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27)
126화 – 107호, 관문의 방 – ‘에스퍼 호의 비밀’ (17)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45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107호(관문의 방)
현자의 조언 : 1]
페로를 납치해가기 위해 도착한 승무원들.
모두가 당황하던 차, 송이는 임기응변을 발휘해서 페로를 창문을 통해 탈출시켰다.
아리가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바깥에 나가 있으라고 한 거야?”
“맞아.”
“그 잠깐 사이에 순발력도 좋네. 그런데, 다시 만날 방법은 있어?”
“나도 그게 걱정이야. 워낙 상황이 급해서 일단 나가 있으라고만 했어. 페로는 똑똑하니까 적절한 시점에 돌아오지 않을까?”
보통의 앵무새가 아니므로 충분히 그 정도 지능이 있을 것 같다.
아침부터 시작된 혼란이 가라앉았다.
우리는 룸서비스를 주문해서 요깃거리를 가져와서 점심을 먹었다.
묵성 할아버지가 재밌다는 투로 말했다.
“호텔의 재미난 특징 중 하나가 뭔 줄 아냐?”
“뭡니까?”
“밥을 못 먹게 괴롭히는 경우는 거의 없어. 호텔 자체에서도 밥은 항상 기가 막히게 줬고, 저주의 방이나 지금처럼 관문의 방에서도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서 굶기는 일이 없다. 이 배도 ‘낮에는 선 넘게 건드리지 않는다’라는 기묘한 제약이 있어서 밥은 무난히 먹고 있지.”
“듣고 보니 그렇네요?”
“네가 나중에 관리국 일 좀 하다 보면 밥 먹을 때는 괴롭히지 않는다는 점이 얼마나 큰 호텔의 자비인지 알게 될 거다. 험한 일 하다 보면 씹기도 힘든 비스킷 몇 조각 씹어먹으면서 3일이고 4일이고 구를 때가 예사거든.”
“관리국 일 따위를 할 생각은 없다니까요….”
할아버지는 그냥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아리도 대화에 끼었다.
“나간 후의 걱정은 그때 가서 해. 그보다 할아버지 말 들으니까 좀 걱정되긴 하네.”
“걱정?”
“우리가 호텔에서 온갖 일을 다 겪었지만, 할아버지 말대로 밥은 잘 먹다 보니 식사에 관해선 긴장을 별로 안 하잖아. 뒤집어서 말하면 식사에 대해 장난치기 시작하면 우리는 처음 한 번은 무조건 대차게 당할 것 같은데?”
그 말에 우리 모두 침묵을 지켰다.
…
적어도 이 식사엔 아무 문제 없는 것 같다.
불길한 주제를 돌리는 느낌으로 할아버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유산을 쓸 수 없다는 점이 상당한 압박이다. 아까 봤냐? 직원 놈이 권총 하나만 툭툭 건드려도 대응이 어렵더라.”
“심지어 이 배엔 총을 가진 직원이 매우 많죠.”
“내 말이 그 말이다. 네 번째 시련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싸움을 벌이게 되면 무력 부족이 아주 심각하다. 페로만으론 많이 부족해.”
송이가 낙관적인 말을 꺼냈다.
“배의 직원이나 승객들은 다 인간이잖아요? 여차하면 엘레나 언니가 다 처치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예전에 상식개변 미디어 때를 보면 언니가 정의를 쓰기 시작하면 총알도 막아내던데.”
엘레나의 정의. 확실히 정의를 쓰는 엘레나라면 권총 따위가 문제가 되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엘레나는 지금 정의를 쓸 수 있을까?
엘레나를 바라보자 엘레나는 내 생각을 읽었는지 바로 대답했다.
“지금은 무리에요.”
그럴 것 같다. 승객이든 승무원이든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만 드러낼 뿐, 정확히 무슨 악행을 했는지도 전혀 감이 오지 않고 있다.
최소한 뭔가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악행을 해야 정의를 쓸 수 있다.
묵성 할아버지가 턱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어떻게든 엘레나가 정의를 쓸 수 있는 상황을 만들 필요가 있다.”
“이 배의 사람들이 사악한 짓을 했다는 증거를 찾아야겠죠?”
“그렇지. 뭐, 기다리다 보면 상대가 알아서 덮쳐오긴 하겠지만, 그렇게 기다리는 건 위험하지. 엘레나가 정의를 쓰기 전에 죽기라도 하면 우린 몰살일 테니까.”
식사를 끝마친 후, 우리는 디너 파티때까지 배의 시설을 둘러보기로 했다.
*
본격적으로 배를 돌아다니기 시작한 후에야 할아버지가 말했던 배의 무식한 크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레스토랑이나 파티장은 기본이고, 수영장이나 볼링장 등은 물론 규모는 작지만, 식물원 같은 장소까지 있었다.
규모가 너무 커서 도저히 하나하나 세부적으로 살펴볼 시간이 없었다.
대충 이런 시설도 있구나! 정도만 체크하는 느낌으로 탐색한 지 두 시간 정도 흘렀다.
공원 비슷한 장소에 앉아서 드넓은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며 잠시 쉬기 시작했다.
아리가 입을 열었다.
“느낌 좀 이상한데.”
“뭐가 이상해?”
“다른 크루즈랑 너무 다르잖아.”
“태어나서 크루즈를 탄 게 처음이라 다른 크루즈는 어떤지 전혀 모르겠는데.”
“꼭 크루즈를 타 봤어야 알 수 있는 게 아니야. 뭐라고 해야 하지? 인테리어나 이런 게 조금….”
뭐라는 거야?
무슨 말인가 했는데 엘레나는 아리 말을 이해했다.
“인테리어가 요즘 느낌이 아니죠? 가만 보면 사람들 복장도 그렇고.”
“이 무대의 배경 자체가 오래전 아닐까? 1950년대?”
묵성 할아버지가 반박했다.
“나도 처음엔 그런 생각도 했는데, 이걸 봐라. 오다가 주운 거다.”
할아버지가 누렇게 말라비틀어진 오래된 신문을 꺼냈다. 신문에 적힌 날짜는 2003년 8월이었다.
“2003년 신문인데 이렇게 다 썩었다. 무대 내의 시간도 적어도 2004년, 2005년은 됐겠지. 우리가 살던 시대보다야 과거 시점이긴 하지만 무슨 1950년대는 아니다.”
송이가 의견을 냈다.
“아주 오랜 시간 바다를 떠돌았을까요? 애초에 시나리오 제목도 ‘에스퍼 호의 비밀’이죠? 수십 년 동안 바다 위를 떠돈 유령선이라든가?”
“유령선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런 것이라면 우리에게 무언가 환각을 보여주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필터를 덮은 채로 봐도 전혀 풍경이 변하지 않아.”
마침 근처에 다른 승객이 지나가기 시작했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말을 멈춘 채 생각했다.
배의 인테리어나 승객들의 복장은 무대 내의 시간대에 비해 거의 수십 년의 격차가 있어 보였다. 에스퍼 호는 바다에서 수십 년을 떠돌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스토리는 송이가 언급한 ‘유령선’ 같은 건데, 딱히 환각이 있는 것 같진 않다.
이 정도 정보만 얻은 채로 슬슬 디너 파티의 시간이 다가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모두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으면 좋으련만, 시나리오에 따르면 이미 오늘 자정엔 다음 위기가 덮칠 것임이 예고된 상황.
그런데도 우리는 이 배의 비밀이 뭔지 감도 못 잡고 있고, 가장 큰 무력인 엘레나는 여전히 정의를 쓸 수 없는 상태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이 강해져서일까?
파티장을 향해 떠나기 전, 묵성 할아버지가 과격한 주장을 꺼냈다.
“파티를 한번 조져보는 게 어떻냐?”
다들 놀라서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이상하게 볼 것 없다. 나는 ‘파티’ 자체가 수상쩍다는 생각이 들거든. 단순한 감이 아니다. 가인이 시나리오에서도 지속해서 ‘디너 파티’를 언급하고 있고, 배에서의 첫날도 시작하자마자 직원이 와서 디너 파티에 참여하라고 했지. 심지어 오늘도 느꼈다.”
그 말을 듣고 오늘의 일을 되새겨봤다.
점심 먹고 배를 돌아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배의 선원이나 승객들을 만났다.
겉으로는 친해진 체하면서 적당히 웃고 떠들며 돌아섰는데, 그때마다 선원이나 승객들은 꼭 디너 파티에 대한 언급을 했다.
마치 우리 머릿속에 ‘디너 파티’라는 일정을 때려 넣는 느낌이 들었다.
송이가 약간 다른 의견을 냈다.
“배의 사람들은 잠재적인 적이잖아요? 그 사람들이 우리를 파티에 밀어 넣으려고 한다면, 파티에 가지 않는 쪽이 맞지 않을까요?”
“나도 처음엔 그쪽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파티에 가지 않으면 파티에 숨겨진 비밀이 뭔지를 알 방법이 없지. 호텔은 위험한 장소를 피해 다닌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게다가 시나리오에선 대놓고 디너 파티에서 정보를 모으라고 지시하기도 했지.”
듣다 보니 약간 의아해졌다.
“파티가 수상하다는 말은 알겠습니다. 수상하지만 가긴 해야 한다는 말까지도 알겠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가는 김에 한번 조져보자는 결론은 어떻게 나오신 겁니까?”
“논리라기보다는 직감이라고 해두마. 파티 자체가 놈들의 역린이라는 생각이 들거든.”
직감. 애매한 이야기다. 평소라면 이런 말에 설득당하진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자정에 다시 한번 위기가 찾아올 것임이 확정된 상태이므로 무언가 행동을 취할 시점이긴 하다.
결국 모두가 나름대로 파티를 흔들어보기로 결론을 내렸다.
*
디너 파티가 시작됐다.
처음엔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배의 승객들은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선물과 낯 뜨거운 칭찬을 늘어놓으며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그 와중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파티의 목적은 우리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는 건가? 아니면 그 이상?
일단은 내 나이나 출신 지역 등을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
기이한 경험을 했다. 승객들이 개인정보를 궁금해하길래 일부러 거짓 정보를 알려줬다.
어차피 서양인들은 동양인의 외견을 보고 나이를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들었다.
3살 정도 올려서 말했다. 출신 지역도 대충 중국 후난성이라고 우겼다.
대답을 믿는 느낌이 아니었다. 가볍게 웃으면서 돌아서는 듯하다가 다시금 내게 와서 똑같은 질문을 했다.
마치 이전에 했던 대답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 같다.
한가인 : 나이, 출신 지역을 궁금해함. 거짓말 해봤는데 아는 것 같다.
유송이 : 똑같은 경험. 나이는 대답하지 않고 일본 태생이라고 말했는데 속지 않음.
엘레나 : 다들 바보 아니에요? 무슨 탐지를 떠나서, 애초에 다들 한국어로 대화 중인데.
아 그렇네.
생각해보면 배의 직원이고 승객이고 다들 인종은 섞여 있지만, 대화는 진작부터 한국어로 하고 있었다.
대화조차 통하지 않으면 정보를 얻을 방법이 없으니 호텔에서 언어를 한국어로 설정한 느낌이긴 하다.
어찌 됐든 한국말을 하는 동양인이면서 국적은 중국이나 일본이라 해봐야 설득력이 없다.
아리가 다른 의견을 밝혔다.
김아리 : 국적은 그렇지만, 나이를 속지 않는 건 이상함.
맞다. 국적이야 언어 때문에 뻔하다 쳐도 아까부터 나이에 대해서도 속지 않았다.
외견만 보고 나이를 +- 1, 2살 차이까지 알아낸다는 건 이상하다.
결국 테이블 하나를 붙잡고 모두가 모였다.
어제처럼 우리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주변이 반응하는 상황.
묵성 할아버지가 슬슬 시동을 걸었다.
— 쨍그랑~!
술병을 테이블에 내리치며 요란한 소리가 났다.
“꺼어어억! 야 취한다! 가인아! 저기 가서 맥주 좀 가져와라.”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나도 정신없이 술을 가져온다, 안주를 가져온다고 하면서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승무원이 당황한 분위기를 감추지 않으며 우리에게 다급히 다가왔다.
“손님, 많이 취하신 것 같습니다. 그만 일어나시고 -”
— 덜컹!
할아버지는 그대로 테이블을 밀치며 건너편에서 뭐라고 말하던 승무원을 넘어트렸다!
아니? 갑자기 승무원을 패? 이렇게 막 나가도 되는 겁니까?
— 휘리릭! 퍽!
“어이쿠!”
“으악! 저 인간 왜 저래?”
할아버지는 술병 세 개를 더 깨트리더니, 이번엔 둥그런 빵을 원반처럼 던져서 주변의 승객을 맞추기 시작했다.
승무원도 승객들도 다들 혼비백산해서 우리 테이블로 다가올 때쯤.
할아버지는 테이블 위로 올라섰다.
“아~ 당신은 못 믿을 사람~???? 아~ 당신은 철없는 사람~????”
나는 아예 혼이 나갔고, 대화창도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엘레나 : 진짜 이렇게까지 해야 해요?
유송이 : 대체 언제 노래에요?
김아리 : 부르는 사람 기준으론 최신곡임.
혼돈 속에서 주변 사람들도 그냥 입만 벌리고 할아버지를 쳐다봤다.
“오 늘 은 들 국 화~???? 또 내 일 은 장 미 꽃 ~????”
이젠 그냥 웃기다. 그냥 어이가 없어서 웃기 시작했다.
“난 이 제 지 쳤 어 요 땡 벌~????”
“땡 벌!”
어이가 없어서 돌아보자 아리가 ‘땡 벌!’하고 있었다.
“기 다 리 다 지 쳤 어 요 땡 벌~????”
“땡 벌!”
아~ 모르겠다. 그냥 나도 같이 땡 벌!
무슨 일이 생기긴 할 것 같다. 이 지랄이 났는데 아무 일이 없으면 더 이상하지.
[조언 : 1 -> 0]위기 알림이 동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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