 의견을 냈다.
“뒤 내용이 신기하다. ‘누굴 바치기도 애매한 상황, 이름 정도밖에 알아내지 못했다.’ 뉘앙스를 보면 그들이 하려는 의식에는 우리의 개인정보가 제법 필요한 것 같지 않냐? 생각해보면 어제 디너 파티때도 그놈들은 우리 정보를 알아내려 혈안이었지.”
나도 입을 열었다.
“지금 얻은 정보와 시나리오에서 나온 정보를 결합해 봅시다. 적들은 무언가 사악한 의식을 꾸미고 있고, 우리를 제물 비슷하게 바쳐야 하는 모양입니다. 그 의식을 위해선 우리의 개인정보가 필요한 듯 합니다. 그 의식이 아마 시나리오에서 말하는 ‘계약’이겠죠? 놈들은 오늘 밤에 다시 쳐들어올 것 같네요.”
엘레나가 의문을 표했다.
“궁금한 점이 생겼네요. 왜 굳이 밤까지 기다린다는 걸까요? 배의 승무원 중 총을 가진 사람이 많던데. 그냥 힘으로 우릴 협박할 생각은 왜 하지 않죠? 물론, 총을 우리에게 들이대기라도 하면 제가 정의로 응징할 수 있겠지만, 상대는 그런 정보를 모를 텐데요.”
“상대에게도 어떤 제약이 있는 게 아닐까요? 의식을 위해선 우리의 개인정보가 필요한 것처럼 말이죠. 예컨대 낮에는 이상한 짓을 하지 못한다거나?”
묵성 할아버지가 동의했다.
“일리가 있다. 낮에도 손을 쓸 수 있다면 이미 오르골을 또 틀어서 우릴 끌고 갔겠지. 낮에는 그런 행동을 할 수 없으니까 우릴 내버려 두는 게 아니겠냐? 그리고 시나리오에서도 계속 ‘자정’이라는 시간을 강조하고 있다.”
한참 조용히 듣고 있던 송이가 입을 열었다.
“아까부터 대화의 마지막 부분이 생각나요. 페로가 방해하니까 기회를 봐서 제압하자고 하면서 ‘적절한 새장’이 있다고 했잖아요?”
“이미 페로가 그로테스크로 변신한 모습을 본 다음에도 꽤 자신 있게 이야기했지. 아마 평범한 새장이 아닐 것 같아. 괴물이라 해도 갇히면 나올 수 없는 종류가 아닐까?”
잠시 테이블에 침묵이 감돌았다.
아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생각도 좋은데, 우선 급한 일부터 처리하자.”
“급한 일?”
“오르골. 또 그게 작동하면 필터 쓰는 너 말고는 싹 잠들 것 아니야? 이 방 여기저기에서 울렸다면서. 어제 하나 찾긴 했는데, 그것 말고도 많았나 보네. 싹 찾아서 부수든지 하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면서 일어섰다. 계획은 계획이고, 당장 우리에게 제일 큰 위협은 오르골이니 그것부터 찾아서 전부 부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오전 내내 방 전체를 뒤졌다.
침대 밑, 의자 아래, 테이블 뒷면, 시계 내부 등에서 쉴 새 없이 오르골이 튀어나왔다.
찾아내서 테이블에 모아놓자 테이블 공간이 부족할 정도였다. 이렇게 많은 수를 보니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다 찾은 게 맞나? 어딘가 또 숨겨져 있을 느낌인데?”
묵성 할아버지가 무언가 고민하는 듯하더니, 아리를 바라보았다.
아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찾을 방법이 있어.”
“뭔데?”
“음…. 사실 내게 ‘나침반’이라는 능력이 있거든.”
???
뭔 소리야 또?
나와 송이, 엘레나가 입을 반쯤 벌린 사이에 아리는 말을 이어갔다.
“내 축복을 강화할 때 얻은 능력이야. 원하는 물건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힘이지. 사실 제약은 꽤 많아. 적의 강력한 초자연적인 힘으로 차단당할 때도 있고, 찾는 물건의 생김새와 특징도 알아야 해. 사람을 상대로는 쓸 수 없고. 하지만 이 오르골 같은 건 찾을 수 있지.”
멍하니 듣고 있던 송이가 입을 열었다.
“그런 유용한 능력을 왜 이제야!”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송이 손을 잡아끌었다.
“강화할 때 얻었다면 얻은 지 얼마 안 됐겠네. 그동안은 사정이 서로 복잡했으니까. 이제라도 말해줬으니 다행이라 생각하자.”
아리도 살짝 사과하는 듯한 동작을 한 후, 손을 허공에서 휘젓기 시작했다.
잠시 후, 우리는 3개의 오르골을 더 찾아냈다.
“이게 끝이야?”
“아마도.”
“어찌 됐든 다행이네. 얘네들 못 찾았으면 밤에 또 잠들었을 테니까.”
“그래…. 그러니까 송이야, 얘 좀 제발 데려가.”
“페로가 널 좋아하나 봐. 내가 어떻게 해?”
시련 도중에 따지기도 좀 그렇고, 나는 예전에 서로 마음을 열고 대화한 후로 경계심이 강한 아리의 심리를 제법 이해한 편이다.
그래서 나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기로 했다. 하지만 송이는 아리에게 약간 짜증이 났는지 페로에게 ‘무언가’ 시켰다.
송이의 충실한 하수인 페로가 아리의 귀를 물어뜯으려는 시도만 10번을 넘게 하는 걸 지켜보며 오전이 끝났다.
*
찾아낸 오르골들을 창문을 열어 바다로 던져버릴 때쯤, 문밖에서 벨 소리가 울렸다.
— 띵!
긴장감이 감돈다. 서로를 한 번씩 돌아본 후, 묵성 할아버지가 문을 열었다.
“뉘신가?”
문밖에는 배 승무원으로 보이는 사람 두 명이 서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어젯밤엔 좋은 시간 보내셨는지요?”
“잠자리가 생각보다는 뒤숭숭했지. 할말들이 있으신가?”
“어젯밤에 근처 다른 방에 머무시는 손님분들의 항의가 들어와서요.”
“항의?”
“이 방에서 새를 기르시는 것 같더군요? 새가 너무 요란한 소리를 냈다고 합니다.”
싸하다. 어젯밤 엿들었던 대화의 내용, 새를 제압하겠다던 말이 생각났다.
“우리 새는 소음을 내지 않네. 착각하신 듯하군.”
“아닙니다. 틀림없이 이 방이죠.”
“불쾌한 소리를…. 증거라도 있나? 증거가 없으면 더 듣지 않겠네.”
— 턱!
승무원의 말을 무시하고 묵성 할아버지는 문을 닫으려 했지만, 승무원이 무릎을 집어넣어 문이 닫히는 걸 막았다.
승무원은 자연스럽게 손을 허리춤에 올렸다. 허리 옆에 매달린 리볼버가 위협적인 광택을 드러냈다.
“그건 또 뭔가? 협박이라도 하나?”
“하하하! 고객님. 협박이라니요? 다만 저희는 이 배의 질서를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쪽에도 총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인원수가 다르다.
결국 묵성 할아버지도 별수 없이 물러섰다.
또 다른 승무원의 손에는 녹슨 새장이 들려있었다.
언뜻 보기엔 평범해 보이는 새장이지만 보자마자 확신이 섰다.
저게 바로 어제 대화에서 언급된 ‘적절한 새장’임이 분명하다.
방 전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리볼버로 우리를 협박하던 승무원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이렇게 긴장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희가 앵무새를 잘 돌봐드리겠습니다. 질 좋은 견과류를 매일 충분히 제공할 예정이니, 전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새장을 든 승무원이 태연자약한 태도로 다가왔다. 어떻게 해야 하지?
모두의 시선이 페로로 향할 때쯤.
송이는 자연스럽게 페로를 쓰다듬으며 ‘무언가’ 의사를 전달했다.
— 푸드덕!
갑자기 페로가 날아올랐다!
우리는 물론이고, 승무원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바로 날아오른 페로가 순식간에 열려 있던 창문 쪽으로 날아갔다.
총을 가지고 있던 승무원이 바로 총을 꺼내 드는 순간, 옆에 있던 묵성 할아버지가 바로 총구의 방향을 틀었다.
— 탕!
“이게 무슨!”
“내가 할 소리다! 이 개새끼야! 그냥 새가 날아가는 것 가지고 총을 쏠 생각을 해?”
할아버지는 아예 내친 김이라는 듯, 승무원을 두들겼다.
상황만 보면 그냥 새가 제멋대로 날아올랐을 뿐인데, 승무원이 다짜고짜 총을 쏜 상황.
명백히 명분이 우리 쪽에 있어서인지 상대도 몇 대 맞은 후에 코피를 흘리며 물러섰다.
이성을 되찾은 승무원은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순간적으로 새가 날아올라서 너무 당황했습니다. 이 부분은 분명히 제 잘못입니다.”
다른 승무원도 연거푸 사과하며 승무원 두 명이 모두 방에서 나갔다.
우리는 뒤늦게 입을 벌리며 송이 쪽을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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